[된장국 샘플] 서투른 자장가
23년 4월 작업물
[디즈니 트위스티드 원더랜드] 2차 BL : A X D / 3000자
#라이벌 #악우 #햇살공 #고지식수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수업 내내 기숙사에서 혼자 앓아누워있을 A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A 녀석, 얼굴 엄청 빨갰지... 아침부터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긴 하던데, 역시 아침에 말 정도는 걸어볼 걸 그랬나. 책상에 팔을 올린 뒤 제 팔에 얼굴을 묻었다. A랑 싸우지 말걸. 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젯밤, 나와 A는 가벼운 말싸움을 했다. A가 나를 놀리고 내가 화를 내는, 언제나와 같은 패턴이었지만. A의 장난이 귀찮았던 나머지 나는, "내가 너랑 같이 다니고 있다는 게 창피하다!"라는 말을 해버렸다. 가볍게 꺼낸 말에 A의 얼굴이 굳었고, 나는 그런 A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껄끄러운 정적을 유지한 채 잠이 든 뒤, 일어나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각자 기숙사를 나섰다.
...만약 A였다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행동했으려나. 결국 이런 순간조차 내가 참고할 사람은 A였다. A는 어떤 순간이든 요령 좋게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사람이었고, 나는 언제나 A의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A라면, 분명... 애초부터 이런 어색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겠지. 어제 싸웠다고 해도, 아침에 상대방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 분위기를 풀어냈을 거야. A의 방식을 생각해보니 자신의 서투름이 더더욱 눈에 띄는 듯했다. 한숨을 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범생이라면 아마 조퇴 같은 건 하지 않겠지만... 오늘 하루 불량아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픈 A를 혼자 두고 싶지는 않았다. 타이밍 좋게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D? 이제부터 수업 시작인데, 어딜 가는 거니?"
"아까 조퇴한 A가 신경 쓰여서요. 오늘은 저도 조퇴하도록 하겠습니다."
당황한 선생님의 만류가 들려오기 전에, 서둘러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마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얕은 잠에서 깨어났다. ...뭐지? 누가 물수건이라도 올려준 건가? 천천히 눈을 떠보니, 흐릿한 시야 너머로 푸른 빛이 감도는 흑발이 보였다. 그 모습에 눈이 크게 뜨였다.
"...D?"
"일어났냐, A."
안정된 시야로 눈앞을 확인하자, D가 어정쩡한 자세로 물수건을 갈고 있었다. 물수건을 든 채 어쩔 줄을 모르는 듯 허둥지둥거리다, 결국은 물수건을 물이 담긴 대야에 대충 담가버리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몸은 좀 어때?"
"아파... 죽을 것 같아... 살려줘..."
잔뜩 인상을 쓴 채 아픈 척을 하며 앓는 소리를 내자, D가 다시금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 어, 어쩌지... 일단 119라도 부를까?"
"아하하! 장난이야."
"...걱정한 내가 바보군."
D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역시 D의 이런 표정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니까. D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야와 물수건을 치우더니, 아직 따끈따끈한 죽을 들고 왔다.
"먹을 기력은 있지?"
"D가 만든 거야?"
"뭐... 그렇지."
"에~, 그럼 맛없을 것 같아."
"...나도 죽 정도는 만들 줄 알거든? 장난치지 말고 입이나 벌려."
내가 입을 벌리자, D가 뚱한 표정으로 죽이 담긴 수저를 내 입으로 밀어 넣었다. 죽 특유의 고소함과 살짝 태워서 나는 것 같은 씁쓸함이 함께 퍼진다. ...역시 맛없어. 그래도 D가 나를 위해 죽을 만들어줬다는 사실이 기뻤으니까, 불평하지 않고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내가 빠른 속도로 죽을 해치우자 D는 그새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정말, 단순하다니까.
"...있지, D."
"왜?"
"나한테 화난 거 아니었어? 나랑 같이 다니는 거 창피하다며."
"...네 바보 같은 얼굴 보니까 다 사라졌어."
"진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D를 바라본다. D는 부끄러운 듯, 내 시선을 피한다. 이윽고 D가 입을 뻐끔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건넨다.
"A야말로... 나한테 화났던 거 아냐?"
"..."
...이렇게 분위기가 좋아졌을 때는, 지난 일은 다시 물어보지 않고 슬~쩍 넘어가는 게 상책인데 말이지. 굳이 이런 걸 꼭 확인받고 싶어 한다니까. 순수하고 바보 같은 그의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점이 D다운 부분이니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나도 D의 바보 같은 얼굴 보니까 다 사라졌어!"
D가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다행이네."
"그치? 역시 나는 아량이 넓다니까~."
"헛소리는 하지 말고. ...슬슬 다시 자라."
D가 그릇을 치운 뒤 불을 끄고, 나의 이불을 정리한다. ...이제 D는 다시 학교로 가버리는 걸까. 혼자 있기 싫은데... 자기 일을 끝낸 뒤 돌아서려는 그를 붙잡고, 응석을 부렸다.
"...잠들 때까지 자장가 불러줘."
"..."
D가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역시 거절하는 건가? 하긴, D는 내 어리광을 잘 안 들어주니까. 시무룩한 얼굴로 납득하려던 찰나, D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했다.
"...나, 자장가는 잘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아?"
"...! 불러주는 거야?"
"...네가 불러달라며."
D도 내가 아플 때는 상냥하구나. 그런 D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아픈 건 싫지만, 이렇게 상냥한 D를 만날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아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웃어?"
"아니, D의 자장가가 기대돼서."
"크흠, 크흠... 그럼, 부른다?"
D의 서투른 자장가가 시작된다. D는 어쩐지 긴장한 듯,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가사는 군데군데 비어있고 박자와 음정도 정확하지 않지만. 이 순간 나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따스한 노래처럼 느껴졌다. ...역시, D랑 있으면 즐거워. 깊은 잠에 들 것 같은 예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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