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윤곽

박사x팬텀

by 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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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석병은 굉장히 무서운 병이라고들 한다. 장기를 결정화 하고 통증과 더불어 신체의 변형을 가하는 불치병으로 감염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뿐만이 아니라, 사망후의 시체는 오리지늄 분진을 퍼트려 주변에 해로움을 끼친다. 그 때문에 광석병에 걸린 존재는 사람들에게 기피받으며, 차별은 물론이고 감염자는 사람답게 사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광석병은 광장히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

팬텀은 마른 침을 삼켰다. 후두에 박힌 오리지늄 파편이 얇게 꿀렁인다. 팬텀은 손 끝으로 목을 한 번 쓰다듬고 그 위에 자리잡은 제어구에 작게 소스라쳤다. 신체의 일부처럼 붙어있건만 딱딱한 질감과 차가운 온도는 아직도 적응하기 힘들다. 손톱으로 약하게 표면을 긁던 팬텀은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사람들은 광석병과 감염자가 무섭다 무섭다 하지만 실로 무서운 존재는 사람이지 않을까.

재앙에 쫓겨 살아간다고들 하지만 사람은 생태계에서 최상의 포식자이며, 일시적이나마 재앙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겨낼 만큼 끈질기다. 거기다 더불어 오리지늄을 캐내 광석병을 퍼트리는 존재기도 하고, 사실 광석병의 병증에 관계없이 욕심과 탐욕으로 사람들을 부리고 괴롭히고 비스트 같이 살아가도록 강제하기도 한다. 동족의 죽음을 일종의... 예술의 가치를 부여하고 죽여버리는게 바로 사람이다.

그에 비하면 광석병은 그저 병이지.

팬텀은 목에 오리지늄 파편이 드러나지 않도록 옷깃을 여몄다. 비교적 감염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곳이라곤 하지만 드러냈다가 좋은 꼴을 당하진 못할테니까. 팬텀은 사람이 두려웠다. 그들의 차별이, 탐욕이, 시선이...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는 이유는 별다를 게 없다. 자신이 그들에게 해롭기도 하지만 그들도 자신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면 팬텀은 무대위를 떠올리게 되고 무대위의 자신은...

"주문하신 물건 나왔습니다."

팬텀은 재빨리 값을 치루고 내어진 물건을 집었다. 인사 정도는 해도 괜찮았을지도. 하지만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오는 것으로 팬텀은 약간의 교류를 할 기회를 놓쳐버렸고 아주 조금의 아쉬움과 함께 그림자 속에 녹아들었다.

팬텀은 사람이 무섭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이 그립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이 이룬 문명 없이는 이런 물건 하나 옷 하나 음식 하나도 제때 얻을 수가 없다. 혼자서 하는 것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코 문명의 곁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무엇보다도 팬텀을 곤란하게 만드는 건 무대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고 얼음 파편이 온 신경에 박히는 것 같지만, 그런 차가움을 달래고 데울 수 있는 건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데에 있었다. 팬텀은 사람의 옆에 있고 싶지만 사람이 무섭다. 차라리 그녀처럼 혼자서도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는 생존의 우아함이 자신에게도 있었더라면, 이렇게 두려움과 그리움에 떨며 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먀옹~."

팬텀은 어깨위의 그녀, 미스 크리스틴의 머리를 살짝 긁어주었다. 그녀에게서 퍼지는 따스한 체온이 팬텀을 덥히고 차갑게 식었던 몸을 달래준다. 그녀가 가볍게 팬텀의 이마를 콕 누른다.

"알았다."

팬텀은 그녀가 지시한 대로 방금 사온 물건을 조심스럽게 풀고 착용한다. 온 세상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고 흐리게 변했다. 그녀의 모습은 그저 검은 덩어리로만 보인다. 팬텀은 어색하게 눈을 깜박였다.

"매우웅."

"괜찮다"

그녀가 지나치게 흐린 시야를 걱정한다. 하지만 팬텀은 고개를 저었다. 팬텀은 암살자다 발걸음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기감으로 사물을 판단한다. 눈으로 보는 세상은 팬텀에게 있어서, 그저 하나의 감각일 뿐이었다. 윤곽만 잡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팬텀은 완전히 뭉개진 세상을 보고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사람이 두렵다면 사람을 보지않으면 된다. 그들의 시야가 두렵다면 그들의 시야를 느낄 수 없게 만들면 된다. 지금 눈 앞의 작은 유리 하나로 세상과 자신을 차단하는 막을 만들어 낸 팬텀은 기쁘게 거리로 나아갔다. 흔들림 하나 없는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행인을 비켜나간다.

보이지 않으면 무섭지 않다. 보이지 않으면 두려울 일도 없어.


박사는 자신의 옆에서 비서일을 하고 있는 팬텀을 천천히 관찰했다. 부쩍 팬텀이 안경을 쓰는 일이 늘어났다. 평상시에는 자주 숨어있거나 했는데 요즘에는 종종 식당에도 나오고 갑판에도 몸을 드러내곤 한다. 오퍼레이터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건, 안경을 썼다는 것. 팬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말없고 존재감이 약한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가는 것 같다.

"팬텀."

"무슨 일이지?"

박사의 호출에 돌아보는 팬텀의 눈에는 안경이 쓰여져 있다. 그리고 미간도 살짝 좁혀져 있고, 방금 분류한다고 읽던 서류는 코 앞까지 들고 있다. 전형적인 눈이 안보이는 사람의 행동이다. 박사는 말 없이 팬텀의 안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박사?"

의문가진 목소리가 박사를 부른다. 하지만 박사는 대답하는 대신 신중히 팬텀의 앞으로 나아간다.

"안경. 잘 안보이는거 같은데."

팬텀이 양손으로 양 옆의 안경 다리를 잡는다. 벗길까봐 경계 하는 걸까? 박사는 팬텀의 온몸을 훑어보고 다시금 그의 안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괜찮다."

"아니 괜찮지 않아."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은 시력을 떨어트리고 몸을 안좋게 만든다. 박사는 손을 내밀어 팬텀의 이마를 쓸었다. 흘러내리던 앞머리카락이 옆으로 치워지고 박사와 팬텀의 시선이 마주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박사는 팬텀의 동공이 텅 비어 흔들리는 걸 목도했다. 보고있지만, 보고있지 않다. 자신을 바라보지만, 바라보고 있지 않아. 초점이 맞지 않는 탓에 동공이 열렸다가 좁아지기를 반복한다. 조리개같이 반복하는 행동을 보고 박사는 팬텀이 쥐고 있는 안경다리를 잡았다.

"팬텀."

"..."

대답하는 대신 안경다리를 쥔 팬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박사는 팬텀의 손가락을 더듬어 보았다. 피하고 싶었다면 그럴 기회가 있었다. 쓰고 있는 안경을 보호하는 건 일반적인 사람이 할 법한 행동이지만 팬텀이 이런 행동을 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그는 지금 박사가 하는 행동을 정확하게 잡지 못하고 있다.

"원래 안경 안썼잖아."

박사는 안경다리를 잡은 팬텀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잡고 천천히 당겨 떼어냈다. 팬텀은 박사의 행동을 만류하지 못한다. 왜냐면... 그는 박사를 좋아하니까. 이렇게 버티는 게 이례적일 정도지. 소지와 약지를 떼어내고 중지와 검지를 잡는다. 결국 엄지까지 한 손가락 전체를 전부 안경다리에서 벗겨낸 박사는 천천히 팬텀의 손목을 쓰담었다. 축축하게 베이는 식은땀이 그의 긴장감을 그대로 전해준다. 박사는 그 손바닥을 부비고 그대로 손을 깍지 꼈다. 그리고 천천히 밀어 쇼파에 반쯤 올라타 그를 가둔다. 박사는 시선을 내려 팬텀의 시야가 어디에 닿는지 천천히 관찰했다. 본인의 손, 박사의 얼굴, 천장, 박사의 등 뒤, 본인의 손, 바닥, 박사의 몸.

박사의 방향으로 시선이 돌아 올 때만 시야가 분산된다. 그래.

"초점도 안맞는 안경 왜 샀어?"

"...아."

들켜서 낭패한 표정. 평상시라면 보이지 않을텐데. 박사는 고개를 숙여서 안경을 살짝 이로 물어보았다. 팬텀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몸을 당긴다.

"...박사."

"대답해 줘."

평소의 팬텀은 박사와의 진한 스킨십은 시도조차 못한다. 스스로 부끄러워하니까. 하지만 안경에 온통 신경이 쏠려서 지금 자신이 어떤 자세인지 박사가 자신을 어떻게 접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 해. 안경의 시야와 박사라는 특수성이 그의 판단을 어지럽히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박사는 자신의 위치를 십분 이용하기로 했다.

팬텀이 물러간 만큼 다시 다가가 그의 이마에 입술을 가볍게 올리고 쪽 입맞추고 그 다음은 관자놀이에 입술을 올린다. 천천히 입술로 그의 윤곽을 더듬다가 손이 떨어진 안경다리에 입술을 올리고 우물거렸다. 팬텀은 박사의 입술을 피해 조금씩 조금씩 반대 방향으로 밀려간다. 아직 안경을 잡은 반대쪽 손에는 힘이 빠지지 않았다. 박사는 그의 머리카락을 입술로 살살 헤집다가 결국 귀를 물었다. 털 없이 매끈한 귀. 에인션츠는 보통 동물의 귀로 청각을 다룬다. 그쪽이 좀더 예민하고 세밀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귀는 약간의 보조라고 할까. 안경 거치대에 가깝다고 할까. 그래서 촉각에 어색해하고 예민하다. 박사는 그런 팬텀의 귀를 마음껏 깨물었다. 흠짓거리던 팬텀의 어깨가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읏..."

"팬텀~."

후- 귓가로 바람을 불어넣고 구멍을 혀로 살살 쑤신다. 깍지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박사는 팬텀이 긴장하는 정도에 따라서 귀를 자극했다. 귀구멍을 혀로 쿡쿡 눌러 쑤시기도 하고 귓바퀴를 따라서 핥아보기도 하며 굇볼을 이로 누르고 살살 긁기까지 했다. 그리고 온통 정신이 귀로 팔려 팬텀이 안절부절못하는 그 순간. 이로 안경다리를 물고 낚아챈다. 놀란 손이 서로 떨어졌다.

"흠!"

만족스러운 소리와 함께 박사가 뒤로 물러선다. 순식간에 안경이 빼앗긴 팬텀이 눈을 깜박깜박 거린다. 아 금안 예쁘다. 반짝이는 보석처럼 움직이는 눈동자가 박사를 빤히 바라보더니 동공이 확 줄어든다. 박사는 서서 팬텀의 모습을 관망했다. 그가 순식간에 두려움에 떨고 세상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눈을 부비고 웅크리고 숨을 헐떡이는 그 모든 모습을 그저 한 발 물러나서 멀찍히 바라만 보았다.

"팬텀."

박사는 느지막히 안경을 뱉었다. 박사의 부름에도 웅크린 팬텀은 고개를 들지 않는다. 세상과 자신을 차단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장신의 몸을 어떻게든 소파에 우겨넣고 웅크려서 귀까지 눕힌 채 어둠에 몸을 묻힌다. 그 상태에서도 박사의 말에만 귀가 조금 조금 반응 했다.

"팬텀. 그렇게 세상이 두려워?"

팬텀의 귀가 순식간에 바짝 섰다. 솔직하군. 안경 탓이겠지. 타인에게 보여진다고 의식하지 못하는 몸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솔직하게 반응하게 되어있다. 박사의 순수한 의문에 팬텀은 목이 졸린 것처럼 쿨럭거린다.

"나.. 나는..."

박사의 통찰력이 원망스럽다. 팬텀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싹튼 박사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에 놀라 몸을 꽉 끌어안았다. 검게 물든 시야는 선명한 세상을 관찰하지 못하게 막는다. 빛 하나 틈 하나가 새어나올까 더 단단히 몸을 웅크린 팬텀은 다시금 침묵을 선택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난 너를 관찰할거야."

박사의 선고에 팬텀은 꿰뚫린것 처럼 통증을 느꼈다. 팬텀은 사람이 두렵다. 박사는 사람이다. 팬텀은 자신의 두려움이 박사에게도 일부 해당된다는 걸 안다. 팬텀은 스스로 박사가 싫다고 이야기 해야한다. 하지만 동시에 박사를 원하고 그리워하고 좋아한다. 팬텀은 스스로의 감정을 다듬어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방황했다. 감정에는 대본이 없었다. 하지만 그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박사의 시선은 지나치게 날카롭고 아프다. 팬텀이 보아왔던 그 어떤 평론가 보다도 매섭고 정확한 시야를 가지고 있다. 방금 전의 난도질 같은 시선에 다시금 노출되면 팬텀은 온몸이 벗겨진 것처럼 수치스러움을 참을 수 없게 될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사람이... 세상이... 무서워서."

"나도?"

박사가 다시금 이무렇지도 않게 질문을 던져온다. 팬텀은 답할 수가 없다.

"그렇구나."

그리고 박사는 그 침묵에서 답을 찾아내고야 만다. 팬텀은 아니라고 그보다 더 당신을 사랑한다고 두려움을 이기고 쫓을 정도로 그리워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어둠속에서? 이런 모습인데 그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을까? 선명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박사에 대한 감정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박사가 팬텀의 손을 잡고 당긴다. 팬텀은 박사의 행동을 막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누구나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어두운 시야에 갑자기 빛이 스며들어온다. 팬텀은 눈부심에 눈을 깜박이지도 못했다. 박사가 바짝 얼굴을 붙여왔기 때문이다.

"세상이 보기 싫어? 그럼 나를 봐."

팬텀의 세상에 박사가 가득 찬다. 팬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박사가 팬텀이 대답하지 않을 이유를 내어주었다. 말캉하게 부벼지는 입술. 바짝 붙은 얼굴은 초점이 맞지않아 흐리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 윤곽은 박사임이 틀림없어서... 팬텀은 어지럽게 겹쳐진 윤곽 사이의 몸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온통 흐리기만 했던 세상에서 당신만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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