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농놀

관계의 재정립

2023.02.22 / 슬램덩크 - 정대만 드림

정대만은 생각했다. 오늘은 메이와의 관계에 변화를 주고 싶다고.

그동안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진심을 담기엔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메이는 그 뒤로도 시합이 있으면, 연습이 있으면 대만을 보기 위해 경기장과 체육관을 수시로 방문했다. 그중에는 같이 집에 돌아가는 날도 있었고, 오늘 시합에서 대만이 얼마나 멋있었는지를 담은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농구 이외엔 아무 접점도 없다고 봐야겠지….”

 

더 이상 이런 어정쩡한 관계로 남고 싶지 않았다.

곧 윈터 컵이 돌아온다. 앞으로 계속 농구를 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농구에 집중해야만 하는데 자꾸 생각이 밖으로 빠진다. 충실히 몸을 움직일 때엔 괜찮은가 싶다가도, 움직이는 것을 멈추면 다시 머릿속에서 메이를 향한 생각이 자라났다.

 

오늘 시합 끝나고 집에 같이 가자 》

《 넹! 앞에 있을 게요!

 

혼자서도 갈 수 있다는 메이를 몇 번이고 우겨서 데려다줬던 덕일까.

알겠다는 답신에 괜히 주먹이 두 주먹이 꽉 쥐어졌다. 오늘을 위해서 인터넷에 수많은 고백 대사를 찾아보았다. 거절,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거절당하더라도 해야 할 일임이 분명했다. 비장하게 짐을 챙겨 나온 대만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아, 선배!”

 

활짝 웃는 낯의 메이를 보니 다시금 심장이 크게 울렸다.

괜히 목이 타, 침을 삼켜보아도 입안이 바짝 마르는 느낌에 작게 숨을 내뱉었다. 방금 끝난 시합에서의 긴장감보다 지금 이 순간의 긴장감이 더 컸다.

 

“가자.”

“네.”

 

학교에서와는 다른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었다. 전이라면 아마 이런 사소한 변화는 인지하지 못했을 자신이 마냥 신기했다. 작고 사소한 것조차 알고 싶고, 함께 나누고 싶었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지금 대만의 바람이었다.

좀 더 가까이에. 예를 들면, 손을 잡을 수 있다든지.

 

“매번 시합 때마다 사귀자고 하잖아 ”

“그으,렇죠.”

 

직접적으로 이 이야기를 화두에 올린 것은 꽤나 오랜만에 일이었다. 대만과 메이가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면서도 두 사람의 암묵적인 룰 같은 것으로, 메이는 시합 때 대만에게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고, 대만은 그에 대해 따로 답변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메이는 아마도 대만의 시합을 계속 보러 갈 수 있는 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배…, 사귀는 사람 생겼어요?”

“뭐어?! 아냐!”

 

깜짝 놀라 펄쩍 뛰는 대만에 메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고백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이 무색해졌다. 메이는 그동안 자신이 시합하는 대만에게 떨었던 주접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귓가가 뜨거워졌다.

 

“그럼, 문구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아…, 그런 거 아니야.”

“진짜요? 얼굴에 잘생김 붙은 거랑, 선배에게 느껴지는 완벽. 그런 거 해도 돼요?”

“…그래.”

 

대만은 지금 자신이 대체 뭘 위해 여기 있는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원래 이런 타입이었지. 메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에 대만은 웃음이 났다. 그래서 더 좋아진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날의 귀갓길,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위험하다고 팔을 잡았던 날.

대만은 처음으로 메이에게 닿았다. 계속 서로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것이 그날 선을 넘은 것이다. 자신의 손에 비해서 한없이 가는 팔목에 조금만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아 화들짝 놀라 손을 뗐었다.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와.”

 

한 걸음 자신의 곁에 붙은 메이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날려 대만의 팔을 스치며 너울거렸다. 대만은 그날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무슨 용기로 덥석 메이의 손을 잡았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선배, 반대편에 아무것도 안 와요.”

“응, 뒤에서도 올 수 있잖아.”

 

다만, 그날 잡았던 손의 감촉이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아서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그리하여 오늘 대만은 메이의 손을 잡고 싶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자신이 잡고 싶다는 이유로. 시합 중에는 항상 경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메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날이 많아졌다. 골대 림에 골이 들어가는 소리만큼이나 자신을 달아오르게 하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위험하니까 손, 잡자.”

“…네? 네.”

 

순순히 손을 내미는 메이에 대만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본인이 달라고 해놓고선 막상 내어주니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얘는 대체 자신의 뭘 믿고,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가도 아니, 그래도 자신이니깐 잡아주는 거 아닌가?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만은 몇 번 데려다준 메이의 집으로 가는 길을 능숙하게 찾았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과 함께 괜히 맞잡은 손에도 땀이 났다. 침묵 속에 메이의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대만은 작별의 인사 대신에 간신히 본심을 꺼내 보였다.

 

“나 하고 싶은 말 있어.”

 

이 정도면 아무리 눈치가 없는 메이라도 대만이 하고 싶은 말이 어떤 말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대만의 귓가만큼 메이도 귓가가 뜨거워졌다. 대만의 생각이 옳았다. 서로 사귈 생각 없이 유지되었던 선은 이미 넘었다.

 

“일단, 답변이 늦어서 미안….”

“…아, 아뇨. 뭐….”

 

대만이 부끄러워할수록 메이도 점점 더 부끄러워졌다. 긴장감에 맞잡은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이 메이에게도 느껴졌다. 선배도 긴장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한 메이는 귓가에서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자신만의 일이 아님을 눈치챘다. 그렇지만 역시나 대만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어서 어정쩡하게 턱 끝에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너만 좋다면, 사귀고 싶어. 핑계 대지 않고 네 손을 잡고 싶어.”

 

간신히 내뱉은 말은 인터넷에서 본 멋들어진 말들은 아니었지만, 가장 진정성 있는 말이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핑계 말고,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러고 싶으니까.

그래도 괜찮은 사이여서.

 

“…좋아요.”

 

작게 속삭이듯이 돌아온 대답에 대만은 메이의 손을 한번 꽉 쥐었다. 더 꽉 쥐면 부러질 것 같아서 힘을 조절하긴 했지만, 하얀 손에 옅은 붉은 자국이 남은 것 같기도 했다.

 

“아팠어?”

“아뇨, 조금 더 세게 잡으면 아플 것 같긴 해요.”

“…조심할게.”

 

메이는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 대만이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졌다. 자신보다 거의 30cm는 더 큰 남자가 귀엽게 느껴진다니 콩깍지가 씌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오히려 좋았다. 이 사람이 이렇게 보일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아, 지, 집! 집 들어가야지!”

“아, 그렇죠!”

 

메이의 집 앞에서 서로 손을 잡고, 마주 보고 있었다는 것에 다시금 열이 올랐다. 대만은 메이에게 얼른 들어가 보라며 머뭇거리며 메이의 손을 놓았다. 덥석, 다시 대만의 손을 잡은 메이가 말을 이어나갔다.

 

“들어가면 연락할게요. 오빠.”

“어, 어어, 어! 어!!”

 

메이가 맨션 안으로 들어가며 손을 흔들자 대만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사라져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대만은 스르륵 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대만의 귓가가 터질 것 같이 붉었다.

그날, 대만은 메이의 집에서 자신의 집까지 가는 최단시간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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