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ulb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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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보다 가벼운 그 몸을 들어, 침대 위에 눕혔다. 형님은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순순히 매트리스에 파묻혀 주었다. 그 흰, 울긋불긋한 문신이 어깨 밑까지 내려온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빨아들였다. 은은한 살냄새와 향수, 그리고 쌉싸름한 담배 냄새가 비강 가득 퍼졌다. 시마노의 광견은 북슬북슬한 머리를 끌어안고 낮게 웃었다. 큭큭큭, 흉통을 울리는 웃음소리
아라카와 마사토가 마지막으로 눈을 뜬 것은 수술실 밖이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우선 놀란 것은 땅을 밟고 있다는 실감도, 숨을 쉬고 있다는 자각도 없는 것이었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펑펑 울고 있는 이치반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마사토는 실감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시기심이었다. 자신이라는 반쪽이 죽었는데
"이치" 아라카와 마사토의 목소리는 약간 먹먹했다. 당연히, 구멍이 뚫려있다고는 해도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게 되면 바로 앞에서 하는 말도 잘 안 들리게 되는 법이었다. 파란 죄수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채, 마사토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뭐냐, 그건" "뭐냐니" 이치반은 손에 든 스마트폰을 돌아보았다. 화면에는 하얀 생크림 케이크가 한가득 찍혀
"연말에 약속 있어?" 타타타타. 가늘게 떨리며 돌아가던 바퀴살이 멈추었다. "아아니, 완전 한가한데?" "그지이. 우리가 뭐 그렇지~" 목도리를 두른 여학생 여럿이 와글와글 휠체어 앞을 지나갔다, 춤추듯이 스텝을 밟으며. 전부 지나가고 나서야 바퀴는 천천히,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너는 약속 없냐?" 아래에서 불쑥 튀어나온 물음에, 휠체어를 밀던 이치
팡, 팡. 하고 갈비뼈를 두드리는 손바닥에 잠을 깨었다. 가슴 밑에서 새어 나오는 짜증과 졸음이 섞인 목소리. "비키라, 문디야. 비키라꼬" 그대로 잠들었던가. 사에지마는 순순히 몸을 틀어 마지마를 해방해줬다. 겨우 사에지마의 몸 밑에서 빠져나온 마지마는 들으란 듯이 헥헥거리며, 천장을 보고 투덜거렸다. "헤엑, 문디자슥. 깔려 디지는 줄 알았구마" "그래
후스마를 열자, 익숙한 장소가 나타났다. 해바라기의 식당. 환한 불빛 아래 커다란 식탁이 있고, 벽에는 원생들의 그림이 아기자기하게 붙어있다. 저 편에 있는 식당에서는 아스라이,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발을 내딛자 마른 나무장판이 삐걱인다. 슬리퍼를 신는 것이 좋다. 튀어나온 나뭇조각이 발에 박히는 것이 싫다면. 지금도 신고
달칵, 거실에 불이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데이~" 양복 상의를 벗어들고, 한 손에 하얀 상자를 든 마지마가 들어섰다. 홀로 지내는 LDK의 작은 거실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마지마는 작게 한숨을 푹 쉬었다. 빈 맥주캔과 안주 봉다리가 없는 걸 봐서, 최근에는 거의 집에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며칠 전에 자신이 치워놓고 간 모습 그대로
지옥같은 카무로에도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은 있다. 향하는, 이라고 했다. 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마을에서 가장 천국과 가까운 곳은 틀림없다. 극장가의 카무로 시어터 빌딩은, 이름이야말로 아무런 개성도 없어 보이지만, 여타 카무로의 건물들과 다른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다. 공중정원이다. 가운데에 작지만 화려한 분수가 있는 적당한 넓이의
멀뚱. 숟가락을 문 사에지마와 멸치조림을 깨작이고 있던 마지마, 두 사람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이고를 바라보았다. "뭐꼬, 니. 갑자기" "뭐 잘몬묵고 중2병이 도진기가" 두 어르신의 타박에, 다이고의 볼이 마치 입고 있는 잠옷의 곰돌이 무늬처럼 퉁퉁 부었다. 세 사람은 주말 아침, 은신처에서 식은 보존식을 먹는 중이었다. 안 깎은 수염이 거슬거슬하게
"저거, 에도 아이고?" "어디" "쩌어거. 에도성 맞나? 가봤담서, 하지메야는" "성까지는 가본 적 없어. 게다가 저렇게 작아서는, 모르지" "호옹, 그르나" "그래" "그르나..." 사이토와 오키타는 언덕 꼭대기에 나란히 선 채 잠시, 말이 없었다. 저 너머, 아득하게 멀리 보이는 작은 도시. 그야 가까이 다가가면 대도시의 면모가 비로소 드러나겠지만.
시마노 후토시는 죽었다. 넓은 식장 내에 울려퍼지는 독경 소리. 간간이 터지는, 숨죽여 우는 목소리. 울음소리도 하나둘 정도라면 유별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식은 동성회 직계 시마노 조 조장, 시마노 후토시의 장례다. 식장도 크고, 사람도 많다. 그러니 중이 한 소절을 읊을 때마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오열과, 꺽꺽거리는 소리는
그래서, 아라카와 마사토는 말했다. "질렸어" 청천벽력같은 그 말에, 식탁에 뜨거운 물을 부은 '지옥냄비맛! 파야소그パヤソグ'를 내려놓던 이치반이 돌아봤다. "예?" "질렸다,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야. 매일매일 삼시세끼 똑같은 편의점 식사잖아" "똑같지는 않잖아요? 게다가 저는 요리를 못하고..." "다 똑같은 편의점 음식이잖아! 말의 요지를 알아들
"아침부터 뭘 보나, 형제" 사에지마는 흘끔 시계를 쳐다봤다. 11시도 아침이라 할 수 있을까. "드라마데이. 뭐 할 게 있어야제" "그건 그렇제..." 말을 하다 말고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저혈압이었다. 게으른 것도 아닌 마지마가 언제나 늦게 일어나는 이유 말이다. 동성회가 건재할 적, 마지마조에는 이른 시간에 큰형님을 부르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 옆방에서 오야지를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입술에 긴 칼자국이 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에서 나가기 직전에 돌아서서 정중히 목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지방 고쿠도의 것 치고는 커다란 편인 응접실에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이래해가 문제 읎나? 4대" 두 사람만 남자마자 검은
경첩에 일어난 불그죽죽한 녹가루가 멧돌처럼 맞물려 긁히는 소리와 함께, 녹슨 철문이 닫혔다. 딸깍. 80년대식 똑딱이 스위치가 내려가는 소리. 얇은 거미줄이 얽힌 전등갓에 누런 전깃불이 들어왔다. 조명 아래, 밋밋한 모던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은 비루하게 생긴 남자. 병색이 완연했다. 바르르 떨리는 왼쪽 손목, 움푹하게 패인 볼살. 피골이 상접하다는 표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