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렉션 월드』

『리플렉션 월드』- 4. 아이템을 파밍하고 강화하자! ①

2023. 06. 09에 작성

어떤 스케줄도 없는 한가한 주말 어느 날.

[에이신 선배, 오늘 시간 돼요?]

환기를 시킨다고 거실 베란다를 활짝 열고 봄바람을 맞으며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을 읽고 있던 에이신에게 LINK 톡이 온다. 발신자가 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입에서 미소가 피어오른다. 보나마나 뻔하다. 『리플렉션 월드』를 하자고 연락 온 거겠지.

이제부터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사슴처럼 불안하게 걸어 다니는 에이신 선배를 제 완벽한 콤비로 만들기 위해 스파르타식 플레이를 할 거예요. 

녀석. 참으로 무시무시한 행동력이다. 내게 책 읽을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방해를 하는구나. 막 흥미로운 장면으로 넘어 왔는데. 자기도 모르게 피식 소리를 내버린다. 

읽고 있던 페이지 위에 책갈피를 가지런히 올려놓은 후 책을 덮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이제 이상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로 나아갈 때이다. 저 쪽에 핀 아카시아 향이 바람을 타고 자신의 곁에 온 듯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왼손으로 휴대전화를 잡고 오른손 검지로 화면을 열심히 두드린다.

[지금 나가겠다. 어디서 만날까?]

[서로의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향하죠. OO마트 1층 어때요? 거기에도 게임기 몇 대 있거든요]

[그래, 그럼 거기서 만나도록 하자]

몇 분 후. 에이신이 먼저 도착하여 슈를 기다리고 있다. 『리플렉션 월드』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듯하다. 게임기는 다섯 대나 있는데도 만석에 각 기기마다 기본적으로 서너 명은 줄을 서고 있다. 누군가는 혼자서, 누군가는 친구나 연인끼리, 누군가는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의 다채롭게 화목한 모습들을 보고, 에이신은 자기도 모르게 따뜻한 표정을 짓는다. 게임은, 그리고 더욱 포괄적으로 놀이란 이러한 따뜻한 매력이 있다고 다시금 확신한다. 

"...신 선배!"

혼자서,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오락을 즐긴다. 그 짧은 시간동안 스스로에게, 그리고 자신과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배?"

놀이란, 현실을 힘들고 열심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즐거움과 행복을 심어주는, 충분히 유익하고 가치 있는 문화라고 에이신은 재확인한다.

"선배!!!"

"어? 아, 슈구나. 안녕. 미안하다, 잠시 사색에 잠겨 있었어."

이제서야 자신을 다급하게 부르는 사람 쪽으로 몸을 돌리며 인사를 한다. 슈가 약간 부루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그저 예뻐 보인다. 에이신의 그 평온한 얼굴에 슈는 더더욱 삐친 듯해 보이지만.

"진짜, 에이신 선배 간혹 혼자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마다 목청을 높이거나 건드려야 되는 거 귀찮네요, 아주."

"하하, 그럼 일부러 무시해서 더욱 귀찮게 해주지."

"그건 아니죠, 양심 챙기세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너무한 말을 하면서도 그것이 전부 농담임을 알기에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린다. 두 사람은 세 번째 기기 앞에 줄을 선다. 그들 앞에는 혼자 온 사람 한 명과 여러 명이 한 조를 이룬 두 팀이 차례대로 서 있다. 그들은 기다리는 동안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같이 온 일행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때로는 앞뒤에 있는 사람들과 게임에 대한 이야기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눈다. 

에이신은 대기를 틈타 다시 사색에 잠긴다. 오늘 저녁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오신다고 한다. 오랜만에 세 사람이서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다. 과일을 듬뿍 넣은 카레를 준비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부모님께 현재 아이돌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학교 일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고할 내용들을 정리한다. 물론 식사가 끝나면 읽고 있던 책을 더 읽어야지, 하는 생각도. 

그런 에이신의 옆에서, 슈는 미라주 컴퍼스를 조작한다. 자신의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을 몇 번 두드리다 흐흐 하고 웃는다. “이걸” 내가 얻게 되다니. 오늘 제대로 이 녀석의 힘을 맛봐야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오늘은 부지런히 파밍을 해서 “그 아이템”을 반드시 얻고 말 거야. 이 게임은 드랍률이 어떻게 될까. 드랍이 잘 되면 좋겠는데.

"에이신 선배는 오늘 목표치 정했나요?"

사색의 세계에 몸을 담그고 있던 에이신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나? 확실한 성장을 이루고는 싶으나, 이건 여가활동에 지나지 않으니 느긋하게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기술을 제대로 익히는 것 외에는 딱히 정하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 내에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성과를 올리겠어." 슈는 선배의 무계획에 조금 실망한 듯하다.

"에이, 선배는 그 정도로 만족해요? 정말 그렇게 스스로의 한계를 뚫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봐요."

슈는 바지 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스마트폰을 꺼낸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릴게요. 일단 저희는 얼른 레벨을 올려야 해요. 빨리 성장을 해야 다양한 컨텐츠를 접할 수 있는데, 에이신 선배가 너무 진도가 느려서 저까지 덩달아 성장이 더디잖아요. 그리고, 선배는 아직 스킬도 하나 배우지 않았죠? 이제 겨우 감을 잡기 시작하셨으니 해야 할 일이 더더욱 많다고요.

"무엇보다도, 게임이 아무리 취미의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플레이어가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결국 강해지는 것이 이 게임의 주 요소니까요. 거진 현실의 축소판과 같다고 생각하세요. 어때요, 모티베이션이 생겨요? 좀 더 열심히 해서 실적을 올리고 싶다는?"

후배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 매우 흥분하고 있다. 동기가 어떤 지는 모르겠지만, 슈는 분명히 평소보다 게임에 대한 열의가 넘친다. 역시 에이신은 매사에 열정을 가지는 그의 후배가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가 게임에 의욕을 보인다고 본인 역시 저렇게까지 의지를 불태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에이신은 어떠한 표정의 변화 없이 간결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의지를 전한다.

"아니. 놀이가 경쟁을 이용하는 것에 동의하나, 결국 행위를 하는 순간을 즐기는 '놀이'다. 너와는 사고가 달라 유감스럽지만,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같은 것을 향유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어. 물론 네 플레이 방식에 최대한 맞추지만."

미라주 컴퍼스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사색의 세계에 스스로를 맡기는, 순진하면서도 단단한 철벽에 슈는 이제 제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고보니, 저희는 애니메이션 영화 볼 때마다 캐해가 달랐죠. 저희는 이걸로도 영원히 안 맞을 것 같네요."

자신에게 정수리를 보여주는 슈의 뒷모습을 보며, 에이신은 어이없음과 애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비딱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그가 입으로 꺼내는 말은 부드럽고 상냥하기 그지없다.

"아니다,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제일이니. 슈도 굳이 나를 억지로 끌고 가겠단 사명감을 갖지 말고 너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편하게 게임을 즐기길 바라."

슈가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에이신은 다시 저녁에 할 일을 정리한다. 이들 앞에 있던 삼인방이 게임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이 플레이 중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 평소에는 푸르게 빛나던 게임기의 프레임이 붉게 빛난다. 새삼 게임기 "안에" 인간이 들어간다는 발상이 현재 기술로 실현 가능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어떤 원리로 저런 게 가능한 건지 순수한 궁금증이 생긴다. 미라주 컴퍼스라는 장난감도 상상 이상의 기술력을 보여주니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걸까. 그나저나, 저 일행도 세 사람이 하나의 구성원이네. 에이신은 어느 새 자신과 같은 것을 응시하고 있는 슈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듯함을 확인한다.

"...언젠간 모모히토 선배와도 게임 하고싶다."

"그러게. 모모히토는 항상 우리가 게임할 때마다 뒤에서 지켜보는 역할이었지. 슈팅 게임도 잘 하던데, 이상하게도 게임을 잘 하려 하지 않더군."

"우리가 콘솔 게임 할 때도, 그 선배는 에이신 선배의 발컨에 응원만 하고 있었죠.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그래도 저희가 일할 때 조금이라도 같이 해서 재밌었는데. 그리고 솔직히 에이신 선배보다 게임 잘 할 것 같은데."

슈는 이 말을 하며 선배를 흘긋 바라본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진심으로 수긍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또 한 편, 함께 있지 않는 동료의 공석을 느끼는 듯 망설임이 느껴지는 끄덕임에서 같은 마음을 느낀다.

"우리 둘끼리만 노니까 그림 이상하고 미안해지네요."

"그렇지? 생각해 보면, 함께 게임을 하고 만화책을 읽고 영화를 봤지만, 정작 모모히토의 취미를 공유해 본 적은 없었군. 이제 와서 마음에 걸리다니 스스로가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어. 우리 둘이서 함께 있는 만큼의 시간을 그에게 할애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

조금 궁리를 하고 있었던 에이신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눈을 크게 뜬다. 

"...그래, 다음에 세 명이서 모여서 모모히토가 좋아할 만한 활동을 한 번 해 볼까. 셋이서 특정 주제에 대해 제한 시간 내에 그림을 그리는 거야."

"좋다. 그림을 좋아하는 모모히토 선배라면 분명히 좋아할 거예요! 화백 에이신 선배의 그림 기대할게요!"

"그래, 기대해라.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보지."

두 사람이 나머지 한 멤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서로에게 미소를 공유하는 동안, 앞에서 플레이를 하던 사람들이 게임기 속에서 나오는 모습을 확인한다. 슈는 별안간 뒤를 흘끗 바라보더니 지갑에서 동전 열한 개를 꺼내 든다. 에이신은 이걸 놓치지 않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질문한다.

"100엔만 넣어도 되지 않나?" 

"아, 오늘은 좀 많은 걸 해보고 싶어서요!"

"'많은 거?'" 

에이신은 이 때까지만 해도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Vv히데vV의 뒤를 이어 허공에서부터 마치 한 장의 깃털처럼 떨어지는 매킨토시는 왼손에 장착된 활을 꼭 쥐고는 무기가 제대로 팔에 고정이 되어있는지 확인한다. 말루스 푸밀라의 상태는 괜찮아 보인다. 왼팔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뒤에서 자신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미지근한 시선이 느껴진다. 영문을 모른 채, 매킨토시는 이상한 눈빛을 자신에게 쏘는 후배에게 말을 건다. "너, 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야?"

Vv히데vV: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 바로 오늘의 목표를 공유할게요!

/누구보다 빠른 조작으로 오늘의 목표치를 매킨토시에게 공유하는 Vv히데vV는 여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브리핑을 시작한다. 

Vv히데vV: 오늘은 스테이지 1을 완전히 클리어할 거예요. 이 게임은 각 스테이지 당 5개씩의 스테이지가 있는데, 1은 몬스터도 그 선이 그 선이고 단조롭기도 해서 테크닉 좀 배웠고 스킬 하나 열려 있다면 스피드하게 클리어할 수 있어요. 그보다...

/Vv히데vV는 열심히 미라주 컴퍼스를 조작하고는 매킨토시의 코 앞에 그것을 들이댄다. 파란색과 보라색의 오묘한 조화가 인상적인 보물상자 아이콘 아래에 "『리플렉션 월드』 여행자 든든 장비 세트"라고 쓰여있다. 매킨토시는 그게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후배의 얼굴과 미라주 컴퍼스의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니 일단 그에게 중요한 것이란 사실은 알 것 같다. Vv히데vV는 기대에 가득 차서 상기된 눈빛으로 자신의 동료에게 육각형의 화면을 더 가까이 들이민다.

Vv히데vV: 이걸 봐요. 짱이죠?

매킨토시: 짱이라고?

/한껏 고조된 눈빛으로 미라주 컴퍼스를 다시 자신 쪽으로 가져간 Vv히데vV는 마치 사랑스러운 자식을 바라보듯 작은 화면을 어루만지더니 보물상자를 기기 속에서 꺼낸다. 미라주 컴퍼스를 상자에 가볍게 톡 치니 상자가 열린다. Vv히데vV는 여러 장비 중에서 총을 꺼내어 이리저리 돌려본다. 보물상자와 똑같은 광택을 내고 있는 머스킷 형태의 아름다운 총. 색감 만으로도 확실히 좋은 아이템이다.

Vv히데vV: 이게 뭐냐면, 『리플렉션 월드』를 사전등록하면 추첨으로 증정한 아이템 세트예요. 어제 당첨자 발표일이었는데, 거기에 제가 딱 당첨되어서 시리얼코드를 받았죠! 진짜로 짱이죠?! 워낙 성능이 좋아서 보스 무기를 얻기 전까지는 계속 이걸 쓸 수 있어요!! 하~ 실제로 만져보니 정말 감격스럽다!!

/그래서 오늘 유독 즐거워 보였구나. "나는 역시 이런 곳에서도 천재적으로 운이 좋다니까!" 라고 중얼거리며 미라주 컴퍼스를 조작하는 Vv히데vV의 모습에 매킨토시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만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후배가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는 흥분에 무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크다. 좋은 캐릭터를 얻었다고 하루종일 들떠 있던 이전의 슈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원래도 길었던 게임 플레이 시간이 배로 늘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스마트폰만 응시하여 충혈된 슈의 눈을 떠올리며, 매킨토시는 이 게임이 제한이 있는 아케이드 게임이란 사실에 안도한다.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지 못한 채.

Vv히데vV: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잠시 마을을 방문해서 볼일 좀 보고 가요.

매킨토시: ...그러고 보니 가이드 북에서 각 마을의 첫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그 마을에 접속할 수 있다고 했지.

Vv히데vV:  맞아요! 자, 함께 가요! 푯말 보이시죠? 왼쪽으로 가면 마을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던전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고보니, '이 게임에서는 전투 외의 여러 시스템을 즐길 수 있다'고 슈가 말했다. 전투 외의 시스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바로 마을을 비롯한 비전투구역이었군. 큰 깨달음을 얻은 매킨토시는, 신나는 몸짓으로 앞장서는 Vv히데vV의 뒤를 따른다.

Vv히데vV: 여기가 바로 『리플렉션 월드』의 첫 번째 마을, "플로리아 마을"이에요!

/매킨토시는 처음으로 들어온 마을의 경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숲 속에 있는 마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나무 건물들과 버섯 주택이 마치 실물처럼 구현되어 있다. 마을의 캐릭터들도 자연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서 배회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에 따라 색감이 전혀 다르게 비추어지는, 마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품은 보석 같은 색감도 매우 아름답다. 가장 인상적인 인테리어는 상점가나 몇몇 주택에 걸려있는 파라솔이다. 다채로운 푸른 빛을 머금은 이파리들로 파라솔을 만들어 낼 발상을 하다니, 매킨토시의 푸른 눈이 밝게 반짝이기 시작하며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이 입가를 향해 올라가...는데.

매킨토시: ...어?

/왼손에 말루스 푸밀라는 온데간데없고, 중지에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반지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매킨토시: 말루스 푸밀라가 반지가 되었는데?

/다채롭게 놀란 상태의 매킨토시의 표정과는 달리, Vv히데vV의 그것은 오히려 침착하고 냉정하다.

Vv히데vV: 아, 그렇다면 말루스 푸밀라는 비전투시에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무기인가 보네요. 비전투구역에 있거나 선배가 원할 때 반지의 형태로 구현할 수 있는가 봐요. 그나저나, 저희 지금 마을에 오래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따라와요!

/Vv히데vV가 급하게 어딘가로 직진하는 발걸음에 매킨토시도 낭만을 포기한 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그들은 자연과 하나가 된 마을 컨셉과는 조금 이질적인, 기계적인 느낌이 훨씬 많이 나는 건물에 도착한다. 은빛 철들을 나뭇가지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기존의 나무에 내다 꽂은 듯한 조잡한 비주얼의 건물이다. 매킨토시는 약간 거리를 두듯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는 데 반해, Vv히데vV는 정면으로 그 건물 앞에 서 있는 NPC를 향해 말을 건다.

Vv히데vV: 안녕하세요, 파커스 씨. 무기를 강화하러 왔는데요.

파커스: 어서 오게! 보아하니 신입 여행자인 듯하군!

Vv히데vV: 맞아요! 역시 소문난 무기장인 답군요! 그럼 이 무기 강화를 부탁해요.

/무기 강화라는 시스템을 이용하러 온 거였군. 매킨토시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지켜보다, 문득 무기점 옆의 마을 주민의 집에서 일반 NPC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다들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타인의 곤경을 절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심성을 지닌 매킨토시는 Vv히데vV의 어깨를 툭툭 친다.

매킨토시: 잠시 개인 행동을 해도 괜찮을까? 별거 없다.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Vv히데vV: 아, 그러세요. 어차피 이거 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동료에게서 허락을 받은 매킨토시는 마을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청색과 녹색, 그리고 황색의 의상을 입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틈에 끼어 그들과 대화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매킨토시: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마을 주민들은 매킨토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자신들의 걱정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주민 1: 글쎄, 요즘 가이어스 숲에 서식하던 슬라임들과 식물들이 갑자기 난폭해져서 말이야.

/우리가 적들과 대립하는 숲을 "가이어스 숲"이라고 부르는구나. 세세한 설정에 감탄을 하는 것도 잠시, 매킨토시는 그가 게임 속에서 마주했던 몬스터 세 마리를 떠올린다. 슬라임과 버섯형 몬스터인 세타, 그리고 식충식물형 몬스터인 네펜데스. 그 녀석들이 원래는 순한 자들이었구나. 어쩐지 난폭함과 별개로 귀여워 보이...

주민 2: 원래 가이어스 숲의 슬라임과 식물들은 인간들과 동물들과 공존을 하며 살아갔는데, 어느 순간 마을을 해치고 동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하고...

매킨토시: ! 뭐라고요?

주민 3: 이 집을 봐, 잘생긴 청년. 세타 무리에 공격을 받고 이렇게 우리 집 표면이 녹아버렸어. 세타의 독에 공격을 받은 사물은 집이 완전히 녹아내리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지... 

매킨토시: 이런... 상황이 심각하군요...

/여느 RPG게임이나 대강의 스토리란 정해져 있는 법이다. 보통은 이런 작은 마을에서 조금씩 평화가 틀어지는 것은 이런 류의 게임 세계에선 지극히 일반적일 사건이다. 때문에 게임에 밝지 않은 매킨토시에게도 이런 스토리는 평범하기 그지없을 터이다. 그러나 매킨토시는 상황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인다. 마지 자기자신이 진짜 게임의 주인공인 마냥, 게임 세계의 일부인 마냥.

주민 4: 원래 세타들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거든. 그런데 이렇게 집에까지 타격을 날린다는 건 신문에서도, 심지어 역사책에서도 본 적이 없어!

주민 1: 에휴, 나의 아내는 야생 딸기를 따러 가던 중 슬라임에게 타격을 입고 병원에 입원 중이라네.

매킨토시: 그럴 수가... 

매킨토시: 아내 분은 지금 어떠신가요? 상태가 호전되었는지요?

주민 1: 다행이게도 큰 상처는 아니야. 하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께 야생 딸기를 찾아다녔던 녀석들이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니, 정신적인 충격이 더 커진 거지.

매킨토시: ...

/매킨토시의 눈빛은 깊은 생각으로 탁해진다.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잡았던 몬스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의문과 마을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동시에 가슴 속에서 솟아올라오기 시작한다. 이 때, 자신의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옷에 달려 있는 케이블형 장식을 잡고 있는 것을 느낀다. 작은 소녀가 곧 울 듯한 얼굴로 매킨토시를 올려보고 있다.

아이: ...저기요, 요즘 숲이 정말 이상해요. 원래 숲은 자연과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간이었는데... 저는 우리 마을이 정말 좋아요, 귀여운 버섯들과 슬라임들과 식물들과 함께 놀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이제는 그 자연들이 우리들을 아프게 해요... 원래 그럴 애들이 아닌데......

/아이는 이내 매킨토시의 케이블 장식을 꼭 붙들고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매킨토시는 그 자리에서 무릎 한 쪽을 꿇은 채 앉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녀 NPC에게서 온기가 느껴진다. 정말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 그의 표면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내면에서 그의 심장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아아... 며칠 전 슬라임을 무찔렀을 때의 물컹한 감각을 다시 한번 느낀다. 세타와 네펜데스가 내뿜는 것에 그들의 숨결이 묻어남을 인지한다.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생물의 온기를, 나는 '가상 세계의 적'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무조건 물리쳐야 한다는 이기적인 발상'으로 외면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매킨토시는 떠올린다. 작품이란, 만드는 인간에 의해 태어나며, 향유하는 인간에 의해 숨결이 붙는다. 이 마을도, 숲도, 내 앞의 사람들도 0과 1로 구성된 덩어리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내가 이 세계에 개입하는 순간 "공존"한다. 나도 이 게임의, 이 스토리의 하나의 구성물이다. 매킨토시는 아이의 머리를 연이어 쓰다듬으며, 마유미 에이신으로서 소녀에게 진심을 전달한다. 다정하면서도 견실한 목소리로.

매킨토시: 맞아. 나쁜 건 숲의 아이들도, 그들을 품고 있는 자연도 아니야. 책임은 그들을 그렇게 만든 "무언가"에 있겠지. ...내가 네 친구들을, 그리고 숲을 되돌려 볼게. ... 아직 나는 너무나도 약하고 미숙한 부분도 많지만... 내게는 멋진 동료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네 힘이 되어주겠어. 그리고, 우리가 네 소중한 플로리아와 가이어스를 지켜 보이겠다.

/매킨토시는 말을 끝맺으며 상냥한 미소를 짓는다. 그 꾸밈없고 정의로운 빛에, 아이는 이내 울음기를 거두고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는다. 

아이: ...네!

/아이의 밝은 미소를 보며, 매킨토시는 게임 속 인물들과 하나가 되었음에 은근한 기쁨을 느낀다. 영화를 볼 때, 영화의 등장인물을 연기하고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매킨토시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면 어색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예쁜 미소를 자기도 모르게 그려낸다. 그런데, 이 기쁨을 의식적으로 만끽하기 시작하던 그 순간.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으아아아아!!"하고 포효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소스라치게 놀란 매킨토시는 이 포효가 무기점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리는데,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고함소리보다 더 하다. Vv히데vV가 파커스를 향해 섀도 복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마미네 슈는 이렇게까지 격한 모션을 보인 적이 없다. 심지어 게임을 할 때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에 꽁해지거나 투덜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매킨토시가 에이신으로서 봐왔던 후배의 모습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던 것이다... 후배의 돌발 행동에 매킨토시는 "슈!!"라고 비명을 지르고는 경이로운 속도로 그의 겨드랑이에 두 팔을 걸고는 악력으로 움직임을 제한한다. Vv히데vV는 선배의 무시무시한 힘에 쉽게 무력화되지만...

매킨토시: 너 뭐하고 있는 거냐, 슈! 왜 민간인에게 공격을 가하는 거야...!

Vv히데vV: 이거 놔요, 에이신 선배!! 그래봤자 NPC들에게는 공격이 안 들어가요!! 저도 똑바른 사람인지라 때릴 생각도 없어요!! 것보다 이게 몇 번 째 초기화인 거냐고요!!!

Vv히데vV: 아!!! 초보자들의 코 묻은 돈으로 이런 짓 하고 싶냐고 이 게임아!!!

/Vv히데vV는 좀체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퍼거스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Vv히데vV의 무기를 그에게 흔들어 보인다. 방금 전에 매킨토시에게 자랑했던 "리플렉션 월드 여행자 든든 건"이다. 겉은 그대로인 것 같아 보이는데...

파커스: 허허, 이를 어쩐다, 또 깨 버렸군! 이거 미안하게 됐네.

Vv히데vV: 으아!!! 이래서 강화 시스템 있는 게임이 짜증나!!!

파커스: 하하, 젊은이, 그래도 팔팔하니 그 힘으로 몬스터들은 금방이라도 때려 잡겠는걸!

Vv히데vV: 뭐라고요?? 이 웨폰 브레이커가!!!

Vv히데vV: 아!!! 기껏 얻은 “『리플렉션 월드』 여행자 든든 건”을 최대로 강화해서 잡몹들 한 방에 물리치고 싶었단 말이야!!! 로테를 돌고 싶었다고!!! 내 방대한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열을 내는 Vv히데vV와 고객의 무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해맑은 파커스. 두 사람의 신경전 사이에서 매킨토시는 그저 신음소리를 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매킨토시: 진정해라, 슈...! 진정해...!!


Vv히데vV: 자 봤죠, 에이신 선배? 이게 『리플렉션 월드』의 잔혹한 면이에요. 혹시나 해서 방금 전에 넣어둔 1000엔으로 골드를 더 구입했는데 끝내 골드를 전부 탕진해 버렸어요.

매킨토시: 1000엔을 추가로 투입한 이유가 그거였구나... 그나저나 그게 "잔혹한 면"인가...

Vv히데vV: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 게임 화폐인 골드를 저기 무기나 장비 강화하는 데에 다 소모해 버린다니까요!! 대부분의 RPG 게임들은 다 이래... 킹받아...

매킨토시: ...너, 다른 게임 할 때에도 똑같은 상황이 되면 이러니?

Vv히데vV: 하... 간혹 에이신 선배의 뇌와 제 뇌를 교환했으면 좋겠어요... 게임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하나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강화할 때 초기화되는 거예요...

매킨토시: ...그렇구나.

매킨토시: ...어쨌든 이제 가이어스 숲으로 향하자.

Vv히데vV: 어라, 거기가 어디죠...?

매킨토시: 아.

매킨토시: 우리가 향하는 숲을 그렇게 부른다더군.

Vv히데vV: 아... …스테이지는 보통 숫자로 표기되어서 몰랐는데, 그런 설정이 있었군요. 감사해요, 선배! …

/완전히 엇갈리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담아두며, 두 사람은 플로리아 마을을 빠져나온다. 스테이지로 입장하려는 순간, Vv히데vV는 또 하나 해야 되는 일을 기억해낸 듯 "아!"하고 별안간 감탄사를 내뱉는다.

매킨토시: 마을에서 해야 할 업무를 잊었니?

Vv히데vV: 그건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잠깐만요!

/Vv히데vV는 잠시 미라주 컴퍼스를 조작하고는 자신의 머리에 줄곧 씌어져 있었던 평평한 고글에 자신의 무기인 스카이 서밋을 가져다 댄다. 그러자 단조로운 디자인의 고글은 미라주 컴퍼스의 빛을 받아 조금은 더 근사한 모습으로 형태를 바꾼다.

매킨토시: 오, 그것도 기공사로서의 능력인가?

Vv히데vV: 뭐, 그렇다고 봐도 되겠죠. 제 스킬이라기 보다는 스카이 서밋의 패시브 스킬이에요. 저는 소환하고 싶은 기계를 구상하거나 전투 상에서의 메리트를 얻는 게 전부고, 제가 구상한 걸 실체화시키는 건 이 녀석들의 영역이거든요.

매킨토시: 그래서, 아테나와 아레스처럼 그 고글도 이름을 지었니?

/매킨토시의 질문에 Vv히데vV는 조금 고민하는 듯 오른손으로 고글을 두어번 두드리더니, 이내 맑은 하늘처럼 푸른 눈동자를 반짝인다.

Vv히데vV: 생각났어요! "갓 노우즈"라고 이름 붙일래요!!

매킨토시: 실로 대담한 이름을 붙였구나.

Vv히데vV: 하하, 제가 업그레이드 시킨 건 외관뿐만이 아니라서요. 자, 이제 전투하러 가요, 선배! 제 새로운 전략들과 함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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