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을 위하여 2
올드가드AU
쫄딱 젖은 모양새로 나타난 둘에 성준수는 사정없이 얼굴을 구겼다.
"다 큰 새끼들이 물장난하고 자빠졌냐?"
"아니 임마가......."
뭐라 변명하기도 전에 성준수는 대충 손을 더듬어 잡히는 대로 천 쪼가리를 던졌다. 퍽퍽퍽 정확히 가슴에 하나씩 명중하는 것들을 들춰보니 딱 수건, 상의, 하의, 속옷의 조합이었다. 비록 색과 스타일이 자유분방했지만.
흘끔, 전영중을 보자 그는 문이 활짝 열린 와중에 누가 쳐다보든 말든 거리낄 것 없이 훌러덩 속옷까지 단번에 벗었다. 와중에 쉬지 않는 입은 덤이었다.
"준수는 소유권 개념이 없어? 남의 옷 그렇게 함부로 빌려줘도 돼? 난 허락한 적 없는데?"
점마가 입던 거냐고....... 공태성은 제 손에 들린 전영중의 속옷을 꺼림칙하게 보았다. 뭐든 걸레짝 같은 지금보다는 낫겠지만....... 바로 옆에서 수건으로 허벅지를 벅벅 문질러 닦는 모습에 눈을 질끈 감고 젖은 바지를 내렸다.
이 병신새끼—전영중은 성준수가 하는 일마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입을 도저히 가만두지 못하고 촉새처럼 털어대지만 적극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았다. 내 허벅지에는 대뜸 환기구멍을 냈으면서. 이걸 보면 많이 친해보이기는 하는데.......
"새것도 아니고 입던 건데 뭐 어떠냐? 아니 뭐 꼬우면 가서 무지개 빤스라도 사입지 왜 자꾸 지랄이야?"
이런 걸 보면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다 싶고. 한 마디도 곱게 주고받는 꼴을 못 봤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성준수는 적어도 전영중보다 제게 친절했다. 근데 대가리에 바람구멍 내고 납치한 놈을 친절하다고 말해도 되나? 이 부분이 좀 애매하다.
"됐으니까 문은 닫고 갈아입어라. 아무리 보는 사람 없어도 밖이 훤한데 덜렁거리고 그러는 거 남사시럽다"
아이 시발...... 역시 이 새끼가 이상한 거였네! 공태성이 전영중을 한 번 노려보고는 사타구니를 가리고 사무실 문을 닫았다. 점마는 이름이 재유랬나... 일단 한 패로 보이는데, 제게 우호적인지는 가늠이 안 된다.
아직도 희미하게 붉은 기가 배어나는 물기를 수건으로 닦았다. 공태성이 옷을 다 갈아입는 걸 기다려주지 않고 성준수는 말을 이었다.
"혼란스럽겠지만 오늘은 얘기만 듣고 일단 일상생활 복귀해. 신분은 새로 만드는 것보단 기존 걸 쓰는 게 훨씬 안정적이니까."
"아니, 병원에서 그 지랄을 해가며 납치해놓고...."
"맞다, 그거 말인데."
조금 전부터 말허리가 뚝뚝 끊기자 공태성이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미안타. 진재유는 짧게 사과하고는 성준수를 보았다.
"공태성이, 그대로 사망 처리했다."
"뭐? 복구한다며?"
"그렇게 됐다. 점마 군바리라매. 국가 끼면 성가셔서 그냥 사망 처리하고 새 신분 만드는데 낫다."
"아니 그걸......!"
무언가 항의하려던 성준수는 입술을 씹더니 뒤통수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머리는 다 헤집어진 꼴로 입만 몇 번 뻐끔거리다 인상을 찌푸린다. 오 콩가루. 뭐가 또 안 맞은 모양인데. 아까는 폐차를 하네 마네 전영중이랑 싸우더니 이제는 진재유랑 언성을 높이기 직전이다.
잠깐만. 근데 이거 내 이야기잖아? 느긋하게 관전하고 있던 공태성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야. 잠깐 나가 있어봐."
"왜?"
"왜는 무슨 왜야? 어른이 시키면 좀 시키는 대로 해."
"내도 어른인데?"
그러자 성준수가 잔뜩 인상을 쓰고 공태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말로 치환하면 '꼴에' 정도 될법한 시선이었다. 진재유는 난처하게 웃고, 팔짱을 끼고 기대있던 전영중이 몸을 일으켰다.
"말 나온 김에 니 민증이나 까봐라. 니는 몇 살인데 이래라 저래라고?"
"그래. 공태성 어른이, 민증 있는 거 알았으니까 잠깐 나가 있자?"
"아니, 내가 당사잔데 왜 내를 쏙 빼고......!"
전영중이 공태성 뒤로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저를 힘으로 밀어낼 게 뻔했기에 공태성은 문간에 버티고 섰다. 민증을 까든 사망 처리 얘기를 하든 어쨌든 자신은 이어질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예상이라도 한 듯 전영중의 대처는 한층 더 과격했다. 손속 없이 명치를 걷어차 컨테이너 밖으로 날려버리고는 냉큼 문을 닫는다. 달칵. 흙바닥을 구르는 와중에 문이 잠기는 소리만큼은 경쾌했다.
"야이 씹, 장난하나!"
곧장 달려들어 손잡이를 흔들어도 변하는 건 없었다. 문고리는 꿈쩍도 않고 덜컥거리기만 했다. 그 위로 삐로롱, 전자패드 잠기는 소리가 더해진다. 이 새기들이 진짜! 체중을 실어 걷어차도 허술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제법 튼튼한지 문짝은 꿈쩍도 안 했다.
"저기, 오른쪽 돌아가면 나오는 컨테이너에 네 친구 있으니까 가서 놀고 있어."
높게 달린 창문이 열리더니 슬리퍼 한 쌍이 내던져진다. 고개만 빼꼼 내밀고 말한 전영중이 턱짓으로 오른쪽을 가리키고는 사람 속 뒤집어 놓는 웃음을 짓더니 냉큼 창문을 닫았다. 잠금장치를 야무지게 걸고 커튼까지 쳐버린다. 넉넉한 크기의 암막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은 완벽하게 실내와 실외를 단절시켰다.
꼭지까지 돌아버린 공태성이 창문을 찍고, 밖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던져도 컨테이너는 부실하게 흔들릴지언정 어느 한구석에 기스 하나 나지 않았다.
"야 이 개자식들아!"
쾅! 뭘 던진 건지 커다란 충격을 마지막으로 발소리가 멀어졌다. 안의 세 사람은 묵묵히 소란을 견디며 CCTV 화면을 봤다. 저러다 화나서 뛰쳐나가면 어쩌나 했는데, 성난 걸음이지만 착실히 알려준 컨테이너로 향한다. 사람을 잘 믿는 건지 뭔지. 군인이면 마냥 순진한 건 아닐 텐데, 그냥 사람이 단순한가?
인상을 쓰고 있던 성준수가 마침내 쏘아붙인 쪽은 진재유가 아니었다.
"애는 왜 긁어?"
"내가 뭘? 내보내래서 내보낸 것뿐인데."
"이 새끼가 진짜. 내가 가만히 있으랬지."
"가만히 있었잖아?"
"입을 가만히 두라고, 입을!"
아무거나 쥐고 입을 후려치는데도 전영중은 웃기만 했다.
전영중은 며칠 전부터 저 상태였다. 답지 않게 성준수가 시키는 대로 따르면서도, 저 주둥이는 도무지 순순하질 못 했다. 덩달아 분위기도 험악해졌지만 다행이라면 이 신경전의 굴레에서 진재유는 부외자였다. 주먹의 대화를 하기 전에 그나마 중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소리다.
"됐고. 공태성이 사망 처리는 내 독단이었다. 나도 준수가 출발하고 나서야 정보가 들어와서."
"......그래, 그거. 어떻게 된 거야?"
과연, 멱살을 틀어쥐었던 손에 힘이 풀렸다. 내심 아쉬워하는 전영중의 표정을 못 본 체하며 진재유가 말을 이었다.
"금마들, 그 병원에도 있더라."
니 누고? 기상호인데요. 니도 점마들이랑 한패가? 아닐걸요. 우울한 낯으로 짧은 인사를 나눈 녀석은 눈치를 보다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이후로는 쭉 어색한 침묵 속에서 티비 채널만 넘어갔다. 와르르 떠드는 연예인들을 무감한 표정으로 보던 녀석이 위로 가는 버튼을 누르면 몸을 반도 못 가리는 옷을 입은 아이돌이 춤을 춘다. 몇 초를 못 버티고 또 채널을 넘긴다. 거리가 터지고 차가 날아다니는 와중에 총을 쏘던 남자의 팔에 총알이 박힌다. 기상호는 경기하듯 티비를 끄고 리모컨을 던졌다.
비정상적인 반응에 공태성이 조금 전의 상황을 복기한다. 영화 채널을 튼 순간부터 녀석은 잔뜩 긴장해 어깨를 움츠렸다. 채널을 바꾸고 티비를 끄기까지는 고작 2초. 나온 장면이라 해봐야 폭탄이 터지고 총을 쏘는 게 고작이었다. 공태성이 일부러 리모콘을 주워 들자 달려와 뺏기까지 한다. 트라우마적인 반응이다.
"내놔, 인마."
"저 티비 보기 싫어요."
"내가 심심해서 그래."
등 뒤로 리모컨을 숨긴 기상호는 금방이라도 리모컨을 뺏을 기세에 쭈뼛거리다 물었다.
"......형은 누구예요?"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묻기는. 공태성은 조금 전까지 기상호가 앉았던 2인용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누구 같은데?"
대뜸 아무 말이나 하나 싶었는데, 기상호는 다 죽은 눈을 하던 조금 전과 달리 제법 신중하게 공태성을 훑어보았다. 용병은 아닌 것 같고, 의뢰 대상도 아니고... 중얼거리더니 영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용병? 금마들 용병이었나? 어쩐지 총 쓰는 게 익숙하더라니 어디 해외에서 굴러먹은 용병이었을지도.
키만 크고 아직 솜털이 보송해 보이는 놈이 나름의 추리를 이어가다 이내 볼멘소리를 냈다.
"왜 형은 누군지 안 알려줘요? 저는 이름도 말했는데."
"이름 말하면 니가 아나.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그 얼굴로 연예인 하면 큰일이죠."
"뭐?"
언성을 높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선을 곱게 깔았다. 조용한가 했는데 은근 기어오른다. 몇 마디 나눴다고 마음이 놓이는지 슬그머니 옆에 앉는 것까지.
"형도 그거예요?"
조용히 있던 녀석이 툭 묻는다. 맥락 없는 말이었지만 방금의 질문이 저도 불사자냐 묻는 거란 확신이 들었다. 쳐다보자 새카만 눈이 집요하게 얼굴을 살핀다. 왜 그런 걸 묻지? 이 녀석도 불사자라? 사실 죽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흔했나? 그러나 안심하기 전에 본능이 경종을 울린다.
"그거가 뭔데?"
"그......."
"그 뭐."
"......아니에요."
"뭐고?"
태연하게 잡아떼자 기상호가 도로 고개를 숙인다. 뒤통수를 긁적이는 게 석연찮은 기색이었다. 물론 알 바는 아니었다.
"야, 나와봐."
어색한 침묵을 끝낸 건 성준수였다. 기상호가 벌떡 일어나자 손을 내젓고 공태성을 가리켰다. "너 말고 쟤." 정정하자 '쟤'로 명명된 공태성이 이번에는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있던 전영중을 보고 얼굴을 구기자 성준수는 공태성 대신 전영중을 컨테이너에 밀어 넣었다.
준수 뭐해? 니 옆에서 애 긁지 말고 꼬맹이랑 놀고 있어. 내가 보모까지 해야 돼? 니 밥값 벌고 싶으면 보모든 보모 할머니든 해야 할 거 아냐! 나불대는 놈을 떼놓고 문을 닫았을 때는 성준수도 지친 기색이었다. 어쩌면 질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성준수와 단둘이 이어간 면담은 평화로웠다. 뭐라 반박하면 '좆도 모르는 새끼가 뭘 안다고. 그냥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해.'라며 전혀 들어주지 않아서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대뜸 서열정리당했다고 그대로 받아들일 공태성이 아니지만, 경위는 이랬다.
"너 사망 처리로 결론 났다."
"이렇게 살아있는데?"
"더미도 만들어 넣어놨어."
"은재도 날 봤고!"
"꿈이라고 생각하겠지."
"니는 대낮에 눈 뜨고 꿈꾸는 사람 봤나!"
"야, 척추 날아간 시체가 부활해 걸어 다녔다고 하면 사람들이 걔를 믿겠냐 아님 미쳤다고 생각하겠냐?"
"우리 은재 안 미쳤......!"
미처 반박하기도 전에 머리통이 후려갈겨진다. 빡! 콘크트리트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진 듯한 충격이었다. 공태성이 머리를 부여잡고 얼이 빠진 사이 성준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진짜 위아래도 없이 뭐, 니? 야, 니 민증 받을 나이에 난 호패 들고 다녔어, 이 새끼야!"
그러더니 따악! 공태성이 문지르는 부분을 피해 머리를 또 때렸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에 눈을 질끈 감았다.
"뭐... 호패?"
"넌 불사자가 아무리 다쳐도 자연치유되는 무상의료서비스 수혜자라고 생각했냐?"
"그게 아니면 뭔데?"
심지어 죽어도 되살아나는데 개꿀 아닌가. 역시 K-슈퍼솔져, 살아있는 캡틴 코리아가 될 거 같은데. 그러나 성준수는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요즘 것들은. 저도 요즘 것이면서 그런 말까지 더해가며.
"홍무 20년. 몇 살인지는 알아서 계산해."
홍무가 뭔데? 임마 뭐 일본인이가? 슬쩍 진재유를 보자 모니터에 시선을 두고서도 곧장 대답했다.
"고려 말기 연호다."
"......구라 아니고?"
"구라든 아니든 니한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여상히 대답하는 게 농담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었다. 진재유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편하게 얘기들 나눠라. 나는 상호 일로 얘기좀 하고 올 테니."
그렇게 최소 600년을 더 산 어르신과 단 둘이 대화를 하게됐다. 대화보다는 성준수가 말하는 것들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쪽이었다. 잠깐, 저 이해가 안 가는데요. 이해는 21세기 창의적 학습법이고, 니는 조상님들이 그랬듯 그냥 내가 말하는 걸 달달 외우기나 하면 돼. 그새 어르신에게 존댓말을 구사하며 공손하게 반기를 들었으나 돌아오는 건 구시대적 공부법 강요뿐이었다.
그래서 불사자란 무엇인가.
매끄럽지는 않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설명이 이어졌다. 로마자를 쓰는 문화권에서는 올드가드라 불리고, 한자 문화권에서는 자신들을 불사자로 칭하는 이들. 죽어도 죽지 않고, 늙어도 늙지 않는 진시황이 바라던 불로불사의 현신. 그래서 그들이 행복했나?
성준수는 이 부분에서 말을 아꼈다. 가족도, 친우도, 나라도, 하다못해 산천초목마저 불타고 향수를 느낄만한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늙지도 않는 몸으로는 정착할 수도 없었다. 세상을 떠돌며 지독하게 긴 삶에 때로는 공허감을 느꼈다. 변한 건 몸뿐, 정신까지 불사의 몸에 맞게 바뀐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외롭기만 한 삶이었느냐 하면.......
"적긴 하지만 팀으로 움직이는 동류들이 있어. 나랑 전영중은 일 때문에 한국에 와있던 거고, 나머지는 중국에 있으니까 조만간 인사하자고."
"조만간?"
"너 그쪽으로 보낼 거야.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내 편도 사귀고, 불사자가 어떻게 살아가나 익힐 겸."
"아예 한국을 뜨라고?"
"그게 편해. 어차피 너 죽은 사람이라 가족들도 못 만나는데 가까이 둬봤자 너만 힘들다."
"아니,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멀리 있다고 해서 쉽게 끊기던가. 볼 수 없으면 오히려 애틋해지는데. 그 순간 공태성의 눈앞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눈물 흘릴 부모님, 제 끔찍한 몰골을 코앞에서 지켜봤을 서은재.
공태성은 제 몸이 변한 걸 인정했다. 상체의 반이 날아가도, 머리가 터져도 아무렇지 않게 되살아나는 걸 안다. 공태성은 죽은 사람이고, 곁에 남아봤자 서은재의 무엇도 될 수 없다는 걸. 결국 서은재와 헤어져야 하고, 다른 이와 가정을 꾸리는 걸 봐야만 할 거다. 그러니 저처럼 죽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낫다는 걸 아는데.......
안다는 것과 받아들이는 건 늘 별개의 문제였다.
"어떻게 다 두고 가는데요......"
아무런 설득력도 없는 투정이었다. 이런 볼품 없는 모습을 납치한 사람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갑작스러운 이별이 자꾸만 공태성을 무너뜨렸다.
킁.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공태성이 입술을 씹었다. 쪽팔리게 울지 마라, 사내새끼가! 어차피 허튼소리 말라 할 텐데 뭐 하러 약한 소릴 하노!
"그럼 남든가."
그러나 성준수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놀라 고개를 드니 잔뜩 인상을 썼으면서도 조금 전보다는 누그러진 태도였다.
"예......?"
"원래 그러려고 했어. 일이 좀 꼬여서 그렇지."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도 제 사망 처리 가지고 말이 안 맞았다. 원래는 서류 조작해서 살려두려 했던 것 같은데? 뒤늦게 결정을 바꿔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
"오래는 안 될 거야. 이번 일 마무리할 때까지만. 그래도 전영중이랑 조율해서 최대한 오래 한국에 있어 볼게."
성준수는 쑥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전영중이랑은 웬만하면 부딪히지 말고 웬만하면 나한테 말해. 시간 날 때마다 이것저것 알려줄 테니까.
분명 저를 배려하는 것 같은데, 왜 꺼림칙하지? 가슴 한구석에 위화감이 번진다. 죽여서라도 저를 데려오지 못해 안달이더니, 이제는 원하면 한국에 남으라고? 심지어 보호자 노릇까지 하려 든다. 차라리 일관되게 싫은 티를 내는 전영중이 더 알기 쉬웠다. 대체 성준수는 제게 뭘 원하길래?
그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여도 되는가. 공태성은 가족과 헤어질 생각에 슬퍼하는 표정 그대로 골몰했다. 어차피 죽지 않으니 그게 베푸는 대로 누려도 상관없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라 해봐야 산채로 잡혀 무한으로 장기적출 당하는 것밖에 더 있겠어? 제가 떠올렸지만 제법 끔찍한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방금 건 취소.
"서은재가 애인이지? 걔 얘기나 좀 해봐."
"은재요? 우리 은재 얘기는 와 또 해보라고......."
공태성은 쑥스럽게 콧등을 문지르다 이내 헤쭉 웃으며 발렌타인데이에 주고받은 초콜릿에 대해 늘어놓았다. 아주 잠깐, 성준수가 눈살을 찌푸렸으나 이내 끄덕이며 장황하게 이어지는 그날의 일들을 들었다. 영양가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동류인 저라면 몰라도, 서은재까지 캐내려는 건 이상하다. 이 순간, 공태성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 ..+ 7
댓글 5
열렬한 참새
너무좋아요 다음편 기다리구있어요..♡♡
책읽는 꿀벌
오잉 준수가 태성이한테 왜 이렇게 우호적인지 궁금해요 은재 이야기는 왜 물어본걸까요..?? 중국에 있다는 동료들도 궁금하고 영중이랑은 어떻게 만난건지도 궁금하고 재유는 불사자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만났고 무슨일을 하는지 궁금하고 이들의 목표는 무엇인지..! 태성이 시점인게 재밌는 점인것 같아요 준수를 경계하고 영중이를 싫어하고 캡틴 코리아같은 생각이나 한 태성이ㅋㅋㅋㅋ그래도 상호가 있어서 덜 외로울것 같아요 너무 재밌고 다음편도 기대됩니다! 빨리 보고 싶어요ㅠㅠ
똑똑한 래서판다
다음편 너무 기대되네요.. 아니 공태성 이 자식 생각보다 똑똑한걸?! 군인이라더니 제법 태가 나~~~??
감성적인 사슴
꺄아악 뒷편 너무 기다렸어요! 고려말기 ㅋㅋㅋㅋ 500년 더 산 어르신인거 알자마자 태도 바뀌는 태성이 넘 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금마들은 뭐고, 상호는 뭘 무서워 하는거며 준수는 왜 태성이한테 친절한지...!! 다음편 너무 기대됩니다!
책읽는 꿀벌
저 안녕을 위하여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기다렸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읽기 전에 우선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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