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4회차, 마멜 님
나는 이 수렁에서 태어난 자
길모퉁이의 안쪽 구석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그곳에서 내가 탄생했다
누가 하수구 사이에 버리듯 날 낳고 말았을까
누가 날 악취와 오물과 잿더미 속에 던져 넣었나
이 구덩이의 나는 또다른 나를 좀먹고
뱃속에 고인 시체를 토하며 시간을 지난다
캄캄한 기분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하루를온통까맣게견디는사람은그것을정의할수없다
암흑이 서리처럼 내려앉은 거리
공허를 빚어 삼킬 땐
내 생이 꼭 누군가의 아류작 같다
몸을 웅크리면
나의 숨도 구겨져 다시는 반듯해지지 않을 게 분명해
일 자로 머리를 뉘이고 잠에 드는 건 아주 오랜 습관이다
지하의 눈동자가 나를 깊이 바라보고 있다
아가리를 잔뜩 벌리고 언제든 생을 삼키려는 묘지
눈도 귀도 아닌 마음이 헐어버린 자들은 어찌 이 죽음의 거리에서 도망칠까
바깥을 모르는 사람은 그를 향해 달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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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HBD 창작자
최진영 작가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현재 '원도'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읽어보셨을까요? 저는 이번 멜 님의 글을 보자마자 딱 그 심상이 떠올랐답니다. 한 번쯤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4연의 문장을 띄어쓰기 없이 처리하신 건 어떤 과정을 통해 도달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 화자의 목소리와 표정을 상상해 보았을 때 조금 초연하게, 라고 해야 할까요, 허망하게 중얼거리는 게 떠오르는데 왜 이 구간에서는 이만큼 빠른 호흡으로 중얼거리게 만드신 건지 궁금해요. 약간 느릿 느릿~한 어조로 읽다가 4연에서 갑자기 와다닷! 쏟아져서 (제 기준) 읽는 흐름이 깨졌거든요. 처음부터 이런 빠른 호흡으로 헐떡거리며 읽었어야 했을까요? 원작자 분의 의도가 궁금해집니다. 제가 뽑은 오늘의 문장은 <바깥을 모르는 사람은 그를 향해 달릴 수 없다>입니다. 모든 서사를 정리하는 ~다. 문장, 이게 정말 제 취향인가 봐요. 볼 때마다 음미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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