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짐가 며느리가 누구야
카림 알아짐 드림
* 23년도 카림 생일 기념 글. 쟈밀렌 요소가...좀...많음()
* 카림 선배 생일 축하드립니다 선배의 미소가 너무 눈부셔서 저희 집 조명 다 껐어요.
사감의 생일을 맞이해 평소보다 더 떠들썩한 파티를 벌이는 중인 스카라비아 기숙사는 흥겨운 음악과 다정한 대화 소리가 넘쳐흘렀다.
기숙사생들과 다른 기숙사에서 온 손님들이 적당히 섞여 있는 파티장 안. 사람들 틈을 미꾸라지처럼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던 아이렌은 선물 상자들 사이에 앉아있는 카림에게 다가갔다.
“카림 선배, 바쁘세요?”
쟈밀과 마주 보고 앉아 편지를 읽고 있던 카림은 익숙한 목소리에 벌떡 고개를 들었다.
“아이렌! 어서 와, 바쁘진 않아!”
“다행이네요. 생일 축하드려요, 선배.”
아아. 부자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성격이 좋다 못해 NRC 최고의 보살이 아닐까 싶은 카림이라면 선물의 가치나 금액보다는 정성만 봐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렌은 그의 선물을 준비하느라 일주일 넘게 고민해야 했다.
선물이 든 작은 상자를 선물들 틈에 올려 둔 그는 슬쩍 상대가 읽고 있는 편지로 눈길을 돌렸다. 동글동글한 글씨가 인상적인 편지는 장수가 꽤 많았고, 그 사이에는 사진도 하나 끼어 있었다.
‘발신인 사진인가?’
사진에 찍혀있는 건 푸른 숲과 하늘이 조화롭게 아름다운 자연을 등진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제 또래 여자아이였다.
불타는 듯 새빨간 머리카락과 그 사이사이 들어간 푸른 브릿지. 바람에 흩날리는 숏컷이 퍽 잘 어울리는 소녀는 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앵무새 한 마리와 함께 카메라를 향해 브이 사인을 하고 있었다.
누구길래 생일 편지에 사진까지 넣어 보낸 걸까. 궁금한 건 답을 얻어야 속이 시원한 아이렌은 편지를 다 읽은 카림에게 물었다.
“누구예요?”
“이거? 으음, 그러니까 말이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평소라면 시원스럽게 대답해주었을 카림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기만 한다. 명백하게 의외인 반응에 놀란 아이렌은 곧바로 쟈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 꼴을 가만 지켜보던 그는 질렸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로 진실을 알려주었다.
“저 녀석 여자친구.”
“여자친구?”
“그래.”
“여자인 친구 말이에요, 애인을 말하는 거예요?”
“……후자.”
‘와!’ 오해의 소지가 없게 연거푸 질문한 아이렌은 사진과 카림을 번갈아 보았다. 멋쩍어하던 카림은 지나치게 놀란 후배의 모습을 보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어라, 내가 이사르 이야기한 적 없나?”
“사귀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는 몇 번 있긴 하지만, 얼굴은 처음 봐요!”
“그래? 하긴, 사진을 직접 보여 준 적은 없는 거 같네!”
편지는 봉투에 넣고 사진만 꺼낸 카림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아, 두 사람. 웃는 게 똑같구나.
사진 속 소녀와 카림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낸 아이렌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아직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어쩐지 카림과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 아짐가의 예비 며느리라니, 보통 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
묻고 싶은 건 많지만 그런 걸 전부 물어보는 건 사생활 침해일 것 같다. 제 사적 영역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타인의 사생활도 존중해 주고 싶은 아이렌은 차마 직접 묻진 못하고 어색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내적 갈등이 쟈밀의 눈에는 다 읽혔던 걸까. 한숨을 푹 내쉰 그가 보다 못해 조언했다.
“그냥 편하게 물어봐. 저 녀석은 애초에 신경 안 쓸걸.”
“……저, 무슨 생각하는지 표정에 다 드러나나요?”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긴 해.”
그렇게 티가 났다니. 민망해진 아이렌이 시선을 피했다.
둘의 대화를 다 들은 건지, 카림은 여자친구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선물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자진해서 제 연애사를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이국적인 자수가 수 놓인 실크 스카프는, 선물한 이의 눈동자를 닮은 벌꿀 색이었다.
“이사르는 말이지, 엄청 어른스럽고 야무지거든! 벌써 집안일을 돕는다고 하더라고!”
“그렇군요. 동갑인가요? 아니면 연상? 연하?”
“동갑이야! 아, 그리고 이사르도 마법사라서 말이지, 지금 코벤에 다니고 있어!”
“그 여학생만 받는 마법사 양성 학교요?”
아이렌은 언젠가 다른 선배들에게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코벤 유니버시티 칼리지. 고등교육 과정과 학위 수여 과정까지 포함해 7년제 과정을 거치는 마법사 양성 학교.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수많은 마녀가 거쳐갔다던 그 학교는, NRC이나 RSA만큼이나 이 세계에선 유명한 명문 여학교라고 했다.
‘꼭 명문대 학생끼리 사귀는 거 같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아이렌은 어느새 제 옆으로 다가온 쟈밀에게 몸을 기울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좋은 집안 아가씨인가 봐요. 카림 선배와 사귈 정도면, 분명 아짐 가에서도 인정하는…….”
“아니. 그 반대야.”
“예? 반대라뇨?”
“패럿베인 가는 그리 역사 있는 명문가도 아니고, 오히려 최근에 두각을 드러낸 가문이니까. 애초에 열사의 나라와 외국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장사를 하던 방랑 상인 가문이라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편이지.”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카림은 선물 받은 스카프를 이리 둘러보고 저리 묶어보기 바빴다.
눈에서 애틋함이 뚝뚝 떨어지는 카림을 보고 있자니 제가 말하는 사실이 다 현실감이 없어지는 것만 같은 쟈밀은,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게다가 아짐 가와 척진 상인들과 교류하거나 큰 가문은 눈치 보여서 할 수 없는 자잘한 편법을 자주 써서, 아짐 가에서 그리 좋게 보는 집안이 아니지.”
“……그런데 사귄다고요? 집안 어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당연히 집안에는 말 안 하고 사귀는 거지. 비밀로 하기 위해 가짜로 말싸움까지 할 정도니까.”
“그거 완전 로미오와 줄리엣이네요!”
‘그게 누구야?’ 아이렌이 외친 낯선 이름에 쟈밀이 작게 중얼거린다.
둘의 대화가 끊긴 사이, 얼핏 대화 내용을 부분부분 들었던 카림이 목에 스카프를 맨 채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랑 어머니는 다 눈치채신 거 같던데?”
“그 두 분만 눈치채셨겠냐. 아마 대부분 알고 있을걸. 너희가 필사적으로 사이 안 좋은 척 해봤자, 서로 기숙학교로 들어가 어른들 눈치 안 봐도 되게 되자마자 그렇게 편지하고 선물을 보내고 하는데?”
“그런가, 아하하!”
이건 낙천적인 걸까, 용감한 걸까. 비밀 연애가 비밀이 아니게 된 상황에서도 유쾌하게 웃는 카림의 미소가 눈부시다.
아마 자신을 다시 태어나야 저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으리라. 사람의 성격이란 그리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님을 아는 아이렌은 진심으로 오늘의 주인공을 부러워하며 쟈밀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일부러 모른 척해주는 거군요?”
“그래. 적어도 티는 안 내니까. 그리고 어차피 애들 장난 같은 감정이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고.”
사실은 자신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10살 남짓에 시작한 꼬맹이들의 연애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걸 보면 두 사람은 한 번도 서로를 장난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모양이다. 쟈밀은 카림보다는 현실적이지만 만만찮게 낭만과 낙천으로 똘똘 뭉친 이사르를 떠올리고 헛웃음 지었다.
“아니면 이참에 패럿베인가와 그를 중심으로 한 소상인들을 통합할 기회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대단히 정치적인 이유네요. 하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카림 선배님 부모님들은 엄청 좋은 분 같으시던데 그런 이유 외에도 장남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 주지 않을까요?”
“두 분은 좋은 분이긴 하지만, 아짐 가는 가주 부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
‘아하.’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아이렌이 묘한 표정으로 입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무슨 로맨스 판타지 속 귀족들 이야기나 현대 로맨스 재벌물 보는 거 같네.”
“뭐야, 그건?”
“소설 이야기예요. 쟈밀 선배는 장르 소설은 잘 안 보실 거 같으시니, 모르실 만도 하죠.”
‘그런데 의외로 재미있어요.’ ‘얼마 전 본 소설에선 말이죠.’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떠드는 아이렌은 퍽 즐거워 보였다. 그가 한 말대로 장르 소설을 읽진 않지만, 상대가 제 흥에 겨워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듣는 걸 좋아하는 쟈밀은 제비꽃색 눈동자를 빛내며 수다를 떠는 아이렌과 눈을 맞추었다.
희미한 미소를 짓고 후배를 응시하는 쟈밀. 평소엔 그리 제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쟈밀에게만은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아이렌. 과한 애정 표현 없이도 오가는 대화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열기를 감지한 카림은 괜히 연인의 사진을 한 번 더 꺼내 보았다.
“아, 이사르 보고 싶어.”
“아까 아침에도 통화했잖아.”
“그건 통화잖아! 나는 직접 보고 싶은걸!”
“다음 홀리데이 때 만나면 되잖아?”
자신들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쟈밀은 지극히 이성적인 대답만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옆에 있는 아이렌이 공감의 전문가라는 점일까. 생일인데 연인과 만날 수 없는 그의 아쉬움을 쉽게 이해한 아이렌은 진심으로 그에게 공감해주었다.
“장거리 연애는 역시 힘드네요.”
“근거리라고 다 편한 것도 아니지만.”
물론 이 와중에도 쟈밀은 냉정하게 현실적인 소리를 해, 아이렌이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소모하지 않도록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실책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쟈밀의 말속에 든 자잘한 가시를 눈치챈 아이렌은 얼굴을 더 가까이하고 물었다.
“그래요? 어떤 점이 불편하세요?”
“…….”
이놈의 계집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사실 불편한 거라면 한 트럭 말할 수 있지. 쓸데없이 경쟁자들의 수작을 봐야 한다던가, 그 경쟁자 중 누군가에게 칼을 맞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던가……. 한 30분 정도는 불편을 떠들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말할 타이밍이 아니지 않나.
난감해진 쟈밀이 붉어진 얼굴로 입을 닫자, 카림의 한탄이 들려왔다.
“두 사람 때문에 이사르가 더 보고 싶어졌어…….”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사이 좋아서 죄송해요.”
“아이렌, 넌 또 뭘 사과하고 있어?”
하여간 저 둘 때문에 제 수명이 10년 정도 줄어드는 것 같다. 쟈밀은 까르르 웃으며 거리를 두는 아이렌과 이사르의 사진을 쓰다듬는 카림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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