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잤던 여자들

[외전] 룸메이트 (10)

'진짜 개 따먹고 싶다....'

술기운 때문인지 뛰어오르는 충동을 억제하기가 더욱 어려운 혜림이었다. 혜림은 더 이상 무엇이 이득일지 계산하기를 포기하고 본능이 이끄는대로 아무 말이나 떠들기 시작했다.

"너 여자친구가 이거 알면 개 화내겠는걸."

장난스럽지만 몽롱한 말투였다. 혜림의 목소리가 들리자 가람은 옷을 입던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혜림이 자신의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야! 보지 마!"

가람은 이러고 있기가 민망해서 다시 뒤를 돌았다. 빠른 손놀림으로 팬티를 끌어올리고 브레지어를 주워들었다.

"브라 하지 마. 어차피 여자끼린데."

혜림의 목소리가 가까웠다. 혜림은 언제 일어났는지 가람의 뒤에 서서 옷장을 붙잡고 있었다.

"노브라가 편하지 않아?"

가람이 다시 혜림 쪽을 쳐다보자 술냄새가 났다. 가람은 이정도로 취한 혜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혜림은 원래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고 아예 취한 날에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당황스러움과 민망함이 섞여 가람이 웃는 소리를 냈다.

"아하하, 그래도 니플 패치보단 이게 더 편해서...."

"난 상관 없는데."

말을 마친 혜림이 몸을 수그렸다. 혜림이 숨을 쉴 때마다 술 냄새가 훅훅 들어왔다. 어정쩡한 자세로 혜림을 올려다보게 된 가람이 혜림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혜림아,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자."

"난 상관 없다고. 너가 이렇게 다 벗고 있든 말든. 내 앞에서 무슨 짓을 하든 하나도 안 꼴린다고."

마지막 다섯 글자를 힘 주어 말한 혜림이었다. 혜림은 치닫는 성욕만큼 몸은 충실했지만 입으로 나오는 말만큼은 속마음과 정반대였다. 그게 혜림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억제였다.

한편 가람은 혜림의 말을 곧이 곧대로 이해했다.

'많이 취했네... 진짜 취해서 그런가보다.'

"그래. 나 옷 좀 입을게 이제."

혜림이 뚫어질 듯한 눈빛을 거두고 가람을 순순히 놓아주었다. 가람은 잠시 고민한 뒤 혜림의 말대로 맨 가슴에 니플 패치도 없이 훌렁 잠옷을 입었다.

"자. 됐지?"

"응...."

"자. 침대로 가자."

"응."

가람은 혜림을 눕히고 얼른 재울 작정이었다. 혜림이 외출복을 입고 있는 게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람이 혜림을 혜림의 침대에 앉혔다.

"자. 얼른 자. 너 취했어."

혜림은 술에 취해 나갔던 정신이 슬슬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아까 내가 뭐라고 말했더라. 안 꼴린다고?'

혜림이 무심코 가람의 손목을 잡았다.

"너도 앉아."

그리고 또 다시 생각나는대로 내뱉었다.

가람은 혜림이 또 고집 부리는구나 생각하며 마지못해 침대에 앉았다. 저번 키스 연습(?) 때와 정반대로 나란히 앉은 자세였다.

"나 너 안 좋아해."

"알아."

빠른 가람의 대답에 가슴이 욱신한 혜림이었지만 지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너 진짜 내 스타일 아니야."

"...? 알았어."

혜림이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궁금해지는 가람이었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람이 못 말리겠다는 듯 짧은 숨을 내쉬고 혜림의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혜림이 다시 가람을 붙잡고 가람을 원래 자리에 앉혔다.

"......!"

가람이 용건이 뭐냐는 표정으로 혜림을 홱 쳐다봤다. 혜림은 가람을 응시할 뿐이었다. 묘한 정적이 짧게 흘렀다. 

혜림이 가람에게 입술을 맞춘 건 그 다음의 일이었다. 혜림은 가람이 뒤로 도망가지 못하게 뒷통수를 붙잡았다. 퇴로가 막힌 가람은 영락 없이 혜림의 긴 뽀뽀를 받아줄 뿐이었다. 가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혜림을 떼내려 애썼지만 입맞춤은 몇 초간 지속됐다. 키스라고 하기엔 움직임도 없고, 오가는 타액도 없는 순수한 입술 박치기였다.

"나는 너랑 이렇게 해도 하나도 안 떨려."

짐승 같은 눈빛을 한 혜림이 말했다.

"너.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갑자기 혼란스러워진 가람이 대답했다. 심장은 주인 마음도 모르고 쿵쿵 뛰고 있었다. 샤워를 끝낸 뒤로 상기된 얼굴은 가라앉을 길이 보이지 않았다. 혜림처럼 술을 먹은 것도 아닌데 말이었다.

가람은 혜림의 뽀뽀를 받은 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람의 볼 언덕과 귓바퀴가 빨개진 걸 보니 혜림은 만족스러운 기분에 웃음을 절로 냈다. 혜림이 한층 더 능글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했다.

"너는 왜 떨려 해.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나 좋아해?-라고까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니라는 대답이 나올까봐 속으로 삼키는 혜림이었다.

"아니, 누가 친구끼리 키스를 하냐고!"

찔린 가람이 목소리를 벌컥 냈다.

"키스? 방금 한 건 키스 아닌데."

"아니...!"

"너 연습한다더니 연습한 게 겨우 이거야?"

가람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뭐라 따지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답답했다. 분명히 지금 뭔가 잘못 되고 있는데 어떻게 지적해야 할지 난감했다. 가람이 분노와 황당함 속을 떠돌고 있자 혜림이 발언권을 가져갔다.

"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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