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포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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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의 토요일, 이때쯤 되면 거리는 온통 호박과 거미, 으스스하기보다는 귀여운 유령 장식으로 꾸며지고 계피 사탕과 초콜릿의 달콤한 향으로 가득해진다. 어린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핼러윈에 뭘 입고 다닐지 떠들어댔으며 어른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그들도 무리 지어 만나기만 하면 어느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옷을 어떻게 입고 가야 한다던가, 아이
유독 맑은 날이었다. 말마따나 ‘푸른 하늘’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머리 위는 구름 하나 없이 청명했고, 그 아래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내리쬐는 햇빛을 조금이라도 피하고자 양산을 펼쳐 들거나 건물의 그림자를 쫓아 걸었다. 시기상 가을이라 불러야 할 때임에도 한낮은 아직 더웠다. 흰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양산을 손에 든 채 차분히 보도블록 위를 걷는 소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소다 스윗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정오가 지난 지금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장마 사흘째, 세상은 그야말로 물에 잠긴 것처럼 어둑하고 습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비는 다음 주까지 지속되어 내일도, 내일모레도 해가 뜰 일은 요원해 보였다. 비가 내려 야외 행동에 제한이 생기는 것은 좋지 않다.
렉스가 좋아하는 와인은 포도주치고도 도수가 제법 높았다. 오랜만에 마신다는 핑계로 절제하지 못해 2/3병가량을 마셔 버신 렉스는 취기에 흥이 올라 리처드의 추천대로 하우스 와인을 몇 잔 더 비웠고, 적당히 마시다 눈치껏 귀가하겠다는 처음의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취해버렸다. 리처드의 부축을 받아 겨우 기숙사로 돌아오니 제법 늦은 시각이었다. 부대의 일원이지만
도시에 돌아오고 나서도 렉스 코널은 한동안 바쁘게 지내야 했다. 상부에 제출할 대부분의 서류가 렉스의 중간 결재를 거쳐야만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건수를 잡은 각다귀처럼 달라붙는 리처드를 상대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델타-8의 리처드 하워드는 중앙 정부에서 파견한 인사로, 실전 경험이 많은 엘리트로서 대위 직급을 달고서도 남을 대할 때 소탈하
그는 입이 험했으며 손이 매웠고, 말을 듣지 않는 대원의 등을 내려치거나 옆구리를 찌르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예외라고는 오로지 팀장인 존 맥스웰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도 직급이 가장 높은 존이 일인자고 팀에 가장 오래 있었던 렉스가 그다음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어 대거리하지 않는 것에 불과했다. 과격한 언행으로 남을 휘어잡는 모습만 보면 어디 시정잡배 출
렉스와 닐의 냉전 아닌 일방적인 냉전은 2주를 채우기 전에 끝났다. 팀장과 ‘상담’한 바로 다음 날 아침, 드디어 감정의 변화 단계가 자책에서 분노로 넘어간 정비공이 머리끝까지 화난 것을 숨기지도 않은 채 식당을 나오던 워커의 멱살을 잡고 대련장에 들어가버린 것이다. 이후 거기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오후에 나타난 렉스 코널은 한결 풀린 얼굴을
“너희, 슬슬 화해하는 게 어떠냐.” 부드러운 나무 가구 색의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 두어 번 감춰지다 드러나길 잠시, 들은 체도 않고 홱 고개를 돌리자 말을 건 중년의 남성이 허허로이 웃었다. 서른 넘은 놈의 반항치고는 제법 깜찍했던 탓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대는 애먼 잔소리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기라도 한 건지 입을 꾹 다물고 공구함을
낮게 불어온 바람이 모래 먼지를 일으킨다. 실수로라도 숨을 들이켜 모래 알갱이를 씹어 삼키지 않도록, 어깨를 두르고 있던 낡은 천을 코 위까지 추켜올린 인영이 공구 상자의 뚜껑을 닫으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허공을 매개 삼아 기어가는 부연 물결이 흘러가는 방향을 가늠하는 것이다. 서쪽으로 향하는 바람은 저 사막의 방랑자가 갑자기 미쳐 날뛰며 발걸음을 돌리지
이웃집 스미스 씨의 정원에는 커다란 장미 나무가 자랐다.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빛의 탐스러운 꽃을 피워내는 넝쿨은 오랜 기간 거기서 지내왔음을 방증하듯 둥치가 작은 나무만 했고 크기는 담장 한쪽 모서리를 전부 뒤엎을 정도였다. 담벼락 안쪽에서 자라난 식물은 담을 넘고 바깥으로 뻗어나가 아래로 아래로 가지를 늘어뜨렸는데, 잔가지가 많아도 따로 관리 하지 않는
폭풍이 몰아친다. “—자정에는 미국 서부 전역을 허리케인이 휩쓸고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각 가정에서는….” “소다, 촛대 찾았어. 양초랑 같은 서랍에 넣어둘게?”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거기에 있었구나?” 식탁 앞에 앉아 한참 가위질 하는 것에 여념이 없던 소다 스윗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쌍둥이가 들고 온 것을 보았다. 언젠가 미리 사 둔, 은색으로
“소다.” 그는 익숙한 어조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다 스윗은, 형용할 수 없는 기시감에 눈을 깜빡였다. 거기엔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자신의 쌍둥이가 잿빛 양산을 펴 들어 얼굴을 가린 채 서 있었고 두 사람 사이로 불어온 낮은 바람이 너른 초원에 붉게 돋아난 잔디와 강아지풀 따위를 어루만지다가 흩어졌다. 하늘은 보랏빛이고 태양은 푸르다
쪼그려 앉은 소녀의 앞으로 너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클로버가 무리 지어 자라 있다. 발치부터 수평선 너머까지 뒤덮은 것이란 오직 클로버 뿐으로, 세 갈래로 난 잎을 가진 들풀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거대한 군락을 이룬 그 모습은 바람이 위를 훑고 지나갈 때면 차라리 소금물 대신 녹색 줄기를 잘라 가득 채운 바다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