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 댄스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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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공학을 다닌다. 순영은 워낙 춤추는 걸 좋아해서 동아리 정할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댄스 동아리에 들어갔다. 지훈은 동아리 정하는 시간에 조는 바람에 남는 동아리가 하필이면 댄스 동아리라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것이다. 동아리 첫 날 부원들 모여서 자기소개 시간 가졌는데 순영은 훈을 처음 딱 봤을 때 너무 예쁘장하고 귀엽게 생겨서 여자애라고 착각했다.(지훈이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하교 시간에 우연히 마주쳤는데 남자교복을 입고 있어서 아 남자애였네 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너무 애가 예뻤다. 어디서 저런 예쁜 애가... 순영은 용기를 내서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아 저기 동아리 맞지?”

“어...응“

”우리 자주 볼 거 같은데 번호 좀 줄 수 있을까?“

”그래 뭐.“

 

지훈은 아까 동아리에서 본 그 잘생긴 애가 번호 달라니까 무심코 줘버리고 말았다.(원래 모르는 사람한테 번호를 주지 않는 편이다.) 반도 다른데 자주 볼 일이 있나 싶었으나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게 된다. 동아리 발표회 장기자랑에 나가게 돼서 방과 후 시간마다 연습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맞지 않는 부원들은 어쩔 수 없이 빠지는 걸로 하고 되는 사람들은 매일 남아서 연습하기로 했다. 훈 사실 공부에 올인 중이라 동아리에 할애할 시간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 연습시간을 만들어냈다. 지훈은 연습하면서 자기가 몸치라는 걸 깨닫고 위기감을 느낀 것이었다. 심지어 그 잘생긴 애는 춤도 잘 췄다. 저렇게 잘 추는 애랑 같이 장기자랑 나가는데 구멍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석식 먹고 동아리실로 향했는데 이미 누가 있는 것이다. 들어가 보니까 순영이었다. 그렇게 잘 추는 애가 연습하고 있는 걸 보니 멋있다고 느끼는 지훈이었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조용히 보다가 슬쩍 옆자리로 갔다.

 

”어 언제왔어? 여기는 왜..?“

”방금, 연습하려고.“

 

모범생 상인 예쁜이가 동아리 연습을 하러 왔다니까 순영은 조금 놀랐다.

 

”왜...?“

”아니 그냥... 공부만 할 줄 알았어.“

”아...“

 

물론 맞는 말이었다. 지훈은 공부만 하는 애이다. 발표회 장기자랑 때 못하면 좀 그렇잖아

 

”내가 도와줄까?“

 

순영은 예쁜이가 더 연습한다는 거에 감명 받았다. 훈 갑작스러운 제의였지만 동아리 부장이 도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주면 고맙지.“

”좋아 어디가 잘 안돼?“

 

이 둘이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종례 끝나고 만나서 연습하고 같이 석식 먹고 또 연습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같은 반 친구보다 더 얼굴을 많이 보는 지경에 이르렀고 학교에서는 이미 댄스부 걔네로 소문났다.

 

예체능반 권순영이랑 전교 5등 이지훈이래

(수근수근)

도대체 둘이 왜?

(웅성웅성)

몰라 같은 동아리라 그런가봐

 

본인들도 신기해하긴 마찬가지였다. 동아리 아니었으면 접점 없었을 둘이었기에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피 흘리는 연습으로 지훈은 얼추 폼을 갖추게 되었다. 순영도 이정도면 괜찮다고 인정해줄 정도였다. 그리고 시험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중간 한 달 전부터는 전 동아리 활동이 자유였다. 말이 자유지 대다수가 동아리 활동은 쉬고 시험공부에 전념하는 걸로 돌아갔다. 댄스부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시간 활동 때만 모이고 그 외 시간은 쉬는 걸로 되었다. 지훈은 그러면 당분간은 순영과 못 만나는 건가하고 살짝 아쉬워했다. 같이 공부하자고 해볼까 생각했지만 예체능반이라 얘기 해보기도 조금 그랬다. 그래서 그냥 가방 챙겨서 자습실 가려는데

 

”지훈아!“

 

순영이 부르는 것이었다.

 

”공부하러 가는거지? 나랑 같이가자.“

 

지훈은 내심 반가워서 그러자 하고 같이 자습실에 갔다. 방과 후 자습은 자습실에서 하는데 자습실 분위기는 열람실보다 조금 시끄러운 분위기였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도 돼.“

 

지훈은 이렇게 말하고는 스터디 플래너를 보고 오늘 나갈 진도를 살폈다. 순영은 저 얘기 듣고 살짝 설레었다. 이게 전교 5등의 위엄인가 했다. 순영도 내신은 챙겨야 했기에 오히려 좋아 였다.

 

”지훈아 이건 왜 이렇게 되는 거야?“

”아 이거.“

 

지훈은 순영이 물어보는 족족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줬다. 괜히 전교권이 아니구나 하고 감탄하며 듣는 순이었다. 공부 방해하는 게 아닐까 하고 미안하다고 하는데

 

”괜찮아 설명하는 것도 나한테 도움 되니까.“

 

라고 말하는 지훈이 그저 빛으로 보였다. 방과 후 자습시간이 끝나자

 

”오늘은 야자 하지?“

”응 넌 학원 간다 하지 않았어?“

”오 기억 하네 맞아 열람실 들렀다가 같이 석식먹자.“

”그래.“

 

둘이 같이 석식 먹는데 권순영이 대뜸

 

”지훈아“

”??“

”너 되게 예쁘다“

 

갑작스러운 플러팅에 얘 얘 뭐지??? 하고 어버버 하는데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너 예뻐“

”밥 먹는데 무슨 소리야..“

 

지훈 귀 살짝 빨개져서 수저만 달그락거렸다.

 

”나 너 처음 봤을 때 여자애인 줄 착각했다니까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렇게 친해져서 얼마나 좋던지“

 

얘는 지금 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게 맞나?

 

”나 남자거든.“

”알거든ㅋㅋ 그래도 좋다구.“

 

무슨 플러팅을 이리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지 지훈의 얼굴만 더워질 뿐이었다.

 

”내일 봐 지훈아~“

 

석식 다 먹은 순영은 학원으로 향했다. 지훈은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데

 

”이쥰!“

”오 문쭌 ㅎㅇ“

 

지훈의 반 친구 준휘가 인사를 했다.

 

”너 나 버리고 다니더니 혼자냐?“

”내가 언제 버렸어.“

”맨날 권순영하고만 다니잖아ㅡㅡ“

”아 반에서는 같이 놀잖아.“

 

투닥거리는 둘이었다.

 

”야.. 친구한테 예쁘다고 하는 건 무슨 경우냐?“

”정신나간경우?“

 

그치 보통은 그렇지 아니 근데

 

”누가 너보고 예쁘대?“

”누구겠냐.“

”권숝영이?!!“

”왜 그렇게 놀라?“

”아니 걔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잖아. 내가 아는 애들만 해도 차인 애들이 수두룩인데.“

”걔가 인기가 많았나“

”너는 워낙 학교에 관심이 없으니 몰랐겠다. 걔 작년 입학할 때부터 난리였어.“

”그 정도였구나...“

”근데 갑자기 공부만하는 애랑 같이 다니기 시작하니까 애들이 신기해 하는거지.“

”어쩐지 나한테도 말거는 애들이 많다 했다.“

”난 아직도 신기해 진짜 어떻게 친해졌냐?“

”말했잖아 연습하다가 친해졌다고.“

”걔 때문에 댄스부 들어간 여자애들은 못 친해졌다고 그러던데.“

”몰라 그냥 친해짐.“

”뭔가 이상한데...“

”그냥 나랑 친해지고 싶었나봐. 나랑 친해져서 좋대.“

”권순영이 그렇게 말해???“

”ㅇㅇ“

”일이 재밌게 흘러갈거같은데~“

”됐고 들어가자. 곧 종칠 시간이다.“

 

그냥 단순히 친해지고 싶었던거겠지... 괜히 설레발 치지 말자 이지훈 살면서 남자를 좋아해볼 일은 상상도 안 해봤는데 요즘 들어 권순영이 신경쓰인다. 유난히 붙어 다니는 건 그럴 수 있다 치는데 느닷없이 예쁘다고 말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연습할 때는

 

”거기서 표정 그렇게 지으니까 예쁘다.“

 

이러질 않나 자습할 때는 너무도 뜬금없이

 

”지훈이 예쁘네“

 

이러니까 훈은 조금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더 그랬다. 차라리 장난이면 야ㅋㅋ 작작해라 이럴텐데 목소리부터가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간혹 야자 끝나고 집 가는 길에 마주치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기어코 지훈의 집 앞까지 왔다가 갔다. 이게 보통친구사이가 맞나? 싶어 혼란스러운 훈이었다. 그럴 때마다 설레어하는 자신이 참 웃기기도 했다. 이러다가 진짜 권순영을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닐까 교과서나 체육복 빌리러 오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같이 매점가자고 끌고 가기도 하는 권순영이었다. 덕분에 학교에서 더 눈에 띄게 되었다. 여자애들 고백은 모조리 거절하면서 웬 작고 예쁜 남자애만 끼고 다니니까 별 요상한 소문도 돌았다. 약점이 잡혔다 여자애들 고백 막으려는 거다 게이 아니냐 등등 그나마 훈의 친구 준휘가 소문을 얼추 막아줬다.

 

”걔네 둘 그냥 절친이야^^“

 

권순영 다음으로 지훈이랑 가깝게 지내는 준휘가 그렇게 말하니 다들 그런 줄 알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아무튼 이지훈 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심란하다. 살면서 남자한테 설레 본 적은 처음에다가 점점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권순영은 자신에 대해 별 생각이 없을 텐데 걘 그냥 친구다 별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다 라며 온갖 세뇌를 시키는데 사람 마음이 생각대로 될리가 없었다. 짝사랑을 인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사실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은 참 이상하게도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언가 싹트기 시작한다. 지훈도 그랬다. 그냥 평소와 같았다 같이 자습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유독 피곤했다. 왜 선생들은 수행평가를 시험기간이랑 겹쳐서 내주시는 건지 전 날 야자 끝나고 집 가서 수행평가를 마저 하느라 잠을 많이 못 잤다. 그래서 아침 조례시간에도 자고 쉬는 시간마다 계속 잤다. 그런데도 피로가 가시지 않으니 편의점에서 사온 커피 한 잔 마시고 순과 자습실로 향했다. 쉬는 시간 동안 계속 잤으니 자습시간에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카페인이 마신다고 바로 효과가 있진 않았다. 역시나 지훈은 책을 펴고 샤프를 쥔 채로 꼬박꼬박 졸기 시작했다. 순영이 그런 지훈을 보면서 귀엽다는 듯 웃어보였다.

 

”지훈아“

”어엉...?“

 

지훈은 너무 졸려서 비몽사몽했다. 그냥 누가 불러서 반사적으로 대답한 거다.

 

”지훈아 그냥 푹 자는 게 좋겠어“

 

순영은 말하면서 지훈의 얼굴에 인형 받쳐주었다. 지훈은 졸려서 의식이 흐릿했다. 누가 푹신한 거 주니까 자연스럽게 베고 엎드려버렸다. 새하얗고 동그란 애가 따끈따끈하게 누워있으니까 귀여움 그 자체였다. 순영은 지훈이 너무 귀여워서 입 틀어막고 웃었다. 그러다 교실이 조금 서늘하다는 같다는 느낌을 받은 순영은 어디선가 담요를 가져와서 훈에게 덮어주었다. 지훈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순영은 잠들어있는 지훈의 얼굴 빤히 쳐다봤다. 색색 숨소리 내며 자는 게 너무 예뻤다. 얘는 자는 얼굴도 예쁘네 하고 생각한 순영이었다. 순영은 가만히 보다가 같이 엎드려 누웠다. 엎드린 채로 지훈의 얼굴을 구경 하다가 눈가에 있는 머리카락 살짝 잡아서 치웠다. 볼도 한 번 만져보고 머리도 한 번 쓸어내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훈아 나 너 좋아하는 거 같아."

 

작게 아주 작게 읊조린 순영이었다.

지훈은 곤히 자다가 종 치는 소리에 눈을 살며시 떴더니 눈 앞에 권순영 얼굴이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 석식 시간이라 자습실이 시끌벅적 해졌다. 잠이 이제 막 깬 지라 사태 파악이 조금 더뎠다. 얘는 왜 내 코앞에서 자고 있냐... 그 와중에 이 인형 권순영 꺼잖아 이걸 왜 나한테 담요까지...? 지훈이 베고 자던 인형은 얼마 전 둘이 같이 하교하던 길에 인형뽑기에서 뽑은 인형이었다. 학교에서 쓰기 좋을 거 같다고 좋아하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왜 지가 안 쓰고 나한테... 담요는 어디서 주워온거람 보통 친구한테 이렇게까지 하나...? 아니지 않나 우씨 왜 괜히 기대하게 만들어 아니 그보다 나 왜 기대하는 거지...

 

...

...

...

 

좋아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 권순영 좋아하는 거지? 맞지? 아 짜증나 왜 하필이면 권순영이야 아니 근데 권순영이 먼저 그렇지만 얘는 원래 이런 성격이지 않았나... 왜 쓸데없이 다정하고 난리야 권순영 짜증나

 

혼자 얼굴 붉히며 오만가지 생각을 할 때

 

"흐암 지훈아 일어났네."

 

옆에서 한가로이 잠에서 깬 순영이었음 지훈을 딱 보더니

 

"지훈아 너 어디 아파?"

"ㅇ..어? 아니?"

 

원체 새하얀 피부인지라 붉어진 티가 바로 났다. 특히나 순은 훈의 첫 인상이 하얗고 예쁜 애였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순영은 손을 지훈의 이마에 갖다 대곤

 

"열은 없는거 같은데... 너 얼굴이 빨개서."

 

갑작스런 순영의 행동에 지훈이 놀라 대답했다.

 

"어?! 아 그 그럴 수도 있지. 난 괜찮아. 그보다 석식 먹으러 가자. 종 진작에 쳤어."

 

대충 얼버부리는 지훈이었다.

지훈의 이마에 손 대보는 와중에 지훈의 얼굴이 자기 손에 다 가려질 거 같았다. 얘는 하얗고 예쁜 것도 모자라 얼굴도 작구나 하고 생각한 순영이었다.

 

 

'아 망했다'

 

야자가 끝나고 집에 온 지훈은 침대에 엎어졌다.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야자가 끝나도 집에 와서 더 공부를 하던 지훈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씻고 자기로 했다. 그놈의 권순영이 뭐라고 자꾸 생각나서 나가야 할 진도를 제대로 못 뺐다. 하루 정도는 주말에 더 짬 내면 되니까 괜찮으니 망정이었다. 여태 권순영이 지훈에게 보여준 행동만 보면 보통 친구 사이에서 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상대는 권순영이다. 성격이 워낙 다정하고 능글거리니까... 와중에 친구 준이 한 말이 떠올랐다. 다른 여자애들하곤 친해지지 않았다니... 마치 나한테만 특별하게 구는 것 같잖아 그저 내가 같이 다니기 편해서, 그래 편한 친구니까 그런 걸 수도 있다. 근데 나는 그런 친구를 좋아...하는거고... 순영을 좋아한다고 되새기니까 지훈은 도로 얼굴이 빨개졌다 자신의 이마에 그 큰 손을 대보던 순이 떠올랐다. 아 미치겠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설레지 다정한 성격 참 좋지 그런데 그게 짝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이렇게나 괴로운 성격일줄 처음 알았다. 분명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굴겠지 아 그건 싫은데... 그렇다고 내가 권순영에게 특별해질 방법이 있나? 지훈은 그저 조용히 공부만 하는 학생일 뿐이었음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내가 권순영과 친구인 것도 어떻게 보면 신기한 일인데 그 이상의 관계가 되는 게 가능한가? 지훈은 순영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여태껏 망한 짝사랑을 겪어왔기에 자신이 없었다. 짝사랑을 끝내는 방법 첫 번째는 부정하기 두 번째는 고백하고 차이기인데 고백 할 용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 있을까? 매일 붙어 다니고 매일 설렐 텐데. 이불을 끌어안고 낑낑거리던 지훈은 이러다간 아침까지 고민하겠다 싶어 침대에서 일어났다. 일단 씻자 씻어내 버리고 나중에 생각하자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씻어내자곤 했지만 샤워를 하면서도 이것저것 떠올려지는 지훈이었다. 지훈은 순도 100퍼센트의 내향인이라 순영을 꼬셔볼 생각조차 못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옷 잘 입기? 내향인의 플러팅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일단 순의 눈에 잘 띄어야 한다. 그러려면 뭘 해야 할까 곰곰히 생각하던 지훈은 번뜩 한 가지가 떠올랐다. 댄스부. 생각해보니 둘은 댄스부에서 알게 되고 친해진 거였다. 순은 춤을 잘 췄다. 입학식 축하공연 때 워낙 잘 춰서 눈에 잘 띄었다. 그렇다면 나도 더 연습해서 잘 추면 되는 거 아닌가? 동아리 연습 때도 순영은 실력이 느는 부원들을 격려하고 좋아했다. 생각해보니 지훈도 열심히 한다고 칭찬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거다! 내향인이 할 수 있는 최대 플러팅! 마음 같아선 당장 내일부터 저녁 연습을 하고 싶었으나 아직 중간고사였다. 안무 영상이라도 틈틈이 봐둘까 하며 마저 샤워를 하는 지훈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났다. 지훈은 나쁘지 않게 시험을 마무리 한 모양 이었다. 순영은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마자 지훈의 교실로 달려갔다. 지훈은 자신의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순영을 보고 인사했다.

 

“자기야~”

“어 그래. 기분 좋아보이네.”

“너 덕분에 아는 문제가 많았어.”

“잘 됐다.”

“지훈아 시험도 끝났는데 놀러 갈래?”

“아 그럴까?”

 

사실 지훈은 바로 댄스부 연습을 갈까 하고 있었다. 시험기간 동안 안무 영상을 틈틈이 봤으니 끝나자마자 연습해보려 했다. 그런데 짝남이 데이트... 아니 놀자고 하니까 오늘 하루는 미루기로 하는 지훈이었다. 순영에게 이끌려 대학가로 향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다들 시험이 끝났는지 교복을 입은 또래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순영은 우선 배고프니 밥부터 먹자며 식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훈아 뭐 먹고싶은 거 있어?”

“매운 거 땡기는데.”

“떡볶이 먹을래?”

“좋아”

 

둘은 떡볶이 집으로 향했음

 

“사장님 안녕하세요!”

“학생 또 왔네~ 오늘은 다른 친구 데리고 왔구나.”

“넵ㅎㅎ 떡볶이 2인분이랑 튀김 1인분 주세요.”

“조금만 기다려.”

 

순영은 사장님과 꽤나 친해보였다.

 

“단골인가보다.”

“아 친구들이랑 자주 왔거든. 여기 맛있어.”

“그래. 단골 말 믿어볼게.”

“너랑 둘이 와보고 싶었어.”

“어 어? 그래”

 

아니 쟤는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그보다 저런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지훈은 훅 들어오는 순영의 말에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쟤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 일텐데 이렇게 의미부여 하면서 설레도 되는 건가. 하며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소화시킬 겸 좀 걸을까?”

 

점심을 다 먹고 둘은 북적거리는 대학가의 거리를 걸었다. 대학가라 그런지 커플들도 제법 많았다.

커플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금 우리도 그렇게 보이려나...? 우리도 어떻게 보면 데이트...인데

괜히 데이트라고 생각하니까 부끄러워지는 지훈이다. 거리를 걷는데 순영의 눈에 오락실이 들어왔다.

 

“어 지훈아 오락실 갈래?”

“그럴까?”

 

둘은 오락실로 향했다. 많은 인형뽑기 기계와 게임기들 사이를 거닐며 무슨 게임을 할지 고민하는 둘이었다. 지훈은 사실 오락실을 자주 가보지 않아서 꽤나 생소했다. 지훈이 신기해하면서 두리번거리자 순영은 그 모습이 귀여운 듯 피식 웃어보였다. 그러다 순영의 눈에 들어온 게임이 하나 있었다.

 

“지훈아 농구 게임 해볼래?”

“농구...?”

 

농구공을 골대에 넣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오락실이 생소한 훈도 농구 게임은 친구들과 몇 번 해본 적 있었다.

 

“좋아”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내기 하나 할래?”

“무슨 내기...?”

“소원권 걸자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거 어때?”

 

소원권 내기라니 조금 갑작스러웠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래 하자.”

 

둘의 농구 대결이 시작되었다. 순영은 체육과를 희망했기에 농구에 꽤나 자신이 있었다. 순영이 소원권을 건 이유가 있었다. 지훈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기에 진심으로 임할 예정이었다. 지훈도 체육은 나쁘지 않았으나 순영을 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지만 순영의 부탁인데 거절 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둘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순영은 공을 던지는 족족 골인이었다. 지훈도 꽤나 골을 잘 넣었으나 순영처럼 잘하진 못했다 결국 승리는 순영에게 돌아갔다. 순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내가 이겼네. 소원권 나중에 써도 되지?”

“나한테 뭐 소원이라고 빌게 있어?”

“있어 그런 게.”

“그래 알았다.”

 

순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이 밝고 예뻐서 다시 한 번 반하는 지훈이었다.

 

 

“지훈아 고마워.”

“고마우면 빨리 나을 생각이나 해.”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대화냐면 권순영이 다리를 다쳤다. 체육시간 때 축구를 했는데 몸싸움이 있었댔나? 암튼 그래서 한 쪽 다리가 깁스 신세가 되었다. 동아리 발표회도 얼마 안 남은 시기에 다쳐서 동아리 부원들도 걱정이 많다. 특히나 권순영은 독무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독무를 누가 대체 하는 지가 문제였는데 아무도 독무에 지원하지 않았다. 그건 지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순영의 눈에 띄고 싶다지만 독무를 하기에는 지훈은 초보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는데

 

“지훈아 네가 해볼래?”

 

라고 순영이 말해버리는 탓이 부원들의 이목이 훈에게 집중됐다. 지훈은 순영에게 너 정신 나갔니? 라는 제스처를 보냈지만 순영은 미소를 지으며 부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해?”

“야 너 미쳤...”

 

부원들은 자기만 아니면 된다 라는 생각이라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그럼 지훈이가 하는 걸로~”

 

그렇게 순영의 독무파트는 지훈이 맡게 되었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자마자 지훈은 순영의 팔을 꼬집으며 말했다.

 

“야 독무를 내가 어떻게 해?”

“아야야 일단 손부터 놔줘.”

 

지훈은 꼬집던 손을 놨다.

 

“너 춤 많이 늘었잖아. 할 수 있어.”

“그래도 아직 멀었는데 무슨”

“내가 도와줄게 응? 해보자.”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고 내가 할 거 같냐 응 그치 하겠지

 

“하... 어차피 내가 하는 걸로 됐잖아.”

“고마워 지훈아!”

 

지훈은 이게 오히려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쥰 너 독무한다며~”

“어떻게 알았냐.”

“권순영이 알려줬어.”

 

아침 자습 시간 준휘가 지훈에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말을 걸었다.

 

“? 너네 언제 친해졌냐.”

“몰라 그냥 친해졌어. 네 말대로.”

 

준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무튼 그거 때문에 골치 아파졌어.”

“그래도 순영이는 너 잘 할거라고 하던데.”

 

너네 언제부터 성 떼고 말하는 사이가 됐냐 몰라 그렇게 됐어

쉬는 시간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교실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지훈 짝꿍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뒷자리에 앉아있던 준휘는 빠르게 지훈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래서 너네 언제부터 사귄건데?”

 

지훈은 책상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내다가 준휘의 말에 놀라 떨어뜨렸다.

 

“무슨 소리야 도대체!?”

“엥 아니야? 요즘 분위기가 좋길래 당연히 사귀는 줄;”

 

요즘 자주 붙어 다니긴 했는데 남들한테 그렇게 보였나?

 

순영이 다리를 다치고 나서부터 둘은 유난히 더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순영은 깁스를 한 다리를 이끌고 수업이 끝날 때마다 지훈의 반 앞에 와서 지훈을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방과 후 자습 시간에는 일대일로 독무를 봐줬고 당연히 석식도 같이 먹었다. 모든 일정이 끝나면 지훈은 순영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아픈 다리로 자꾸 지훈을 데려다주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어쩔 수 없이 지훈이 반대로 순을 데려다주는 걸로 합의를 봤다. 아무튼 좀 같이 다닌다고 저렇게 오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애초에...

 

“걔는 나 안 좋아해.”

 

지훈은 단호하게 말했다 순은 모두에게 다정했다 댄스부 활동을 생각해도 그렇다. 내 연습을 봐주다가도 부원이 도움을 요청하면 곧바로 달려가 부원을 봐주곤 했다. 다른 학생들이 기피하는 선생님의 심부름도 흔쾌히 한다거나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기도 했다. 순영이 지훈을 대하는 건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지훈은 순영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준휘는 엥 그래?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너는 좋아해?”

 

지훈은 마시던 물을 뿜었다 아니 얘는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안경을 쓴 학생이 와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 원우~ 지훈이가 권순여...”

“조용히 하라고!!!”

“그렇구나.”

 

지훈아 짝사랑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아니 그런 거 아니라고 우리가 도와줄게 아니 뭐를?!

지훈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

 

“그보다 나 그렇게 티났어...?”

“ㄴㄴ 알잖아 나 눈치 빠른 거”

“이열 문준휘~”

 

그보다 너네 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거냐 친구가 남자를 좋아한다는데 사람이 사람 좋아한다는데 뭐 어때 네가 빨개 벗고 다녀도 그러려니 할 거야 그건 좀 뭐라고 하라고

 

“그래서 언제 고백할건데?”

 

준휘가 물었다.

 

“안 해.”

“하남자네.”

“그래 나 하남자다.”

 

원우가 야유를 보냈다. 고백하면 친구도 못 할 게 뻔한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까. 애초에 받아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만약에 미쳐서 고백한다 한들 권순영은 착해빠져서 돌려서 거절하고 친구로 지내자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계속 함께할 수 있기는커녕 내 쪽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아 시끄럽고 곧 수업 종 치니까 자리로 가지? 네네 전교 5등 말 들어야겠지요 아오 저것들 진짜

쉬는 시간인데 뭐 제대로 쉬지도 못 했네

 

종례가 끝나고 복도로 나가자 역시나 순영이 있었다. 어차피 동아리실에서 만날 텐데 무리하지 말라 해도 말을 안 듣는다. 순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실헤실 웃으면서 훈을 맞이했다.

 

“잘 걸어다니는 거 보니까 깁스 풀어도 되는거 아니야?”

“아니야 아직 아프다고.”

“그럼 오지 말라니까.”

“빨리 보고싶어서.”

“뭐래.”

 

또 저런다 권순영은 항상 저런 식으로 사람 마음을 쉽게 흔들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권순영의 안 좋은 습관이었다. 그걸 다 알면서도 권순영이 저럴 때마다 설레는 나도 참 바보같았다. 권순영은 꿈에도 모르겠지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훈은 익숙하게 순을 부축했다. 그러고는 동아리실로 향했다.

 

동아리 발표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 지훈은 내심 순영의 다리가 다 나아서 독무를 순영이 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나 당연하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훈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연습에 더 열심히 임하기로 했다.(그렇다고 평소 연습을 대충하진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마저 마무리합시다.”

“네~”

 

연습은 얼추 마무리가 다 되어갔다. 춤이 생소한 부원들도 어느새 모양새를 갖췄다. 동선과 대형 맞춰보기만 하면 정말 끝이었다. 한 편 지훈은 그래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살면서 무대에 올라가본 적도 몇 없는데 그 위에서 공연이라니 심지어 독무까지 맡게 되었으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춤이 어색한데 벌써 다음 주라니 졸았다가 동아리 잘못 들어온 게 이렇게나 후회가 되었다.

다른 동아리 들어갈 걸... 아 그랬으면 권순영하고 완전 남남이었으려나 그건 또 싫을지도 이미 벌어져버린 일인 걸 어찌하겠어


어느덧 동아리 발표회 전날이 되었다. 순영의 다리는 역시나 다 낫지 않았고 물러날 곳이 없는 훈이 독무를 해야만 했다. 전날이다 보니 무대 리허설이 진행되었고 순을 제외한 부원들은 무대 위에서 동선을 맞췄다 순영은 객석과 무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진두지휘를 했다. 지훈은 순영이 저렇게 열정적인데 막상 무대에 설 수 없어서 아쉽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꽤나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런 순을 생각하면 훈이 무대를 완벽하게 소화해야 했다. 덕분에 지훈은 부담감만 더 생겼다. 첫 리허설이 마무리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지훈은 무대 위에 털썩 앉아서 텅 빈 객석을 바라보았다.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도 긴장되는데 내일은 얼마나 긴장될까 하고 걱정을 했다. 내일이 되어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훈 앞에 얼굴이 훅 들어왔다.

 

“지훈아 뭐해?”

 

순영은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했다. 갑자기 들이밀어진 순영의 얼굴에 긴장한 것보다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얼굴도 화끈거렸다.

 

“너 얼굴이 빨간데? 괜찮아?”

“긴장해서 그런가봐. 괜찮아.”

 

너 때문에 그런거잖아 너!! 지훈은 속으로 외쳤다.

 

“너무 긴장 하지 마 아까 보니까 잘하던데 뭘.”

“비행기 태우지 마... ”

 

지훈은 쑥스러운지 뒷말을 늘렸다.

 

“진심이야. 너 정말 잘해.”

“...”

“자신감을 가져. 응?”

“...”

“진짠데 나 아까 너 추는 거 보고 반할 뻔 했잖아.”

 

이미 반해있긴 한데

 

“뭐?”

“아무튼 내일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내 맘 알지?”

 

아니 모르겠는데 전혀 모르겠는데 얘는 왜 저런 말을 표정하나 안 바뀌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거지?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권순영 저 녀석까지 저러니까 더 심란한 지훈이었다.

 

순영은 지훈의 춤이 좋았다. 단지 지훈을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 있는 동작이 지훈을 더 돋보이게 했다. 개인적인 사심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훈은 힘 있고 세심한 춤을 구사했다. 훈은 춤이 처음인 초보자였지만 습득이 빨랐다. 거기다 연습을 꾸준히 한 덕에 하루가 다르게 춤 선이 세심하게 바뀌었다. 막상 당사자는 잘 모르는 것 같았으나 매일 함께 연습하고 도와주면서 본 순영은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순영은 지훈이 동아리 활동에 이렇게 열심히 임할 줄 몰랐다. 지훈을 처음 보고 나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공부만 하는 범생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실 동아리 활동은 잘 안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순영의 생각과 달리 지훈은 열심히 임해줬다. 개인적인 시간을 써가면서 연습을 나오던 훈에게 순영은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고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붙잡는 지훈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순영의 마음에 지훈이라는 존재가 가득 차게 들어왔다.

순영은 모두에게 다정했지만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달랐다. 그리고 그건 본인도 지훈을 좋아하고 나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이었다. 순영의 다정은 단순히 습관이자 성격이었다. 원래 성격이 워낙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도움 주는 걸 좋아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넓은 것이었으나 순은 긍정적이었기에 상대가 좋으면 본인도 좋은 편이었다. 지훈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잘 대해준다고 생각했다. 연애 경험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순영이 해온 연애는 상대가 만족했으면 해서 하는 연애였다. 고백을 받으면 상대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랬고 그래서 사귀었다. 그리고 오래 못 가고 헤어지기 일쑤였다 대부분 하는 말이 비슷했다

 

“나한테만 특별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순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 하나한테만 특별하게 군다는 건 차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몰랐던 순영은 뒤늦게서야 전 여자 친구들이 한 얘기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좋아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더 챙겨주고 잘해주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동아리 발표회 당일이 되었다. 너무 긴장돼서 잠을 못자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지훈은 잠을 너무 잘 잤다. 덕분에 컨디션도 꽤 괜찮았다. 리허설을 미리 해봐서 그런지 무대가 조금 익숙해진 듯 했다. 발표회는 오후였고 오전시간동안 모든 동아리들이 리허설을 하는 일정이었다. 순서가 될 때까지 대기 중이었다. 다른 동아리들의 무대를 보는데 다들 만만치 않게 준비를 해 와서 지훈의 부담이 더 커졌다. 고등학교 발표회가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 건지. 다행인 건진 모르겠지만 지훈만 떠는 게 아니라 다른 부원들도 꽤나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 이었다. 그걸 알았는지 순영이 아픈 다리를 이끌고 강당까지 찾아왔다. 부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잘 할 수 있다면서 격려해줬다. 이 또한 권순영의 다정이었다. 자연스럽게 지훈에게도 다가왔다.

 

“지훈아 많이 떨려?”

“다리도 아픈 애가 뭘 여기까지 왔어.”

“너 걱정돼서 왔지.”

 

이것도 권순영의 단순한 다정일까 아니면 지훈을 향한 특별한 다정일까 지훈은 헷갈려했다. 내심 자기만을 위한 특별한 다정이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하면서도 순영이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다.

 

“네 다리나 걱정해.”

 

지훈은 귀가 살짝 빨개진 채로 대답했다.

 

“다들 그 얘기 하더라 나 거의 다 나아서 괜찮아.”

“아직도 깁스 하고 있으면서 무슨”

“지훈아”

 

순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훈을 불렀다.

 

“왜...?”

“너 잘하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평소처럼 하자.”

“...”

“알았지?”

“...그래.”

 

너의 그 다정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좋아서, 따뜻하고 포근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순영아.

 

 

동아리 발표회가 어떻게 끝이 났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은 순영이가 평소처럼 하라고 했고 나는 그 말대로 했다는 것뿐이다. 잘한 건지 못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마무리 했다. 순영은 부원들에게 잘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훈아 잘 하더라. 역시.”

“그랬나... 난 잘 모르겠던데.”

“넌 널 너무 과소평가 하는 거 같아. 충분히 잘했어 빛나던 걸. 무대 위에서.”

“또 비행기 태운다.”

“진짜라니까 너 정말 반짝거렸어.”

 

다정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로 내 마음을 헤집어버린다.

 

동아리 뒤풀이에 왔다. 학교에서 지원금이 나와서 단체 회식을 하게 됐다. 부원들이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사이 지훈은 온 몸에 긴장이 풀렸는지 구석 자리에 기대어 누워있었다. 이걸 놓칠 리 없는 순영은 지훈에게 다가갔다.

 

“지훈아 우리 잠깐 나갈래?”

“어엉...?”

“애들 아이스크림도 사러갈 겸 나가자.”

“너 다리 아프니까 다른 애랑 다녀올게.”

“아냐. 나랑 가. 응?”

 

답지 않게 고집을 피우는 순영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지훈은 순영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많이 피곤해?”

“아니 뭐... 그렇게 힘든 건 아니고 조금 후련해서.”

“다행이다 너 긴장 많이 했었잖아.”

“너 덕분에 그래도 무대는 안 떨고 했어.”

“그런 거 같더라 너 정말 잘했어.”

“...”

 

훈은 괜히 부끄러워져서 조용히 있었다. 둘은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동네 마트로 향했다. 둘은 부원들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두 손 가득 들고 마트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달이 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달빛에 지훈은 잠시 걸음을 멈춰 하늘을 바라봤다.

 

“달이 예쁘다. 지훈아.”

“어 그러네.”

 

순영도 어느새 지훈의 옆에 서서 달을 보고 있었다.

 

“지훈아”

“응.”

“우리 내기 했던 거 기억나?”

“아 그 농구?”

“소원권 내기 했었잖아. 그거 지금 써도 돼?”

“그러든가.”

 

“내 소원은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네가 날 떠나지 않는거야.”

 

이게 무슨 소리지? 지훈은 당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래.”

“소원 들어준다고 약속하면 말할게.”

 

이미 약속 한 거니까 들어줘도 괜찮..겠지

 

“그래 약속할게 말해봐.”

 

“지훈아.”

 

지훈을 부르는 순영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자세히 보니 귀 끝도 살짝 빨개진 듯 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길래 저러지?

 

“나 너 좋아해. 친구로써가 아니라 연애감정으로”

 

“그냥 좋아만할게 네 친구로 계속 있게 해주면 안 될까?”

 

“내 욕심인거 알아... 그치만 네가 너무 좋아.”

 

“좋아해. 지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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