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어렵다
2023.03.04 / 슬램덩크 - 정대만 드림
정대만은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미친 것이 분명했다. 아니, 너무 좋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얼굴을 묻고 한숨을 내쉬다가,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하자 송태섭이 차게 식은 눈빛으로 그를 흘겨봤다.
“그렇게 쥐어뜯는다고 뽑히겠냐고요.”
“…시끄러워.”
“여친 밖에서 기다리는데, 안 가요?”
대만은 벌떡 자리에 일어섰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오늘은 시합도 잘했고, 공도 손에 잘 감기는 것이 여러모로 운이 좋은 날인 것 같았다. 그래서 시합이 끝나고 활짝 웃는 메이를 보는 순간 도저히 입을 맞추지 않고선 참을 수가 없었다.
가벼운 입맞춤일 뿐이었지만,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관계에 처음으로 한 입맞춤이 시합 직후, 수많은 관중이 있는 경기장이라니 무드가 너무 없었던 것이 아닐까 후회가 막심했다.
“그렇게 후회할 시간에 그냥 빨리 가지.”
“아, 간다!! 간다고!!”
대만은 냅다 가방을 들고 복도를 가로질렀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났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이 사랑의 힘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이런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된 자신이 신기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경기장에 혼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메이를 보면 좀 더 빨리 나오지 않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많이 기다렸어?”
“네, 다리 아파요.”
“어…, 미안, 더 빨리 올걸.”
“농담이에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메이에 대만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란히 경기장을 빠져나와 걸어가는 동안 대만은 생각이 많았다. 잡은 손에서 땀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사과해야 할지 뻔뻔하게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아까, 혹시… 음, 기분…나빴어?”
“…언제요?”
“내가, 그, 사람들 많은 곳에서 뽀, 뽀뽀했잖아.”
“아, 좋았어요.”
대만은 순간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왜 안 오냐는 듯이 돌아보는 메이에 대만은 귓가가 달아올랐다. 아니, 얘는 왜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 얽힌 손가락에 괜히 힘이 들어가 대만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모르게 되었다.
“안 가요?”
“…가야지.”
자기만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건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메이에 대만은 짧은 숨을 내뱉었다. 뽀뽀가 자신이 처음이 아닌가? 꼬리의 꼬리를 물고 길어지는 생각에 대만은 꿀꺽 침을 삼켰다.
“오빠.”
“어? 어!”
“집 다 왔어요.”
대만은 얽혀있는 손을 한 번, 메이가 사는 맨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벌써 헤어질 시간이라니 헤어지기 아쉬웠다. 자신이 바보같이 혼자 고민하는 사이에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버렸다는 것이 아쉽기 짝이 없었다.
“아까 그것 때문에 그렇게 고민이에요?”
“…네가 싫었을까 봐.”
“음, 좋았는데….”
메이는 대만이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평소에도 계속 그랬으면 좀 때와 장소를 가리자고 했을 것 같지만…. 오늘은 시합도 잘 풀렸고, 자신도 기뻐하는 대만을 보는 것이 좋았다.
진하게 숨을 섞은 것도 아니고, 두 뺨을 감싸 쥐고 가볍게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진 정도로는 그냥 세레머니 정도로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약간 부끄럽기는 했지만, 사귀는 사이인데 뽀뽀 정도는….
“아!”
“왜, 왜?”
“숙여봐요.”
아까 대만이 했던 것처럼 대만의 두 뺨을 감싸 쥔 메이의 손길을 따라 대만이 허리를 숙였다. 가볍게 메이의 입술이 대만의 입술에 닿았다 떨어졌다. 그리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다시금 입술이 맞닿았다.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가 숨을 내뱉는 순간 서로의 혀가 닿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움직임이 만연해서 웃음이 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순서였다. 살짝 가빠진 호흡과 터져버린 웃음에 대만이 어깨에 힘을 뺐다. 타인의 혀가 입 안에 들어올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느낌이 생경했다.
“어때요?”
“…한 번만 더 해보자.”
대만의 말에 메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시금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대만이 아까보다 편안한 자세를 찾아 메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입천장을 훑고 움직이는 혀의 감각이 어쩐지 등허리를 찌르르 울리는 것만 같았다.
여기저기 닿을 수 있는 곳은 다 스친 것 같아, 대만이 느끼기엔 메이의 입 안이 너무 작았다. 눈을 감고 숨결이 섞이니 감각이 더 예민해졌다. 쿵쾅거리면서 뛰는 심장과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섞이는 소리가 어쩐지 야하게 들렸다. 상대적으로 작은 혀가 입천장을 스치는 순간 대만은 묘한 감각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나 다리 풀린 것 같아.”
중얼거린 대만에 메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촉촉하게 젖은 메이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훔친 대만이 자기 입술은 손등으로 대충 문질러 닦아냈다. 약간 상기된 얼굴과 이제야 들리는 주변의 소음에 대만이 메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부모님 안 지나가셨지? 지금 집에 계셔?”
“인사드리고 가게요?”
“…그래도 되나?”
“다음에요. 오늘은 시합 있었잖아요.”
대만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보다 훨씬 큰 대만이 마냥 귀엽게 느껴져서 메이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연상이랑 사귀는데, 왜 연하랑 만나는 거 같지. 그게 나쁜 기분은 아니라 오히려 좋았다.
“집에 가서 푹 쉬어요.”
“응, 오늘도 응원하러 와줘서 고마웠어.”
“저도요.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살짝 뺨에 입을 맞춘 메이가 손을 흔들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대만은 자리를 떠났다. 시합의 피로감은커녕 발걸음이 가볍기 짝이 없어서 힘차게 걸어가다가, 조금 전의 키스를 떠올리면 그 생경한 감각이 떠올라 손바닥에 얼굴을 묻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오늘 잠은 다 잔 것 같다고, 대만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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