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 罪惡
배준혁, 장지연 / 준혁지연
신을 등진 자는 성모 마리아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춘다. 죄인에게도 석상은 변함없이 모든 것을 포용 할 듯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본다. 그 시선 아래, 손안에 쥔 십자가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대신 죄인을 찌른다. 피는 그를 더럽히고, 바닥을 더럽힌다.
배준혁은 눈을 감았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내리쬐는 햇볕에 빛난다. 뜨겁다. 그 열기는 또 하나의 형벌이었다.
"… … 주, 준혁씨."
떨리는 목소리와, 불안한 눈빛.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굳게 놓지 않던 그 여린 손. 배준혁은 감히 그것을 뿌리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손을 굳건히 잡아선, 자신의 품에 그녀를 끌어안았다. 헉, 하고 들이키는 숨소리는 작았고, 그마저도 놓칠 수 없어서 더욱 귀를 기울였다.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그녀의 떨림을 서서히 진정시킨다. 장지연은 자신의 귓가에 닿는 소리를 들었다. 두근, 두근……. 이것은 그녀의 심장 소리가 아니었다. 불규칙하게 뛰는 소리는 그의 소리였다.
장지연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팔을 뻗어 그를 감싸 안았다. 배준혁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더 품에 가두었다. 두 개의 심장이 맞닿아 서서히 같은 속도가 된다. 빠르게 뛰었던 소리가 하나가 될 무렵이면, 말하지 않아도 두사람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 각자의 눈동자에 서로가 담긴다.
"괜, 괜찮…"
"네, 괜찮습니다."
무엇이던, 전부, 괜찮을 겁니다. 배준혁은 그녀에게 속삭였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그저 자신에게 휘말린 사람으로.
"안, 돼요. …준, 혁씨에게만…"
배준혁은 고개를 기울여 소리를 내며 벌어진 그녀의 입술 위로 입을 맞췄다. 부드럽게 맞닿았다 떨어지는 입술 사이로 숨이 섞였다. 그는 그녀의 어깨로 고개를 내렸다.
"아……."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떨린다. 그 뒤로 이어지는 소리는 누군가의 것이라 할 수 없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단추를 풀어내고, 겉옷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밀리는 소리, 다시금 떨리는 손 위로 입을 맞춘다. 어두운 시야 속에서도 서로의 모습은 가려지는 것 없이 선명하다.
손바닥에 닿는 살결은 부드럽다. 흉 없이 타인의 침범이 닿은 적 없는 곳에 감히 죄인의 손이 닿아 그를 더럽힌다. 이 순간만큼은 신을 뒤로하고 그들 안의 서로를 탐한다. 아프면, 이야길. …괘,괜찮아,요, 아파, 도… 맞잡은 손은 따듯한 온기를 전달하고, 이따금 떨리는 손길마저도 사랑스럽다. 숨이 섞이다가도 시선이 마주치면 누구랄 것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밤만큼은, 어떤 죄책감이든 버려둘 것이다.
새벽이 물들고, 더욱 지나가는 밤 속에서 그들의 새벽은 하늘의 시선을 가리고,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엔 이 관계의 끝을 떠올리고, 숨을 멈춘다. 마주하는 시선, 맞잡은 손. 똑같아진 체온과 심장박동 소리. 같은 이불 아래에서 다가올 현실을 애써 뒤로 미룬다.
"지연씨."
배준혁은 그녀에게 감히 속삭인다. 죄로 덮인 말. 사랑합니다. 그 말을 감히 그녀에게 내뱉는다. 죄를 꺼내 담고, 그녀는 기꺼이 입을 벌려 그 속삭임을 삼킨다. 네, 저도…. 그의 사랑을 삼키고 목아래로 넘겨 뱃속으로 모으고, 또 모아서 삼킨다. 사랑해요. 그가 내뱉은 죄는 그녀에겐 풍족스런 사랑이었으니.
"아아…."
죄는 사랑이요, 사랑은 죄이니.
죄가 된 그림자는 배준혁의 목을 감싸쥔다. 추락하는 장지연의 그림자를 부여잡고, 흘리지 못하는 눈물 대신 그를 끌어안으며.
아. 결국은 이 사랑이 내 목을 조른다.
사랑은 악마이며 불이며 천국이며 지옥이다. 쾌락과 고통, 슬픔과 후회가 거기에 함께 살고 있다.
-반 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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