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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아더 - 아더×멜레아강 / 2천 자, 오마카세

왕이 병상에 누운 지 사흘이 지났다. 사냥을 나섰다가 곰을 마주쳤다고 했던가, 그와 함께했던 정예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러나 그 소식을 들으며 멜레아강은 앞뒤 상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왕은 개나 양을 비롯한 짐승들이 그에게 으레 순하게 굴었듯 곰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깊은 숲속에서도 홀로 마음을 놓고 방심했겠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멜레아강은 끓어오르는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술잔을 내던진다. 무거운 유리가 바닥에 곤두박질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산이 조각난다. 그를 찾아갈까. 경비를 뚫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저주받은 왕자와 순한 짐승 사이에도 별반 차이가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했으므로. 그는 여전히 시골의 목동이나 다름없다. 누구에게든 긍휼이나 자비에 가까운 호의를 베푸는 왕의 투명한 낯짝을 보고 있자면 멜레아강은 그에게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기꺼이 알려 주고 싶다. 열이 오른 뺨을 문지르며 이를 갈던 멜레아강이 끝내 망토를 꺼내어 둘러쓴다. 특별히 무장은 하지 않아도 좋다. 원한다면 왕을 죽일 기회는 이미 수없었다.

 

한밤중 왕의 침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아더의 왼어깨를 가로질러 늑골까지 동여매 놓은 붕대는 본연의 색을 잃은 지 오래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죽을 운명은 아닌가 보군. 멜레아강은 그의 안색이 환자치고 제법 멀끔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챈다. 먼발치에서 왕을 지켜보던 멜레아강의 눈이 가늘어진다. 여전히, 아더는 지나치게 무방비하다. 태만하고 순진하며 그만큼 어리석다. 그는 이대로 썩 괜찮은 ‘사람’일지 몰라도…… 결코 좋은 ‘왕’은 될 수 없다. 이끌리듯, 멜레아강의 걸음이 병상으로 가까워진다. 아더는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상처가 온전히 아물지 않았는지 불규칙한 호흡으로 오르내리는 가슴팍에서 불그스름한 핏물이 배어난다. 그 모습을 응시하며 멜레아강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쥔다. 어쩌자고 여기에 찾아왔을까. 이렇듯 신에게 선택받은 왕이 그저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할 때마다, 멜레아강은 차라리 비참한 심정이 된다. 이래서는 그를 죽여 왕관을 빼앗을 수도 없는 일이다. 만약 아더가 간악한 폭군이었다면 제 처지가 좀 나았을까.

멜레아강은 불청객이다. 단순히 이곳 왕의 침실에서뿐만 아니라 이제는 브리튼 전체, 아니. 어쩌면 고르에서까지도. 어울리지 않는 상념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종전 마셨던 술의 탓일까. 홀로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아더를 노려보던 멜레아강이 제자리에서 비틀댄다. 일순간 크게 휘청이는 그의 몸을 낚아채다시피 받아 안는 손이 있다. 잠든 줄로만 알았던 아더가 놀란 눈으로 멜레아강을 본다. 괜찮나? 아더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어떠한 의문도, 경고도, 위협도 아닌 걱정의 말이다. 졸지에 침대 위 아더와 나란히 붙어앉은 꼴이 된 멜레아강이 한껏 인상을 찌푸린다. 하지만 아더는 그를 놓아 주지 않는다. 의중을 알 수 없는 눈길이 멜레아강을 뚫어져라 향한다. 아더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는 망토 자락을 걷어낸다. 이렇게 찾아와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허탈한 듯 웃으며 중얼거리는 왕의 목소리에는 이상하게도 기쁨이 섞여 있는 것 같아서. 멜레아강은 본능적으로 품속의 단도를 움켜쥐고서도 그것을 차마 꺼내지 못한 채 굳어 있다. 그러는 사이 아더는 멜레아강에게 조금 더 가까워져, 그의 체취에 희미하게 뒤섞여 풍기는 포도주의 잔향을 맡는다. 술에 취한 것은 멜레아강인데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외려 아더였다. 숨결이 닿을 거리만큼 가까이 기울어졌던 왕의 얼굴이 그대로 멜레아강의 뺨을 스쳐 목덜미로 떨어진다. 말없이 고개를 파묻고 있는 아더를 떨쳐내지 못하고. 멜레아강은 여전히 단도를 붙잡은 채 호흡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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