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죄가 아니랴
그저 너의 존재가 빛이기 때문이라.
끔찍하게 맴도는 시선, 모두가 하나의 자리를 바라보는 곳. 광대들의 연극, 마리오네트의 반역. 네가 말하고 내가 깨어나던 날, 그리고 내 칼 끝으로 네가 죽은 날.
빛이 포말처럼 퍼지다가 사그라진다. 종막.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 세상을 가득 채우던 것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망망히 헤메이다 겨우 붙잡은 빛의 끝에는 제 세상이 버려진 채로 광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신이란 얼마나 잔악무도한지, 다른 신을 죽여놓고서도 변함없이 광대놀음을 이어가지 않는가. 아, 절망 뿐이다. 내가 그토록 절망하는 날의 시작은 너의 장례가 시작된 날. 너의 기일이다.
"..."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적막한 공간 안에서 작은 소리가 울릴만큼 무겁게, 흔적은 옅게 흘러 턱 밑으로 떨구어진다. 성녀의 침실 안까지 차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었다면 금방 들키고 말았으리라.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비탄에, 죄악감에 쫓겨 겨우 깨어난 얼굴이.
눈을 가렸다. 차라리 영영 깨어나지 않기를 어느 순간부터 바랬더라. 아마 너의 5번째 기일 쯤에는 벼락처럼 내리친 나의 각오도 한번 쯤 바스라졌던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너의 죽음을 묻고, 차마 애도조차 하지 못하고, 찾아가지 못하고, 그리지 못하는 것은 내 영혼을 깎았다. 오직 너만이 나의 세상이건데 나의 세상에 나만이 초대 받지 못한 이방인이라서 더 괴로웠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차마 가리지 못한 한탄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제 세상은, 사랑은 죽었다. 자신이 무지하여 꽂은 칼날로 영영, 더 이상 아무것도 닿지 못할 곳으로 떨어져 너와 나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 사실 하에 나는 영원한 죄인이요, 속죄 못할 영원이니. 나는 이로서 영원히 비참한 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죄인이 아니며 살아가는 이유는 너의 유예만은 아니다. 너의 부탁만은 아니다. 그저, 네가 빛이어서 차마 내가 어둠이 될 수는 없는 까닭이다. 네가 내 안에 있으니, 나는 그저 너를 더듬으며 살아 갈 것이다.
매번 돌아오는 이 날에 나는 지난 해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를 맞이하게 된다.
리나, 이스테리나.
네가 빛으로, 나와 함께 있기에 나는 죽음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너에게서 가장 먼 곳에 있을테니. 이 몸이 부셔지는 그 날에 부디 마땅히 죄인의 이름으로 너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곳에서는, 비로소 너의 옷자락을 잡아 나의 영원이 충족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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