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싫] 필링필링

외전5. 그가 작아진다면?

행복만 남기를

망상요람 by Z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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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하늘이 맑은 하루였다.

“타냐 님, 이제 커피 마시고 뭐 해요?”

“음- 오늘 일정은 비워뒀어요. 아마 서류 작업만 좀 하면 될 거예요.”

“와, 웬일이에요?”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다들 쉬라고 유난이라서요.”

볼을 긁적였다. 그렇게 무리한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어쩌다 그리 보였나 싶다. 그래도 다들 걱정해주는 건 기분이 나쁘지 않기도 하고…. 하지만 오늘처럼 시간을 빼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매일 평소처럼 일하는 게 낫지. 하루 푹 쉬겠다고 매일 과로하는 건 정말 지옥 같았다. 심지어 최근에 사이비 종교에서 구해온 실험 피해자의 초기 상담을 맡아서인지, 안 그래도 없던 시간이 더욱 줄어들었다.

아, 그래서 그런지 너무 졸리기도 했다. 아침에 잔업을 끝마치고 롤링핀 사원들의 상담을 하는 동안에도 집중하느라 힘들었다. 눈이 꾸벅꾸벅 감겨, 감겨… 감겨들어서….

“피곤하세요, 타냐 님?”

“으응, 조금 그러네요.”

“그럼 의료실 남는 침대 위에서 주무세요. 여기서 엎드려 자면 몸 배겨요.”

“네에….”

다행히, 그대로 잠들기 전에 경호하느라 곁에 있어 주시던 쉬라 씨가 나를 옮겨 주었다. 작은 몸으로 힘이 정말 세시구나…. 감탄스러웠다.

“읏차, 이제 여기서 주무세요.”

“매일 감사해요, 쉬라 씨….”

“아니에요. 그럼 전 보고 다녀올게요?”

네에, 힘내세요….

말을 제대로 끝맺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난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냐쌤, 타냐쌤!”

“…으으응?”

갑자기 깨워짐과 동시에 북적이는 소리가 났다. 의료실에 갑자기 환자가 들어오기라도 했나? 침대가 부족해서 그런가? 그렇다면 바로 비켜줘야지. 하지만 일어나기 싫은데.

-싫다고?

“다시 자려고 하는 거 봐, 너무 귀엽다….”

“타냐쌤이 어릴 때 이랬다는 거지?”

“깨물어주고 싶다.”

“그건 안되지. 타냐쌤 울지도 몰라.”

벌떡-

아니, 싫다고? 스스로 할 리가 없는 어리광 섞인 생각과 행동에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묘하게 머리가 가벼웠다. 옷이 무거운 것 같기도, 그리고 묘하게 커서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운은 아예 좁은 어깨 위에서 흘러내리고 있었고, 스푼의 여사원들이 그런 나를 빙 둘러싸고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웅?”

“‘웅?’이래, 너무 귀여워!!”

“로나, 누가 먼저 만지래! 나도 볼 만지고 싶단 말이야!!”

“타냐쌤, 조금만 만져봐도 돼?”

“으응, 대는데….”

“차례로 섭시다!”

순식간에 바짝 다가온 손들이 볼을 한 번씩 꼬집었다. 나는 한 번 더 충격받았다. 어린 새 같이 짹짹이는 목소리, 이건 내 어렸을 적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작아진 몸과 손, 한없이 커진 옷가지….

난 어려진 것이다!

“자, 잠깡. 저 어뎌진 것 가튼데.”

“응응, 서장님께 보고하고 왔어.”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음, 네, 뭐…. 그롬 됐어요.”

보고했으면 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꾸물거렸다. 불편하게 몸을 감싸고 있는 크기가 맞지 않은 옷들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우선 양말을 벗고, 니트 스웨터 자락을 정리하자 정강이까지 오는 것에 잠시 당황했다. 대체 얼마나 어려진 걸까? 한 일곱 살? 아님 다섯 살?

내가 그런 고민을 하거나 말거나, 주변에서는 여사원들의 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볼이 뭐가 얼마나 말랑하다고 자꾸 만지려는 건지! 속에 든 사람이 서른 살이라는 생각은 안 하나 보다. 하지만 막상 말리려니 이 많은 사원과 대거리를 할 자신이 없어서,

“그럼 더 만져도 되지?”

“이제 좀 아프니까 살살이요….”

…그냥 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뭐가 그리 골이 난 건지, 볼이 부풀려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까부터 맘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이 당황스러웠다.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더 자고 싶다며 베개에 볼을 비비기나 하고, 포기해놓고서도 입을 비죽이는 것이 전형적인 어린아이의 몸짓이 아닌가. 설마 몸이 어리다고 행동도 그 나이를 따르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억울한 일이다.

난 절대 나서서 귀여운 척하고 싶지 않은데!

드륵,

“앗, 서장님!”

“타냐는?”

“여기요.”

“서댱님? 아, 아녕하세요.”

“…오냐.”

그때, 의료실의 문을 열고 서장님과 귀능 씨가 들어왔다. 와, 몸이 작아져서 그런지 더 커 보인다. 다 고만고만한 여사원들 사이에 낑겨 있다가 보통 사람보다 장신인 사람을 봐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괜히 서장님의 날 선 눈매가 더 무서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와~ 정말 어려졌네요. 여기 용의자 데려왔어요.”

“버터컵을 불러서 상황 설명을 해야 하니, 따라와라.”

“서장님!”

그렇게 상황 정리를 위해 일어나려던 그때, 뒤에서 레인 씨의 부름이 들려왔다. 아니,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어서 더 또렷하게 들리는 외침이었다. 서장님과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걸까?

“타냐쌤을 이대로 보낼 순 없어요!”

“옳소! 적어도 옷은 입혀요!”

“…너네, 그냥 쇼핑을 하고 싶은 거지.”

“앗, 들켰다.”

“…”


“타냐 님~! 제가 없는 사이에 이런 일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몸에는 별 이상이 없는 건가요?”

“네, 물론이죠~”

범인은 이번에 새로 받은 내담자의 특기였다. 내담자는 특기를 잘 조절하지 못했는데, 하필 상대의 나이를 어리게 만드는지라 사이비 종교에 끌려갔다고 한다. 하지만 효과가 하루면 끝나는 비영구적인 힘이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개발을 받았다고 했나…. 어젯밤쯤에 상담했었는데, 운 없이 특기에 당해버린 것이다.

쉬라 씨의 말대로,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하필 별일이 없는 날에 이렇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안 그랬으면 밀려드는 일정을 어떻게 취소해야 했을지,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타냐 님, 제 무릎 위에 앉을래요?”

“웅? 무거을 텐데….”

“하나도 안 무거워요! 제발요.”

“이야, 우리 쉬라. 아주 사심 채우는 데는 선수야?”

“조용하시죠, 팀장님!”

? 일단 쉬라 씨가 원하는 대로 그 무릎 위로 기어 올라가 앉았다. 결국 필요한 옷을 사다 준 스푼의 여사원들 덕분에 입은 옷이 영 불편했다. 줄무늬 스타킹에 에나멜 구두, 하얀색 원피스라니…. 심지어 갈색 유아용 코트까지. 진짜 어렸을 때도 입어본 적 없는 옷이다.

“꺄아…! 엄청 귀여워요, 타냐 님. 저 사진 좀 찍어도 돼요?”

“앗, 나도~ 이런 타냐 님의 모습은 귀하니까 말이지, 같이 사진 찍자!”

“에휴…. 아라써요. 여프로 와요.”

“진짜 어린아이 같네요.”

“진짜 어린애 맞거든, 데비?”

“아뇨, 하비 팀장님이요.”

쉬라 씨의 말을 들어주느라, 사진을 찍어주느라 온 사방이 부산스럽다. 버터컵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호위할 인력을 요청하러 호출한 건데 결국 귀능 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언럭키 씨와 윤 씨밖에 없었다. 제2팀, 믿음직스럽다…. 제4팀은 다들 공격적인 특기를 갖고 있기 때문인지, 마이웨이적인 성격이 상당히 강했다. 팀장인 하비 씨만 봐도-

그때, 이 산만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던 서장님이 입을 뗐다.

“그러니, 언럭키가 타냐를 호위하는 것으로 한다.”

“지, 진짜요!? …제가 아니라니.”

“잘 부타케요, 언러키 씨.”

“네, 네에….”

나름 예상했던 인선이었다. 제4팀은 바쁘기도 하지만 너무 산만하고, 제3팀은 애초에 바빠서 팀장인 살몬 씨가 오지도 못했다. 그나마 일정에 여유가 있고 호위는 제대로 할 수 있을 법한 인선은 제2팀의 언럭키 씨밖에…. 물론 쉬라 씨가 이렇게까지 실망해서 의기소침해할 줄은 예상치 못했지만.

“여기요….”

“…? 이건,”

“사진기니까요, 꼭 타냐 님의 고화질 사진을 많이 건져주세요….”

…이렇게 아련하게 말할 일인가?

“그럼 우린 간다.”

“안녕이 가세요.”

“넹, 타냐 양~ 이따 뵐게요.”

“리더, 힘내세요.”

“저희도 갑니다, 타냐 님~”

“…히잉,”

“내일 보고 때 다시 뵙겠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보내고 나니 자리에는 언럭키 씨와 나만이 남았다. 목적지는 정해졌고, 이제 가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점이 있었다.

“그럼 가보ㄲ….”

꽈당!

내가 내 발로 걸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까부터 계속 의료실이었고, 서장실로 올 때조차 빠르게 오려고 귀능 씨가 옮겨주셨기 때문에 걸어볼 일이 없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걸어보려고 하자마자 넘어질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성인일 때와 아이일 때의 균형 감각과 거리 감각의 차이가 엄청나서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는 별개로 눈물이 난다.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고개를 천장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어째선지 딱 그 위치에 있던 언럭키 씨와 눈이 마주쳤다.

“어… 어?”

“…이, 일으켜 주세요오….”

결국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몸뚱이는 언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려는 건지 모르겠다. 언럭키 씨는 잔뜩 당황하나 싶더니, 겨우 마음을 다잡고 나서야 나를 두 손으로 일으켜 세워주었다.

“또… 너, 넘어질, 것 같아요…?”

“아마도… 요?”

침묵이 흘렀다. 언럭키 씨는 정말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지둥하고 있었고, 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직접 말하기엔 내 성인으로서의 존엄성이 무너질 것 같아서 망설이는 중이었다. 그래도 얼른 상황을 수습하고 시간에 맞춰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쩔까….

“어, 언러키 씨.”

“네…?”

“안아주세여….”

결국 난 존엄성을 포기하기로 했다.

“…. ~!”

아, 귀 팔락거린다.


그래서 우리의 목적지가 어디였냐, 하면.

“어서 오세요, 타냐 씨. 다나 씨 말대로 어려지셨네요.”

“아녕하세요, 오수 씨. 아, 여기는 언러키 씨. 오늘 제 호이에요.”

호위, 호위! 오수 씨와 말 한마디 주고받았을 뿐인데 지쳐버렸다. 내가 어렸을 때 정말 이랬나 싶기도 하고. 심지어 나는 롤링핀에서 이곳으로 올 때까지 무릎이 아파 내내 우는 상태였다. 오수 씨는 무릎에 넘어진 것으로 생긴 상처를 보고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일호 씨를 불렀다. 그동안 오수 씨가 롤링핀에 얼굴을 비추지 않아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오랜마니에요, 일호 씨.”

“네에~ 그동안 잘 지냈어요?”

“이러케 되기 전까디는요.”

하하,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팟, 빛이 난다. 곧 깔끔하게 나은 무릎을 본 나는 그제야 눈물을 닦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퐁퐁 솟아오르던 눈물에 나도, 언럭키 씨도 꽤 곤란하던 참이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고마웠다.

“…고마어요.”

“뭘요. 차 내올까요?”

“부탁할게요, 일호.”

오수 씨의 곁에서 나 역시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일호 씨는 그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뒤로 퇴장했지만, 왠지 어색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골, 고르 씨는요?”

“다나 씨가 부탁하셔서, 지금은 제 본가에 심부름 가 있어요.”

“으으… 너무 민페는 아닐까오?”

“그럴 리가요. 어린 타냐 씨가 놀라서 우는 건 저도 싫은걸요.”

“제송해요. 아무래도 바쁨 로링핑에 있으면 괜히 히어로들이 정신 사나울 것 가타서….”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한 만큼 있다가 가요.”

아, 역시 이곳에 오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다. 어느새 일호 씨가 가져다준 찻잔 하나를 언럭키 씨에게 넘기고, 남은 하나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마저도 양손으로 감싸야 겨우 감쌀 수 있는 것에 잠깐 입술이 멋대로 비죽였다.

“어렸을 때 정말 귀여우셨네요, 타냐 씨.”

“하지만, 이제 제 나이가 서르닌데 이러고 있으니 먼가 창피해서요.”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아이니까 아무도 모를걸요? 게다가 하루면 풀리고. 괜찮으니 오늘 하루만 즐겨요.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그때, 오수 씨마저 내가 귀엽다는 소리를 했다. 안 그래도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날 귀엽단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어서 기분이 묘한데 말이다. 차라리 진짜 다섯 살이면 모를까, 내용물이 서른 살이어선 조금 부끄럽다. 물론 순수한 애정이 기분이 좋긴 하다. -정말 아기를 보는 것처럼 다룬다는 게 문제지.

“으응, 그럴가요….”

따릉-

“타냐 언니 작아졌다며!!”

“헤나야, 돔 딘정-”

그때, 문에 달려있던 풍경이 요란하게 부딪치며 세 사람이 들어왔다. 비행조였다! 특히나 요란하게 들어와 내게로 달려온 혜나는 나를 안아 들기까지 했다. 아니, 그러기엔 내가 그리 작지는 않아서 뒤에서 끌어안는 정도긴 하지만….

“뭐야뭐야, 너무 귀엽잖아?! 다나 언니는 왜 가지 말라고 말린 거지?”

“이럴 테니까 말리지 않았을까?”

우리 의뢰자 내팽개치고 왔어….

아….

비행조는 또 혜나에게 휩쓸려서 여기까지 왔나 보다. 버터컵 측에서 뒤처리는 하고 있겠지? 괜히 아득해지는 기분에 내 허리를 두르고 있는 혜나의 손을 찹찹 때렸지만, 간지럽지도 않은지 꺄르륵거리는 소리만 귓가에 잔뜩이었다. 오히려 귀엽다며 머리를 부숭부숭 쓰다듬어서 더욱 정신이 없다.

“그, 그망-”

“지금 발음도 사사 오빠 같잖아! 너무 귀여워~!”

“···헤나, 안녕. 사사 씨, 나가 궁도 아녕하세요?”

“징자 속은 또깥네….”

“…차라도 드실래요?”

“네, 감사합니다….”

결국 세 사람의 티타임은 여섯 사람으로 늘어났다. 기어코 무릎 위에 나를 올리고야 만 혜나는 희희낙락이었다. 5년 전, 랩터 씨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혜나가 눈에 선한데 이젠 내가 혜나의 무릎 위라니. 절로 입술이 비죽거렸다.

“타냐 선배가 그런 얼굴 하는 거 처음 봐요.”

“자꾸 어리 때 습꽌이 나와요…. 모미 제 맘대로 앙 따라줘서요.”

“그럼 놀라면 울기도 하고 그래?”

“그 정도는 아니거등…!”

“화내는 거야? 어떡해~”

“…”

혜나는 아까부터 이 모양이다. 나를 놀리는 게 재미있는 건지, 계속해서 반응을 건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몇 번이나 사진을 찍는 것은 기본. 처음에는 몇 번 말리려다 그 집요함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 작은 몸으로 활기찬 고등학생의 움직임을 말리는 것은 무리였다…!

그때, 뭔가를 생각하는 듯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가 군이 입을 뗐다.

“뭔가 신체나이를 따라가는 것 같은데…. 그럼 이건 좋아하실까요?”

“멀요?”

“우르르-까꿍!”

“…”

나가 군을 제외한 다섯 사람의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건… 좀 너무 어린아이 아닐까요?”

“어, 그런가요?”

“덜대도 그대.”

“아, 오빠 주책이야!”

그리고 나는 충격에 젖어 침묵하고야 말았다. 막을 수 없는 억울함이 솟아올랐다. 아니, 이래도 내용물은 서른 살인데…! 안 그래도 지금 어려졌다고 이렇게 놀림을 받는데, 한술 더 떠서 우르르 까꿍이라니…. 머리 한쪽으로는 분명 귀여워 보여서 그런 거니 이해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지금은 그런 이성적인 생각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몸이 너무나 감정을 따르고 있었다.

“…흐,”

“? 타냐 언니?”

“져, 저는, 흥, 애가 아닌데에…!”

흐엥-

“타냐 선배?!”

“오빠, 어쩔 거야! 당장 사과해!”

“타, 타나 씨….”

“타냐, 님…!”

결국, 울음이 먼저 쏟아져 나오고 말했다. 이것도 신체 연령 때문인지, 부끄러워서 얼른 눈물을 그치고 싶어도 쉽게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평소대로였다면 고작 그 정도로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쓸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그저 부끄러워서, 나는 더욱더 울음을 터뜨리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온통 눈물로 축축했다.

“죄, 죄송해요 타냐 선배!!”

“언니, 고개 들어봐, 응? 내가 맛있는 거 사줄까?”

“-흐어엉!”

“…애치그파면 더 우능거 가튼데….”

“그럼 어떡해! 지금 진짜 앤데!”

“그쎄….”

“일단 여러분, 조금 진정하고….”

결국 티타임은 아수라장이었다. 10분여간 이어졌던 울음은 입에 일호 씨의 특제 아이스크림이 물려지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언니, 이러니까 진짜 나 어릴 때 같다.”

“그건, 그렇지만….”

“어린애 취급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 그렇잖아. 안 그래, 사사 오빠?”

오수 씨의 집에서 아수라장인 티타임을 보내고, 저녁을 먹은 뒤 언럭키 씨를 먼저 버터컵으로 돌려보냈다. 비행조와 동행해서 롤링핀으로 복귀하기 위해서였다.

싸늘한 가을이기도 하고, 우느라 힘이 빠져있었기 때문에 사사 씨에게 들려 있을 수밖에 없었던 나는 코트 안으로 좀 더 파고들었다. 여고생인 혜나와 신체력을 기대할 수 없는 나가 군 사이에서 선택지가 없긴 했지만, 조금 미안했다. 그래도 다섯 살쯤은 되니까 제법 무거울 텐데.

“아, 듄쌤.”

“나가 씨? …타냐 씨?”

“아녕하세요….”

그때, 뭔가 학습장처럼 꾸며진 공원 거리와 벤치에 앉아있는 듄 씨를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듄 씨가 히어로를 은퇴하고 어린아이들의 선생님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현장 체험학습이라도 나와서 자연 교실을 하고 있었던 걸까? 여전히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가 어딜 보나 평소의 듄 씨였지만, 옷만큼은 처음 보는 복장이라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옆에 왜 포크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 유다 씨가 앉아있는 걸까? 심지어 루리 씨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내담자의 실수로 잠깐 어려졌대요.”

“와아~ 그럼 타냐 님의 어려진 모습을 공짜로 볼 기회?”

“몸에 지장은 없습니까?”

“네, 갠차나요.”

“꺅, 엄청 귀여워!”

듄 씨는 다급하게 물어보고, 루리 씨는 귀엽다며 안아 들려고 해서 굉장히 부산스러웠다. 혜나까지 나를 안아 들려고 하는 바람에 사사 씨만 진땀이었다. 혜나야. 너는 아까 1분 들어보고 포기했잖아….

“루리 씨, 그만하십시오. 사사 씨가 불편해하시잖습니까.”

“으으, 그래도 너무 귀여운걸요! 타냐 님, 같이 사진만 한 번 찍어요. 네? 여기 앉아서!”

“…에휴, 아랐서요. 사사 씨, 저 좀 내려주세ㅇ….”

“뭐야, 나도 같이 찍을래!”

“그럼 헤나도 여페 안자. 셋이서 갠찬죠, 루디 씨?”

“당연히 좋죠~”

결국 혜나와 루리 씨, 그리고 나 세 사람은 벤치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물론 다섯 살배기 아이 상태인 나는 두 사람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졸지에 자리를 빼앗기고 일어나 있는 채인 듄 씨 곁의 유다 씨는 그런 우리를 관찰하다가 한 마디를 뱉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군.”

“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시선을 끄는 건 그대로라는 뜻이야. 젠장, 과거 일만 해결되면 예에전에 스카우트하는 건데.”

…별로 의미 있는 말은 아니네. 애초에 ‘과거 일만 해결되면’이라는 전제부터가 아이돌로서는 불가능하니까. 히어로이기 때문에 더 쉽게 상황이 수습된 감이 없잖아 있는데, 아이돌이었으면 그대로 망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유다 씨가 나를 보며 아까워하는 장면 역시 과거의 일에 대한 폭로가 해결된 후에 줄기차게 이어지는 일이었다. 과거의 일만 제쳐놓고 보면 아이돌로 백 퍼센트 성공할 상이라나. 서장님 앞에서 ‘타냐는 아이돌을 하면 망할 상’이라는 둥 말을 했던 것과는 비교되는 장면이다.

물론, 그땐 서장님이 날 떠안고 있다가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에 경고한 거였다고는 하지만.

“흥, 타냐 언니는 평생 히어로 할거거든요?!”

“왜 타냐 님 미래를 맘대로 정하고 그래?! 타냐 님, 저랑 같이 연예인 할래요? 지금도 팬은 꽤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으응, 시러요.”

“아쉽다…. 그치만 거절하는 것도 너무 귀여워!”

아, 정신없다.

루리 씨의 품에 안겨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에 열심히 나가 군에게 도움을 요청한 결과, 염동력으로 구출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사진을 덜 찍었다며 조르는 혜나, 루리 씨와 함께 사진을 찍고, 듄 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그렇게 하고 나서야 롤링핀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의뢰인을 두고 도망쳤겠다?”

그리고 오자마자 혼났다. 아무 생각 없이 서장실로 오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비행조, 의뢰인을 두고 나를 찾아온 상황이었다. 어쩐지 롤링핀으로 돌아가자는 내 말에 나가 군의 표정이 안 좋아지더라.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나는 귀능 씨가 가져다준 따뜻한 우유를 두 손으로 야무지게 잡고(그새 어린이용 컵을 챙겨주었다) 홀짝이다가, 결국 일어났다.

“그, 그치만 타냐 언니가 어려졌다는데 어떡해. 이번 기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습이잖아~!”

“너네는 애 안 말리고 뭐 했냐.”

“그…. 따라갔습니다.”

“내가 지금 그걸 묻는 것 같아?! …?”

“서장밈, 버터컵패서 도아줫다며요. 저를 도아주기도 했구…. 그마내도 되지 안으까요? 평소에는 잘 하자나요. 네?”

“…”

슬며시 다가가 서장님의 다리를 붙잡고 평소에 특기를 쓰던 느낌을 되살렸다. 평소에 하던 대로라면 분노는 가시고, 평온한 오후 햇살 아래 있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 실제로 잘 통했는지, 야차 같던 표정은 살짝 당황한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하, 나가봐라.”

잘 통했나 보다! 비행조는 대놓고 살았다는 표정으로 서장실 문을 열고 나섰다. 혜나는 나를 보며 무어라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뻐끔댔는데… '언니, 사랑해'? 여전히 애교쟁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에 혜나는 찰칵, 소리를 내며 서장실을 퇴장했다.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소파에 올라앉았다. 몸이 작으니 그에 올라가는 것도 힘이 들었다. 원래 이 정도로 지칠 정도의 체력은 아닌데….

철컥-

“음? 비행조는 벌써 다 혼난 거예요?”

“…그냥 보냈다.”

“? 아하~ 알만하네요.”

그때, 저녁 먹을 만한 것을 사러 빵집을 다녀온다던 귀능 씨가 돌아왔다. 아직 비행조가 혼나고 있을 거라 예상한 건지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내가 손을 흔들자 바로 이해한듯했다. 나는 귀능 씨가 다가오자 두 팔을 벌렸다. 봉투를 주면 내가 꺼내놓겠다는 의미였다.

휙-

“?”

“아이참, 그 사이에 애교쟁이가 되셨네요? 안아달라고 할 줄은 몰랐는데.”

“-아닝데요?!”

“뀽, 저는 다 안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귀능 씨의 무릎에 앉혀졌다. 혜나나 루리 씨의 무릎에 올라앉았던 것과는 다르게 단단하고도 낯선 감촉에 괜히 펄쩍 뛰고는 발버둥 쳤지만, 귀능 씨는 태연하게 봉지를 까고는 내 입에 치킨 랩을 내밀었다. 나같이 작은 아이도 한 입 한 입 베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크기였다.

“자, 저녁은 먹어야죠. 내일은 의료실 사원들이 챙겨준대요. 서장실에서 타냐 양을 독점한다고 얼마나 난리던지~”

“…일다는 고마어요.”

“에이, 별말씀을.”

결국 포기한 나는 얌전히 무릎 위에서 치킨 랩을 베어 물었다. 애가 먹기엔 좀 자극적인 소스이긴 했지만 우유도 있고, 영양을 걱정하기엔 내일 어른으로 돌아갈 텐데 뭐가 걱정이겠는가. 오히려 삼삼한 이유식을 먹을까 걱정했던 내게는 적당한 저녁이었다.

그렇게 서장님은 책상에서 대충 빵으로 밥을 때우고, 귀능 씨 역시 나와 테이블을 앞에 두고 열심히 저녁을 먹는 것으로 시간이 흘러갔다. 분명 작은 치킨 랩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은 몸이어선지 배가 쉽게 차오르더니 결국 배가 빵빵해지고야 말았다. 마지막으로 우유까지 마신 나는 한숨을 쉬며 등을 기댔다. 물론 그래 봤자 귀능 씨의 품이었지만.

“그런데요,”

“네?”

“타냐 양, 지금 특기 쓸 수 있나요?”

흠칫-

“되던데요? 아까 서장밈이 화낼 대….”

“그래요? 타냐 양은 고등학생 때 특기자가 된 케이스잖아요. 근데 그보다 어려졌으니 그때로 회귀하면서 특기가 없을 때로 회귀해야 정상….”

시선은 자연스럽게 서장님으로 몰렸다. 서장님은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아니, 정확히는 서류에 코를 박았다.

설마, 그냥 참으신 건가?

내 얼굴 봐서 넘겼나, 하는 쓸데없는 망상이 떠올랐지만 쓰레기통에 쑤셔 박았다. 이게 무작정 귀엽다고 달려든 의료실 사원들과 혜나 때문이다. 덕분에 근거 없는 자의식이 생겨서 일단 나 때문인가, 생각하게 되지 않는가!

-어쨌든, 나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게 더 신빙성 있을 거다. 특기는 회귀하지 않는다던가, 그냥 서장님께 갑자기 웃긴 게 떠올랐다던가….

설마 내가 귀여워서 그런 거겠어? 속은 서른 살짜린데?

“…밖에 다녀온다.”

쾅!

“저거 봐요. 분명 타냐 양이 귀여워서 멈칫한 건데, 부끄러워서 아닌 척한 거라니까요.”

“에…?”

“타냐 양이 좀 귀엽긴 해요. 지금이랑 똑같은데 더 작은 버전이라 귀여움이 업그레이드되었달까.”

“???”

정말로?


타냐는 무사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끌벅적했던 그 하루를 기억하는 사사는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당시에 표현하진 못했지만, 그때의 타냐는 천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꿀로 빚어낸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 맑게 빛나는 석류색 눈동자….

평소와 똑같은 모습인데, 더 작아졌다는 이유로 더더욱 성화에 나올 법한 아기천사가 연상되었다. 심지어 인형 같은 옷차림까지. 의료실의 사원들이 맘잡고 어려진 타냐에게 어울릴 법한 옷을 사기 위해 치열한 회의를 진행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롤링핀 전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예상 못 했는데.

“부딪쳤잖아, 조심 좀 해!”

“헉, 마지막 장이다.”

“얼른 채워올 테니까 좀만 기다려요!”

“…?”

의료실 앞은 시끌벅적했다. 보아하니 의료실의 남는 책상 앞에 각종 사진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인물은 전부-

타냐였다. 정확히는 어린 타냐.

“근데 이거 가져가도 되는 거예요?”

“돈을 받지만 않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심지어 타냐가 허락했나 보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끼리 공유하고, 그 아는 사람들의 아는 사람이 또 공유를 부탁하고…. 그렇게 돌고 도는 상황이 불편해서, 아예 충분할 만큼 인쇄한 뒤 가져갈 사람은 가져가라는 식으로 의료실 앞에 둔 것이다. 그리고 사사가 도착한 바로 그 타이밍, 롤링핀의 사원들이 모여들었다.

“와, 타냐쌤 어렸을 때도 그대로였구나….”

“그러니까.”

사사는 그런 상황에 감탄하며, 사진을 구경했다.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 들어 있는, 귀여운 사진들이었다. 잠에서 갓 깨어난 타냐,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어리둥절해하는 타냐, 옷을 갈아입은 타냐, 밥을 먹는 타냐…. 사사는 양심에 찔려서 밥을 먹는 사진 하나를 챙기고(물론, 안 챙기지는 않았다) 복도를 걸었다. 오늘은 서장실에서 브리핑을 듣고 참여해야 할 대규모의 업무가 있었다.

철컥-

“왔냐.”

“네.”

나가는 또 긴장했으려나…. 사사는 그런 딴생각을 하며 다나의 말에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는 벽 한쪽에 서 있었는데….

“!”

사사는 발견했다.

다나의 책상 위에 남겨져 있는 타냐의 사진을. 정확히는 막 잠에서 깬 듯 몽롱해 보이는 얼굴의 타냐였다.

팔락,

“뭘 보냐.”

“아, 아무거또….”

그리고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사사는 곧 다나의 찌르는 듯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아, 그거? 나도 좀 기부했어.”

“너도…?”

“사사 오빠도 참, 내가 어제 내내 사진 찍는 거 못 봤어? 당연히 몇 장은 넘겼지.”

제일 잘 나온 건 나 혼자 소장할 거지만. 특별히 오빠한테는 공유해줄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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