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백로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기도 하지만

서당 by 반야

 

열매달 이레

지훈이 소리 없이 누각으로 들어와 정한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그의 곁에 서서 입을 달싹였다. 정한은 가만히 지훈을 기다려 주었다. 급할 것도 없으니까.

“...원우랑 저....”

지훈이 할 말은 뻔했고.

“아, 어어.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지훈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정한이 고개를 거세게 끄덕이며 허락을 표했다.

지훈이 누각 문을 닫고 나간 후에, 지수가 병풍 뒤에서 슬그머니 나왔다.

“왜 숨어 있었어?”

“...비집고 들어가기 애매해서?”

헤실헤실 웃으며 정한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멀찍이 떠나는 두 현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애잔했다. 그래도 둘 다 덤덤하게 일러두고 나갔으니, 무슨 일 일어나지는 않겠지? 할 뿐이었다. 물론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마중 나가줄까? 원우는 못 따라가도 지훈이는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저기 친히 내려온 주작이 있네.”

“호오.... 알고 간 걸까? 지금 어디 가는지.”

“응. 근데,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할 것 같다.”

청룡과 백호는, 찬란한 날개를 펼치며 어두운 현무를 밝히는 주작을 보며 내심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지훈.”

서당의 출입문을 열려던 찰나 준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예 정복을 입은 준휘의 모습은 꽤 오랜만이었다.

“밖에 나가?”

“...어. 수업은 둘이 듣겠다.”

“어? 누구? 원우도 나가?”

“응. 이미 나갔을걸.”

아쉬워하는 준휘에게 왜 그러냐 묻자, 준휘는 지훈이 쓰고 있는 갓에 반투명한 모시 재질의 가림막을 쳐주었다. 뜬금없이 뭐하는 짓이냐 물으려 했지만 표정이 가려지는 느낌이 좋아서 따로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거 쓰고 나가. 마법을 걸어두었으니, 감투처럼 쓴다고 생각해.”

“이제 다 없어졌다던데...”

원우가 관할하던 지역에 갈 것이었기에 별 걱정을 하지 않고 나가려 했다. 모든 일을 끝내고 왔다고는 하였으나, 혹여나 역병의 기운이 남아있을까 싶어 서당의 문을 막아두긴 했다. 그 때문에 지훈이 일찍이 정한의 허락을 구하고 나가는 것이었고.

“아니야. 쓰고 나가. 안좋을거 없잖아.”

“...그래.”

친구가 저를 위해 좋은 걸 해주었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비뚤어진 갓을 고쳐 쓰고 서둘러 나가려고 하자 팔뚝을 붙잡아 다시 돌려세웠다.

“...준아, 미안한데 나,”

“알아. 이것만!”

지훈의 가림막 위에 옅은 자수를 새겨주었다. 마구 없이 이런 것들을 해주는 것을 보니, 어디선가 도술을 또 배워온 것 같았다. 언뜻 보니 붉은 색과 흰 색이 섞여 있었다. 새겨지고 나서 한 번 번쩍 하더니 스며들 듯 사라져 시야에 방해되지는 않았다.

“이게 뭐야?”

“내 꽃.”

“...?”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는데. 준휘는 다시 서당에 돌아오면 볼 수 있을텐데. 무언가에 의해 심장이 옥죄이는 기분이 들어 다급해졌다. 그럼에도, 애석하게도 발걸음은 떼어지질 않았다.

“...네, 꽃?”

“백일안개야!”

“그게 뭐야.”

“단단해. 절대 부서지지 않을 거야. 누가 너에게 해코지를 하려고 하면, 어떻게든 발동될 테니까.”

너무 오래잡았다. 미안. 조심히 다녀오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서당의 출입문 바로 앞에 서서 손을 흔드는 준휘에게 별 다른 인사를 할 정신조차 없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넓은 강 너머에서 떠오르는 달의 끝자락에. 그 끝자락에 핀 능소화를 보기 위해서. 서둘러야 했다. 바스락 떨어지는 낙엽을 짓밟으며 걸음을 옮겨나갔다.

 

천문학을 공부하는 생원들은 명륜당 지붕 위에 올라가 별을 관찰하는 것을 즐겨한다. 그 중 황룡인 생원들은 더 높은 누각에 올라 보기도 한다. 승철을 포함한 셋은 항상 현무 침소 지붕 위에 올라가 별을 보곤 했다. 그래야 명호가 함께할 수 있었다. 둘이 없어 심심할 명호를 위해, 이번에도 몰래 침소에서 빼내어 데리고 올라왔다. 승철이 가진 망원경은 두 개였다. 명호에게 선뜻 하나를 내어주니, 말없이 별만 보고 있었다.

“애들은 잘 갔으려나?”

“누구. 지훈이랑 원우?”

“...응. 오늘 안에 올 줄 알았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네.”

“생각이 많지 않을까? 한평생 함께 살아온 가족이 한순간에 떠나간다는 것이, 믿기 쉬운 일은 아니니까.”

명호는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럼에도 걱정은 되는지, 가끔 별을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어 그들에게로 옮기기도 했다. 지수는 그런 명호가 걱정만 한가득 끌어안게 될까 싶어 그를 다독이듯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아무런 사고도 발생하지 않고, 잘 끝내고 돌아올 테니까.”

“그러니까.”

“...!”

애타게 기다려왔던 목소리였다. 승철이 다급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야장의를 입은 준휘가 등불을 손에 쥐고 서 있었다. 타오름달 열이틀 이후 거의 한달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내 피해다녔는데,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니 다시 심장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주먹을 꾹 말아쥐고, 준휘의 눈만 빤히 보며 내려다 보고 있었다. 차마 입을 떼어내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있을 거야?”

정한이 승철을 툭 쳤다.

“....”

“사형.”

준휘가 싱긋 웃었다.

“내려오세요.”

“....”

“할 말이 있어요.”

“....”

솔직히, 눈을 맞추면 화를 낼 줄 알았다. 좋다면서 피해 다니고, 기껏 새겼던 꽃을 들키자 뜯어버리겠다고 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뜯지 못하여 제가 팔을 들면 꽃이 보였다. 짝사랑이라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었다. 태사혜의 뒷부분에 홀로 피어난 꽃을 보고, 그 꽃에 담긴 준휘를 보는 것은 견딜 수 있었다. 그저 뒷모습을 바라만 보아도 좋아지는 것이 사랑이었기에. 이런 사랑 정도는 죽을 때까지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주작의 수하가 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한참 후에나 천상에 올라갈 일인데 뭐가 급하다고 인연을 끊으려 했나 싶어 한참을 후회했다. 새벽 일찍 무예를 하겠다고 나가는 준휘에게 미안했다. 약 한달간 준휘 없이 있었던 것이 스쳐지나갔다. 준휘의 앞으로 내려가기 위해 몸을 재정비 했다. 명호의 품에 제 망원경 두 개를 쥐어주고, 도술을 쓸 준비를 하던 찰나 지수가 잡아세웠다.

“승철아.”

“....”

“내일 봐.”

“...어. 갈게.”

“응. 내일은, 웃으면서 보면 좋겠다.”

 

 

일단은 걸을까요? 준휘가 웃었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꽤 두터운 옷을 입고 나온 것 같아 괜히 안심이 되었다.

“추우면, 들어가서 얘기해도 되고요.”

“...아니야. 걷자. 괜찮아.”

꼼지락꼼지락 손가락을 주체하지 못하고 꼬물거리자 준휘가 덥썩 잡았다. 평소에는 서늘하던 손이, 오늘따라 따뜻했다.

“사형. 이렇게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미안해.”

“아니, 괜찮습니다. 그간 홀로 정리를 했으니까요.”

우뚝 섰다. 갑자기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그 날 이후로 계속 마음 속에 돌 하나를 얹고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젠 그 돌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

“정리...?”

“아. 그냥.... 생각 정리요. 사형에 대한 마음 정리는 하지 못했어요.”

“....”

“아마, 평생 못 할거구요.”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차마 다시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준휘는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말없이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가만히 준휘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새근새근 숨이 잇새로 새어나는 소리만 들리고, 별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형은 저를 계속, 좋아할건가요?”

“....”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만두는 것은 못할 것 같아요.”

슬쩍 품 사이에 간격을 두어 승철을 쳐다보았다. 자연스레 승철의 손이 준휘의 허리께에 올라와 있었다. 준휘가 한 손으로 승철의 얼굴을 잡아 저와 눈이 마주치도록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런 사람한테, 한눈에 반했는데. 어떻게 바로 그 마음을 접겠어요.”

“너...,”

“사형은 어때요?”

근 한달간에, 마음이 변했어요? 준휘의 말에 승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없잖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

“미안해. 그냥, 그냥 다 미안해. 내가 이기적이었던거, 맞는거같아.”

“아니, 굳이 사과하려 하지마요.”

승철의 양 손을 잡은 준휘가 한참을 고민했다. 마주치는 시선을 옮기지도 않고 빤히 승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이제 그냥 조금 간질거리더라도,”

“엉..?”

“사랑이라는거, 해볼까요?”

미친! 생각 정리라는게, 이렇게 정리한다는 거였나. 준휘가 입은 소매만큼 얼굴이 붉어진 승철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홧홧해진 얼굴이 부끄러워 양 손으로 가리고 있으니 준휘가 장난스레 웃으며 팔을 잡고 휙휙 흔들어댔다.

“어때요? 이 날만을 기다렸는데.”

“.......당연히, 좋지….”

승철의 대답이 돌아오자마자 준휘가 다시 그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다행이에요. 거절당하면 어쩌나, 한 달을 고민했는데! 귀에는 온통 준휘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얹혀있던 마음속 돌은 부서진지 오래였다. 정말, 이대로 행복에 잠식되어 죽어도 좋을 만큼 좋았다.

 

 

 

홍월천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한 형체가 눈에 띄었다.

“도련님! 왜 이제야 오시는 겁니까!”

“...뭐? 야 저게 무슨,”

“저기 저 집, 그 독각님 댁이라구요!”

저 멀리서 달려오는 비복에게서 말을 건네듣자마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달려갔다. 입구에 들어설때부터 활활 타오르고 있던 그 집이, 그 사람의 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후로는 정신이 아득하였다.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하는 놈들을 뚫고 대문 앞에 들어서니 확연히 눈에 띄었다. 지붕과 안쪽 담장에는 능소화가 가득 피어나 있었고, 디딤돌 위에는 익숙한 종이가 올라가 있었다.

 

癸巳年 九月 七日 巳時

李燃

黃泉命

 

명부를 펼치자마자 꽃무릇 한 송이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전원우....”

원리원칙을 끔찍히도 여기는 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진작에 알고 있는 그의 성격이었기에, 전날 밤 끝까지 제게 티를 내지 않고 저승에서의 규칙을 지키는 것도 봐주었다. 이 정도는 제가 눈치로 깨달을 것이란 것을 전원우도 알았을 테니까.

근데 이거는, 너무하잖아.

기껏 왔는데, 말없이 보내버리면 어떡해.

 

나빌레라

白露,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기도 하지만


현무는 북쪽을 수호한다. 검은색을 상징하며, 물과 겨울을 관장한다. 사방신장 중 가장 지혜롭다는 현무의 생원들은 다른 생원들보다 냉정한 면이 있다. 이들은 겉과 속이 완전 다른 경우가 많아서 마음과 행동을 읽는 것이 힘들다.

현무의 능력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현무 영수는 그의 수하를 받는 생원들에게 남들과 다른 특별한 마법을 부여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한 신 중 하나였다. 주작과 모든 것이 대조되는 현무답게, 능력 또한 남달랐다. 위급한 상황이 오면 저절로 능력이 발휘되는 주작과 달리 현무는 영수가 직접 그 자리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만 발동되도록 주술을 걸어두었다. 때문에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현무의 생원들은 언제 어떻게 제 능력이 발휘되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 또한 그는 제 수하에게 주는 능력을 특별히 여겨, 그들이 천상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깊은 물 속 해저책방에는 시대별 수장과 신령의 업적들이 적혀있어 알 수 있으나, 용왕의 허락 없이는 드나들기 힘들기 때문에 극비로 알려질 뿐이다. 함부로 알려고 해서도 안되며, 혹여나 알게 된다 하여도 남에게 쉽게 발설해서는 안된다.


지훈이 종잇자락을 구겼다. 후회와 한이 미치도록 휘몰아쳤다. 남아있는 불꽃과 함께 능소화 꽃잎이 흩날렸다. 능소화로 둘러싸인 담장 속 집채는 거대한 불길을 흩날리며 타올랐다.

뜨겁지도 않은지, 지훈은 대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일찍이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느껴지는데도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원우가 두고 간 명부와 이연이 남긴 간찰을 겹쳐서 한 손에 쥐고는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아-. 내가 말을 해주려 했는데.”

온통 밝고 빛나는 꽃 속에서 검은 형체가 지훈에게로 다가왔다. 생전 처음 보는 인물이었으나 대략 감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현무 영수…….”

“응. 바로 아네.”

그래도 나름 십년 넘게 신을 모셔보았다고 그가 인외의 존재라는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그의 기운이 이연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서 흠칫하며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네가 약관이 되기 전에 알려주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슬아슬했지. 내게 2년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거든.”

“무엇을 말입니까?”

“그리고 홀몸이 되었을 때. 알려주어야 되거든. 지금이 딱 적기야. 능소화의 향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네. 네 독각이 완전히 흩어졌나보다.”

“왜….”

“왜냐니. 오방신장의 슬하에 있는 것들은 서로 뿐이어야 하니까. 네 곁에 있던 이연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

“....”

“그리고, 드디어 혼자가 되었으니.”

지훈의 곁에 바짝 다가와서 섰다. 갓을 들어올리려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갓에 이딴 마법은 누가 걸어놨어? 쓸데없이 견고하네. 딱히 제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아 지훈은 말없이 갓을 벗었다.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쓸어주니 물기가 전부 사라져 뽀송해졌다. 이제야 좀 시원해보이네.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내 아래에서 수장이 될, 우지야.”

“.... ”

“그래도 홀가분하지 않느냐?”

“속이 텅 빈 느낌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래도 때가 정해져있는 죽음은 이례적이지 않냐?”

“..그걸 말이라고....”

저보다 몇백 년은 족히 더 살았을텐데도 서당에 있는 생원들마냥 친하게 접근하는 것이 낯설었다. 전에 순영의 말로 전해들은 백호 영수는 말은 많으나 무섭고 차가운 느낌이었는데, 제 옆에 있는 신은 그저 몇 년동안 함께 지낸 친우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그 능력 쓰려고 했지?”

방금 한 말은 취소다. 몇백 년 어린 제 수장이 될 놈을 갖고 노는 신이다. 그의 말을 들은 지훈이 고개를 슬쩍 들어 눈을 마주쳤다.

“해저책방에서 이연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깨달은 날, 현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보았을 것 아니야. 전원우한테도 이야기 해주더니만.”

“....”

그가 지훈의 손에 들려있는 명부를 가리켰다. 네 손에 잡혀있는 그거, 전원우가 하는 일의 마지막 명부였다. 마지막.... 지훈이 그의 말을 곱씹었다.

“네 친우는 이 상황에서 널 버리고 제 사자를 택했는데. 이기적이다, 그치?”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저였어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흥. 재미없는 놈. 네가 위에 올라오면 신들 꼬장을 꽤나 받겠다.”

약올리는 것처럼 말을 하는 그에게, 지훈도 괜히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하루종일 집 앞에 죽치고 앉아 울다가 서당에 돌아갈 줄 알았던 제가 이렇게 신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으니 괜히 오기가 생겼다.

“왜 절 막으셨나요? 제 독각을 살리고 싶다고, 서당을 나설 때부터 빌었습니다. 곁에 있었으면서 왜 도와주질 않았나요.”

“....”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현무의 영수는 그의 생원이 간절함을 담아 빌면 한 번 정도는 기꺼이 목숨을 살려주었다.”

서책에서 본 그 날부터 꾸준히 잊지 않은 구절이다. 원우에게도 말을 해주고 나니 절대 잊지 못할 내용이 되었다. 둘 다 그 능력을 써서 서로의 신을 살릴 작정이었다.

“그렇게, 빌었는데....”

“웃기네.”

“....”

“신한테 맡겨놨어?”

“....아.”

난 인간들이 내게 소원을 맡겨둔 것처럼 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 그가 한탄하듯 말을 하니 지훈은 더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 죽은 놈을 또 살려서 뭣하게. 그것도 곤욕이야.”

“네 운명 때문에 어쩔 수 없어. 그 애는 더 살지 못해. 네가 현무의 수장이 되는 미래를 보고, 기꺼이 불타오른 것이야. 살아있을 때 잘 했어야지.”

“그럼... 장례라도,”

“살아서 남은 자들을 위한 축제는 한 번으로도 족하지. 신을 위한 축제는 쓸데없는 허례허식일 뿐이야.”

방금 전까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 거짓이라고 할 정도로, 한순간에 그의 표정과 말투가 돌변하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지훈이 긴장한 듯 입술을 꾹 깨물자 그는 어린 놈한테 너무 많은 짐을 짊어주었나 싶은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입바른 소리를 할 줄 아는 성격이 못 되어서 챙겨주는 것도 하지 못했다.

제 집안에 있던 비복들이 불을 애타게 끄는 것을 멀리서 한참을 보다, 이만 들어가겠다며 명부와 간찰을 둥글게 말고 소매에 넣었다. 갓을 고쳐쓰고 그에게 인사하자 그가 데려다 주어도 되겠느냐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어린 별이 쓸쓸히 제가 지은 서당으로 돌아가는 것이 신경 쓰였다. 지훈은 잠시 고민하더니 제 발로 돌아가고 싶다며 거절했다.

“왜? 여기서 멀잖아.”

“...저와 함께 오방신의 수하로 일할 사형과 친우에게, 그리고 다른 남은 놈들을 위한 간식을 사갈 것입니다.”

꾸밈 하나 없이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의 담백한 대답을 들은 영수 또한 굳이 한 번 더 제안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올라오기 전까지 네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니, 긴 여생을 잘 지내라는 인사와 함께 그는 사라졌다.

 

열매달 여드레, 진시

지훈과 원우가 돌아왔다. 둘 다 제 속내를 티 내는 생원이 아니었으나 나비들은 대강 감으로 알고 있었다. 무사히 제 집안의 도깨비와 저승사자를 떠나보냈다 해도, 항상 함께 있던 자들이 재가 되어 사라졌는데 웃음이 날 리가 없었다.

그런 둘이 같은 침소에 있으니 분위기가 꽤 무거워졌다. 평소였다면 명호가 눈치를 볼까 싶어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숨겼을 둘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괜스레 현무들에게 마음이 쓰였던 정한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순영과 석민을 불러 앉혀두고 잠시 오늘 하루만 황룡의 모든 일을 박탈시키겠다 했다. 명호와 지훈, 원우가 웃는 모습을 보이면 다시 일하게 해주겠다면서. 결국 순영은 지훈을 꺼내어 꽃밭에 갔고, 석민은 명호를 데리고 책방으로 향했다. 눈치가 빠른 준휘는 알아서 원우를 데리고 월묘에게로 갔다.

“그럼, 저 꽃무릇은 어떻게 돼? 이제 쓸 곳이 없잖아.”

“...그렇게 바로 물어봐?”

“응. 어떻게 돼? 꽃밭에 있는 것들.”

원우는 말없이 월묘를 쓰다듬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그냥, 그대로 둘 거야. 때가 되면 또 쓸 곳이 생길 테니까. 준휘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행동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승에 있던 자들이 저승으로 가거나 소멸이 되는 경우에는 그들의 흔적이 담긴 물건 대부분이 사라진다. 그러나 꽃무릇은 원우의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져 길러온 것이기에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을 꽃들을 어찌해야 하나 한동안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염설과 친분이 있는 민규 또한 그렇게 해주길 바라기도 했고. 꽃망울 속 새겨져 있는 추억을 전부 지워버리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있잖아.”

“응?”

“가문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버려지면, 꽃을 사용할 수 없어?”

원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한 경우에 타고났던 꽃이 져버리지. 힘이 축약되어 저승에 가서도 거의 사용할 수 없어.”

“...그래?”

“기본적인 마법은 쓸 수 있겠지만... 정말 기초적인, 방어 같은 거. 다른 물건에 힘을 새겨 빌리는 것 있잖아.”

온전히 본인의 힘만으로는 져버린 꽃을 불러낼 수 없다. 문을 막거나 방패를 이용할 때 희미해져 사라지기 직전인 가문의 꽃을 새겨넣어 일회용으로 한 번 정도는 사용할 수 있었다. 저승에는 시왕이 관리한다고 해도 사흉수를 포함한 흉폭한 요괴들이 많기에 꽃마법을 사용하면 지상에서처럼 좀 더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것이 부러워 할멈에게 알려달라고 떼를 썼다가 호되게 혼난 적이 있어 그 후로부터는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물음이었다. 역시나 원우는 조곤조곤 전부 알려주었다.

월묘를 다시 건네받은 준휘가 품속에 두었다. 동글동글한 월묘의 눈과 준휘의 눈매가 꽤 비슷하게 생겼다. 원우를 빤히 보는 두 쌍의 눈동자를 번갈아 보았다.

“그건 왜?”

“그냥. 근데, 저승에는 다른 꽃 마법을 많이 쓰는 사람도 간혹 있던데..”

“어…. 본래 타고났던 가족 구성원에 변화가 생기면 쓸 수 있지. 꽃을 가진 마반인과 재혼을 하거나, 네 부모가….”

“…….”

“동생을... 낳거나.”

원우가 말끝을 흐렸다. 준휘의 처지를 들어 가족 구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괜한 말을 한 것만 같아 미안했다.

조금 전까지 귀 기울여 듣던 준휘는 딴짓을 하듯 손가락으로 흙구덩이를 팠다. 뭐 하냐는 원우의 물음에도 답 없이 가만히 듣기만 하더니 그의 손목을 잡고 작은 흙구덩이에 가져다 댔다. 꽃을 가진 집안들이 종종 누가 더 강한지 비교할 때 사용하던 행동이었다. 눈치껏 재빠르게 만들어낸 작은 꽃무릇 결계가 붉게 빛났다. 준휘가 그 결계 위에 손가락을 얹자 희미하게 꽃문양이 빛났다가 사라졌다.

“...뭐야? 무슨, 꽃….”

준휘가 월묘의 앞발바닥을 잡고 원우의 입을 막았다. 안 알려줄 거야. 고개를 저으면서.

“...묻지 마?”

“응. 아직은.”

“그래.”

월묘를 내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음이 좀 풀렸어? 슬슬 일어날까? 준휘가 일어서는 모습에 따라 원우의 고개가 살짝씩 젖혀졌다. 느릿하게 따라 올라오는 원우의 눈과 시선을 맞추었다. 곧 추석이 코앞이니, 무예를 하러 가야 한다면서. 사시까지 가지 않으면 순영에게 혼이 날 것이라 했다. 막상 끌고 나왔는데 제 시간이 별로 없어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 괜히 미안했다. 무예터가 북동쪽에 있으니 침소로 갈 거면 근처까지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해보았으나 원우는 책방에나 가야겠다며 거절했다. 헤어지는 길목에서 웃으라며 두 검지손가락으로 원우의 입꼬리를 올려주고는 사라졌다.

“네 어머니가, 제주 서당의 박사라고?”

“웅. 너희한테는 말해주고 싶었어.”

“우와. 그럼 제주에 가서 뵐 수 있겠네!”

승관이 볼을 빵긋 올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승관은 제주 서당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근데 사적 만남은 일절 금지된다며. 어떻게 하려고?”

“응? 아, 난 그냥 멀리서라도 어머니를 보는 것이라도 좋아.”

같은 공간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나만으로도 이리 벅차고 좋은데, 막상 마주하면 울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혹여나 불건전한 거래가 오갈 것을 대비하여 박사들과 생원들은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다. 나중에 어머니를 뵙게 되면 저들에게도 알려달라는 찬의 말에 승관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에 가는 거, 나룻배를 타고 간다며? 나룻배는 한 번도 타본 적 없는데.”

찬이 꽃받침을 하며 말했다. 추석을 지나면 가을 시험이 코앞일 텐데 셋의 머릿속에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한솔의 말에 의하면, 나룻배에 원래는 여섯 명이나 일곱 명이 타고 다니지만 이번에는 생원이 별로 없어 네 명에서 다섯 명 정도로 축소해 타고 갈 것이라 했다. 지수와 순영의 이야기를 엿들은 거라 확실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왜 줄었는데?”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역병이 돌았나 봐.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이 많대. 원래는 네 명씩 꽉꽉 채워서 사용하는 지금 침소도 그렇잖아.”

“역병? 우리 마을은 한동안 괜찮았던 것 같은데…. 승관아. 넌 알아?”

“......낙화열병.”

그거 때문일걸. 승관이 나지막이 말했다. 갑자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하는 말에 한솔과 찬이 곁눈질로 눈치를 보다 번뜩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승관은 아직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한솔과 찬의 눈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낙화열병. 제주 고유의 꽃 가문 일부가 악의적으로 만들어 퍼트린 전염병. 승철과 정한, 지수가 1년 생원일 때 발생한 역병이었다. 얼마 전 서책에서 발견해 정한과 지수에게 물었다가 들은 말이었다. 굳이 먼저 알려고 안 하는 게 좋을걸? 어차피 2년 생원 되면 제대로 배울 텐데. 그 말을 듣고는 곧바로 덮은 부분이었는데, 괜히 그랬나 싶어 후회되었다.

“그…. 미안. 우리가 너무 경솔했다.”

“어? 아니, 아니야. 괜찮아.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한솔은 다시 웃어 보이는 승관을 보며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승관은 괜시리 둘에게 마음의 짐을 얹은 것만 같아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시 붓을 잡았다. 서책을 덮고, 두꺼운 표지 위에 점 네 개를 찍었다. 방위에 맞추어 색을 변화시키며 찍어누른 덕에, 네 침소의 색이 확연하게 티가 났다. 휴, 단시간에 집중하느라 죽는 줄 알았네! 고작 점 네 개였으나 1년 생원에게는 큰 노력이 필요한 마법이었다.

“이게 뭔데?”

“제주로 갈 때. 사방신 침소 생원이 최소 한 명씩 탑승하여 나룻배를 타고 가야 해.”

“아. 맞아. 서당을 나올 때부터 함께 해야 한다며.”

“응. 서당에서 마반촌을 지나, 환각의 숲을 거쳐 나오면 큰 강이 나와. 거기서 마법이 걸린 나룻배를 타면, 알아서 안전하게 제주에 도착.”

닷새나 걸리는 일정인데 말을 하고 보니 별것 없어 보였다. 한솔이 네 점을 콕콕 찌르며 승관을 보았다. 넌 누구랑 가? 하고 물으면서.

“나는 정한 사형이랑, 지수 사형이랑, 석민 사형이랑. 아! 지훈 사형도. 너희는?”

“승철 사형, 원우 사형, 민규 사형. 저번에 오방식시 때 일어났던 일이 미안해서 이번에 제대로 여행 시켜 주겠대.”

“좋네! 찬이 너는, 어때?”

“난 뭐, 당연히 좋지. 무예를 하는 사형들이랑 같이 가는 거잖아.”

각 침소에 해당하는 생원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방향에 맞추어 손가락으로 짚었다. 승관이 다시 기대에 찬 눈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지훈 사형이, 날 위해 해금을 챙겨 가주신대! 하면서. 같은 수업을 듣는 다른 1년 생원들은 이 셋을 꽤 부러워했다. 대부분이 다른 침소에는 아는 사형이 없어 서먹한 사이로 갈 것이라고, 지금이라도 친분을 쌓아봐야 한다며 넋두리하듯 늘어놓는 일이 허다했다. 일찍이 나비들이 모여 꽃밭에서 거의 날마다 공부하며 시간을 보낸 덕에 그들끼리 골고루 섞어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다닐 수 있었다.

“여기 있었네. 찬!”

귀에 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함께 갈 사형들이 전부 서 있었다. 준휘의 뒤에서 승철도 슬그머니 나왔다. 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순영이 찬에게 경합은 함께 못할 것 같다고 했을 때 너무 속상해하던 것이 눈에 밟혔던 명호가 그를 데리고 가서 곁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원래 경합 준비는 다른 무예생들도 함부로 보지 못하도록 했기에 승관과 한솔마저도 데려갈 수는 없었다. 저를 데리러 와준 넷을 보고는 밝게 웃으며 다녀올게! 하고 승관과 한솔에게 인사하고는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미시

“지훈아.”

“...어?”

한참 뒤에야 대답이 돌아왔다. 남은 일들을 전부 처리해주겠다던 사형들 덕분에 시간이 많이 비어 책방으로 가니 지훈이 있었다. 원우와 같은 이유로 와있을 테다. 말없이 티를 내지 않고 찾아볼 것을 다 본 후에 지훈의 뒤로 간 것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나비들과 있으면 금세 웃고 행복해질 수 있었으나 이들은 가만히 앉아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턱을 괴고 서책을 넘기던 지훈이 잠시 굳더니 뒤를 돌아 원우와 눈을 마주쳤다.

“영묘산에 가본 적 있어?”

“영묘산...? 왜? 안 가봤어.”

원우의 질문에 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서책을 덮는 지훈의 행동을 본 원우가 그의 손을 잡고 책방 밖으로 나섰다. 잠자코 따라 나온 지훈이 말없이 원우를 보자 그제야 종이 하나를 건네 보였다.

“문준휘, 꽃이 있대.”

“아, 어…. 맞아. 나가던 날 나한테 방어마법을 걸어줬어.”

“알고 있었어? 무슨 꽃인지 알아?”

종이에 적힌 글들을 보던 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원우와 눈을 마주쳤다.

“내 꽃. 백일안개야!”

“그날 정신이 없었어서 잘 모르겠네…. 걔는 백일안개라고 하던데.”

“백일홍과 안개꽃.”

“...들어본 적 없는 가문이야.”

“나도. ...어제, 준휘가 나한테 문양을 보여주다 말았거든. 꽃이 두 개였고,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골라낸 거야.”

종이에는 백일홍과 안개꽃을 비롯해 그와 비슷하게 생긴 꽃들에 대한 설명을 정리해 두었다. 설명들 가장 마지막에는 어느 집안의 것인지도 적혀 있었다.

“응. 확실히 꽃이 두 개이긴 했어.”

“찾아보니까 꽃이 있는 문씨 집안은 하나뿐이더라고.”

“그렇네. 안개꽃. 이와 혼인한 집안이.. 백일홍. 그래서?”

“확인할 것이 있어. 나랑 같이 나가보자.”

“...그래. 할 일도 딱히 없으니까. 두 시진 정도 걸리려나?”

근데 말이야. 가만히 서서 종이를 꽉 붙들고 뜸들이는 지훈에, 원우가 움직이려던 몸을 멈추었다.

“나가서든, 여기서든, 이연 일 갖고 사과할 생각 마. 안 받을 거니까.”

“...어?”

“권순영한테 했던 것처럼 해. 너는 네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아, 어, 어어…. 어. 알겠어.”

아마 지훈이 오기도 전에 이연의 혼을 인도한 것이 미안하긴 할 터였다. 원우의 잘못이 아니지만 아마 그의 마음 한쪽에 짐처럼 무겁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 뻔했다. 지훈은 그런 원우에게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다. 답지 않게 말을 더듬는 원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며 먼저 침소로 향했다.

“신령은 수장한테 사과하는 것 아니야.”

또 원우가 우뚝 섰다. 안 그래도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서로 번갈아 멈추니 언제쯤 도착하려나 싶었다.

“...어떻게 알았어?”

“아유, 뭘 어떻게 알아. 빨리 가자.”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검은 도포를 입은 원우의 등을 하얀 손으로 꾸역꾸역 밀며 걸어 나갔다. 다른 나비들은 아냐는 말에 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찬찬히 알려줘도 된다며, 지금은 급한 네 일이나 처리하러 가보자고. 미시에 나가서 유시에 들어오는 걸 목표로 하고 가보자는 당찬 계획도 세워보는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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