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06
NCT127 도재
신데렐라 下
재현이 눈을 떴다. 햇살이 눈부시게 재현의 허벅지께를 비추고 있다. 어제도 커튼을 치고 잔다는 게, 형이랑 대화하는 동안 창문 열어놓는다고 그냥 잤구나 싶었다. 재현은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는 서둘러 움직인다. 사실 그동안은 카페를 10시쯤 느지막이 오픈을 했다. 그때쯤 물류를 정리하고, 가게를 정돈하고, 점심때쯤 몰려드는 직장인들을 상대하곤 했다. 요즘은 8시에 문을 연다. 7시니까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제아무리 재현의 가게라지만 절대 후줄근한 모습으로 출근할 수는 없었다. 저녁 시간에 도영과의 약속이 있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재현은 항상 매장의 분위기는 청결과 일하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결정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무언가 꼭 화장한다거나, 멋진 옷을 입는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단정한 모습이 중요한 것이다. 재현은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는 욕실로 들어섰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도영에게서 온 카톡 내용을 훑는다. ♥김 대리♥로 저장된 도영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오늘 출근하기 싫다, 그래도 끝나고 너 본다니까 힘내서 간다, 재현아 조심해서 출근해 이따가 보자, 회사 들어가기 전에 또 얼굴 봐야지, 요즘 너 아침저녁으로 보니까 너무 좋다ㅎㅎ. 재현은 40분쯤 집을 나서며 도영에게 답장했다. 나 이제 출근해 형 이따 봐♡ 출근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가게 조명을 켜고, 갈색 앞치마를 두른다. 입고 있던 니트 카디건은 잘 개켜 가방에 넣어 선반에 얹어둔다. 포스를 열고, 밤새 좋아하는 노래로 새롭게 짜둔 플레이리스트를 켠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곡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손을 씻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픈을 했다. 원두를 채워 넣고, 모자란 것들을 채워 넣는다. 홀더를 가득 넣고, 테이크아웃용 컵을 사이즈별로 쌓아놓고, 빨대에 냅킨까지. 이 모든 일을 마무리하면 딱 8시 10분이다. 이제 슬슬 9시까지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을을 맞이하여 쌀쌀한 날씨에 대부분 라떼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재현은 솜씨를 한껏 발휘하여 예쁘게 라테 아트를 그려주지만, 손님들은 뚜껑을 열어보지 않으니 그냥 바로 호로록 마셔버린다. 그게 약간 아쉽지만, 나 예쁘게 그렸으니까 열어서 확인해 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여하간 가게를 일찍 여니 아무래도 매출이 늘었다. 종종 자주 오던 손님들도 일찍 열어서 더 좋다는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물론 속셈은 도영을 보기 위함이지만, 재현은 별말 없이 그죠, 하고 예의 바르게 포실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매장 문에 달아둔 종이 청량하게 울린다. 참 이상하게도 재현은 도영이 들어오는 소리를 귀신같이 알아챘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분명 같은 종소리인데도, 어쩐지 이건 도영이 형이 오는 소리인 것 같아 뒤돌아보면 정말 도영이 서 있었다.
“재현아, 안녕.”
“혀엉.”
재현이 히히 웃으며 물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아내며 포스 앞에 서자, 도영은 잠시 고민하다 귤 차를 주문했다.
“형은 이거 되게 좋아하더라. 나 어제 또 새로 담았잖아.”
“처음 마셔서 그런가. 정이 가네.”
카드를 내미는 도영의 손을 만류하고는 재현이 냉장고에서 귤 청을 꺼내었다. 항상 집에서 만들어서 가져오는 청이다. 매장이 크지 않아 여기서는 만들기가 힘들다. 그리고 오픈해서 그럴 여유도 없고. 가을 겨울 한정으로만 파는 메뉴라 손님들이 많이 찾기도 하지만 도영은 유달리 귤 차를 자주 시키곤 했다. 재현은 다른 손님들에게 주는 정량보다 더 듬뿍 청을 떠 컵에 담고는 따뜻한 물과 정수 물을 섞어 담았다. 가라앉은 청을 위로 띄우듯이 잘 섞어 야무지게 뚜껑을 닫았다. 어김없이 홀더에 네임펜으로 형 거, 라고 쓰고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밀었다.
“주문하신 귤 차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영은 매장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현의 입술에 가볍게 쪽, 입 맞췄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재현의 귀 끝이 홧홧해졌다.
“아, 혀엉!”
“왜. 저녁에 또 보자.”
도영은 한껏 짓궂은 표정을 하고는 재현의 붉어진 귀를 톡 건들고 카페를 나섰다. 재현은 도영의 손끝이 스치고 지나간 귀를 만지작거리며 설레했다. 이 형은 갑자기 훅 치고 가. 그날 못되게 말했다가, 실망했다가, 저녁에 전화로 고백받았던 것을 떠올리니 열이 올랐다. 재현은 허둥지둥 매장을 정리했다. 일하자, 일. 잡념을 떨치기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점심때가 되니 약간 바빠졌다. 회사 밖을 나와 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료를 손에 하나씩 쥐고 다닐 시간이었다. 대부분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만, 간혹 쓴맛을 싫어하는 손님들은 프라푸치노나 차 종류를 주문하기도 했다. 재현은 주문서를 뽑아 작업대에 두고는 확인해가며 바쁘게 음료를 만들었다. 커피 맛에는 원두의 질도 중요하지만, 탬핑도 아주 중요했다. 너무 세게 누르면 쓴맛이 나고, 그렇다고 또 너무 약하게 누르면 산미가 강해져 버려 취향을 타버리기 때문이다. 적당한 힘으로 한 번에 꽉 눌러주어야 고소한 커피의 풍미가 올라온다. 재현은 이 부분을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 모른다. 사실 여유로울 때는 힘 조절도 쉽지만, 바쁘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조급함이 손에 실려 탬핑을 자칫 세게 해버릴 때도 있었다. 물론 손님들이 일일이 오늘따라 쓰네, 시네, 탄 맛이 나네, 언질을 주지는 않았지만 단골들은 귀신같이 알기 때문에 애써 조심하곤 했다. 재현은 여러 잔을 동시에 만들어 내어놓고는 또 뒤의 손님을 받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도 도영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치밀었다. 재현은 보기보다 낯도 가리고 수줍음을 타 도영에게 적극적으로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거나 애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을 볼 때면 환하게 웃어주었다. 도영에게만 보여주는 미소일 수도 있었다. 도영의 눈에는 아닐지 몰라도. 재현은 바쁘게 음료를 쳐내면서도 문득 도영이 형이 잘생긴 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직장인들을 보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꼭 드라마에 나오는 김 본부장님 같은 모습인걸.’
재현은 얼른 저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저녁 여섯 시쯤, 알바생이 도착했다. 싹싹한 데다 부지런한 알바생은 사장님 안녕하세요~ 우렁차게 인사하며 가게로 들어섰다. 재현은 동혁에게 웃어주었다. 일찍 왔네? 사장님 보고 싶어서 제가 좀 일찍 왔죠. 응, 그거 아니야. 넵. 동혁과 가볍게 말장난을 치며 앞치마를 벗어 갈무리했다. 카디건을 찾아 꺼내입고는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 들었다.
“동혁아, 이따 바쁘면 어려운 메뉴는 안된다고 해. 생과일주스 같은 건 시간 걸리니까. 알았지? 다 받아주면 손님들도 오래 기다리고, 너도 힘드니까. 재료 다 떨어졌다 하고 적당히 받아.”
“사장님, 저 손 빠른 거 아시면서~”
“그래도. 나는 놀러 가는데 너는 힘들게 일하고 있음 미안하잖아. 찬장에 쿠키 있으니까 꺼내 먹어. 어제 구웠어.”
“넵. 안녕히 가십쇼!”
동혁은 과장되게 허리를 숙여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재현은 아하학, 웃음을 흩뜨리며 퇴근했다. 동혁이 오고 나서는 저녁 시간이 자유로워져 도영과 거의 매일 데이트를 했다. 간혹 도영이 야근하는 날에는 도영의 집에서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재현은 도영을 만나고 나서 자신의 하루가 더욱더 알차게 느껴졌다. 항상 느지막이 출근해서 마감하고, 가끔 이미 2차쯤 달린 친구들의 술자리에 끼어 새벽녘에 집에 갔다. 혹은 그대로 퇴근하고 집에서 반주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카페 매출은 고민이 될 만큼 나쁘지 않았고, 메뉴가 많은 것도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했다. 단조롭다면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다 도영을 만나고 나니 생각도 많아지고, 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는 도영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하기도 했다. 도영이 형은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카페에 더욱 애정을 가지고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단골이 있다는 것은 음료가 맛이 없지는 않다는 증거니까.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놔두면 언제 새로 생긴 카페에 밀릴지도 모르고. 재현이 오픈 시간을 앞당긴 것은 그런 이유도 있었다. 형에게 부족함 없는 연인이 되고픈 마음에서. 단순히 도영의 출근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뿐 아니라. 재현은 그를 만나고 하루의 일과에 더욱 충실해진 것과 매일매일이 들뜨는 기분이 드는 것에 대학생 때의 연애가 떠올랐다. 그때는 얼마나 풋풋했는가. 사랑만으로 밥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아갔다. 지금은 이미 세상에 물든 만큼 물들었고, 나이로 따지면 어디 가서 아저씨 소리를 들을 법한 나이였다. 물론 아저씨라기엔 젊은 편이지만. 연애도 제법 해봤고, 아버지의 등쌀에 못 이겨 선도 몇 번 봤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루하루가 설레고 다르다니, 재현으로썬 내심 그리웠던 감정이었다. 도영은 바쁜 와중에도 재현을 살뜰히 챙기곤 했다. 항상 출근 전에 연락하고, 퇴근하기 전에 연락하고. 비교적 여유로울 재현이가 외롭지 않도록 틈나면 연락을 하는 모습에 재현은 더욱 큰 애정을 느끼기도 했다.
재현은 먼저 도영의 회사 앞에서 기다릴 셈이었다. 도영이 출근하고 나오면서 저를 보면 기뻐하지 않을까? 나름의 서프라이즈라고 생각하며 하도 봐서 익숙한 회사 로비로 들어섰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루어졌지만, 퇴근 시간대라 비어있는 안내 프런트를 보며 내부에 비치된 쉼터에 가 앉았다. 재현은 휴대폰을 열어 밀린 메시지에 답을 해주었다.
“어? 재현 씨.”
“아. 영호씨?”
서영호는 언제 한 번 지나가듯 만났던 사람이었다. 여기서 일하고 있었구나. 아버지의 은근한 소개로 만났지만, 친구로 남자며 자연스럽게 헤어졌었는데. 재현은 반가운 마음에 폭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걸음을 옮겨 재현에게로 다가왔다.
“웬일이에요?”
“애인 기다려요. 근데 영호 씨도 여기서 일하셨구나.”
“옮긴 지 얼마 안 되었어요. 권유받아서.”
재현이는 못 말린다는 듯이 가볍게 웃었다. 잠시 안부를 몇 번 더 묻고는 영호는 제 갈 길을 갔다. 재현이도 작은 편은 아니지만, 영호는 그보다 더 컸기에 뒤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영호를 올려다보며 얘기했었다. 딱 영호가 지나가고 나니 저만치에서 도영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재현은 벌떡 일어나 총총 다가갔다.
“혀어엉!”
그런데 도영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혀엉. 왜 그래? 오늘 일이 많이 힘들었어?”
“아니. 재현아, 너 영호 씨랑은 무슨 사이야? 어떻게 알고 인사하고 있네?”
재현은 도영이 제가 영호와 대화하는 모습을 본 것을 알았다. 사실대로 전 남자 친구라고는 할 수 없었기에 어쩌다 알게 된 형이라고 얼버무렸다가, 도영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고 그래애...”
“재현이 너…. 너 마성의 남자 그런 거야? 너 저번에 아우디 남! 어! 걔도 막 눈웃음 지어주고. 서영호도 그렇게 보고.”
도영의 귀엽다면 귀여운 질투가 시작되었다. 재현은 그저 히히 웃으며 도영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런 거 아니래도. 난 형한테만 예쁘게 웃어주는데. 형만 모르나보다~ 다른 사람은 다 알아.”
“야 너 빨리 불어, 아우디 남은 누군데.”
“음…. 형 알면 기절할까 봐 말 안 할래.”
“야, 정재현.”
“형 나 배고팡.”
“아 맞다. 나 식당 알아봤어.”
도영은 투정을 부리다가도 재현이 배고프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들고 본인이 찾은 식당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오늘은 파스타 느낌이야. 여기 가자. 재현이 고른 곳을 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 도영의 차에 올라탔다.
“형, 밥 먹고 이따가 드라이브 가자.”
“오냐.”
도영의 말투에 재현이 깔깔 웃었다. 도영은 그런 재현을 쳐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쟤도 참 허파에 바람들었지, 별것이 다 웃긴가 봐. 재현은 그저 도영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너무 좋았다.
[재현아. 집에 한 번 와라.]
즐거운 저녁 식사에, 드라이브에, 도영의 집에서 나란히 잠들었다. 눈을 떴다. 토요일이라 도영과 재현은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재현의 휴대폰에 온 연락을 보고, 재현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도영은 조심스럽게 재현에게 왜 그런지 물었지만, 재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랐다. 머쓱해진 도영은 재현을 위해 끓이던 된장찌개의 간을 슬쩍 보았다. 재현아, 먹어봐. 웅, 딱 좋다. 그렇지? 재현은 다시 어린애같이 방긋 웃었다.
재현은 저 문자가 심상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잊을 만하면 선 얘기를 꺼냈다. 물론 아버지가 보기에 외동인 재현이 내일모레면 서른이니 적당한 혼사를 구하길 바라는 마음인 것은 이해한다. 평소라면 한 번쯤 나가봤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도영이 씻으러 들어간 사이 재현은 방문을 닫고 들어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아. 나 안 돼, 이번에는.”
[왜. 만나는 사람 있니.]
“웅.”
[데리고 와라. 한번 보자.]
“아 뭘 또 봐아! 만난 지 얼마 안 됐구먼. 부담스럽게 할 일 있어?”
[그럼 선을 보던가!]
“...씨잉...”
[요놈이 어디 아빠한테 씨야, 씨!]
“알겠어요…. 형한테 물어보고.”
[오늘 저녁이나 내일 보면 좋겠구나.]
“너무 빠르잖아.”
재현의 볼멘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전화는 가차 없이 끊겼다. 이를 어쩐다. 만난 지 겨우 넉 달 정도 된 사람한테, 울 아빠가 형 좀 보재. 이랬다가는…. 재현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이 도영이 씻고 나와 재현을 찾았다.
“재현아, 너 씻어.”
“어어, 형...”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안절부절이야.”
재현은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얘기를 들은 도영은 재현의 생각보다 쿨하게 오케이 했다.
“저녁에 뵈러 가지 뭐. 언제 한 번 인사드리고 싶기는 했으니까.”
“혀어엉...!”
감동한 재현이 도영의 볼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었다.
“형. 분명히 말하는데, 기절하지 마.”
저녁 약속 장소는 굉장히 멋들어진 한옥으로 된 한식집이었다. 도영의 옆에는 눈에 익은 아우디 한 대가 스쳐 지나갔다. 도영은 재현의 아버지를 만난다는 긴장감에 눈치채지 못했다. 평소 직장을 갈 때 입는 정장이 아닌, 거래처를 만나러 가거나 할 때 입는 더욱 격식 있는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까지 넘긴 도영은 재현의 아버지가 좋아한다는 홍삼 세트를 들고 경직된 걸음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개량한복을 차려입은 직원이 방문을 열어주었다. 이미 한 상 차려진 방 안에는 근엄해 보이는, 도영의 눈에 몹시 익숙한 사람이 앉아 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자네는...”
“사, 사, 사장님?”
“아빠. 도영이 형이야. 도영이 형, 울 아부지.”
도영은 잠시 이곳이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했다.
김 대리라는 직분으로는 사장님의 얼굴을 자주 뵐 일이 없다. 하지만 지난번 워크숍 때 도영이 기갈나게 노래를 불러 1등 상에 당첨되어 직접 사장님이 상금을 수여 해주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서로가 안면이 있던 차였다. 사장은 도영의 싹싹함과 눈치 빠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뒤풀이 회식 때에도 제 옆자리에 도영을 앉혔었다. 모를 수가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셈이다.
설마…. 그 아우디가…. 그러고보니 워크숍이 마무리되고 사장님은 숙소에 안 가고 바로 댁으로 귀가한다며 기사를 불렀는데, 그 차가 아우디이며, 어딘가 익숙했던 것을 떠올렸다. 맙소사…. 도영이 질투했던 상대는 재현의 아버지였다. 자기 아버지니까 재현이가 애처럼 웃고 그런 거였다. 커피도 건네주고. 모든 것이 납득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재현의 아버지, 곧 아우디 남―이것은 도영이 종종 호칭하던 것이었다.―, 도영의 회사 사장님은 도영을 마음에 들어 했기에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도영만이 좌불안석이었다. 내 애인이 부잣집 도련님이었다니. 준재벌이었다니! 재현은 아버지가 도영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에 마음이 놓였는지 평소보다 더 발그레하게 웃고 있었다. 도영은 사장님이 주는 술술 족족 마시면서도 각을 잡고 있었고, 덕분에 사장의 호감도가 더욱 상승하였다.
“그래, 날짜를 잡는 게 좋겠구먼.”
도영은 긴장하는 와중에도 그 말에 소리 지르듯 답했다.
“저는 내일도 좋습니다, 아버님.”
호탕한 웃음소리가 한식당 가장 안쪽의 VVIP 방에서 울려 퍼졌다.
*
“있잖아. 재현아. 혹시...아버님께 내 얘기 한 적 있어?”
“움...아니? 형 얘기는 한 적 없고 형네 팀장이 성격 더러워서 직원들이 힘들어한다는 소문이 내 카페까지 들린다고 말한 적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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