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나무

큰 물이 지고 난 뒤에

큰 물이 지고 난 뒤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직 홍수는 끝나지 않았다. 소강상태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나마 마른 땅으로 모이고 모여서 한 여자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보십시오!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던 강철군주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여자가 소리쳤다. 사람들은 화답했다.

옳소! 옳소!

보십시오! 폐허가 된 우리의 터전을!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던 강철군주는 지금 어디에서 구호작업을 하고 있답니까?

옳소! 옳소!

보십시오! 곧 비구름이 우리를 한 번 더 휩쓸겁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대비를 해주고 있습니까?

와아아 - 사람들의 목소리가 거친 바람에 실려 새벽제비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새벽제비는 건조한 표정으로 해산하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보다도, 새벽제비는 군중들과 같이 해산하는 한 사람을 보았다. 로젠바움 브레히트. 새벽제비는 계속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로젠은 옳소! 하지도 않았고, 와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침착한 눈은 예리한 면도날이었다. 그 눈은 강철군주와 전쟁군주 간의 차이점을 해부하고, 그들의 핵심부에 있는 권력을 꺼내 또 해부하고, 그 안에 까맣고 진득하게 고여있는 폭력과 남성성을 빼냈다. 두 손을 까맣게 물들인 채 로젠은 가만히 서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서있었다. 새벽제비는 로젠이 손을 씻고 자신을 발견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자리를 떴다.

마지막 남은 기상위성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새벽제비는 복잡한 지도를 펼쳤다. 땅의 지도가 아닌 하늘의 지도였다. 구름과 기압골이 그려져있었다. 새벽제비는 그것을 거의 읽지 못했다. 로젠은 달랐다. 로젠은 하늘의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읽어냈다.

이번 달 안에 큰 비가 또 내리겠군.

새벽제비는 눈을 데구르르 굴리더니 성의 없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젠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위성이 보내온 캡쳐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뚜우한 마음은 대충 집어넣고 평상한 표정을 꺼냈다.

시기적으로 나쁜데.

재해는 원래 시기적으로 나빠.

새벽제비는 한참 침묵했다. 로젠이 자신의 침묵도 해부해주기를 바랐다. 로젠도 침묵했다. 그는 새벽제비의 침묵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제비가 스스로 말하기를 고대했다. 서로 반대의 방향으로 침묵을 잡아당겼고, 결국 침묵은 힘없이 찢어졌다. 새벽제비는 울리는 귀를 잠시 손으로 덮었다.

그 여자의 강연을 듣더군.

그렇게 말하다니 의왼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내 생각일 뿐이다, 이거군. 너 자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로젠은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군중과 여자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근데 그것이 새벽제비였을 줄은 몰랐다. 새벽제비는 전령일 뿐이니까. 강철군주는 여자의 강연 혹은 선동을 불온하게 생각하고 해산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안됐다. 왜냐면……. 그건 군중들을 더 자극할 뿐이다. 새벽제비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품 속에서 종이를 꺼내 펜으로 휘갈겨 썼다. 큰 물이 지면 여자는 죽는다.

사고-,

새벽제비가 로젠의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댔다. 우스운 그 손동작은 로젠을 겁먹게 만들기 충분했다. 새벽제비는 기상 지도를 챙겨 눈 내리는 밖으로 나갔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로젠은 새벽제비의 뒤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큰 물이 진다. 빗물이 산을 무너뜨린다. 여자는 죽는다. 비가 내린다. 물이 차오른다. 여자는 죽는다. 절벽에서, 새벽제비는 멈춘다. 로젠이 걱정스럽게 말한다.

그 여자를 살리고 싶어.

왜지?

새벽제비는 맨발이다. 그의 발은 벌써 새빨갛게 얼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제비는 항상 맨발이었고 그는 얼어붙는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로젠이 고민하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고 새벽제비가 쏘아붙이듯 다시 묻는다.

왜지? 가만히 있으면 너는 편하게 살 수 있다.

로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단박에 꿰뚫어보았다. 그는 매일 밤마다 강철군주와 전쟁군주를 해부했다, 손이 까맣게 될 때 까지…….

아니. 그 여자를 도망치게 하고 싶다. 넌 전령이니 네가 도와준다면 모든 것이 수월하게 풀릴 것이다.

새벽제비는 그 말을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로젠은 그의 침묵이 깨지기를 기다렸다. 안달이 났다. 결국 로젠은 입을 벌려 새벽제비를 채근하는 수 밖에 없었다. 새벽제비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나는 직접 나서지 못한다. 그러나 큰 물이 지면 땅이 험해 도망치기 힘드니 할라면 지금 하는 것이 옳다, 로젠바움.

새벽제비가 속삭인다. 바람에 말씨는 흩어져 흔적을 알아볼 수 없다. 새벽제비는 맨발로 맨발로 로젠을 지나쳐 펠윈터 봉우리에 있는 천문대 안으로 들어간다. 로젠은 진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봉우리를 내려간다. 그 여자가 사는 곳을 물어서 찾았다. 로젠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여자의 거처를 알려준다. 로젠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위험은 자신이 막을 것이다. 보를 짓고 댐을 만들 것이다. 문을 두드리고 잠시 기다리자, 여자의 제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아직 소년이었다. 안에는 여자와 토론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두셋 있었다. 로젠이 그들을 무시하고 여자에게 바로 다가갔다. 여자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승천자입니다.

낮은 목소리로 로젠이 말했다.

강철군주들이 당신을 처리할 생각을 품고 있어요. 제가 알려주는 길로 도망가세요.

새벽제비의 지도를 훔쳤다. 로젠은 지도를 펼쳐 전쟁군주와 강철군주의 영토를 알려주고, 그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과, 전쟁에서 멀어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여자는 싫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로젠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 일을 우리에게 맡겨달라고. 당신이 물꼬를 텄으니 나머지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물꼬를 트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스승이여. 가십시오. 제가 여기서 최대한 군주들을 막겠습니다.

여자는 처참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하고 말고도 없다. 닥쳐올 감정은 아주 가까이 있었으나 때를 알 수 없었다. 새벽제비는 발을 털고 침대에 앉았다. 그의 발은 못생겼다. 멜이 되살렸을 때 이 지경은 아니었다. 새벽제비는 일부러 지도를 흘렸다. 로젠이 훔칠 수 있게. 훔쳐서 익힐 수 있게, 익혀서 범죄자를 도울 수 있게. 지도는 새벽제비의 머릿 속에 상세히 들어가 있었다. 그가 지도에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모두. 이제 새벽제비가 해야 할 일은 느긋하게 여자를 추적하는 것이다. 그는 숨을 필요가 없었다. 그 역시 승천자였고, 여자는 태양의 파편을 맞고 재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새벽제비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혐오스럽다.

뭘……. 왜 그렇게 봐?

로젠이 당황해서 물어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새벽제비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았다. 새벽제비는 말을 하지 않고 로젠을 쳐다보았다. 로젠은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들었다. 그래서 여자의 안부를 물었다. 새벽제비는 로젠을 쳐다보던 눈길을 돌렸다.

왜, 넌 전령이니 그 여자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아?

어떻게 답을 해야 했을까. 새벽제비는 멜은 이미 자신을 싫어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멜의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 그를 자신의 몸에서 도려내듯 차단했다. 확장된 감각이 오그라드는 느낌은 불쾌하고 고통스러웠다. 새벽제비는 답지 않게 겁을 먹었다.

너도 모르는구나.

로젠은 한숨과 함께 말을 하며 강가의 둑을 보수했다. 새벽제비가 말했다.

너를 사랑하기로 했다.

로젠이 흙을 다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새벽제비를 보았다. 그는 마치 로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차근차근 설명했다.

너를 사랑하기로 했으니 그런 줄 알아라. 너에게만 나를 투영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를 사랑해야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어. 도와줄거라 믿는다.

어처구니 없는 말이었다. 궤변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궤변이 최선이라니, 웃기지만 가끔은 이럴 때도 있는 법이다. 새벽제비는 그걸 아주 잘 알았다. 로젠은 새벽제비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물에 갖다 빠트렸다. 기어올라오려는 새벽제비를 삽으로 몇 번 밀어 빠뜨리니 곧 올라오는 것을 포기했다. 그가 물에 빠져 죽자, 멜이 나타나 새벽제비를 되살렸다. 그 사이에 로젠은 삽을 팽개치고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이게 맞다.

새벽제비가 중얼거렸다. 보강된 둑과 보 덕분에 이번 홍수는 피해가 크진 않았다 한다. 새벽제비는 문득 그 마을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을의 지반은 붕괴되었고, 집은 물에 한가득 잠겨 무너지거나 진흙에 묻혀있었다. 폐허. 그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폐허에서 조금씩 무언가를 짓고 있었다.

아름답지 않아?

멜이 물었다.

사람들은 기아 상태이고, 올해에도 또 다시 큰 물이 지겠지. 그럼 저 허접한 움막은 다시 부서질거야.

새벽제비가 비관했다. 한 남자가 멜을 보고 새벽제비에게 툭 던졌다. 살인자. 새벽제비는 눈길을 땅으로 처박고 못 들은 척 했다. 친씨앤, 그의 마지막 아들이 죽기 전, 그는 친씨앤과 반목했다. 친씨앤은 승천자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새벽제비도 그가 무찔러야 할 괴물이었다. 새벽제비는 친씨앤의 배신을 색출하기 위해 마을 하나를 통째로 고문하고, 불태웠다. 아. 친씨앤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도 무언가 생산해낼 수 있을거야, 그래.

멜이 말했다. 살인자는 마른 눈으로 멜을 쳐다본다.

말했듯, 저긴 그저 폐허일 뿐이야.

새벽제비는 자신의 아들 친씨앤이 그립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들이 매맞는 것을 보고 새벽제비는 아이를 보호하려는 어미가 되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매를 같이 맞았고, 아들은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게 유약할거면 왜 이 모든 일을 벌린 것이냐.

하이옌은 그렇게 시체에게 물었으나 시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푸르게 굳어가는 입술에서는 아름다운 가락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왜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은 다 죽는가, 사실 왜 죽는지 새벽제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이번 경우에는! 더더욱! 새벽제비의 머릿 속에 복수하겠다는 단어만 한가득 떠돌았다. 아들을 잃은 어미는 강철군주들 사이에서 기괴한 신화가 되었다. 로젠은 여전히 여자가 새벽제비 때문에 죽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새벽제비는 로젠을 불러 자신의 몸을 해부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날카로운 면도날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해부해, 내장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자신이 왜 바뀌었는지 묻고 싶었다.

또 고백 하게 쳐다보는건가. 불쾌해, 하지 마라.

로젠이 쏘아붙였다. 그래서 새벽제비는 눈을 거두었다. 로젠이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로젠은 물가에서의 고백을 장난으로만 생각했다. 새벽제비는 그 곳에서 위안을 느꼈다.

큰 물이 진다. 이번이 세 번째야.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어, 그들을 아예 다른 지역으로 대피시키기로 결정했다.

로젠은 다시 기상 지도를 꺼냈다. 새벽제비는 구름들이 자글자글 그려져있는 그림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그럼, 그 곳은 영원히 폐허로 남는다. 영원히 폐허인 곳이 있다는 사실은 그를 위안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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