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좌표 (9,¾)에는 그래프 C와 V가 교차한다
만자타입 HL 소설 커미션 작업물
- 약 4일 소요 / 12,082자 / 전문 공개 샘플
- 해리포터 드림: 여캐 C, 남캐 V
- 신청사항: 1만 자, 오마카세, [ 마지막 전투에서 패한 뒤 학창 시절로 회귀한 V ]
회귀 좌표 (9,¾)에는 그래프 C와 V가 교차한다
: IF 마지막 전투에서 패한 뒤 학창 시절로 회귀한 V
V는 끝없는 암흑 속에서 눈을 떴다. 그는 분노에 가득 차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아악…! 처절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그는 앙상하게 마른 미라 같은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톱이 거의 살가죽을 쥐어뜯다시피 했지만 정작 손톱 밑에 낀 살점은 없었다. 한때 불멸을 바랐던 그는 죽어 영혼이 되어 가상의 킹스크로스역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이 내가 패하다니, 그럴 리가…!!”
V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광경을 떠올렸다. 딱총나무 지팡이, 튕겨 나온 주문, 녹색섬광, 해리포터의 심지 굳은 얼굴. 그리고─
뚝 끊겨버린 시야.
“빌어먹을…! 그놈의 해리포터, 해리포터, 해리포터……!!”
V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 대로 치밀어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뎠다. 여전히 사랑을 모르는 그는 자신의 패망 원인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단지 해리포터를 철저히 씹어대면서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이 위대한 V 경이 질 리가 없다. 한 번만, 다시 한 번만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죽음 다음으로 가장 싫어하는 것이 패배였기로서니, V는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랐다. 그는 강렬한 열망을 보였다. 다시 호그와트와의 전투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그러기만 한다면 이길 자신이 있는데. 조금만 더 완벽할 수 있다면, 내가 조금만 더 변수를 철저히 통제했더라면! 아아, 그렇다면 나는 영원한 숙적 해리포터를 제거하고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V의 분노와 욕망은 그의 걸음만큼이나 멈출 줄을 몰랐다. 그는 몇 날 며칠일지 모를 시간을 걷고, 뛰고, 박차고, 내달리다가 또다시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에 거대한 거울을 발견했다.
V는 어둠 속에서 홀로 우뚝 서 있는 거울을 올려다보았다. 제 키보다도 훨씬 큰 그것은 분명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소망의 거울이었지만, 유리면에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았다. 거울에는 누군가의 욕망도, 그 ‘누군가’의 모습도, 그 무엇도 비치지 않았다.
“…….”
일순, 조금 누그러지나 싶었던 V의 분노가 다시 솟구쳤다. 그는 거울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소망의 거울에도 비치지 않는 영혼.
지금 그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는 눈에 띄게 폭력적으로 돌변했다. 그의 입에서 바로 파괴 주문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거울은 파괴되지 않았다. 위대한 V 경, 모든 마법사가 두려워하는 최악의 마법사, 태생부터 마법에 매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천재….
그의 영혼은 이제 아주 기초적인 마법 능력조차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잔뜩 화가 나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돌연, 훅.
그의 주먹이 통째로 거울에 집어삼켜지더니 몸이 거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울 테두리에 발이 걸리고, 그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떨어져 내렸다.
귓가에 매섭게 휘날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V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울이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멀어지고, 그 위로 그가 겪어온 시간선의 수많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최후의 전투에서 패한 그, 추종자들과 호그와트로 진입하는 그, 호크룩스가 파괴되어 지금처럼 공허의 세계를 떠돌았던 그, 해리포터의 집에 들이닥쳤던 그, 언젠가 C이 죽었다는 기사 한 줄을 보곤 무심히 신문을 내팽개쳤던 그.
…그리고, 그 많은 삶의 파편 가운데 스쳐 지나가는 C의 얼굴.
***
“허억!”
쿵.
거대한 중력이 V를 지상으로 끌어당겼다.
무수한 별이 휘몰아치며 비문증처럼 증식하는 시야를 거부하고 고개를 쳐들면 보이는 것은, 맑게 갠 하늘.
새파란 빛과 이따금 해를 가리는 구름, 그 사이로 쏟아지는 빛 내림,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잔디, 온순한 물결처럼 스쳐 지나가는 바람….
그리고 그 위에서, 빗자루를 타고 나는 호그와트 학생들이 보이는 전경.
‘뭐지?’
그 광경을 본 순간, V의 심장이 살아있을 때보다 더 살아있는 것처럼 쿵쾅거리며 맥동하기 시작했다.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한기처럼 늘 그늘 속에 있던 그의 눈이 햇살을 받고 이채를 띠었다.
…호그와트.
호그와트다.
먼 옛날, 단순하게 생긴 잿빛 교복이 규정이던….
…….
…이상하다. 해리포터를 죽이려던 날도 아니고, 충실한 수하들과 계획을 실행했던 날들도 아니고, 마지막 전투를 치른 날도 아니고. 하등 아무래도 좋을 이따위 날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내 눈에 보이는 거지?
‘어이가 없군.’
이 풍경은 내 바람인가?
단순한 환각인가, 꿈인가, 혹은 언젠가의 기억인가.
그것도 아니면, 혹시……
“V.”
그때, 가느다란 목소리가 한쪽 귀로 흘러들었다.
눈을 뜨고도 아직껏 광활한 어둠을 헤매는 듯한 감각 속에서, 그 목소리가 그를 이 지상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의 이름 한 음절 한 음절에 중력이 실리고, 비로소 그의 몸이 이 아름다운 천체에 묶였다. 그래, 이 목소리도 익숙했다. 머나먼 과거에 몇 번이고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 나를 그 볼품없는 이름으로 부르는 마법사는……’
정체야 안 봐도 뻔하지. 그의 눈동자가 느리게 옆으로 굴렀다.
그러자 목소리의 주인을 채 알아보기도 전, 창백한 손이 이마에 얹혔다. 얇은 팔목을 따라 시선을 타고 내려가자 역시나 C가 보였다.
뭐야, 아직 제대로 살아 있잖아. V의 시선이 C에게 고정됐다. 그는 말없이 C의 팔목을 잡아 내렸다. 그제야 그녀가 제 이마만 뚫어지게 쳐다보다 눈을 맞추었다. 아, 미안. 계속 불러도 못 듣길래. 안색이 안 좋아서 아픈 줄 알았어…. 그녀가 꼭 십수 년 전과 똑같은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
V는 C을 놔주지 않고 제 손안에 있는 그녀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이건 정말로 이상하군.’
환영이라면 그녀가 잡힐 리 없는데, 지금 그의 손안에는 제대로 C가 잡혀 있었다. 부스럭거리며 옷감 구겨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존재감이 손바닥에 약간 헐렁하게 들어찼다.
‘잠깐, 설마…….’
그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자, V의 등 뒤로 쫘악 희열에 찬 소름이 번졌다. 덩달아 심장도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V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감각이 살아있다. 모든 게 느껴진다.
C의 촉감도, 그녀가 내뱉는 숨소리도, 살아있는 세계의 단맛도, 역겨운 풀냄새도, 그 모든 것을 굽어보고 있는 이 시야도.
V의 손이 이제는 C의 손목을 꺾어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세게 힘을 주었다.
“읏.”
C이 아픈 듯 신음을 뱉어냈다.
…….
“…아프니?”
그 소리가 어떤 해답이라도 된 것처럼, 그제야 V은 툭 손을 놓았다. C의 반응이 그가 이 세계에 동화되어 있음을 방증했다. 그의 얼굴에 더없이 큰 기쁨이 번졌다. 지금 이 순간, 그는 확신했다.
…돌아왔다.
돌아왔다.
아직 해리포터를 찾기 전의 세계로, 이 내가 원대한 계획을 실행하기 전의 시간으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는 차원으로!!
세계가 내게 기회를 주었다. 아니, 내가 직접 얻어냈다. 내가 쟁취했다. 역시 이 몸은 특별하다. 우주조차 그냥 그대로 스러지도록 두지 않는다. V의 입꼬리가 점점 더 수려하게 찢어졌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내내 아름답기만 했던 V의 기묘한 웃음을 보며 C은 섬찟함을 느꼈지만, V은 그녀의 반응을 눈치챘음에도 괘념치 않았다. 그녀가 혹 정말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물어도 답 없이 웃음만을 흘렸다.
제가 회귀했음을 깨닫고 나니 세상이 부쩍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반짝여 보이기 시작했다. V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처음부터, 처음의 처음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맨 처음부터 다시 계획을 짜야만 했다.
이번에는 해리포터도, 덤블도어도, 그 누구도 끼어들 틈이 없게, 태초부터 모든 실패 원인을 분석해서, 아무도 흠잡을 수 없이 완벽히.
“……하하.”
V의 어두운 욕망으로 가득 찬 시선이 호그와트 교정을 훑었다. 그리고 이내는 흘긋, 아직도 앉아서 저를 올려다보는 C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C도 6학년이 되면 죽었던가.
…….
‘뭐, 내 손에 죽을 수 있도록 ‘이것’도 계획에 넣어 두도록 할까.’
저와 함께 되살아난 C를 내려다보는 눈이 붉게 반짝였다.
***
V은 본인이 바랐던 대로 촘촘하게 계획을 설계하고, 또 그에 따라 두 번째 삶을 살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주변에 제 야망을 드러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전생의 V처럼 바르고 성실한 모범생의 가면을 쓰고 학교생활을 연기했고, 그 과정에서 C를 제 손으로 죽여 전생의 미련─본인은 그것이 미련인지 모르지만─을 깔끔하게 청산하고자 했다.
그는 기꺼이 다시금 C와 기숙사 반장으로서 활동했고, 학교 행사에 참여했으며, 만찬을 즐겼고, 춤을 추었다. 그는 이미 한 번 겪었던 C과의 추억을 이번 생에도 되풀이하면서 그녀와 시간을 보냈고, 그녀가 제멋대로 죽어버리지 않도록 전생의 계획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이미 한 번 똑같은 세계를 살아본 적이 있는 V은 얼핏 이 두 번째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로 지금까지는 효과적으로 통제를 해 오기도 했고 말이다.
…….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9월.
V과 C은 6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해 사건이 발생했다.
“안 돼……!! 이거 놔!!”
전생에 신문에서 이미 접한 바로 C이 죽는 일시와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던 V은, 그녀가 죽는 날 그녀를 살려냈다.
“쉿, C. 착하지.”
“어머니…! 엄, 흐읍……!!”
방법은 간단했다.
V은 어둠의 마법사들이 C을 공격할 때, 마법으로 그녀를 붙잡았다. C이 어머니 대신 즉사 마법을 막아서지 못하게 하고, 생명에 저울을 달았다. 그녀를 살리고 그녀의 어머니를 죽였다. 어둠의 마법사들이 그리하도록 만들었다.
C은 강렬히 저항했으나 완력으로도 마법으로도 V을 이기지 못했다. 마법사들의 주문은 한순간이었으므로, C의 어머니는 그렇게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C은 V에게 반격하며 왜 어머니를 구하지 못하게 했냐고 외쳤다. 왜 같이 맞서 싸우지 않고 자신을 막아섰느냐고, 대체 왜 그랬느냐고 분노와 원망에 복받쳐 소리쳤다.
그런 C의 모습을 처음 보는 V은 묘한 쾌감에 그녀를 가만히 감상하기만 하다가, 어둠의 마법사들이 소리를 듣고 돌아와 이쪽을 공격할 때야 그들에게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즉사 마법을 걸었다.
“……V, 너….”
C이 충격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녀는 V의 지팡이가 뿜어낸 녹색섬광을 보곤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머니를 공격한 마법사들과 V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제 눈앞에서 다정함을 연기하고 있는 그가 또 다른 어둠의 마법사임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런 그녀의 뺨을 쓸어 만지며, V은 태연하게 속삭였다.
“C, 넌 원래 저 자리에서 네 어머니 대신 죽었어야 했어.”
C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에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크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높디높은 기압으로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 그녀가 떨었다.
C은 그대로 V을 두려워하듯 한 걸음 두 걸음 주춤거리며 거리를 벌리다가, 못내 뒤돌아 등을 보이며 뛰쳐나갔다. 순간 그녀의 눈에 미래를 향한 어떠한 강한 열망이 내비친 듯도 싶었지만, V은 그녀를 쫓아가지도, 공격하지도 않았다.
약삭빠르면서도 멍청한 C. 내게서 도망갈 기회는 잘 낚아챘는데, 어째 등을 훤히 보이며 도망치는구나. 이 내가 당장에 살인 마법이라도 사용하면 어쩌려고. V은 그녀가 떠난 자리를 보며 혀를 찼다.
물론 그에게도 C에게 시선을 빼앗겨 그만 그녀가 소리칠 틈을 준 것은 실책이었다. 어둠의 마법사들이 돌아와 이쪽을 공격하는 그림은 제 계획도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V에게 있어 추후 제 추종자가 될 세력들을 제 손으로 없애버린 것은 아쉬운 사고가 맞았지만, 학생 신분으로 즉사 마법을 사용한 탓에 앞으로의 계획도 다소 많이 꼬이고 앞당겨질 터였지만.
C의 목숨을 제가 살렸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 그녀의 목숨은 제 것이었고, 그녀는 오로지 제 손에만 죽을 수 있었다.
V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말려 올라갔다.
그는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C를 이 세상에서 다시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
그로부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V은 전생의 찝찝한 감정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C부터 다시 찾아내는 대신 더 강력한 호크룩스를 만드는 데만 집중했고, 예정보다 빠르게 V 경이 되었다. 그는 기하급수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해리포터의 정체와 딱총나무 지팡이의 관계, 덤블도어의 계획과 같이 자신이 아는 정보들에 기반하여 전에 없던 대비책도 세우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일찍이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제 원대한 계획에 C을 끼워넣긴 했지만, 그에게 그녀의 의미는 그저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오직 불멸과 세계 장악, 또 그것을 위해 해리포터를 성공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C은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이게 대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처럼 V가 하등 신경 쓰지 않았던 부산물이, 되레 가장 큰 변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였으니….
“거기서 한 발짝도 더 움직이지 마, V!”
V는 해리포터를 납치하러 포터 가에 쳐들어갔던 밤, 바로 그 자리에서 C를 마주쳤다. 그녀가 릴리 포터와 해리포터를 막아서고 제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새를 틈타 쥐새끼 같은 포터 족속들이 도망쳤다.
그는 전례 없이 큰 분노를 느꼈다.
아아… C, C, C…….
빌어먹을 C……!!
기껏 살려줬더니 내가 살려준 목숨으로 감히 이 내게 도전을 해?
네깟 게 이제 와 날 막아 봤자 무슨 승산이 있다고…!
V는 미친 듯이 웃어 젖히며 제 오판에 분노했다. 그래, C을 살린 순간 결말이 예정되어 있던 그의 이야기도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C이 살아남으로써 그녀가 해리포터와 저 사이에 내려진 예언도, 또한 제 야망도 알게 되어버렸음을 체감했다.
순간 V의 지팡이가 매섭게 C을 겨누었다. 그는 C를 죽일 듯이 응시했다. 그의 살의로 불타는 눈과 C의 선의로 불타는 눈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고, 주변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
C이 마른침을 삼켰다. V는 정말이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너 따위 여자는 질려버렸다는 눈으로 말했다.
“그러게 숨어 살면 좋았잖아. 가만히 있었으면 내 친히 나중에 목숨을 거두어 줬을 텐데, 굳이 명을 단축해서 좋을 게 뭐라고.”
C은 답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 V를 경계하며 그의 움직임을 낱낱이 주시했다. 한때 같은 기숙사 대표였던, 동시에 친우였던 그들은 이제 서로를 죽이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C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녀가 주문을 외쳤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아바다 케다브라!!”
하지만 그녀의 마법보다 V의 주문이 더 빨랐다. 찰나 녹색섬광이 번쩍이고 C가 쓰러졌다.
“…….”
V는 조용히 걸어가 마법 주문을 외치던 그 자세 그대로 죽어버린 C을 내려다보았다.
애초부터 승리가 예견된 싸움이었다. 약해 빠진 C, 그 순간엔 나처럼 즉사 마법이나 고문 저주를 사용했어야지. 그는 무정한 눈빛으로 C에게 다시 한 번 지팡이를 겨누었다.
좀 전까지 들끓던 뜨거운 분노는 식어 차가운 분노가 되었고, 가슴에 어떤 감정이 손쓸 수 없이 밀려 들어와 전신을 침몰시켰다. V는 꼭 물에 잠긴 듯한 불쾌함으로 말미암아 C의 시신을 완전히 소멸시키고자 했다.
“…….”
한데 그렇듯 그녀를 겨누고 있으니, 왜인지 그녀를 소멸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모든 일이 너무도 순식간에,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흘러가 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V는 제 바람대로 C를 제 손에 살해했으나, 그러고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과학으로도, 마법으로도 정의 불가한 이상 현상이 그의 안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큭…….”
V는 이를 꽉 깨물었다.
“젠장!!”
그는 소리치며 다른 마법을 시전했다. 언뜻 슬픔 어린 그의 목소리가 고함에 가까운 주문을 내질렀다. C의 몸이 영원히 그 마법에 묶이고, 부패해 흙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저주에 얽혔다. 그녀의 시신이 포터 가의 정원수에 십자로 못 박혔다.
“제 어미를 살리려다 죽기에 구해줬더니.”
V는 성장해 어른이 된 C의 모습을 우러러보았다.
“이젠 하등 상관없는 해리포터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던져…?”
…하.
하하.
아하하…!!
V는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신세가 된 그녀를 조롱하듯 웃었다.
웃음은 점점 더 커지고, 갈라지고, 찢어지고, 치솟아 이내 괴성이 되었다. 그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마구 주문을 내던졌다. 디핀도, 릴라시오, 리덕토, 엑스펄소, 콘프링고……!!
V의 검은 로브가 휘날리고, 그의 지휘 한 번에 집이 폭파음을 내고, 땅이 굉음을 내고, 구조물이 파열음을 냈다. 포터 가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폭발하고, 붕괴하고, 파훼 되고, 가루가 되었다.
하지만 단 하나, C가 걸린 나무만큼은 파괴될 줄을 몰랐다.
V는 전생에도 사사건건 자신을 방해했던 그녀를 망설임 없이 즉사 마법으로 살해했으나, 정작 그 안에 남아있는 감정의 응어리는 조금도 말살하지 못했다. C가 떠나고 없는데도 그녀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은 제 안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종국에 V는 포터 가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려 주는 것으로 그 불쾌감의 일부를 연소한 뒤에야 자리를 떠났다.
C, 이 백번 죽어도 시원찮을 계집.
그녀 때문에 제 완벽했던 계획이 두 번씩이나 틀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해리포터가 살아남았다.
V는 그녀 때문에 엉망이 된 제 삶을 수복하기 위해 자취를 감추었다.
***
번쩍.
V는 눈을 떴다.
단 한 모금의 빛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이 그를 질식시켰다.
“아아악……!!”
그는 곧장 소리를 내질렀다.
원점이었다. 또 킹스크로스역 안이었다.
V는 양손으로 제 머리를 꽉 틀어쥐며 마지막으로 본 장면을 곱씹었다. 이번에도 최후의 전투는 호그와트에서 벌어졌다.
하나 다른 점은 릴리 포터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전생과 달리 이번에는 해리포터가 릴리 포터를 감쌌다. 그가 제 마법을 튕겨냈고, 릴리 포터가 제게 공격 마법을 걸었다. 모자의 합동 공격으로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
V는 해리포터에게 살인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그를 죽이지 않고 납치하고자 했고, 더 견고한 호크룩스를 만들었고, 마지막 결투에서조차 그 저주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그랬다. 두 번째 삶을 얻게 되고서 계획했던 모든 대비책을, 모든 경우의 수를 사용했는데도 그랬다. 그는 해리포터를 이기지 못했다.
“젠장할, 한 번만 더!”
그는 아무런 희망도 꿈도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을 우러르며 외쳤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그는 소망의 거울을 찾아 마구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간절함, 절박함, 시기, 질투, 욕심, 분노, 고통과 같은 감정의 분자들이 그의 내면을 마구 치받으며 한시 빨리 바깥으로 꺼내달라고 요동을 쳤다. 그는 헛구역질해대며 쉼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이렇게 두 번이나 실패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몇 날 며칠이 걸리든 상관없었다. 이번에는 더, 아주 조금만 더!! 첫 번째 삶보다도, 두 번째 삶보다도 더 완벽하게……!!
“찾았다……!!”
이내 V의 뜀박질이 거대한 물체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헐떡이며 거울을 올려다보았다.
그토록 거슬리는 C에게 아무런 주저 없이 살인 저주를 발동했듯이, 바라고 또 바랐던 삶을 앞에 두고 V에게 고민의 시간이란 없었다.
“이번에는 더 완벽할 수 있다……!!”
─훅.
V의 몸이 즉시 거울 표면에 맞닿았다.
이번 삶에서는 계획을 시행하기 전에 빌어먹을 C부터 납치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두 개의 시간선이 얽히고설킨 광활한 공간으로 떨어져 내렸다.
***
C은 눈을 떴다.
아니, 솔직히 눈을 뜬 게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도무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끝없는 어둠 속을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지……?”
그녀는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툭. 몸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이런 곳은 태어나서 처음 봐. 나는, 방금까지 분명…….”
…분명, 그러니까.
“…….”
무얼 하고 있었더라.
C은 의아해하며 쪼그려 앉았다. 그녀는 우선 제가 떨어뜨린 게 무언지 확인이라도 해 보고자 바닥을 더듬었다. 익숙한 촉감이 손에 닿아왔다.
“앗, 내 지팡이!”
보이지 않아도 수백 번도 넘게 쥔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들고 바로 주문을 속삭였다. 루모스!
훅. 순식간에 그녀의 주변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그녀는 한 번 더 주문을 외쳤다. 루모스 맥시마!
그러자 화악…! 거대한 흰 빛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주변의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헉……!”
C은 당황한 나머지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일직선으로 펼쳐진 길에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그것들이 살아있는 누군가의 기억처럼 마구 일렁이며 어떤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제야 C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벽화를 하나씩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탄생부터 아버지의 부고, 호그와트 입학, 약초실에서 벌어졌던 사건, 떠들썩했던 퀴디치 시합,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생애를 아우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연표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걷고, 걷고, 수없이 걸어서 마지막 장에 도착하면 보이는 것은…
……해리포터를 죽이려고 찾아온, 친애하는 V의 얼굴.
C은 한참이나 그 벽화 앞에 서서 멍하니 V을 올려다보았다. V, 대체 무엇이 널 그리 망가뜨린 거니. 그녀는 복잡한 심경을 느끼며 뒤를 돌았다.
그 순간, 팔랑….
갑자기 웬 종잇장이 그녀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주워들면 보이는 것은, 도서관에서 줄글로 익히 접해봤던 문서의 외양.
호그와트의 비밀지도였다.
‘이게 대체 왜 이런 곳에……?’
C은 지도의 앞뒤 장을 계속 뒤집어가며 살펴보다가, 못내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경계하고서야 주문을 외웠다. ‘나는 못된 짓을 꾸미고 있음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그러자 돌연 밝은 빛이 터져 나오더니 호그와트의 지도가 드러나고, 그곳에서 호그와트 설립 이래 벌어졌던 모든 사건이 빼곡하게 적혀 내려가기 시작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발자국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그녀를 한 사건에서 다음 사건으로, 또 다음 사건으로 인도했다.
C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는 빠르게 내용을 훑었다. 곧, 발자국이 지도의 가장자리에서 멈추었다. 그것이 지도 뒷면으로 향했다.
C이 지도를 뒤집자, 누리끼리한 백지에 킹스크로스역의 도면이 새겨지기 시작하더니 새로운 글씨가 써졌다.
[가엾은 영혼이여, 유일하게 그대만이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가 그대를 선택하는 바람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구나.]
“나만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 누가 날 선택했다는 거야?”
C은 지도에 대고 물었다. 지도가 대답하듯 다음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그자가 본래 죽어 있음이 온당한 그대를 되살렸기 때문에, 그대의 영혼도 불멸을 탐하는 그자와 다를 바 없게 변질해 버렸다.]
새로운 세계? 되살려? 변질? 대체 무슨 소리야…? 그 이전에 호그와트의 지도에 왜 킹스크로스역이 그려져 있는 거지?
도대체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C은 애꿎은 지도만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문득, 생전 V이 했던 말이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C, 넌 원래 저 자리에서 네 어머니 대신 죽었어야 했어.”
오소소 소름이 목 뒤를 치고 올라왔다. C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못내 입술을 벙긋거렸다. 설마. 설마…….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계속해서 그녀에게 길을 인도해 주고 있는 누군가가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그자를 막을 수 있는 건 똑같은 영혼을 지닌 그대뿐이야.]
C의 얼굴이 당혹감과 두려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더는 무엇도 쓰이지 않는 지도를 잠잠히 내려다보았다.
“…….”
그리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제 할 일을 깨달았다는 듯 지도를 접었다. 그녀의 눈이 행선지를 확신하는 사람의 눈처럼 밝게 반짝였다.
“…마법의 장난 끝.”
탁. 지팡이가 지도를 치자, 모든 글씨가 사그라들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품에 꼭 넣으며, C은 고개를 들었다. 불현듯 거대한 거울이 그녀의 앞에 놓여 있었다.
“…내가 무얼 해야 할지 알겠어.”
그녀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긴장해 땀이 배어 나오는 양 주먹을 쥐락펴락하고, 지팡이를 단단히 쥐고, 크게 심호흡한 뒤에야 발걸음을 내디뎠다.
“─녹스.”
C의 몸이 거울을 통과했다.
순간, 반대편에서 뛰어든 한 남자의 인영이 C을 스쳐 교차했다.
사상 최악의 마법사가 될 영혼과 기꺼이, 몇 번이고 삶을 반복하며,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반드시 그를 막는 어른이 될 영혼.
두 영혼이 9와 4분의 3의 승강장에서 추락했다.
강렬한 운명이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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