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개새끼

김성식, 정은창 / 성식은창 / 스왑연반

"김성식. “

남자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겨우 세 음절 밖에 되지 않은 이름을 내뱉는 목소리가 한 없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김성식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눕힌 남자를 내려다봤다. 눈이 마주친다.

“예.”

대답은 간결하고 가벼웠다. 이름을 불렀으니 대답한다. 그 뿐이었다. 남자는 손을 뻗어 김성식의 머리칼을 쥐었다. 결이 좋지도, 그렇다고 색이 고운 것도 아닌 것이 뭐가 재미있는지 그는 검지 끝으로 가볍게 꼬았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김성식은 그를 향해 고개를 더 숙였다. 마치 더 편하게 만지라는 것처럼.

"넌, 이 정은창의 개새끼지. 그렇지."

너는, 내 편이지. 되묻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는 어조였다. 정은창남자는 나른하게 눈꺼풀을 깜빡였다. 김성식의 머리칼을 만지는 손길에는 진득한 애정愛情이 묻어있었다. 그게 김성식은 참 싫었다. 지독하게도 끔찍했고, 더러웠다. 하지만 이 지독한 노인네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예.”

아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정은창의 비위를 맞추며 그가 바라는 대답을 소리로 내뱉는 일 뿐이었다. 그래서 김성식은 오늘도 진실이 아니라 거짓을 진실 마냥 덤덤하게 돌려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처지였다.

울산 조직을 팔고 서울로 상경해서는 또다시 경찰의 손을 잡아, 일부러 조직 깊이 똬리를 튼 뱀 새끼. 그게 바로 김성식이었다. 흔히 말하는 짭새의 정보원이었고 그와 동시에 선진화파의 2인자인 정은창이 지독하게도 아껴 하는 개새끼, 김성식이기도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과거의 이야기를 길게 해봤자 재미가 없어질 뿐이었다. 지긋지긋한 이야기는 언제나 반복이었고 되새겨 봤자 의미도 없었다. 무엇보다.

“무슨 생각해. 김성식.”

귀신 같이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고 정은창이 제 뺨을 감싸 쥐었다. 김성식은 다시 정은창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안 합니다.”

짙고 어두운 것이 바닥에서부터 자신을 옭아매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감겨 있는가.

“다른 생각 하지 마. 질투 나니까.”

부드러운 문장이 느리게 이어지는 것을 귀에 담으면 저를 옭아매던 것은 다리를 타고 서서히 올라왔다. 온 몸이 잠겨 들었다. 김성식은 고개를 숙였다.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숨을 섞었다.

“…응.”

투정을 부리듯 정은창은 손가락에 김성식의 머리칼을 꼬았다. 정은창의 머리칼이 짙고 어두우면 김성식의 머리칼은 유독 밝고 가늘었다. 곱고 얇은 실을 얽어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은 촉감이었다. 숨이 떨어지면 둘 사이의 틈은 손가락 하나만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금방이라도 다시 입술이 맞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리에서 서로 시선을 맞췄다.

“너는 나를 배신하면 안 돼.”

그렇게 정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던 정은창이 어쩌다가 김성식에게 정을 주어 자신을 놓지 말라며 속삭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신도 무너지지 마.”

그에 김성식도 기꺼이 속삭여줬다. 김성식의 마른 손가락이 정은창의 목선을 쓸었다. 누군가의 손길을 쉽게 허락지 않는 정은창이 유일하게 허락하는 손길이었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네 숨은 서서히 멎을 텐데.

그래, 정은창.

당신도… 무너지면 안됐다. 그를 무너트리는 것은 오로지 김성식, 자신뿐이어야 했다. 타인이어선 안됐다. 이 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아니면 안됐다. 이미 오래전부터 거짓만 내어주던 입은 이제 거짓이 아니면 정은창에게 진실을 내어주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김성식 뿐만이 아니었다. 정은창에게도 이미 검고 진득한 것이 옭아매기 시작했다. 쉽게 끊을 수 없는 그런… 악연과도 같은 것.

“도진형님도, 어쩌다 너를 그렇게 신뢰하게 되었을까.”

눈꺼풀이 느리게 열렸다가 닫히기를, 유독 오늘따라 말이 많은 정은창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제대로 짐작할 수 없었다. 불안, 초조, 아니면 기쁨?…알 수 없다.

내일이면 황도진을 몰아내고, 정은창이 일인자의 자리에 앉게 되고. …그의 아래 자신이 있게 될 것이었다. 모두 김성식이 바라던 시나리오였다. 그렇지. 김성식이 바라는 대로. 본래 정은창은 권력욕이 없었고 일인자가 되고 싶어 쿠데타 따위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끔은 네가 무서워.”

김성식이 원했기 때문에….

당신이 가장 위의 자리에 오르길 바란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신뢰하던 형님을 밀어내려고 자 하는 것이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정은창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스운 이야기였다. 정은창도 알고 있었다. 정은창에게 감긴 것이 김성식일지, 김성식에게 감긴 것이 정은창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정은창은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서워?”

내 애정을… 알잖아.

정은창이 웃음을 지었다.

그 푸른빛이 맴도는 눈동자에는 김성식만이 담겼다. 가을빛이 맴도는 눈동자에는 정은창이 담겼다. 모든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솟기 전,

…어쩌면 앞으로 오지 않을 짧은 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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