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물새 한 마리가 다친 척 연기하고 있었다. 한쪽 날개가 부러진 것 처럼 이상한 각도로 펼치고 포식자를 피해 날아올랐다 추락하기를 반복했다. 로젠은 망원경을 돌렸다. 하늘에는 녹색 별 세 개가 박혀있었다. 여름철의 대삼각형이었다. 별들이 펼쳐놓은 거대한 진에서 물새가 벗어날 수 있을 지 궁금했다.
아마 불가능하겠지.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로젠은 망원경을 내리고 굳이 고개를 돌렸다. 새벽제비였다. 그는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팔딱거리는 점을 보았다. 로젠이 망원경을 건넸지만 새벽제비는 거절했다.
오늘은?
하이옌.
그럼 집에 갈까?
로젠은 자신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말과 현실이 겉도는 느낌이었다. 집에 갈까? 라는 말은 둥글게 꼬리를 말고 원이 되었다. 겉면에 기름칠을 해 데굴데굴 굴러갈 준비를 마쳤다. 로젠은 기름 묻은 말을 잡으려 했다.
도와줘, 하이옌!
로젠이 비명을 질렀다. 아뿔싸. 하이옌은 함정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로젠은 다리를 부러뜨리고 반대편으로 뛰려고 했다.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하이옌은 로젠의 팔을 낚아 채 아무것도 못 하게 했다. 하이옌이 로젠의 입에 자신의 입을 겹쳤다. 로젠은 하이옌에서 쏟아지는 액체를 그대로 받아마실 수 밖에 없었다. 비릿했고 텁텁했다. 토하고 싶었지만, 끔찍한 비명이 로젠을 뒤흔들었다.
로젠!
로젠은 숨을 들이키며 잠에서 깼다. 토하고 싶었지만 침대의 머리맡에선 쿨럭이며 괴롭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돌볼 수가 없었다. 로젠이 새벽제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자신을 쳐다보도록 했다. 소용은 없었다. 그의 눈은 멀어 있으니까. 새벽제비의 눈동자가 로젠을 찾아 미친듯이 헤메였다. 로젠이 새벽제비의 손을 들어 자신의 뺨에 올려놓았다. 새벽제비의 눈동자가 더 불안하게 떨렸다.
로젠……. 로젠, 어디있어?
그의 몸이 안 좋아질 수록 그의 정신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로젠은 새벽제비의 틈새로 건너편을 볼 수 있었다. 씁쓸한 감정이 입 안을 돌아다녔다.
숨 막혀, 로젠, 도와줘,
새벽제비가 색색거렸다. 로젠은 새벽제비를 침대에 기대 앉혔다. 그리고 고개는 새벽제비를 향한 채, 손으로 탁자를 더듬어 비상약을 몇 개 잡았다. 비상약이랄까, 병원에서는 새벽제비를 포기한지 좀 되었다. 정확히는 새벽제비와 병원 간의 협약이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을 연구하지 말아달라고. 대신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병명조차 찾지 못하던 병원은 새벽제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로젠이 약봉투를 뜯느라 잠시 고개를 돌렸다. 새벽제비를 나아지게 하는 약은 아니었다. 그건 진통제였다. 새벽제비는 아직 무언가를 삼킬 수 있었기에, 주사 대신 약의 형태로 처방됐다. 머리맡에 둔 물병에서 물을 따르고 로젠은 손에 약을 털었다. 옆에서 끅끅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심한 기침 소리도 들렸다.
하이옌!
로젠이 소리쳤다. 손바닥에서 알약이 떨어져 흩어졌다. 하나만 손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새벽제비는 쿨럭거리며 피를 토하고 있었다. 어깨는 고통으로 파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한 덩어리의 가시덤불이었다. 마르고 앙상하고, 로젠을 상처입혔다. 로젠은 자신을 돌볼 수 없었다.
하이옌, 하이옌……. 구급차를 부를게. 병원에 가면 뭔가 방도가 있을 것 아냐.
피는 새까맸고 악취가 났다. 폐에서 쏟아진 것인지 위장에서 쏟아진 것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환자분은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가고 있어요. 진행 속도는 느리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저희도. 로젠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급히 통신 채널을 열어 구급차를 요청했다. 로젠의 귀 안쪽에서부터 멜의 목소리가 들렸다.
로젠. 새벽제비에게 이상한 병이 생겼어요.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는데.
리즈의 열 번째 생일 날이었다. 멜은 더 말하고 싶어했지만 새벽제비가 저쪽에서부터 걸어왔다. 멜은 큰 한숨만 내쉬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 말을 믿어?
로젠은 고개를 저었다. 이 좋은 날에 굳이 새벽제비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병실이 남아있는 병원을 찾기는 좀 어려웠다. 새벽제비의 상태는 워낙 기이하고 위중한지라 갈 수 있는 병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토혈은 멈췄다. 다행일까. 새벽제비는 가늘게 숨을 내쉬며 숨소리보다 가늘게 눈을 뜨고 어딘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신경은 쓸모 없어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새벽제비는 어딘가를 바라보기를 즐겼다. 보통은 로젠……. 로젠은 새벽제비의 손을 잡고 몸을 웅크렸다.
괜찮아.
괜찮은 것은 죽음까지 가는 탄탄대로 뿐이었지만 그래도 로젠은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고. 그 말이 부적이 되었는지, 병실이 남은 병원에 도착했고, 새벽제비의 상태를 아는 의료진들이 미리 기다리고 있다 그를 받았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사람들은 새벽제비에게 링거를 달았다. 주사도 꽂았다. 입 안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로젠은 자신은 괜찮다는 듯이 일부러 진을 불러 옆에서 같이 새벽제비를 보았다. 사실은 쓸쓸했다. 진이 뭐라도 말해주기를 바랐지만, 진은 그러지 않았고, 로젠도 요구하지 않았다. 병실에 들어가고 로젠은 주의사항을 들었다. 그 뒤에야 로젠은 보호자가, 새벽제비는 환자가 될 수 있었다. 새벽제비는 지친건지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었다.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이옌.
불안해서 로젠은 새벽제비를 불렀다. 새벽제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눈을 희끄무레하게 떴다. 미안했다. 아니야, 다시 자, 무서워서 불렀어.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새벽제비가 쉰 소리로 말했다.
슈.
잘 들리지 않아 로젠은 말똥히 있었다. 새벽제비는 다시 한번 말했다, 슈, 라고. 로젠은 새벽제비가 언제 하이옌이라고 말했는지 고민을 했지만 알아낼 수 없었다.
미안, 슈. 슈……. 깨워서 미안해. 너무,
로젠은 작게 기침했다.
불안했어?
새벽제비가 짓궂게 물었다. 로젠은 그냥 새벽제비의 손을 잡고 힘을 주었다. 새벽제비도 마주 힘을 주었다. 새벽제비의 악력은 별 볼일 없었다. 옛날엔 그러지 않았다. 새벽제비는 엄밀히 말해 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새벽제비가 말했다.
리즈를 데려가서 미안해.
무슨 소리야?
리즈를,
새벽제비가 힘겹게 기침했다. 로젠이 봐주려고 하자 그는 다른 손 까지 로젠과 맞잡은 손 위에 포갰다. 괜찮다는 의미일까. 이 상황은 안 괜찮고, 안 괜찮은 일만 벌어지고 있는데, 괜찮다면 뭐가 괜찮다는 것일까. 로젠은 악쓰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새벽제비는 아프다. 더 아파질 것이다.
리즈를 납치했던 것 말이야.
새벽제비는 아프다. 더 아파질 것이다. 로젠은 자신의 상처를 못 본 척 했다.
다른 얘기 하자.
그것 때문에 아직 내가 밉구나. 이해해.
슈. 새벽제비. 제발.
이유를 말해줄게. 내가, 죽기 전에…….
너무나 낯선 단어가 로젠의 목을 졸랐다. 죽기, 전……. 이 무슨 뜻이지? 새벽제비는 아프고 더 아플 것이지만, 그 이후는 없었다. “더 아프다” 이후를 로젠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죽기 전이라니.
새벽제비는 로젠의 목소리에서 순수한 궁금증만을 들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로젠은 십 년 전에 있었던 리즈 납치 사건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로젠은, 새벽제비가 죽는단 뜻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었다.
부정하지 마.
그렇게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새벽제비는 로젠에게 그렇게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집이 아니라 많이 낯설지? 그래서 그런 거야.
로젠이 새벽제비의 눈을 감겼다. 그리고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잘 자라고 인사한 뒤 보호자 침대에 누웠다. 그는 아프다. 다시 나아진다면 오늘 했던 소리를 사과하고 다시 평소처럼 지낼 것이다. 물론 다시 나아진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평소보다 상태가 더 나빠진다는 것을 뜻했다. 로젠은 이빨을 꽉 깨물고 웅크렸다.
새벽제비는 돌아올거야.
새벽제비를 죽었다고 생각하는 리오가 그의 물건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묻자 로젠은 단호하게 답했다.
돌아올거야.
로젠은 논리적인 사람이었지만 이번만은 믿기 힘들었다. 그래도 리오는 따져주지 않았다. 로젠이 사랑하던 모든 이들은 죽었다. 그러나 나는 새벽제비를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새벽제비는 반드시 돌아와야만 해. 로젠의 등 뒤에서 새벽제비의 쉬어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승천차원에 있었다.
로젠은 눈을 감았다. 이빨을 깨문 것 처럼 꽉 감았다. 미간에 주름이 졌다.
리즈를 신으로 만드려고 했어. 이 땅은 그 아이에게 고통과 슬픔만 준다고 생각해서, 이 땅을 떠나 신이 된다면.
낯선 잠자리에서 두 사람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새벽제비는 얘기했고, 그래서 로젠은 잠이 들려고 했다. 새벽제비는 승천차원에서 무언가와 싸워야 했다. 싸우는건 아니었다. 절뚝거리며 날아오르지 못하는 척 날개가 다친 척 연기를 했다. 로젠과 아이들을 무언가가 찾고 있었기에.
녹색 별 세 개가 빛나고 있었어, 그건 이미 규합하여 진을 펼쳤고, 나한테 시간은 없었다.
웃기는 말이었다. 새벽제비는 종종 그렇게 현실을 은유하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만일, 새벽제비의 말이 진짜라면, 그는 자신이 대적한 것의 이름을 댈 수 있어야 했다. 새벽제비의 목소리가 잔불로 사그라들었다. 숨소리만 불씨로 애처롭게 재에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로젠은 그제야 일어나 앉았다. 그렇게 긴 시간 누워있던 것도 아닌데 등과 어깨가 배겼다. 순간 위장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그 곳을 안에서 밖으로 찢어내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왔다. 로젠은 소리도 못 지르고 자신의 침대에 쓰러졌다. 딱딱한 메트리스가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웨엑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누리끼리한 거품이 쏟아졌다. 쨍하게 코를 찌르는 냄새는 덤이었다. 마치……. 락스 같잖아. 로젠은 어렴풋이 생각하며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드세요?
그 말에 로젠은 숨을 들이키며 깨어났다. 아직도 속은 쓰렸다. 입 안이 텁텁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새벽제비가 아니라 로젠을 보고 있었다. 너무 낯설었다. 일단 몸에 이상은 없지만, 조금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의사의 설명이 뒤이었다. 로젠은 듣지 않았다. 환자용 침대에서 자고 있는 새벽제비를 누워서 올려보았다. 새벽제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불길하게 늘어진 팔 빼고.
새벽제비, 슈. 슈. 퉁 슈.
로젠이 더듬거렸다. 팔을 잡아 침대에 올려놔야한다고 생각했다. 움직이려고 했지만 간호사들이 로젠을 꽁꽁 묶었다. 로젠은 얌전히 묶였다. 진이 나와서 해명을 해줬으면 했지만 진은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슈, 말해봐. 괜찮아?
환자 분은 괜찮으십니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로젠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버렸다.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았다. 이거 치료 맞아요? 물을 수 없었다. 로젠의 입은 테이프로 봉해졌으니까. 의사를 애처롭게 쳐다보니 의사는 새벽제비였다. 하이옌이다. 로젠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에게 이상한 액체를 먹인 하이옌이다. 이제는 슈의 차례일 것이다. 슈가 위험해, 새벽제비가 위험해……. 하이옌은 친절하게 설명을 마쳤다. 그리고 간호사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갔다. 로젠은 빛을 불렀다. 아주 조금만. 그래도 반칙은 반칙이었다. 피부를 그을리는 태양불이 온 몸을 감쌌고, 로젠을 묶은 끈들은 힘 없이 끊어졌다. 반쯤 녹은 테이프를 뜯어냈다. 슈의 몸에 달린 링거들을 떼어내고, 하이옌이 슈의 입 안에 넣은 장치를 빼냈다. 그를 업었다. 다리가 질질 끌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로젠이 작은 탓이었으니까. 아무튼. 달렸다. 자꾸자꾸 머리 속은 잡생각으로 가득 찼다. 집중해야 했다. 하이옌이 보인다. 로젠은 슈가 거치적거린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부정탔는지, 새벽제비는 스르륵 미끄러져 로젠 밑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경쾌한 소리와 함께 슈가 깨졌다. 슈는 이미 금이 가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더 쉽게 깨졌는지도 모른다. 로젠은 파편에 손이 베였고, 하이옌은 다리가 찢어졌다.
아악,
하이옌이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야? 파편에 다쳤잖아!
곧 로젠은 하이옌이 자신을 걱정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하이옌은 자신의 다리에 난 상처를 가리키고 있었다. 크게 벌어진 상처에서는 쿨럭거리며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하니까 제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줘.
실수한 네 탓이지. 나와 슈는 이제 산산히 부서져버렸네.
말이 끝났다. 하이옌은 우르르 부서졌다. 챙그랑, 쨍강, 하는 경쾌하고 맑은 소리가 울렸다. 도자기 질감의 파편들이 흩어졌다. 로젠은 하이옌이 있던 자리를 멍하게 보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로젠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새벽제비의 파편을 줍고 있었다. 집안일을 하던 버릇이었다. 그의 손은 작았고, 커다란 그릇은 손에서 쉽게 미끄러졌다. 리오가 오기 전까지 로젠은 떨어진 그릇 파편을 주웠다. 이게 맞는 것일까. 로젠이 파편을 하나 집어들었다. 로젠은 깨진 조각 틈새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이 조각들을 다 치우고, 새벽제비와 유언에 대해 논해봐야겠다고, 로젠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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