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탐차] 외전 1 - 차검사와 배변호사의 사건일지
위증의 차검사
어우 부지런도 해 진짜. 하품하느라 눌린 눈물샘 때문에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기지개를 킨 타미는 드레스룸에 서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향수를 고르고 있는 현의 등을 가두듯 안아 뺨을 붙였다. 금방 준비를 했는지, 뜨끈한 몸에서 나는 바디샤워 향이 섬유에 덧대여 안락하고 기분좋은 체취가 풍겼다. 차현아- 안은 팔에 힘을 주자, 복근에 가볍게 힘을 넣고 좌우로 흔든 힘 좋은 애가 웅. 귀엽게 몸통을 울렸다.
- 가족들이랑 밥먹으러 간다면서 무슨 향수를 다 고르고?
- ..어? 아 오랜만에 보잖아
- 글킨하지. 두달도 넘었나?
- 어. 추석에도 얼굴 안 비추면 호적에서 파버린대
큭큭대는 타미를 몸 안쪽으로 지익- 끌고온 현이 머리위를 가리듯이 포갰다. 금새 옅은 바닐라가 섞인 강한 스파이스 향이 공기 중에 퍼졌다. 왠일이래. 아직 날도 더운데. 요새는 주로 시트러스 계열의 발랄하고 시원한 향을 풍겼던거 같은데, 나름대로 연휴의 이름이 ‘추석’이니 가을 향수를 쓰기로 했는가보다. 별 특이한데서 의외의 세심함을 보이는 애니까. 여전히 안긴채로 판판한 등허리를 쓰다듬다가 슬렉스에 감싸인 엉덩이로 손을 옮기자, 야-아 배타미. 꾸지람하듯 목소릴 까는 주제에 다리를 넓혀 자세를 낮춘 현의 얇은 셔츠자락이 잠옷 안을 누볐다.
- 내가 지금 시간이 없지 욕구가 없냐
- 우리 자긴 짐승이란 소릴 참 귀엽게도 해?
- 다녀와서 봅시다, 배변호사님
픽 웃으며 손을 빼곤 상체를 숙여 뺨에 입술을 붙이는 현에게선, 아주 좋은, 살짝 저렴한 표현을 덧붙이자면 맛있는, 냄새가 났다.
- 현아 이렇게 금방 나오면 어머니 뭐라 안하셔?
- 언니보러 간다고 했더니 늦지 말라고 등 떠미시던데요!
히히 웃으면서, 여태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있던 메뉴판 종이를 앞으로 밀어놓곤 무릎에 손을 넣은 현이 잔뜩 몸을 구부리는걸 가경은 웃으며 그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어 자꾸 내 핑계대고 도망쳐? 장난처럼 으르는말에 수줍게 혀를 쏙 내밀곤 가만히 손을 타는게 다 커서도 강아진줄 아는 대형견 같아 보드라운 뺨을 콕 찔러주었다.
- 한우 보내준거 너무 잘 먹었다고 꼭 인사전해 달래요
- 별것도 아닌데 뭐.
- 아닌데 진짜 맛있었는데!
- 니가 먹었나보네
- 어... 저도 쪼끔?
도르르 굴러가는 눈만 봐도 쟤가 다 먹은게 틀림없었다. 뭐 누구든 잘먹었음 됐지.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에게 이것저것 자연스럽게 시키며 자길 향해, 언니는요? 하는 현의 상기된 표정이, 꼭 첫월급 탔다며 그거 다썼지 아마 싶은 선물을 들고 온 그날의 현 같아 웃음이 터졌다. 어지간히 고르고 고른 모양이니, 리액션을 잘해주어야지 생각하면서.
칵테일을 세 잔째 종류별로 시켜가며, 식사가 부족했나 싶게 안주를 부수고 있는 현의 여전한 식욕과 위스키를 느리게 홀짝이던 가경은, 이 자리에 없으면서 제일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사람의 이름이 탁자 위에 올려둔 현의 휴대폰을 채울 때 자연스레 툭 끊겼다. 왜 그러냐는듯 현을 봤다가, 안받아? 채근한 가경은 눈빛이 흔들리며 손을 내미는 그 어색한 몸짓에서 자연스레 수많은 정보를 읽어냈다. 가족처럼 오랜 세월을 봐온 현의 표정이야 눈썹 움직임만 봐도 알아챌 정도라지만, 그게 꼭 비단 가경이어서만은 아니니까. 워낙 투명한 애 아닌가. 그러니 어린시절 그토록 사고를 치고 정신나간 애 마냥 헤가리고 다니던 때에도 가경은 항상 그 안의 현을 항상 보았다. 정직하고 올곧은 심성과, 진지하고 강단 있는 그 본성을.
[어..여보세요?]
..
[으응. 아직.. 어디냐고? 집근처에, 나와가지구 한잔 하러 왔는데..]
..
[아니아니 택시 타구 가면 돼요 타미]
..
[네 끊을게요]
- 거짓말하고 나왔니
- ..꼭 그런거는 아닌데요
- 왜?
- 아니 타미가 언니 만난다 그러면 쪼끔 불편해 하는거 같아가지구, 그냥 가족 모임 간다고
- 너 들켰을거 같은데ㅎ
강건너 불구경하듯 빙글빙글 웃으며, 얼음이 반쯤 녹은 잔을 돌리는 가경의 한마디가 마치 유죄 선고 같이 머리통을 때렸다. 판사님이라서 그런가. 그러고보니 이 호텔바는 타미가 알려준 곳이었다. 주로 메인 메뉴가 맛있는 곳에서 반주하는 것을 즐기는 현에게, 이게 진짜 데이트한다고 사람 불러놓고 아구찜, 삼겹살, 치킨집만 데려갈거냐 눈을 부라리던 타미가. 이런쪽의 취향은 아무래도 타미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앉은자리가 가시방석이 된듯 진땀이 베어나와 입안을 잘근대다가 그 사실을 깨닫고나니, 온 사방이 CCTV 같아 주변을 살피며 허리를 세웠다.
- 지금이라도 자수해서 광명찾지 그러세요 차검사?
- 아.. 저 티난거 같애요?
- 티 안났음. 그냥 계속 모른척하려고? 그럴 자신은 있어 현아?
- 자신? 자신..없는데
다시 한번 웅웅- 소릴 내며 탁자 위를 진동하는 휴대폰에 경기를 일으키듯 온 몸을 바르르 떤 현의 울상이 된 표정이 재밌어, 앞에 놓인 올리브를 하나 입안에서 굴리며 남은 위스키를 들이켰다. 내가 받아줄까? 그냥 받으라는 재촉같은 말에 입술을 맞대고 꾹꾹 누르고 있던 현의 손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에..]
[차현]
[으응 타미 왜요]
[선서]
[어?]
[따라해. 선서]
[선서]
현의 입에서 나온 익숙한 단어에 눈썹을 올린 가경은 주저주저하며 선서문을, 법정에서 100번은 들어도 더 들었을 그 익숙한 문장을 말하는 입술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를 끝으로 한동안 말이 없이 입술을 죄다 쥐어뜯고 있는걸 보니, 원격으로 박살이 나고 있는가보다. 어쩌려나. 위증의 벌을 받으려나 아님 그냥 고백을 하려나 우리 요령없는 차검사.
[아니이 타미. 왜 그러는데. 응? 그냥 얘기해주면 안대?]
[대답이나 해. 누구랑, 어디에 있냐고]
[화나써..?]
- 야 차현. 누구랑. 어디에 있냐고. 송선배가 니 가족이야??!!
테이블 코앞에 다달은 배타미에, 가경은 킥 웃으며 슬슬 자릴 비켜주고자 짐을 챙겼다. 굳이 이 아사리판에 껴야할 이유도 없고, 끼고 싶은 마음도 없고. 위증도, 그렇다고 사실적시도 하지 못한 현이 면전에서 털리는걸 굳이 지켜보며 그 체면을 더 떨어뜨릴 필요도 없으니까.
- 인사도 안하니?
- 안녕하십니까
- 응. 난 그럭저럭 안녕한데. 배변호사는 혈압이 곧 터질거 같네?
- 예-에! 보시다!시피! 덕분! 에요!
- 왜. 난 빼줘.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배변호사.
씩씩대는 쪼끄만 애가 휙 돌아보는데, 저러다 목에 담오는거 아닌가. 그런 한갓진 생각이나 하고 있던 가경은 그 동그랗고 큰 눈이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것을 보고선 부러 고갤 숙이고 시선을 피했다. 못본척 해주는게 그나마 여기서 타미를 배려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쯤 되는듯 했다. 아무래도 이거는 여파가 좀 크겠는데. 자존심도 강하고, 유연한듯 보여도 선이 뚜렷한 후배가 이렇게까지 화가 난데엔 자기의 역할도 꽤 있단 것은 무시할 수 없으니 괜스레 맘이 불편했다. 딱히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 둘이 얘기해. 가볼게
- 하. 됐습니다. 두분 좋은시간 보내세요. 남은 연휴도 잘 보내시고, 담번엔 법정에서 뵙죠.
칼처럼 돌아서는 타미가 향하는 곳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타미의 연수원 동기이자 가경에겐 후배인 검사가 두사람 몫의 가방을 든채로 서있다 어색한 목례를 보냈다. 벌떡 일어나 쫓으려던 현의 시선이 허둥이며 어쩔줄 모르는걸 등을 밀었다. 뭐하니 빨리 따라가지 않고. 뛰쳐나가듯이 발걸음에 속력을 올리는 현을 대신해 영수증을 들고 일어난 가경은, 저 먼쪽에서 옥신각신 하다 세차게 밀쳐져 휘청이는 기다란 인영을 보며 혀를 찼다. 중간에 껴서 커플 깨뜨렸다 소리 듣긴 싫은데.. 어깨가 푹쳐져 몇걸음을 비틀대다 눈을 가리는걸 보아하니 우나보다. 아이고 저걸 진짜 어째.
남은 연휴는 이틀, 아니 사실상 약 28시간 남짓. 영수증 드릴까요, 묻는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신 챙겨들었던 현의 가방을 추슬렀다. 골치 아픈 케이스가, 판결은 불보듯 뻔한데 그 형량과 사회적 혹은 관계적 복귀의 여부와 방식이 여간 어렵지 않을법한 민사 건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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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날다람쥐
스불재다 멍청한 차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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