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
3회차 루트의 심도2 *드림있음*
저는 워치포인트-알파 ~레드 건 시점~ 소재가 너무 좋은 나머지 사골을 끓입니다. thankyou.
“야… 진짜 미쳤냐? 그 새끼가 막내랑, 부대보다 더 중요해?!”
“레드가 어리다고 종종 까먹나본데 막내는 너야, G9. 그리고 누가 보면 네 출신도 잊은 줄 알겠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미시간 총대장님께선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구아수 선배, 저희는 돌아가야 합니다!”
“됐거든, 미시간이 뒈져버렸으니 내가 이딴 개 같은 부대에 묶여있을 이유 따윈 없어.”
“이구아수 선배…!”
이구아수가 미시간을 욕하자, 드물게도 레드의 미간에 핏발이 섰다. 총대장이 죽은 상황에도 그는 여느 때처럼 한 치의 존중도 보내지 않는다. 선임만 아니었더라면,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주먹을 뻗었을 터였다.
툭, 이구아수가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군번줄을 가볍게 잡아 뜯어 끊어버리고서는 그대로 바닥에 내던져버렸다. 순식간에 인식표에서 금속 쪼가리로 전락한 그것은, 마찬가지로 금속으로 이루어진 바닥과 맞닿아 짧게 불꽃을 튀겼다.
“난 내가 뒈지든, 그 자식이 뒈지든 간에 그 들개 새끼를 봐야겠어. 그러니 너희는 그냥 그 군번줄이나 들고 나가서 내가 뒈져버렸다고 발람 본사에 신고하든가 해. 어차피 이미 탈영한 몸이니까—”
짜악―, 날카로운 소리가 대심도 내부에 울려 퍼졌다. 아무르도 엄연한 강화 인간이다. 매서운 손날에 그대로 뺨을 내어 준 이구아수는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비틀거리지도 않은 채 묵묵히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레드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해 아무르를 말리려 했으나, 다행히도 손길이 두 번째로 뻗어나가는 일은 없었다.
“이 씨발…새끼야…! 네가 멋대로 튀어 나가서 죽은 전력이 몇인진 알아?! 대체 레이븐 그 새끼가 뭐라고 이 난리를 처 피우고 앉았는데…!!”
“넌 아무 것도 몰라!!!”
그는 크게 소리 질렀다가, 곧바로 그것이 실수였다는 듯 황급히 입을 닫았다.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질린 듯한 눈초리. 본심이 아니라고 변명을 할까. 아니, 이것이 본심이다. 여전히 할 말이 남은 채였다. 이구아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씨발…, 넌, 너희는 아무 것도 몰라. 코랄 대체 기술로 수술받은 8세대나, 아예 강화 인간 수술을 받지 않은 녀석이나… 너희는 이명도, 머리 속에 다른 사람이 있는 감각도 모르고, 코랄이 지르는 비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다못해 이 빌어먹을 루비콘의 하늘이 무슨 색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어…! 애초에 씨발, 너희는 나와 사는 세상이 다르다고…!!”
씹어뱉듯이 토해낸 변명, 그는 이것이 구차한 한탄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노을이라도 진 듯 항상 붉은 코랄 빛 하늘. 반짝거리며 섬망을 일으키는 코랄의 파도. 그것들과 같은 증상을 일으키는 들개 자식과 그딴 것에 집착하는 이해가 가지 않는 자신.
“…하, C4-7―”
“―그 따위로 부르지 마!!”
일련번호의 호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구아수가 소리 지르며 그녀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더 빨랐다.
“방금 ‘G5 이구아수’라는 이름을 버린 게 누군데?”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고 일부러 긁어댔다는 듯, 아무르의 입꼬리는 비틀려있었다. 이구아수에게 있어 그를 한낱 강화 인간 따위로 취급하는 건 역린이나 다름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4세대 강화 인간이라는 정체성에 매여있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지극히 잘 아는 사실이다.
“이해자라도 찾겠다는 거야? 같은 4세대니까 그 자식은 널 이해할 수 있다고? 그 새끼가 해온 짓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이구아수, 레이븐이 기술 연구 도시 내에서 이동합니다.]
“으윽—,”
이구아수는 갑작스런 통신에 신음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더 이상 낭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제 옷자락을 붙잡고 버티듯 외투에 붙은 엠블럼 와펜 위를 손끝으로 긁다가, 이내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천 조각째로 찢어내어 아무르에게 던지듯이 건넸다. 그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이다. 앞으로의 일에 G5라는 수식어는 불필요했다.
“…이건 유품쯤으로 알고 가져. 어차피 수습은 못 할 테니까.”
“야, 이구아수…!”
그렇게 말한 이구아수는 그대로 도망치듯 헤드브링어의 코어를 열고 콕핏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구아수—!!”
시스템 발진, 그리고 이어서 전투 모드 기동. 탈출 중 맞닥뜨릴 적을 상대하기 위해 정비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이구아수는 그대로 헤드 브링어를 타고 전장이 아닌 더 깊은 곳으로 날았다. 어설트 부스터가 길게 남기는 연료 자국이 깊은 심도 너머로 사라지고 나서,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군번줄을 주워 그대로 목에 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씨발 새끼… 지도 그딴 새끼한테는 가망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손에 쥐여진 헤드 브링어의 엠블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그녀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서 말했다.
“…G6 레드, 우군기 하나가 이탈했으니 작전에 수정이 필요하다.”
“…동의한다, G9 아무르.”
레드한테 괜히 치정극 사이에 끼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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