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안녕을 위하여 1

올드가드AU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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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복귀라고?"

"내일."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수플레 팬케이크에 나이프를 갖다 댄다. 퉁명스러운 대답과 달리 정성스러운 손짓이었다. 먹기 좋게 자른 조각에 무화과를 올리고 포크를 내민다. "내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그러면서도 조막만 한 입을 벌려 받아먹는 게 좋았다.

"맛있나."

"응. 맛있네."

"담에 집에서 해줄까?"

"얼마나 자주 먹는다고. 데이트할 때 사 먹음 되지."

데이트. 세 음절에 공태성이 고장 난 듯 삐거덕거렸다. 사귄 지 언젠데 아직도 데이트 소리에 맥을 못 추나. 혀를 차면서도 순진해 빠진 제 남자친구가 귀여웠다.

"너는 요새 별일 없고?"

"그냥 제대하고 싶어 죽겠다. 애새끼들은 다 병... 말도 뒤지게 안 듣고. 공수 훈련보다 애새끼들 보는 게 더 힘들다. 그냥 5년 차 전역 신청하려고."

장교가 멋있어 보인다고 육군사관학교에 덥석 지원했는데 막상 와보니 잘못된 판단이었다. 어쩐지 쌤들이 뜯어말리더라. 태성아, 네 성격에 군인은 아니다. 진짜 아니니 다시 생각해 봐라. 군인 말고 의사는 어떻니. 흰 가운 멋있잖아. 쌤들 말대로 육사 말고 의대나 갈걸. 의대 가면 은재도 있는데.

"그래? 난 군인 남편도 좋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육사 나왔으니 별은 달아보려고."

그러나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앞에서 그런 고민은 사치였다. 군인 남편이 좋아? 아, 그럼 군인 해야지. 아득바득 버텨서 별까지 딱 박아야지.

줏대 없는 발언에 서은재는 가타부타 말없이 웃었다. 헤매는 것 같아도 결국 제 자리에서 열심인 남자친구를 알아서다.

"창원 데려다줄까?"

"됐다. 버스 타고 가면 돼."

"창원이 얼마나 멀다고. 금방이다."

"병원이 그렇게 한가하나."

"주말이잖아. 잠깐 다녀올 수 있어."

그럼 나야 좋지. 폭신한 팬케이크를 포크로 찍는다. 햇살을 받아 빛나는 여자친구가 천사 같았다. 인턴 3년 차에 일 배우고 공부하느라 죽어갈 텐데도 제 여자친구는 여전히 예쁘고 착했다. 가시나,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자지.

팍! 피이이익! 화약이 터지며 길게 솟구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폭죽 쏘나 봐. 누군가 무심하게 말한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런 애들 장난감 같은 게 아니다. 폭죽 소리 따위가 번화가 소음을 뚫고 들리겠냐고! 어떤 빙시가 3시부터 폭죽을 쏘는데? 파란 하늘을 가르고 솟구친 하얀 연기가 반전하여 내리꽂힌다.

아니, 진짜야?

"박격포! 안으로 들어가!"

비현실적인 광경에도 훈련된 몸이 알아서 외쳤다. 각도가 좋지 않다. 공태성은 서은재를 낚아채 달렸다. 루프탑 출입구 가까이 앉은 이들에게 소리친다. 들어가! 대피! 필사적인 외침에 돌아오는 건 이상한 사람을 보는듯한 시선뿐이었다.

출입구가 멀다. 탄이 날아오기 전에 들어가는 건 무리다. 죽음을 직감한 정신이 여느 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사위를 인식한다. 공태성의 주마등은 지금 이 현실이었다. 대체 왜? 부산 한가운데에 박격포가 꽂힐 일이 뭐 있다고? 테러? 수만 개의 계산이 의미 없이 펼쳐진다. 그중 쓸모 있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결론뿐. 뒤를 보자 하얗게 날아드는 포탄 아래 서은재가 보였다. 남자친구의 불안에 서은재는 어떡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태성아."

내가 지켜야 할 사람.

카페 테이블을 엎는다. 종잇장처럼 얇아도 철판이기는 했다. 총으로 갈기면 바로 뚫릴 거. 그래도 지금 의지할 건 이것밖에 없다. 테이블을 등지고 서은재를 품에 안는다.

"괜찮아."

은재가 작아서 다행이다. 더 작았으면 동그랗게 말아 안았을 테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작은 머리를 당겨 끌어안고 온몸으로 감싼다. 제발. 제발 탄도가 어긋나기를. 잘못 봤기를.

그리고.

쾅!

세상이 뒤집혔다. 바닥이 꺼진 것도 같고, 튕겨 나간 것도 같다. 물에 빠진 듯 방향을 알 수 없었다. 순식간에 귀를 멀게 만드는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은 힘만 더했다. 온몸이 찢어질 것 같았다. 영원처럼 느껴지던 고통은 실상 찰나였고, 이후는 알 수 없이 의식이 까맣게 꺼진다.

그렇게 공태성의 시간이 끝났다.

허억!

경련하듯이 숨을 들이마셨다. 뭐지? 눈 앞을 가린 새하얀 천을 허우적거리며 걷어냈다. 발끝까지 감싸 몸 아래에 깔린 천을 겨우 바닥으로 밀어낸다.

분명히 그게 등 뒤에 떨어져서, 파편이 날아오고.... 들어올린 손은 지저분하다 뿐이지 멀쩡했다. 몸을 더듬는다. 얼굴, 목, 가슴 허리. 손이 닿는 곳마다 이상은커녕 작은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태성?"

은재! 익숙한 목소리에 튕기듯 몸을 일으킨다. 복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서은재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잔뜩 울었는지 눈가가 빨갛고 단정하던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은재야, 니 괜찮나."

"살았어?"

"어어, 다행히 살았네. 넌 다친 데 없고?"

"어떻게, 살아있는 건데."

간이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디디자 서은재가 뒷걸음친다. 뒤는 벽인데도 도망갈 곳을 찾는 것처럼 더듬거린다. 서은재는 얼굴을 비롯해 셔츠, 바지 곳곳이 찢어지고 피딱지가 앉아있었다. 공태성이 다시 팔을 들었다.

지저분할 뿐 타박상 하나 없는 팔. 뒤에서부터 찢어진 셔츠. 허리 부분이 날아가 헐거운 청바지. 피를 잔뜩 머금은 옷가지는 산패해 검붉게 변해있었다.

"죽, 었어, 너... 등이 완전히 날아가서, 척추도 온전하지 않고, 내장이 다... 심장도 완전히 멈춰서, 사망 선고도......."

헐떡이는 호흡에 공태성은 제 숨구멍도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제 등짝에 박히던 열기가 생각났다. 폭발은 공태성의 몸을 말 그대로 터트렸다. 걸쳐져 있던 셔츠를 당기자 앞판밖에 남지 않은 옷이 맥없이 떨어져나온다.

서은재의 말이 맞았다. 이건 죽어야 정상이다. 어떻게 살아있지? 공태성도 알 수 없었다.

"......의사, 의사 불러올게."

뒤늦게 정신 차린 서은재가 어디론가 뛰어갔다. 같이 간다거나 하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공태성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가릴 것 없이 드러난 상반신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태성 환자분?"

가운을 입은 의사가 저를 올려다본다. 이제 어떻게 되지? 사망 선고가 취소되나? 그런 경우가 있던가? 일단 부대로 가자. 가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그리고 실험대 같은 데에 오르나? 초인 그런 걸로? 슈퍼솔져? 의사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바닥에 떨어진 흰 천을 주워 둘러주었다.

"그걸로 가리고 따라오세요."

"예에......."

저보다 작지만 평균보다는 큰 키의 남자가 앞장선다. 남자는 테러의 여파로 어수선한 응급실을 지나 밖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데요?"

 도로 옆에 세워둔 차 문을 열고 쳐다보자 공태성이 물었다. 은재가 불러온 의사니까 별 말 없이 따라오긴 했는데...... 갑자기 외부로 간다고? 의사는 인상을 쓰고 손짓으로 재촉했다.

"몸에 일어난 이변을 살펴보려면 다른 시설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변. 그 말에 공태성은 차에 올라탔다. 남자는 확실하게 제 변화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 그의 말에 따르는 게 옳다는 판단이었다.

"공태성! 니 어디 가는데!"

서은재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반쯤 나가 있던 정신이 돌아왔다. 문을 닫던 남자가 눈만 돌려 시선을 마주한다.

"쯧."

거칠게 닫히는 문 아래 발을 끼워 넣었다. 겨우 걸친 다리가 부러질 것처럼 아팠지만 이대로 닫혀 납치당하는 것보다 나았으니까. 문틀을 잡고 뛰쳐나가려는 시도에 목이 잡히고 미간에 철컥, 총구가 닿았다.

푹!

"......그만 털랬다."

감각은 잠이 깨는 것과 비슷했다. 날카롭게 벼려진 신경이 깨어나는 것과 동시에 뚜렷하게 주변을 인지한다.

"차가 마음에 안 들면 피범벅 만들지 말고 말을 해."

"어쩔 수 없었다고 세 번 말했어. 애초에 내가 폐차할 거 끌고 간댔는데 니가 그거 쓰라며."

"나 이거 청소 못 해. 준수가 직접 하든가."

"누가 해 달랬냐? 야,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음 지랄 말고 말을 하라고."

거친 흙바닥. 누군가의 말싸움에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어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가? 전후 관계는 상관없다. 두 목소리 중 하나가 이미 들어본 적 있다는 게 중요했지. 발가락. 멀쩡하고. 티 나지 않게 손을 까닥인다. 역시 멀쩡했다. 가만히 손끝에 힘을 주고,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튕기듯 달려든다. 목표는 5미터 전방 드럼통 앞에 선 남자. 불붙은 드럼통 안에 하얀 가운을 던져넣고 있었다. 남자가 알아차리기 전에 덮칠 생각이었다.

푹! 익숙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릎이 절로 꺾여 바닥에 주저앉는다.

"아아아악! 씨발!"

"전영중. 총 내려."

"군인에 스물여섯이랬나? 팔팔하네."

"씨, 팔...! 이 씹새끼들, 너네 뭐야!"

"총 내려. 얘 내가 맡는댔어."

"네 언변으로?"

남자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피가 울컥 솟는 허벅지를 누른 손을 치우고 틈에 칼을 넣어 옷을 찢었다. 거친 동작에 공태성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어금니를 씹고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정신 차려. 두 번이나 겪었으면 너 안 죽는 거 이제 알잖아?"

"무슨 미친 소리야!"

"여길 봐. 네 허벅지."

툭툭. 칼끝으로 허벅지를 두드린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덜덜 떨리면서도 억지로 주먹을 쥐고 시선만 내렸다. 동그랗게 파열된 상처에서 솟아오르는 피가 확연히 줄어든다. 안쪽에서부터 살이 차오르고, 이내 상흔 하나 안 남기고 사라졌다. 그럼에도 허벅지를 관통한 작열통은 여전했다. 공태성은 믿기지 않는 듯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남자는 손을 쳐내고 옷을 털었다. 공태성에게 잡혔던 부분이 빨갛게 젖어있었다.

"불사자가 된 걸 환영한다. 나는 성준수고 쟤는 전영중."

목소리에 퍼뜩 정신 차린 것처럼 고개를 들고, 성준수의 턱짓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문을 전부 열고 피범벅이 된 내부를 자랑하는 차에 걸터앉아 소음기 끝으로 턱을 긁던 전영중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대로 턱 밑에 총구를 두고, 푹! 그나마 멀쩡했던 뒷자석마저 두개골에서 튀어나온 것들로 범벅이 되고, 머리가 반쯤 날아간 몸이 넘어갔다.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성준수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씹새끼랑 병신새끼라고 불러도 되고."

그 자리에서 경악한 건 공태성 뿐이었다. 이윽고 전영중이 피가 좀 묻었을 뿐인 멀끔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공태성은 입을 떡 벌린 멍청한 표정 그대로 성준수를 보았다. 댁도? 말 없는 물음에 성준수는 피곤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없는 애 그만 괴롭히고 데리고 들어와라."

그리고 제3자의 등장. 컨테이너 문에 기대선 남자가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성준수를 보자 고개를 젓는다. 쟤는 아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죽었다 살아나 허벅지가 뚫리면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묻고 싶었으나 부활이라는 희귀한 경험을 두고 조언을 구할 데는 눈앞의 씹새끼와 병신새끼뿐이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다. 정신 차리자마자 파악해야 했는데 성준수부터 노리느라 순서가 바뀌었다. 좋은 말로 집중력이 좋고, 나쁜 말로 시야가 좁다는 공태성의 평가는 이번엔 나쁜 쪽으로 작동했다.

컨테이너에 넓게 둘러싸인 부지 멀리서 육중한 기계음과 갈매기 울음이 들렸다. 바닷가... 컨테이너가 이렇게 많이 쌓여있어도 이상해 보이지 않으려면 아마 항구의 물류창고. 녹이 슨 것이나 시설을 보면 갑자기 만든 곳이 아닌 오래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보이나 해풍은 물건을 쉽게 부식시키니 확신할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며 두 사람을 따라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려는 공태성에게 물벼락이 쏟아졌다. 욕설을 짓씹으며 돌아보자 머리가 축축하게 젖은 병신새끼가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피 묻은 채로 사무실 들어가면 재유가 싫어해. 씻고 가, 후배."

그러더니 졸졸 물이 흘러나오는 호스 끝을 꾹 눌러 재차 쏘아댔다. 사납게 얼굴을 터는 모습에 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호스를 뺏어 들고 피가 끈적하게 엉겨 붙은 머리를 닦는다.

"내가 왜 그쪽 후배야?"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병신새끼는 나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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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읽는 꿀벌

    죽지 않아도 외상의 통증은 그대로인것 같은데 영중이가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의 머리를 총으로ㄷㄷ쏘는거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고 그동안 어떤 일 들을 해온걸까요..물론 즉사면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죽었다가 살아날지도 모르지만..장난처럼 가볍게 자살하는 장면이 더 인외스럽고 섬뜩해요 준수랑은 어떻게 세트가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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