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Wish (3)

2차 창고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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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입을 맞춘 뒤, 아스타리온이 뒤로 물러나자 타브가 다시 한번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또 키스한다. 입술을 맞댄 채로 웃는 것인지, 타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슨 속셈인가 타브는 입을 뗄 줄 몰랐으나, 절 끌어안고 있는 아스타리온의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항복 선언을 한 것도 타브였다.

  “그러게 왜 숨도 안 쉬는 사람한테 숨 참는 거로 승부를 건담? 그리고 매번 키스할 때마다 그렇게 입으로만 숨을 쉴 거야? 달링, 키스 정말 안 는다.” 아스타리온이 키득키득 웃으며 타브를 놀렸다.

  “당신이 숨 안 쉬는 걸 잊어버린 것뿐이야.” 타브가 숨을 몰아쉬고는 그를 슬쩍 흘겨봤다.

  “처음엔 버릇처럼 쉬긴 했지만, 200년이나 지나면 생전 습관은 안 남지 아무래도.”

 아스타리온이 저와 나란히 눕자, 타브가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묻는다.

  “심장도 뛰지 않고?”

  “자기는, 이럴 때면 꼭 어린애 같아.” 아스타리온이 타브의 볼을 손등으로 어루만졌다. “눈동자에 호기심으로 충만해서는, 어떻게 여태 그 따분한 곳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거야?”

  “반대야. 그런 곳에 있었으니까 지금 모든 게 궁금하고 신기한 거지.”

  “그거 말 되네.”

  타브가 아스타리온의 팔을 베고 누워, 둘은 잠시 말없이 하늘에 뜬 별을 쳐다본다. 그러다가 아스타리온이 가로누워 타브를 쳐다본다.

  “궁금증이 채워지면?”

  “응?”

  “있잖아, 자기도 대답해 봐. 달링, 나는 네게 어떤 의미야?”

  “첫사랑.”

  타브가 즉답했다. 그러자 아스타리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봤다가 배를 잡고 깔깔거리고 웃는다.

  “앗, 하하, 핫하하, 아하하하하.” 거의 타샤의 끔찍한 웃음에 걸린 것처럼 웃다가 일어나 앉은 아스타리온이 눈물을 훔쳤다. “내가 옛날 옛적 어설프던 시절에 쓰던 작업멘트를 돌려받을 줄은 몰랐는걸.” 그리고 그렇게 눈가를 닦다가 타브의 얼굴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는 걸 깨닫는다. 오히려 조금 심기가 불편한 듯한 얼굴이었으나, 아스타리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에게 물음표를 쏟았다. “진짜? 첫사랑? 내가? 너의? 그동안 뭐하고?”

  “보육원, 도서관, 사원,” 타브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었다. “엄청나게 따분한 곳에 처박혀 책이나 읽고 살았지. 누구 씨가 말한 것처럼.” 타브가 어절마다 뚝뚝 끊어가며 힘주어 대답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타브의 연인은 꽤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올라가 송곳니가 슬쩍 보일 지경이다. 그 웃는 얼굴에 타브가 금세 풀어졌으나 아직은 토라진 것처럼 뚱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나 아직 말하는 도중인데, 그다음은 들을 필요 없는 거지?”

  “그럴 리가, 달링. 나 언제나 자기 말에 귀 기울이고 있거든?”

  “아닌 것 같은데.”

  “이 귀여운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전부 다 음악 같은걸.”

  아스타리온이 달래려는 듯, 타브의 입술에 난 흉터에 가볍게 뽀뽀했다. 흥, 타브가 콧방귀를 뀌었으나, 그마저도 전부 다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저를 보기에, 비록 반쯤은 여전히 놀리는 것 같아도, 결국 타브는 못 이긴 척 말을 잇는다.

  “당신은 말이야, 내 약점이야.”

  타브의 말에 아스타리온이 몸을 배배 틀었다. “내가 남을 꾀어낼 때 하는 말들을 자기한테서 들으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동시에 강점이고.”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계속해 봐. 간지럽고 좋네.”

  “그러니까, 나도 모르고 있던 나를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그러자 아스타리온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실망스러운 일면이라면?”

  “내게? 아니면 당신에게.”

  수도승 같은 문답을 유독 좋아하는 타브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떠오르며 표정이 다채로워졌다. 타브가 의문형에 의문형을 돌려주자, 아스타리온의 표정도 한층 더 복잡해진다. 그러다가 조금은 자신 없는 얼굴로 답한다. “내가 실망스러우면 화낼 거야. 싫으면 거절할 거고.”

  “그래? 그러면 나는 내 실망스러운 점을 발견하면 수용해야지.”

  “끝이야?”

  “하지만, 당신이 화를 내거나 싫어하지 않았다면 괜찮은 거잖아.”

  “흐음.”

  “흐음? 정답이 아니었나 보네? 그럼 내가 뭐라고 말 해야 하는 거지?”

  “뭐라고 말할 거야?”

  “‘날 미워하지 말아줘, 달링?’” 타브가 아스타리온의 말투를 흉내 낸다.

  “귀엽네. 마음에 들어.” 그러나 턱을 괸 아스타리온의 표정은 여전히 조금 시무룩하다. “그럼 반대는? 반대는 어때.”

  “‘당신에게 실망하지 않을 거야, 달링.’” 타브가 계속해서 아스타리온의 말투를 흉내 내며 그의 이마에 입 맞췄다. “설령 날 상처 준다고 해도.”

  “그건 거짓말이야.” 아스타리온이 제 콧등에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을 기다렸다가 가볍게 입 맞춘다. “불가능한 일이거든, 달링.”

  “정말이야, 아스타리온.” 타브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다가 이내 장난스럽게 웃으며 덧붙인다. 농담처럼, 가볍게. “난 당신을 거절하는 방법을 모르거든.”

 ‘나는 당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방법을 몰라,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이 구해.’

 타브의 한 마디를 끝으로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뒤죽박죽 뒤섞인 것 같으면서도 하나로 이어지는 길고 긴 꿈을. 어렴풋하게 그것이 네더브레인에게 통제당하던 동안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도무지 현실 같이 느껴지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금세 별 게 아니게 됐다. 저 자신이 왜 통제에서 벗어난 지 알았기 때문에. 이건 또 정말, 너무 기뻐서 웃음을 참을래야 참을 수 없다. 제 것이란 게 믿어지지 않는 힘이 제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넘쳐흐르는 감각이란. 꼭 날 때부터 지니고 태어난 것처럼 그 힘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에 소름이 끼쳐서 아스타리온이 몸서리쳤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200년 동안 그 똥통에서 구른 보상이 되지. 의식을 갓 치렀을 때와 차원이 다른, 용솟음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 테지. 아무 주문도 없이 그는 생각만으로 안개가 되었다가 안개를 퍼뜨리기도 하고, 박쥐가 되어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거기서 그대로 비를 내리고, 땅으로 내려와 늑대로 변해서 제가 만든 작고 작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햇빛에 털을 말리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이 축복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그런 건 시작에 불과했다. 부스럭부스럭,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했는데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던 아스타리온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건, 제 의식이 없을 때 네더브레인이 멋대로 만들어낸 제 노예들이었다. 창조주로서 피조물이 감히 저에게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았다. 아스타리온이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한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난 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동전을 던져 앞이 나오면 살렸고, 뒤가 나오면 죽였다. 그렇게 4명의 뱀파이어 수족이 남았다.

 “수족이니까, 넷이지.”

 특유의 비음 섞인 웃음을 웃으며, 아스타리온이 초월체가 된 이래 처음으로 거울 앞에 섰다.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날카로운 눈매와 구불구불하고 풍성한 머리카락, 잘 뻗은 코, 그리고 너무 각지지도 그렇다고 너무 약해 보이지도 않는 턱. 웃으면 유독 얇아지는 입술. 아스타리온은 고개를 돌려가며 한참 동안 제 얼굴을 관찰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은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어서. 이런 얼굴이었나. 한동안 보고만 있던 아스타리온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졌다. 그러자 이번엔 촉감이 다른 것을 알았다. 온기가 돌아 따뜻한 피부는 처음엔 위화감이 들었으나, 곧 당연한 것이 된다.

 아스타리온이 다음에 즐긴 것은 음식이었다. 비린내 나는 피가 아닌 제대로 된 음식. 송곳니를 박아 넣기 위해 무는 게 아니라, 목구멍으로 넘기기 위해서 씹을 수 있는, 고체로 된 음식. 200여 년 만에 먹는 음식은, 지성체의 피를 처음 마셨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황홀경을 선사한다. 입안 가득 달콤하고 새콤한 과즙이 터지는 과일, 아삭아삭하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는 채소, 야만인처럼 날것으로 먹지 않아도 되는 고기, 생선, 그리고 다양한 향만큼이나 다채로운 맛이 나는 술까지. 재료 그것만으로도 썩 만족스러웠으나, 그것을 조합하고 조리하여 먹는다는 사치를 다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글쎄 꽤 오래 그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런 사치와 타락을 즐기기 위한 재산의 축적은 어렵지 않았다. 적당히 매혹하여 제 것으로 만든 후에 모든 재산을 제게 넘기게 하고, 그다음은 뭐, 수하로 만들어서 수발을 들게 하거나 광신도로 남겨두거나. 문제는 그 자극들도 결국을 시간이 흐르면 질린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계속해서 자극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래 살았던 뱀파이어들이 죄다 이상한 방향으로 미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카사도어가 왜 자길 그렇게 괴롭혔는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광신도가 영생으로의 가능성에 미쳐가는 것을 관망하거나, 아니면 뱀파이어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을 관전하거나. 이게 개중에는 가장 오래도록 그를 즐겁게 해 준 유희 거리였다. 하지만 이 또한 조금씩 지루해졌다.

 그래서 아스타리온이 마지막으로 공을 들인 놀이는 배우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이며, 제게 거역하지 않고, 맹목적인 사랑을 쏟아부으며, 무엇보다 끊임없이 저에게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존재. 외모를 충족시키는 건 가장 쉬웠다. 노예가 주인에게 거역하지 않는 것? 그런 건 상대에게 숨 쉬는 것과 같다. 비록 더는 숨을 쉬지 않는 몸이 되었지만, 그러니까 비유적으로 말이다. 맹목적인 사랑, 그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달랐다. 대부분은 주인을 향한 판에 박힌 경배였다. 일부는 공포에서 오는 달콤한 복종. 그리고 극히 일부는 자포로부터 오기에 특히 농밀한 자기 파괴적 욕정. 누구 하나 1년을 가지 못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아스타리온은 비로소 그 여자를 떠올렸다. 제가 버린 것, 아니, 제가 갖지 못한 것. 그 여자는 마지막 순간에도 저에게 말했다. 아스타리온은 콧방귀를 뀌었다. 새빨간 거짓말쟁이. 그러나 제가 갖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스타리온은 그것을 소유하기로 한다. 시간을 되돌려서.

 그러나 뱀파이어 초월체가 가진 권능으로도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허나, 시간은 무한하므로 아스타리온은 시간을 들여 위브를 탐구하는 쪽을 택했다. 파고들 목표가 생기자, 무료함은 사라지고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드디어 위브를 어떻게 구성해야 소원을 빌 수 있는지 깨달았다. 이름하여, 소원. 이미 많은 시간을 이 주문을 익히는 데 소모했으므로, 아스타리온은 더 주저하지 않고 준비한 주문을 외쳤다.

 “Rituale Ascensionis redire volumus.”

 네더브레인에게 지배당하던 그 순간처럼 잠시 정신이 아득해져서, 의식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며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기체로 몸을 변화시켜 보았으나,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불가능했다는 듯한 거북함이 들었다. 이번에는 정신은 깨어있는데 육체의 제어권을 너무 오랜만에 뺏긴 탓에 당황한 아스타리온이 몸을 비틀자, 엄청난 힘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순간 제 눈이 번뜩 뜨였고, 눈을 뜨기가 무섭게 곧바로 목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이것이 뭔지 안다. 아주 오래전 느껴본 고통과 불쾌함. 뱀파이어가 제 피를 빨고 있다.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자길 먹이로 삼을 기세였다. 아스타리온이 황급히 주문을 외웠다.

 “Impero tibi

 그러자 자길 물고 있던 그것이 맥없이 팩 쓰러졌다. 덕분에 목에 박힌 송곳니가 살을 찢어 급하게 치료 주문으로 틀어막아야 했다. 피는 금세 멎었으나 불필요한 실혈로 인해 빈혈을 일으킨 바람에 아스타리온이 재빨리 침대에 기대섰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리고 녀석의 옷소매를 찢어 손목을 꽁꽁 묶은 뒤, 몸을 돌렸다. 그건 너무나 잘 아는 얼굴이었다. 제 형제인 페트라스였으니까. 그가 왜 제 피를 빨았단 말인가. 아스타리온은 페트라스가 깨기 전에 다시 한번 수면 주문을 영창하고 방을 둘러봤다. 그곳은 카사도어에게 보내기 전 먹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접대용 방이었다. 아스타리온이 방안을 뒤져 무기로 쓸만한 것을 주머니에 챙겼다. 그리고 협탁 위에 놓인 물로 목을 축이다가, 어색함을 느낀다. 원래라면 입을 다물 때 혀에 걸려야 할 것이 없었다. 아스타리온이 손을 들어 제 송곳니를 만졌다. 그리고는 방구석에 걸려있는 거울 앞으로 뛰어간다. 더블릿 아래에 걸쳐 입었던 셔츠 목이 제가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그리고, 거울에 맺힌 상에 붉은색은 그것뿐이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자신도 무슨 색인지 잊어버린 그 눈동자를 한 저 자신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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