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와 아이렌의 미학 예찬

열두째 장

루크 헌트 드림

새삼스러운데 말이죠, 연예인이라는 건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정확하게 연예인뿐만이 아니라 이미지로 먹고사는 모든 직업이 제게는 아주 대단하게 보여요. 인플루언서라던가, 아나운서라던가, 그런 사람들 전부 다 말이죠.

자기 관리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나 건강을 유지하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런 식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직업에 필요한 전문 분야를 갈고 닦으니까요. 누군가는 스킨케어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고, 누군가는 법전을 외우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거잖아요? 이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는 거죠.

 

다른 게 아니라, 얼마 전 빌 선배가 제 생일이라고 립 제품을 하나 선물해 주셨거든요. 립 라커라고 하던가……. 저는 화장품은 잘 몰라서 폼피오레의 다른 동급생에게 설명을 들었는데, 그거 꽤 비싼 브랜드의 제품이라고 하더라고요. 뭐 이건 둘째치고, 어쨌든 빌 선배가 다 떨어지면 새로 사줄 테니 바르고 다니라고 해서 요즘 열심히 바르고 다녔는데, 언젠가부터 제가 쓰는 제품이랑 똑같은 걸 쓰는 애들이 하나둘씩 생기더라고요. 특히 폼피오레를 중심으로.

에펠은 ‘아이렌 군이 유행의 선도주자가 되었네.’라면서 웃어넘겼지만, 저는 별로 웃기지 않는다고요. 누가 절 따라 한다는 거,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당연히 시중에 파는 제품을 사서 쓰는 걸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뭐라고 할까, 누군가가 내 창작물도 아니고 나 자체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싫다고 해야 할까……. 듣자 하니 애초에 립 라커를 쓰는 학생 자체가 적었고, 보통은 립스틱을 제일 선호한다고 하던가? 그러던데, 갑자기 제품 노선 자체를 바꾸면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하잖아요?

뭐, 창작물을 베끼거나 하는 것보다는 100배 낫긴 하지만요. 입술 화장이야 다른 걸로 바꾸면 그만이지만, 누가 제 각본을 베낀다면 중원 한가운데 사과나무에 매달아서 불을 붙여버릴 거예요. (조크인 것 알죠? 조크에요. 아마도. 이 노트가 법정 증거로 쓰일 날이 없으면 좋겠네요.)

 

어쨌든. 저는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꼈기도 하고, 이런 걸 즐기고 오히려 유행의 중심에 서는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게 보이더라고요. 이목이 쏠린다는 건 꼭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누군가는 시기하고, 누군가는 질투하고, 심지어 과도한 환상을 품고 우상을 바라보다가 제 망상과 부합하지 않는 짓을 하면 과격하게 반응하는 신자까지 생기곤 하니까요. 그 모든 걸 그저 관심과 유명세 일부라 생각하고, 호의로 바라보는 이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며 넘길 수도 있겠지만……. 저는 누군지 모르는 이가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사진도 안 찍는 사람인 거 아시잖아요. 그래서, 문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창작물에 관심 가져 주는 건 굉장히 기쁘긴 하지만, 그건 제 생각과 사상들이라고 해도 한 번 ‘읽히기 위해’ 가공한 거잖아요? 오히려 그런 건 소비자와 소통이 되는 순간 완성되는 거라지만, 저는 작품이 아니니까요. 세상이 망하고 인간은 저만 남더라도 저는 완전히 저니까,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 싫다고 할까…….

 

쓰고 나니 이번에도 횡설수설하네요. 그래도 이런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고, 그중에서도 필담으로 이야기할 합법적 방법이 있는 분은 선배뿐이라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나 봐요. 이런 이야기가 부담스럽다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사람은 맞춰 가며 살아야 하고, 저에게 선배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니까 최대한 맞춰주고 싶거든요.

 


 

이런. 네가 이걸로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다시 립밤만 바르고 등교하길래 ‘신경 쓰이는 거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심각한 이야기를 적어 주었는데 이런 말 하긴 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역시 아이렌 군은 야생동물과 닮았구나. 너무나도 사냥꾼 같은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같이 기르는 동물이라면 보통 함께 사는 인간의 관심을 갈구하기 마련이지 않니? 언젠가 네가 보며 즐거워 한, ‘반려 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니터를 가로막는 고양이 영상’처럼 말이야. 하지만 너는 오히려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고, 인기척이 느껴지면 얼어붙는 것이 꼭 길들지 않은 들짐승 같다고 할까. 그야말로, 야생성이 살아있는 여우로구나. 후후.

 

어느 유명한 디자이너가 말하기를, ‘유행은 유행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게 만들어진다.’라고 했지. 네가 그 제품을 쓰는 그만두었고, 애초에 빌이 선물한 게 화제가 되어 시작된 유행이기도 하니까 곧 사그라들 거란다. 원래 우리 기숙사는 유행에 민감한 만큼, 트랜드가 자주 바뀌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결과적으로 네가 주목받게 되긴 했지만, 네 행동이 주목받은 게 아니니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지도 말고. 요즘 꾸벅꾸벅 졸던데, 혹 이 일로 마음 쓰고 있는 거라면 절대 걱정할 일 아니니 푹 자렴. 너의 섬세함과 예리함은 분명 득일 때도 있겠지만, 이럴 때는 자신을 갉아먹는 요소가 되는 것 같아 걱정이란다.

아이렌 군. 언젠가 한 말이지만, 나는 네가 긍지가 있어서 좋단다. 남에게 쉽게 아첨하지 않고,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이 있어도 약한 면은 보이지 않으려고 하지. 그러면서도 네가 사랑하는 것들에게는 헌신적이고, 모든 걸 털어놓지는 않더라도 거짓말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는. 그런 점이 좋단다.

하지만 말이야. 모든 걸 너 혼자 생각하고 책임지려는 건 미련한 짓이란다. 그 누구도 네가 모든 걸 짊어지고 불타길 바라지 않는단다. 너는 성인(聖人)도 제단 위의 양도 아니잖니. 나의 르나르. 가끔은 필요에 따라 비겁한 짓도 하고 이기적이고 잔인한 행동도 하며 살 줄은 알면서, 왜 더 편하고 인간적인…… 내 품에 기대는 법은 배우지 못한 건지 모르겠구나. 잡아서 가죽을 벗겨 걸어놓지 않을 테니, 편하게 기대도 된단다.

 

그리고 이건 진심인데. 이런 이야기는 부디 나에게만 해주렴. 내가 부담을 느낄 것 같다고 다른 이들에게 해주면 서운할 거 같구나. 오히려, 이 노트를 노릴 거 같은 사람이 아주 많은데 말이지. 후후. 너는 그럴싸하게 말하고 쓰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 감추고 싶은 건 죄다 숨기고 삼키지 않니. 나는 오히려 그런 걸 들을 수 있어서 좋단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 딱 좋은 관계이지 않니.

 

나중에 도서관 앞에서 보자꾸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 그리고 오늘 밤은 푹 자는 거야. 나랑 약속해 주렴, 몽 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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