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11회차, HBD
11주차 주제 <수신 오류>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사람들은 네 이름을 알고 있었어, 가브리엘. 너를 칭송하고 찬미하기 위해 태어난 군중들이 있었어. 나는 어떤 신도 믿지 않으므로 신앙심이 없고 그래서 네 이름을 발음하는 일을 금지 당했지만. 사람들은 네 심장이 크리스털로 만들어졌다고 믿었어. 맥동하는 광물이 있다고 믿는 것은 걸어다니는 식초가 있다고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도 사람들은 자꾸 도망치는 청설모를 보며 그것이 식초라고 해.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잠든 네 곁에 다가가 가슴팍에 귀를 대어 보았어. 네 심장이 어떻게 뛰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듣고 싶어서. 알고 싶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야. 듣고 싶다는 것은 보고 싶다는 것이 되고, 보고 싶다는 것은 만져보고 싶다는 뜻이 돼. 그건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뜻이야, 가브리엘. 연약한 몸뚱어리를 저주하는 그 자신의 의사와는 어떠한 관계도 없이. 이따금 남들보다 굴곡진 운명을 어깨에 지고 있는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 그가 예수처럼 온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지는 않아도 균형을 위해 어떤 불행을 떠안는다는 것. 운명론자도 유신론자도 아닌 나의 주장을 그가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질문은 없다. 그의 연기를 장막처럼 두른 채 많은 말을 생략하고 인내하는 나는 언제까지나 연장자이므로. 얇은 머리칼을 흠뻑 쓰다듬으며, 모든 일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모든 불행도 언젠가는 사그라질 것이라고, 나답지 않은 낙관에 대해 밤새워 반복하고 싶어진다. 가마 위로 널찍하고 따뜻한 손을 얹은 채 다감하게 축성과 축복을 발음하는 사제의 모습을 흉내 내고 싶어진다. 죽지 마라.
죽지 마.
살아있기만 하면 돼.
그렇게 자꾸만 읊조리는 내 목소리는 철 지난 영화만을 고집하는 영사기의 녹음된 음성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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