묫자리

잠뜰티비 '이웃집 좀비' 영상에 대한 날조 적폐가 전부인 글...//포타에도 업로드 함

그는 제 죽음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건 자신의 아내와 하나뿐인 외동딸이 제 눈앞에서 좀비로 변해버렸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홀로 살아남은 자신이 좀비 사태에 대한 기사를 눈물로 작성할 때 역시 그랬다. 그건, 그가 살기 위해 좀비를 무딘 칼로 썰고, 발밑에 흐르던 살점과 피웅덩이를 밟고 망설임 없이 나아가던 때도 그러했다. 그는 본디 본질이 생에 가까운 사람이어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지 않는다. 먼저 떠난 아내와 딸을 위해서, 자신의 무덤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는 남겨진 사람의 의무를 잘 아는 사람이어서, 자신의 묫자리를 찾지 않는다. 

자신이 떠나면 아내와 딸을 추모하며, 그리워할 이가 세상에 단 하나도 남지 않음을 알기에.

박덕개는 지독한 무신론자였다. 그는 오늘, 살면서 가게 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장소의 지붕을 올랐다. 살기 위해서, 수녀 좀비의 공격을 피해 작은 성당의 지붕을 올랐다. 사다리를 타고 급하게 올라간 손은 거칠거칠한 나무 표면에 쓸리고 찔려 금방 벌겋게 부어올랐다. 찬 밤공기에 쓸린 상처가 따갑다. 추웠다. 오늘따라, 옆구리가 시리다. 몸을 한껏 웅크리고 얼굴을 두 무릎사이에 파묻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제 외투를 스쳐 지나가면 발가벗은 사람처럼 그는 추위에 떨었다. 옷을 껴입어도, 몸을 웅크려도 어쩐지 그 바람은 속절없이 그의 아픈 곳을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불, 불을 피우자.. 불이라도 피우면 덜 춥겠지.'

그는 들고 있던 두꺼운 나무 몇 조각을 비벼 작은 모닥불을 만들었다. 매캐하고 따뜻한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고, 어둑어둑한 밤가운데 그가 머물고 있는 성당만이 밝다. 그는 어쩌면 이 빛에 좀비들이 끌려올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이 작은 불꽃에 의존하지 않으면 그는 이 성당의 지붕에서 자신이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발견될 거란 묘한 확신을 가진다. 그런 헛소리를 할 정도로, 그는 추웠다. 이가 딱딱 부딪히고 근육이 욱신거리고, 쓸린 손바닥과 깨진 손톱이 저와 같이 추위에 떨며 고통을 호소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 숨을 내쉬면 한기 서린 차가운 입김이 튀어 나오고, 그 입김이 아래로 가라앉아 피부 위에 닿는다면 순식간에 얼어붙어 눈송이로 바스라 질 것만 같았다. 제가 내쉬는 게 숨인지 얼음조각을 토해내는 건지 모를 정도로, 내쉬는 숨 하나하나가 날카롭게 제 목을 긁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불현듯 어떠한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가, 이 성당의 지붕이, 이곳이-

"...내 무덤이 되는게 아닐까?"

말은 생각보다 빠르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언어는 입술을 비집고 제멋대로 성대를 뒤흔들며 툭 삐져나온다. 그가 제 입을 두 손으로 막기도 전에 그건 이미 세상에 제 존재를 드러낸다. 그는 뒤늦게 꽁꽁 얼어 손끝이 빨개진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들이신 숨 한 번에 세상이 어지럽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상상하지 않는다. 그는 어디서, 언제 죽을지 생각하면 안 된다. 그는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는 웅크린 몸을 펴 퍼덕대는 몸을 일으킨다. 그는 제 딸아이를 생각했다. 학교에서 춤을 배워왔다며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두들기던 자신을 끌어내던 사랑스러운 딸. 그 작은 손길에 저항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로 끌려가 팔자에도 없는 춤을 추게 된 자신. 아이의 손짓에 이끌리듯 발을 떼고 엉성하게 몸을 움직이면 딸은 그런 자신을 향해 비죽 호통치며 시범을 보여주곤 했다.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면서. 그럼 아내는 주방에서 채소를 썰고, 기름을 두르며 요리를 하다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럼 자신도 멋쩍게 결국 웃고 마는 그날. 그렇게 하루 이틀, 춤을 추다가 보면 어느 날 춤을 완벽히 외워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덕개는 발을 뗐다. 스텝을 밟고 폴짝폴짝 뛰며 춤을 춘다. 손끝을 돌리며 팔을 뻗고, 발을 내딛다가 점프하며. 자신의 손을 잡아줄 딸아이는 이제 없지만, 마치 손을 잡은 모양새로,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는 사람처럼. 모닥불을 중간에 두고서, 경박스러운 몸짓으로 뛰어다니다가 가끔은 느릿한 몸짓으로 아이를 흉내 내며. 밤공기는 차갑지만, 팔을 휘두르고 다리를 움직이고 허리를 숙였다 점프를 하고... 체조에 가까운 그 율동을 행하며, 그는 몸에서 땀이 나고 자신이 열기 섞인 숨을, 모닥불의 매캐한 연기만큼 뜨거운 숨을 내뱉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율동을 성인 남성이 폴짝거리며 추는 모습은 귀엽진 않을 거다. 어쩌면 기이하고, 미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 그럼에도 덕개는 이 춤을 춰야 했다. 손을 쫙 피면 쓸린 상처가 늘어나 따끔거렸다. 다리를 뻗으면 과부하가 온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다. 점프를 하고 허리를 숙이면 저도 모르게 숨을 헐떡이며 늘어난 폐가 산소를 갈구한다. 자신이 한 바퀴 몸을 돌리면, 세상도 같이 돈다. 어지러운 기분에 비틀거리다가도 그는 춤을 추기 위해 다시 일어난다.

여기가 내 무덤이다. 여기는, 내 무덤이다. 여기는 내 무덤이 될 수밖에 없다. 내딛는 발한번에 그는 그런 생각을 한다. 뻗는 손 한 번에 그는 그런 다짐을 한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고,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서 그는 제 엉성한 춤을 구경하던 아내처럼 여린 미소를 터뜨렸다. 여기는 내 무덤이야!  웃음이 났다. 

그는 단 한 번도 죽음을 상상하지 않았고, 죽고자 바라지도 않았고, 누구보다 삶에 가까운 생을 살아왔지만, 그는 웃음이 터져나오는 걸 막을 수 없다. 딸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제게 뭐라 했을까. 우스꽝스러운 제 모습을 보며 어린아이 다운 순수한 웃음을 터뜨렸을까? 아내는? 자신을 이상하단 듯 쳐다보다가도, 어이없어 웃음을 흘렸을까? 

그의 춤은 어느덧 막바지를 달려간다. 몇 시간을 이러고 있었지? 그는 알 길이 없었다. 이젠 정말 팔 하나 들 힘이 없고, 다리 한번 내지를 기운이 없다. 세상이 빙빙 돌고, 그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성당의 지붕을 걸어 다닌다. 좀비처럼 발을 질질 끌고,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낯을 가지고서, 깜빡깜빡 흐린 시야에 그는 결국 무릎을 꺾고, 모닥불의 옆에 쓰러지듯 앉는다. 밀린 숨을 몰아쉬고, 그는 이제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닫는다. 무너지듯 몸을 웅크려, 비명이 되지 못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죽으면 안 된다. 그는 묫자리를 찾으면 안 된다. 설령, 무덤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순간이 생길지언정. 그는, 나는. 나만이, 그들을 추모하고 그리워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살아남아 그들을 기려야만 한다. 사랑스러운 우리 가족, 내 가족.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시 서로를 보고 웃으며 행복을 논할 수 있을까? 덕개는 눈을 감는다. 우리는 이제 없다. 우리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엔 덕개 그 자신만이 있다. 쓰디쓴 씁쓸함이 입속에 남아 겉돈다. 그렇지만, 그는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누군가의 아빠였다.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을 테다.

모닥불은 여전히 타오른다. 그가 내뱉는 것만큼 매캐하고, 따뜻하고 지독한 연기를 내뿜으며. 좀비들은 거리를 걸어 다니고, 그 순간까지도 그는 그 발소리들 사이에 다른 누군가의 발소리가 섞여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성당은 조용하다. 마치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여기로 오고 있다. 

덕개는 속으로 그런 말을 삼키며, 바닥에 있던 총을 주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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