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나는 오래된 관심사가 많기는 하지만 전부 묘하게 비슷한 범위 내에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볼 땐 고만고만해 보일 지도 모르는 좁은 범위 내에서 하고싶은 일이 자주 바뀌었다.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이거면 나한테도 지속가능할 일이겠다 싶은 분야를 찾긴 했다.
하고싶은 일이 많다보니 당연히 관심분야의 모든 길을 가보지는 못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고 비슷한 범위 내의 선택지 중에서도 나는 어느 길로 갈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며 선택을 미루곤 했다. 관심사가 많았던 만큼 자연히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이 생겼고 내가 가고있는 길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과거를 되짚어볼 수 밖에 없었다.
과거를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워낙 많은 후회를 해왔다보니 더이상 옛날 일에 대한 생각을 깊게 안 하는 것도 있다. 괜히 더 생각해봐야 아! 그때 그랬어야 하는 건데!! ㅠㅠ 와 나 자신 진심 등신… 왜 사냐 진짜… 의 무한굴레니까. 지금 노력해봐야 과거의 선택은 이미 일어난 일인데,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후회만 더 되니까 아예 깊은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사는 성격으로 바뀌기까지 했다.
과거 회상을 하는 소년만화 주인공들은 그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고 정신병만 얻는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지극히 피상적인 사고만 하고있다. 그렇지만 그게 뭐 어떤가 싶다. 피상적인 사고만 하기 vs 정신병 걸리기 하면 전자 아니겠냐고.
내가 선택한 이 길에서 만족할 만한 큰 성과를 거두는 게 아닌 이상 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평생 갖고 살 지도 모른다. 지금 가고있는 길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렇지만 되도록 미련을 갖지 않게 내 나름대로의 사력을 다해 몸부림 치면 가지 않은 길들에 대한 미련을 가질 확률이 좀 더 적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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