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덷무대해

두 사람의 시간

2021.02.23 / 앙상블 스타즈 - 사쿠마 레이 드림

레이는 얌전히 있으라는 메이의 말에 몸을 바로 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직 정신이 깨어나지 않은 탓에 몸에 기운이 없는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가 의자에 앉아있는 이유는 순전히 그의 뒤에 서 있는 메이 탓이었다.

 

“역시 빨간색이 제일 예쁜 것 같기도 하고.”

 

메이는 신중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머리끈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고 있었다. 언젠가 머리를 묶어보게 해달라던 말을 실천할 때가 되었다며 메이는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레이의 관을 두드렸다.

 

“그렇게 즐겁누?”

 

“네! 전부터 묶어보고 싶었거든요!”

 

애초에 거절할 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저렇게 신이 난 얼굴을 하면 더더욱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싶어져서 레이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는 제법 긴 머리카락을 유지하고 있었던 탓에 머리에 신경 쓰는 것이 많았다.

 

“선배, 머릿결 엄청 부드러워요.”

 

메이는 윤기 나는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손을 빗처럼 세워, 머리카락을 끌어모으니 더욱더 부드러운 것이 느껴졌다. 레이는 목덜미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이 사라지면서 메이의 손가락이 목을 스쳤다. 남의 손이 잘 닿을 일이 없는 곳이어서 그런지 레이는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짜잔! 리본 완전 귀엽죠!”

 

그런 레이를 알 리가 없는 메이는 끈에 달린 리본이 가운데에 오게 정리하고선 사진을 찍어댔다. 예쁘게 잘 나오지 않았냐며 핸드폰을 내미는 터라 레이는 메이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정면 사진은 필요 없누?”

 

“선배는 다 알고서 말하는 거죠! 당연히 필요하죠!”

 

냉큼 핸드폰을 뺏어 든 메이가 카메라 앱을 켜는 것에 레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또 메이가 눈치 없이 자신의 독사진을 찍기 전에 레이는 메이의 허리를 감싸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앗…!”

 

“아가씨가 본인의 얼굴만 좋아하는 것 같아 슬프우이.”

 

살짝 눈을 내리깔고 씁쓸하다는 듯이 말하는 레이에 메이가 냉큼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도 메이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이며 레이를 살폈다.

 

“아니, 솔직히 선배 얼굴 쩔잖아요!”

 

“…그런 표현은 또 어디서 배웠누.”

 

“딴 데도 좋아요! 얼굴이 제일 눈에 띄어서 그렇지!”

 

솔직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레이는 메이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며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췄다. 레이는 솔직한 메이가 무척이나 좋았다.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그를 향한 호의가 생각보다 더 기뻤던 탓이었다.

 

“선배…?”

 

메이는 고개를 들지 않는 레이에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마 기운이 빠진 것이라고 오해받는 모양이었지만, 그것조차도 레이는 나쁘지 않았다.

 

“음…, 선배의 좋은 점은 얼굴 말고도 많으니까….”

 

“어디가 제일 좋누?”

 

“눈이요!”

 

레이가 고개를 들자 새파란 눈동자와 붉은 눈동자가 마주쳤다.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자 어쩐지 신기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을 들게 해 메이는 조금 더 얼굴을 가까이했다.

 

“선배가 날 바라보는 눈을 보는 게 좋아요.”

 

“본인도 아가씨의 눈이 참 좋네.”

 

마치 손을 뻗어 쥘 수 있는 하늘 같지 않은가.

태양을 머금은 이가 자신의 곁에 있어 준다니, 온전히 자신을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은 그를 들뜨게 했다. 서로의 눈을 한참이고 바라보던 두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사진 찍어요! 원래 남는 건 사진이니까! 매일매일 선배가 셀카 찍어서 보내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대가로 본인도 아가씨의 사진을 받아야겠구먼.”

 

메이가 핸드폰을 집어 들어 자연스럽게 화면을 터치했다.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는 레이에 비하면 거의 전문가 수준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아가씨는 정말, 기계를 좋아하는구먼.”

 

“음…, 재밌잖아요!”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레이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된 핸드폰의 카메라를 응시했다. 제법 애정을 과시하는 자세였으나 메이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메이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 어깨에 턱을 올려놓은 아주 밀착된 자세가 핸드폰 액정에 담겼다.

 

“보내줄까요?”

 

“배경화면으로도 해주면 좋겠구먼.”

 

메이는 웃음을 터트리며 레이의 핸드폰을 받아다가 배경화면을 설정하고선 돌려주었다. 제일 하고 싶었던 일도 했으니, 이제 두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차례였다.

 

“선배, 손 좀.”

 

순순히 손을 내어주는 레이에 메이가 그 손을 덥석 쥐었다. 레이에 비하면 작은 손이 그의 손을 마구 주물러댔다.

 

“…아가씨?”

 

“선배 손은 깨물어보고 싶게 생겼어요.”

 

“잡아먹지만 말아 주게.”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손가락 여기저기를 만지고 주무르는 부드러운 손길에 레이는 짧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메이의 안에서 레이에 대한 경계심은 아예 사라진 것인지 거침없는 스킨십으로 그를 흔들어놓기 바빴다. 본인이 자각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선배, 이거 뭐라고 쓰는지 맞혀 봐요!”

 

레이는 살짝 입을 다물고 메이가 그리는 획에 집중했다.

부드러운 손가락이 단단한 손바닥 위를 가로지르고 레이는 그 손길에 가슴 언저리가 간지러워졌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아주 사랑스러운 단어였다.

 

“다나카 메이…, 이제 아가씨 건가?”

 

“아! 그것도 괜찮네요!”

 

레이는 자신의 손바닥에 남은 메이의 감촉을 곱씹었다. 연인들의 달콤한 말을 적을 줄 알았더니 본인의 이름을 적어 소유권을 주장할 줄이야. 레이는 다른 수만 가지의 말보다 그 이름이 가장 달았다.

 

“본인은 아가씨의 것이 부디,”

 

삼킬 수 있으면 전부 삼키고 싶을 정도로.

레이는 메이의 손을 깍지 끼어 잡았다. 희고 부드러운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선 메이가 좋다고 했던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항상 곁에 있어 주게.”

 

메이의 귓가가 화끈 달아올랐다.

정말 저런 눈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은 반칙이었다. 사쿠마 레이의 존재 자체가 반칙이겠지만, 그걸 본인이 잘 알고 쓰는 것 또한 반칙이 분명했다. 잘 알고 있는 만큼, 잘 쓰는 것이니 메이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그러면, 음, 반지부터 사러 갈까요?”

 

“식은 아직 빠르지 않누?”

 

“청혼 아니거든요!”

 

레이는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곧 있으면 자신은 이 학교를 떠나게 된다. 내년부터는 프로듀서과도 나눠게 될 테니 지금처럼 코가와 같은 반도 아니게 되겠지. 그러니 메이의 말처럼 반지 같은 증표를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도 언데드의 프로듀서로 있어 줄 겐가?”

 

“그야 당연하죠! 언데드가 무대에서 멋있는 한 절대로요!”

 

“계속해서 멋있지 않으면 안 되겠구먼.”

 

“그렇지만, 무대 위의 언데드는 언제나 멋있으니까요!”

 

걱정할 거 하나 없다며 지금처럼 무대에서 멋있으면 된다고 활짝 웃는 낯으로 덧붙이는 메이에게 레이는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손가락에 금빛 타래가 얽혀들었다.

 

“아가씨가 그리는 미래가 궁금하구먼.”

 

“음, 일단은….”

 

쪽, 하고 뺨에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손가락에 걸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레이는 그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먼 미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당장 한 치 앞의 미래조차 예상할 수 없던 것을.

 

“반대쪽도 할까요?”

 

“가운데는 어떻누.”

 

두 사람의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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