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궤도

사냥꾼의 숲

생을 사냥하는 자는 자기의 생도 사냥당할 것을

이우는 밤 by 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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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스트 | 2300자 | 『스타듀밸리』 엘리엇 드림

(C)떨리고설레다 2023


생을 사냥하는 자는 자기의 생도 사냥당할 것을 항상 각오해야 한다. 

엘리엇은 칼과 함께 달리기로 결정한 이후로 단 한번도 그 말을 머리맡에서 떼놓은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잊어버리지 못하는 쪽이었다. 제 의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막 행위를 시작할 무렵의 엘리엇은 밤마다 침대에 누워 눈꺼풀 안쪽에 미친 듯이 되새겼다. 심장을 꿰뚫는 자는 자기의 심장도 꿰뚫릴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엘리엇은 산것의 목숨을 앗아가는 자이다. 언젠가 지은 죄의 대가를 고스란히 돌려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었다. 동시에 최대한 제정신을 유지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이제는 무뎌져 피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 마음이 되었지만, 처절한 과거는 해묵은 습관으로 남아 유령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엘리엇은 아직도 방아쇠보다는 날붙이를 선호했다. 흔히 추측하는 것처럼 흔적을 덜 남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목표의 숨통을 끊을 때 엘리엇은 바닥에 누운 이가 제가 되는 상상을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저는 어떤 꼬라지를 할까. 얼마나 눈물 젖은 목소리로, 얼마나 추하게 꿈틀거리며 버러지같이 목숨을 구걸할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그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질이니까. 움직임이 멎은 채 피웅덩이에 널브러져 식어가는 시체를 보며 엘리엇은 비로소 제가 살아 있음을 체감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다고 어떤 철학자는 말했다는데. 엘리엇은 마르틴 하이데거를 정말 좋아했다. 그 말대로라면 엘리엇이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인생을 보다 보람차게 살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면 제가 더 가치 있는 인간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비록 하는 일이라고는 누군가를 요바의 곁으로 보내는 것이 전부라지만, 하여튼 간에.

그러니까 요점은, 엘리엇이 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달렸다는 것이다. 엘리엇은 매일 아침 죽음을 기다렸다. 아무리 추하고 형편없는 모습으로라도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밤중 숲길에서 난데없이 당한 습격에, 엘리엇이 별로 놀라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너냐, 말론을 노리는 새끼가."

여자가 으르렁거렸다. 잔뜩 실린 경계가 무색하게도,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당신일 줄 알았어. 숨길 생각도 없는 그 눈빛, 그녀가 저와 같은 부류임은 진작에 눈치챘다. 그리고 언젠가 제 계획이 그녀에게 깨부숴질 것도 엘리엇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성공해서 돌아가야만 하는 일,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마땅했으나 어째서인지 그러지 못했다. 

서쪽 숲 위쪽, 오래된 농장을 난데없이 점거한 아름다운 농부는 틀림없이 엘리엇을 위해 마련된 죽음의 천사였다. 

언젠가 반드시 맞이할 죽음이라면 엘리엇은 그 여자의 손에 죽고 싶었다.

"병신같이 주제도 모르고, 건드릴 사람을 건드려야지."

등 뒤에서 거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목에 대어진 금속은 서늘했고 닿은 자리의 피부는 따끔거린다. 그런데…. 엘리엇은 눈을 깜박였다. 그토록 기다려 온 순간이라 한다면 분명 지금일 테다. 수십 수백 번 그린 최후에서 한 가지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죽음의 목전에서 그는, 나머지 모든 사람이 그랬듯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초라해질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순간은 시뮬레이션과는 달랐고, 그래서 너무 어색했다.

"움직일 생각은 하지도 마."

내 손이 더 빨라. 여자가 속삭였다. 반응 속도를 시험해 보고 싶으면 도전하든지. 물론 엘리엇에게는 하나도 겁나지 않는 경고였다.

엘리엇은 입술 사이를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면서 속삭였다.

"나무."

순간 주변 공기가 변했다. 칼끝을 타고 이제 전해지는 건 긴장이었다. 엘리엇은 슬쩍 여자의 팔 안에서 빠져나왔다. 호언장담하던 반응 속도는 다 어디 갔는지 여자는 멍하니 멈추어 있을 뿐이었다. 엘리엇은 흐리게 웃었다. 등에 닿던 체온이 사라진 것이 아쉬웠고,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제가 우스웠다.

"너…."

우드가 머뭇머뭇 엘리엇을 쳐다보았다. 독기를 잃은 시선과 온전히 마주하자 턱 하고 숨이 멎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엘리엇은 등줄기를 타고 좌르르 흐르는 전율을 느꼈다. 당신도 그런 얼굴을 할 줄 아는구나. 허를 찔린 눈빛, 이런 곳에서 맹수를 마주칠 줄은 예상치 못했다는, 연약한 피식자의 안색을. 늘상 주위를 업신여기는 얼굴만 하고 있어 잘 몰랐다. 그리고 사람의 그런 얼굴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엘리엇은 방금에야 알았다.

여자가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네가 왜…."

말론을 노려? 이어진 말은 차마 입술을 넘어 나오지 못했지만, 엘리엇은 그게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말론을 위협하는 암살자가… 정말 너야? 여자가 습관처럼 입술을 핥았다. 엘리엇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엘리엇을 노려보았다. 엘리엇은 풀어진 태도로 가만히 나무를 내려다보았다. 남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참을 얽히고, 마침내 엘리엇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찾는 그 사람이 내가 맞는데."

"지랄."

우드가 부정했다. 엘리엇은 고개를 저어 그녀의 주장을 다시 부인했다. 제비꽃을 닮은 두 개의 눈동자가 옅게 흔들렸다. 여자는 또 입술을 핥았고, 엘리엇은 웃었다. 

"당신은 나를 죽여서 그 남자를 지키겠지요."

처음으로 생명을 해친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차가운 날붙이가 뜨거운 살갗을 뚫고 들어가는 감촉은 신기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이것은 살해의 부산물 때문일까. 흘러나오는 끈적한 피가 없었다면, 그리고 처절하다 못해 시끄럽기까지 한 애원과 비명이 없었다면 엘리엇은 그 행위를 조금은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신음과 공포에 찬 울음. 제 추한 모습을 여자만큼은 보지 않았으면 했지만, 동시에 보는 이가 반드시 그녀이기를 바랐다.

"이런 날이 올 줄을 예상했지만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여자의 눈동자가 담아내는 감정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엘리엇은 이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여자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언젠가 맞이할 죽음이라면, 꼭 당신에게서 받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여자의 체구는 처음으로 살해한 이와 같이 자그맣다. 어깨는 한 팔로, 허리는 한 손으로 잡히겠군. 눈대중으로 가늠해 보며 엘리엇은 흐린 눈웃음을 지었다. 여리고 연약하게만 보이는 저 팔이 곧 무자비하게 저를 찌를 테다. 그리고 엘리엇은 그녀의 손아귀에서 반항하지 않을 테다.

여자는 엘리엇을 위해 준비된 단두대다. 

여자는 그것을 좋아할까. 

엘리엇은 눈을 감았다. 부디 그러기를 바랐다. 그래야 여자가 저를 기분 좋은 대상으로 기억할 테니. 저 아름다운 사형집행인에게 제 마지막이 하나의 즐거움으로 남는다면.

엘리엇은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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