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고양이한테 최종수 이름붙인 주찬양 (1)

그 길로 교문을 나섰다. 농구부의 대부분은 체육관에 있었기 때문에 종수의 뒤로는 더 인사할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 졸업식에서 2학년이 해야 할 일은 별것이 없었다. 졸업생과 사진 찍기, 축하한다고 인사 건네기…. 강물에 뜬 나뭇잎이라도 되는 양 유유히 흘러가던 사고가 정지한다. 얼빠진 탄식이 샜다.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쥐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구나. 늦은 깨달음에 걸음을 멈추고 종수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번진 풍경 어딘가에 불쑥 솟아있을 빨강 우산을 찾으려다, 그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어찌어찌 최세종의 차를 찾아 그 뒷좌석에 앉아있을 종수를 발견하고 급히 차창을 두드리는 제 모습을 상상한다. 차창이 내려간다. 빤한 시선을 마주한 상상 속의 주찬양이 변명처럼 입을 열었다. 졸업 축하한다는 말을 깜빡해서. 파르스름한 눈이 곱지 않게 그를 훑었다. 젖은 풍경 어드메를 헤매던 시선이 힘없이 떨어졌다. 끝. 누군가를 닮은 목소리가 작게 이죽댔다. 빗방울이 우산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잠깐 새 비가 굵어져 있었다. 꽃처럼 만개한 색색의 우산이 분주하게 눈앞을 오갔다. 너머로 올려다본 하늘에는 구름이 꽉 끼어있었다. 사위가 어둑해 시각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쉼 없이 약동하는 풍경의 가운데 그 하나만이 정체해 있었다. 태엽이 망가진 오르골처럼 멈춰있던 의식을 억지로 감았다. 체육관을 벗어날 무렵부터 젖어있던 운동화 위에 시선이 멎었다. 돌아가면 곧장 운동화를 빨아야지. 그리고… 뻗어나가지 못한 사고가 같은 곳을 돈다. 한 바퀴를 채 돌지 못한 것이 틱, 틱, 거슬리는 소음을 냈다.

습도 높은 바람에선 희미한 물비린내가 났다. 호흡할 적마다 흘러드는 습한 공기가 속을 어수선하게 했다. 긴 숨이 부옇게 흩어졌다. 우산을 쥔 손은 발갛게 얼어있었다. 목덜미를 파고드는 한기에 어깨가 움츠러졌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손가락 사이로 빳빳한 재질의 사진 두 장이 감긴다. 불그스레한 물그림자를 뒤집어쓴 종수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단호한 목소리가 이명처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할 말 있잖아. 실전만큼 빡빡한 연습경기도, 따로 채워야 할 훈련량도 없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것이, 금일 해야 할 일의 전부였을 것이다. 제대로 해내진 못했지만. 서늘한 날씨에 날숨이 연기처럼 번졌다. 그 모양을 멍하니 좇다, 하루가 끝났다는 걸 알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열 시 사십 육분. 날의 반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박대는 소리가 났다. 교복 밑단이 축축했다. 비쭉 드러난 발목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려 운동화를 젖게 했다. 노상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 북적거리던 버스 정류장은 전에 없이 한산했다. 큰 관심을 두지 않고 텅 빈 벤치를 지나쳤다. 택시 두 대가 빠른 속도로 도로를 가로질렀다. 고르지 못한 노면에 고여있던 빗물이 물보라가 되어 튀어 올랐다. 도로에서 먼 쪽으로 몸을 피하려다 우두커니 자리에 섰다. 장도 중학교의 학생으로 3년, 장도 고등학교의 학생으로 2년. 총 5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는 한 번도 걸어서 학교에 오간 적이 없었다. 그럴 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비가 오는 날이라면 더 그랬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생각을 하긴 했는지. 문득 들여다본 머릿속은 곤죽이 되어 있었다. 잘근 씹어 문 입술을 비집는 숨이 짧고 거칠어 어떤 문장처럼 들렸다. 졸업. 축하드려요. 어디선가 비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빛이 들지 않는 골목 어귀에 우산을 든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별 망설임도 없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호기심이나 정의감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었다. 일련의 행위는 충동에 무게가 실려있었다. 저답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이것도, 저것도.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고양이는 가장 짙은 그림자가 내린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까맣고 긴 털이 아무렇게나 엉켜 있었다. 다친 곳이 있는지 몰려든 사람을 보고서도 몸을 피하지 못한 고양이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드러냈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구매했을 습식 캔을 그림자 안으로 밀던 아이가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숨죽인 채 집중하던 아이들이 덩달아 비명을 질렀다. 큰소리에 놀란 고양이가 위협적으로 몸을 부풀렸다. 뒷걸음질 치던 아이의 몸이 휘청했다. 무릎을 굽힌 찬양이 반사적으로 아이의 몸을 받쳤다. 노란 우산이 바닥을 구른다. 꼭지에 커다란 개구리 캐릭터가 달린 것이었다. 넘어질 뻔했던 아이가 꾸벅 허리를 숙이고 우산을 집었다. 한 걸음 뒤에서 시선을 주고받던 아이 중 하나가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고양이가 아픈 것 같아요. 대답할 거리가 마땅치 않아 궁색하게 우산을 기울였다. 아이들의 눈에야 훌쩍하게 큰 소년이 어른으로 보였을지 모르겠다만, 그때의 찬양은 고작 열여덟이었다. 무언가를 책임지기에 터무니없이 어린 나이라는 점에서 그와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은 다를 게 없었다. 어떠한 바람을 담은, 앳되고 무구한 시선들. 그를 피해 기울인 우산이 시야를 좁게 했다. 그러다 그림자 아래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노랗게 가려진 풍경의 구석, 회백색 하늘을 비춘 눈은 폭풍이 이는 날의 하늘처럼 채도가 낮았다. 깜빡깜빡. 느리게 일렁이는 눈동자가 무언가를 연상케 했다. 찬양은 노란 개구리 우산을 들고 있던 아이에게 우산의 손잡이를 내밀었다. 잠깐 가지고 있어 줄래. 작은 머리가 힘차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우산을 받아드는 아이의 얼굴에는 어떠한 사명감마저 깃들어 있었다. 그럴 정도의 일은 아닌데. 애초에 고양이를 책임질 사람이 나타나리란 확신도 없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문장들을 삼킨다. 기껏 예닐곱이나 먹었을 아이들을 붙잡고 나눌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말없이 무릎을 편 다음 골목의 그림자 깊숙이 몸을 밀어 넣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양이에게선 큰 반항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패딩의 소매를 길게 빼 손을 감추고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품에 넣은 몸이 차가웠다. 고양이의 평균 체온이 인간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맡겨두었던 우산을 받아 곧장 도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택시를 부를 손이 부족해 우산을 어깨에 걸치는 찰나였다. 허리께에서 튀어나온 손이 열심히도 흔들렸다. 택시 아저씨, 여기요. 다급함이 느껴지는 외침. 택시는 금세 잡혔다. 한 손으로 우산을 접었다. 쏟아진 빗물이 와르르 머리를 적셨다. 젖은 머리를 털어낼 겨를도 없이 뒷좌석으로 몸을 실었다. 오빠, 고양이 안 아프게 해줄 거예요? 그것이 제 소관 밖의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힌다. 택시가 야트막하게 젖은 도로를 가로질렀다.

날이 궂은 탓일까. 병원은 무척 한산했다. 문을 열고 곧장 로비를 가로질렀다. 접수처에 앉아있던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다란 남학생이 흠뻑 젖은 채 나타난 탓이었겠으나 당장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놀란 얼굴에 더럭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가 품속 깊이 넣어둔 고양이를 볼 수 있을 턱이 없는데. 고양이가 많이 다친 것 같아서…. 입 밖으로 나는 목소리는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패딩 안쪽에선 내내 앓는 소리가 났다. 정신이 없어 입었던 패딩째 고양이를 건넸다. 당황하는가 싶던 간호사가 패딩을 들고 안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털썩 의자에 앉았다. 내리는 비를 죄 뒤집어쓴 교복이 축축했다. 그제야 우산이 없다는 걸 알았다. 어디에 두고 내렸더라. 힘 빠진 고개를 기울이자 반질반질한 바닥으로 물이 떨어졌다. 전신에 눅눅한 피로가 스몄다. 우스운 일이었다. 한 일이라곤 학교에 가서 졸업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고양이를 구조한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이동에는 택시를 이용했다. 피로를 느낄 만한 활동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릴없이 앉아 종일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하루가 단출하여 되짚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사를 나눈 졸업생들의 얼굴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사라지길 반복했다. 승대와 종수는 졸업식 직전까지 분위기가 서먹했다. 종수가 체육관을 벗어나 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덕분에 찬양은 둘 사이 거북한 신경전을 피할 수 있었고…….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자꾸만 몸이 늘어졌다. 어디든 좋으니 쓰러져 잠들고 싶었다. 의식이 가물가물 멀어질 즈음,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고양이를 안은 채 사라졌던 간호사가 보송보송하게 마른 수건을 들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하자 간호사가 고개를 기울였다. 학생, 많이 젖었는데요? 제가, 마무리되지 못한 문장이 혓바닥 아래로 뭉그러졌다. 삼켜낸 문장이 속을 들쑤셨다.

제가, 운동을 해서요.

얕은 웅덩이를 밟은 정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웃을 이야기였다. 교복을 입는 날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일 년의 대부분, 하루의 반 이상은 유니폼을 입은 채 생활했다. 땀에 젖은 옷가지를 찝찝하게 여긴 것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히는 날이 있었다. 눈썹 아래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농구가 실내운동이라는 사실에 마음속 깊은 감사를 표하게 되던 어느 여름. 습도 높은 열기가 들어찬 체육관에는 땀 냄새가 가득했다. 여름날 뙤약볕을 흡수하는 까만 유니폼을 걸친 시커먼 사내놈들이 여기저기 늘어져 숨을 헐떡였다. 한 번에 물병의 반을 비운 승대가 감기듯 몸에 붙는 유니폼 자락을 펄럭이며 진저리를 쳤다. 수민은 일찌감치 바닥에 드러누웠고, 체력 분배가 좋아 쉽게 지치는 일이 없는 규는 드물게 말이 없었다. 평소와 같은 건 찬양 하나뿐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엔 그랬다. 저 정도면 그냥 감각이 없는 거 아니야? 황당하단 듯 내뱉은 승대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반박하는 대신 승대의 곁으로 가 머리를 털었다. 머리 위로 후둑 떨어지는 땀방울에 승대가 악, 소리를 질렀다. 으악, 꺼져, 꺼지라고! 규, 얘 좀 어떻게 해봐. 주찬양 이거 또라이 아니야?!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던 규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릴 생각 같은 건 눈곱만치도 없어 보였다. 유치한 장난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찬양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장난이 장난이 아니게 될 지점이 어디인지도 잘 알았다. 유니폼을 끌어 땀이 흐르는 목덜미를 아무렇게나 문지르다 뒤늦게 타올의 존재를 떠올렸다. 잘 마른 타올을 쌓아둔 의자 곁에 종수가 있었다. 하얀 타올에 얼굴을 묻은 채였다. 평소엔 볼 일이 없던 정수리가 저만치 아래 있었다. 높고 좁은 창을 통과한 햇빛이 잘 짜인 등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젖은 머리칼에 아슬아슬 매달린 땀방울이 희게 반짝였다. 더운 호흡을 타고 흔들리던 것이 떨어지면 찬양의 시선도 그를 따라 아래로 흘렀다. 열에 붉어진 목덜미를 가만 내려보다, 허리를 숙이고 그 목덜미에 팔랑팔랑 손을 흔들었다. 수건에 파묻혔던 얼굴이 위를 향했다. 시선이 맞닿았다. 목덜미 근처에서 한들대는 손을 바라보던 종수가 다시 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찬양은 손부채질을 멈췄다. 야. 수건에 막힌 목소리가 더디게 따라붙었다. 흰 볕이 까만 유니폼을 물들이는 것을 바라보며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더워. 익숙한 요구에 그의 뒤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크게 오르내리는 등으로 그림자가 졌다. 그 양을 물끄러미 보다, 달아오른 목덜미에 대고 손을 한들댔다. 등허리로 나절의 볕이 쏟아졌다. 덥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자리를 옮기지는 않았다. 땀에 젖은 유니폼이 축축 늘어졌다. 신경이 쓰이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손을 위아래로 휘적대며 땀에 젖은 유니폼이 거슬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던가 고민하다 문득, 스치듯 마주한 눈동자를 떠올렸다. 늘상 어지럽고, 또 한없이 고요하던 그 눈동자.

턱하고 숨이 막혀왔다. 주찬양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주전으로 발탁된 이래 단 한 번도 축축한 옷가지를 불편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무딘 성격 덕이었다. 멍청하게 뜬 눈이 푹 젖은 운동화에 가 멎었다. 시기 늦은 의문이 치밀었다. 정말 그랬나? 혹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서는 아니었나……. 악다문 입술 사이로 성마른 신음이 샜다. 조각조각 흩어져있던 기억이 모여 어떤 형태를 이루었다. 속이 덜컹거렸다. 아, 내가 당신을 좋아했구나.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구나. 헤어지는 게 싫었던 거다. 그래서 젖은 운동화 따위의 핑계를 대가며 돌아가려 했고. 그러다 오늘이 지나면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젖은 발을 끌고 그 앞에 선 이유였다. 졸업 축하드려요. 잘 가요. 잘 가요, 선배. 안녕을 고하고 싶지 않아 황당한 말들을 주워섬겨가며 헤어짐을 미루고자 했다. 주찬양 답지 않은 짓이었다. 불합리하고, 소모적인. 불현듯 할 말이 있지 않냐 다그치던 목소리를 떠올린다. 종수가 기다린 건 그가 외면한 인사였을까, 인사가 아닌 무언가였을까.

눈가가 시큰했다. 젖은 손으로 얼굴을 덮자 간호사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크게 다친 건 아니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녀는 찬양이 주워온 고양이를 걱정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길고양이 같은데 입양처는 알아봤어요? 찬양이 고개를 들었다. 투명한 눈동자가 잔상처럼 떠올랐다. 유리알 같은, 채도가 낮은 푸른 눈. 벌어진 입술 사이로 충동적인 대꾸가 샜다. 그리고 그건 전하지 못한 고백을 닮아 있었다. 제가 키우고 싶어서요….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졸업식에 다녀오는 길에 고양이를 주웠다. 병원에 왔는데 치료비가 얼마가 나오더라. 어떤 감정의 서술도 없이 담담하게 있었던 일만을 늘어놓다, 머뭇머뭇 한 마디를 보탰다. 눈이 파랗고, 정말 예쁜 고양이에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어머니가 병원의 위치를 물었다. 통화가 끝나고 십 수분이 흐른 뒤, 익숙한 목소리가 찬양을 불렀다. 별다른 질문도 없이 등을 토닥인 어머니는 곧 치료 중이라는 고양이를 찾았다. 간호사가 길을 안내했다. 찬양은 느린 걸음으로 둘의 뒤를 따랐다. 차가운 수술대에 예의 고양이가 있었다. 오래 길을 헤맨 탓에 긴 털이 지저분하게 엉킨, 더럽고 여윈 고양이가. 진정제를 투여했는지 얌전히 눈을 깜빡이는 모양이 유순해 보였다. 고양이를 내려다보던 찬양의 어머니가 무릎을 굽혔다. 긴장감에 힘껏 말아쥔 손가락 마디가 욱신댔다. 꾀죄죄한 고양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정말 예쁘네. 그게 다였다. 찬양은 무사히 고양이를 입양했다. 싱거운 결말이었다.

언젠가, 왜 그렇게 간단히 고양이의 입양을 허락해주셨느냐 물은 적이 있다. 때마침 무릎 위에 올라앉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던 어머니가 선선한 투로 답했다. 찬양이 네가 평소에 뭔가를 부탁하는 아이는 아니지 않니.

어린 찬양은 유난할 만큼 조용한 아이였다. 욕심이 없었고, 무언가를 고집하는 일도 드물었다. 친척들은 그가 아주 어릴 적부터 요구가 적은 아이였다고 했다. 누군가 그러기를 종용한 건 아니었다. 그건 그냥 찬양의 천성이었다. 안된다면 그냥 그런 줄 알았단다.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쭉. 중학생이 되고 어느 날, 찬양이 말했다. 농구가 하고 싶다고. 양친은 곧장 그 말을 이해했다. 그건 농구를 취미로 즐기고 싶어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찬양은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공부도 잘했고 성적도 좋았다. 쉽게 결정을 내릴 일은 아니었다. 생각을 더 해보자는 말에 어린 찬양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리곤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농구부에 들어갔다. 일을 알게 된 건 찬양이 농구부에 들어가고도 2주가 흐른 뒤였다. 놀란 건 그의 부모님뿐만이 아니었다. 감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워낙 말을 잘 듣고 얌전한 학생이라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다는 거짓말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고. 어머니는 그를 다그치지 않았다. 농구공을 안고 선 아들의 고집스런 얼굴에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 중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사고 한 번 안치고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착한 아들이 처음으로 바란 일이 농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라니. 그거 하나 들어주는 게 뭐 어려운 일인가 싶었단다. 다행히 찬양은 농구에 재능이 있었다. 운동부에도 곧잘 적응했다. 했던 염려가 무색할 정도였다. 무던한 성미와 끈기 덕에 큰 문제 없이 장도 고등학교 농구부로 진학한 찬양은 다음 해 유일한 2학년 주전이 되었다. 농구를 시작하고 5년. 어머니는 버려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농구를 하고 싶다고 말하던 열네 살의 아들을 보았다고 했다. 안 된다는 말에는 의미가 없었다. 허락도 없이 농구부에 들어간 그날처럼, 또 몰래 고양이를 거두겠거니. 그래서 그러자 했다고.

다행히 고양이는 영리하고 예뻤다.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해 입원 기간 내도록 보았을 의사와 간호사의 손길조차 거부하며 이를 드러내더란 이야기가 거짓말 같았다. 퇴원 수속을 밟던 날, 걱정스러운 투로 고양이의 예민한 성격에 대해 설명하던 의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모난 회복실의 작은 유리문 너머 찬양과 그의 어머니를 발견한 고양이가 몸을 일으켰다. 날 선 눈으로 의사를 살피던 고양이가 몸을 돌려 찬양이 있는 방향의 유리문에 약하게 이마를 부딪쳐왔다. 그 모습에 의사가 문을 열었다. 찬양이 손을 뻗었다. 찬양의 품에 안긴 고양이가 온순하게 이마를 비볐다. 의사는 저를 구해준 사람을 아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회복을 마치고 이 년여. ‘종수’는 버려져 길을 헤매던 시절과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고 곱슬곱슬한 털에서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엷은 회색이 도는 푸른 눈이 보석처럼 예뻤다. 모델 고양이 같다. ‘종수’를 본 대부분이 그렇게 말했다. 아들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들였던 작은 가족은 이제 그녀의 자랑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훌쩍하게 자란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던 손이 느려져 있었다. 농구를 허락했을 때도, 고양이를 들일 때도, 그녀는 큰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농구를 정말 하고 싶었구나. 고양이를 정말 키우고 싶었구나. 그게 다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아들에게 궁금했던 건 하나뿐이다.

“근데 아들, ‘종수’ 이름은 왜 종수라고 지었니? 종수라면… 너 고등학교 다닐 때 한 학년 위에 있던 걔 아니니? 왜, 농구 잘하고 잘생긴……,”

돌연한 질문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 찬양이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그녀의 질문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무릎에 앉아있던 ‘종수’가 제 이름이 들릴 적마다 높은 대답을 반복한 탓이었다. 찬양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학교 가까이 지낼 곳도 구했으니까 종수는 당분간 제가 데리고 있으려고요.”

그녀가 서운한 기색으로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운동하느라 바쁠 텐데, 종수가 외로우면 어쩌니?”

찬양은 대답 대신 손을 뻗었다. 어머니의 품에 있던 ‘종수’가 냉큼 뛰어올라 안겼다.

“꼬박꼬박 집에 들어갈 거에요.” 어쩐지 변명처럼 들리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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