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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상] 빛나는 밤

네가 보던 하늘이 진실이라면

Idyll Garden by 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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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이트판 (원본(포스타입 멤버십): https://posty.pe/p9128b )

※군인 종수 & 반란군 상호

「빛이 존재하는 땅」

'시티'의 대표적인 슬로건이었다.

행성 하나 정도는 재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만했던 인류는 전대미문의 재앙, '심야' 앞에서 무력해졌다.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지속되자 사람들은 빛을 찾아 헤메기 시작했다. 한 인간은 인류 문명의 시작인 불을 피우자고 했으나 인간이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불은 촛불만도 못하게 되었다. 인류 전체가 불을 피웠다가 남아 있는 문명마저 불타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퍼져나갔다.

그때 나타난 것이 JH 코퍼레이션.

JH 코퍼레이션은 자신들의 광원으로 빛을 선보이며 어둠을 밝혔고, 사람들은 그 빛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JH 코퍼레이션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며 '시티'가 세워졌고, 새로운 문명이 세워졌다. 오직 JH 코퍼레이션만이 빛을 만드는 광원을 갖고 있었다.

공급량이 정체되어 있는데 수요량이 증가하면 가격이 오른다는 법칙대로 빛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 결과, JH 코퍼레이션을 따르지 않는 자는 빛을 잃게 되었다.

사람은 빛 없이는 살 수 없다.

JH 코퍼레이션은 경제를 넘어 정치와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애초에 시티가 그들 중심으로 세워진 것이었으니 정치와 사회를 이미 붙잡고 있었던 것과 같았다. 후세에 태어난 시티의 사람들은 그들 위의 하늘에 어떤 의심도 품지 않았다.

낮에는 JH 코퍼레이션의 광원이 켜지니까 하늘이 밝다.

밤에는 JH 코퍼레이션의 광원이 꺼지니까 하늘이 어둡다.

"종수햄."

그런 하늘 아래에서도, '빛'을 간직한 소년은 손을 뻗었고―

"기상호…."

그 손을 잡고픈 소년은 망설였다.

[종상] 빛나는 밤
네가 보던 하늘이 진실이라면

최종수는 시티 방위대의 前 대장 최세종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최세종은 JH 코퍼레이션 산하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 중 최고의 학교로 평가받는 쌍룡아카데미 졸업생이었고, 아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하자 기뻐하면서도 염려했다.

시티 방위대의 임무는 과거의 경찰 혹은 군인과 같은 역할로, 시티의 치안을 담당했다. 그 치안의 핵심은 단연 JH 코퍼레이션의 광원 보호. JH 코퍼레이션의 광원을 노리고 침입하는 사람들은 10년 단위 시간이 바뀌어도 줄어들 줄 몰랐고 최근에는 아예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엄중한 임무를 자처한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최종수의 뜻은 확고했고, 최세종은 쌍룡아카데미 입학식 날 학부모로서 아들 옆에 섰다. 그날부터 최종수는 주말이나 방학 등을 맞아 집에 들를 때를 제외하고 쌍룡아카데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초중고 일관제에서 12학년이 될 때까지 계속 우수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기상호라고 합니다."

그 12학년 때, 최종수가 사생 대표로 있던 장도기숙사에 편입생이 들어왔다.

쌍룡아카데미에서 편입생의 존재는 언제나 화젯거리였다. 입학 때부터 각종 서류 심사와 면접 심사를 하는 데다 설령 합격하더라도 엄격한 교칙과 이에 따른 벌점 제도 ― 일정량의 벌점 누적 시 퇴학 ― 의 운영으로 인해 졸업생이 입학생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탓이었다.

"어디 출신이야?"

"태초중학교 졸업했습니다."

"태초중?"

그 편입생, 기상호는 10학년. 중학교 졸업하고 들어온 것을 보면 보통내기는 아니라고 입학식 출신들은 판단했다. 게다가 태초중은 장도기숙사 사생들 중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별 볼 일 없는 학교였다. 원래대로라면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을 조건이었다.

"종수야, 환영 인사라도 해 줘."

기상호와 최종수의 시선이 마주쳤다.

"비켜, 뒤지기 싫으면."

최종수는 편입생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의 우수함에 잠재적인 위협이 되는 모든 존재를 싫어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편입생 도우미는 해당 학생이 배정된 기숙사의 사생 대표가 담당하기 때문에 최종수는 기상호와 붙어다녀야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상호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너 바보냐? 이 문제는 이렇게 풀어야지."

"햄, 저 아직 10학년인데요."

"이 정도는 예습하는 게 맞잖아."

처음 수정했을 때는, 웃기는 녀석.

기상호는 어려운 일 ― 기습적인 쪽지 시험을 쳤다든지 ― 이 생길 때마다 최종수를 찾았고, 최종수는 자신의 위치를 아는 녀석들에게는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마음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기상호는 최종수가 깔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잉잉 우는 시늉을 하면서도 그를 따라다녔다.

"햄은 멋진 사람이에요."

다시 수정했을 때는,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

최종수는 언제나 자신이 우수해야 한다고 여겼고, 그런 그를 질투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쳤다. 최종수가 쌍룡아카데미의 대외 행사에 나설 때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따라왔고, 매일 밤 최종수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최종수를 평가하는 글들이 떴다.

기상호는 최종수에 대한 악평을 밀고 호평을 보여주었다.

"누가 뭐래도 햄은 멋진 사람이니까요."

그때부터였다. 최종수가 그 바보 같은 얼굴을 밀어내지 못하게 된 건.

"너 이러는 거 벌점 10점인 건 알지."

"종수햄만 허락해줬으면 됐죠 뭐."

어느 날 밤, 기상호는 최종수의 방에 처음 보는 둥근 기계를 들고 왔다.

쌍룡아카데미 교칙상 기숙사 소등 뒤 방 밖으로 나오는 것은 금지였다. 타인의 방에 들어가는 것도. 이 때문에 기숙사 복도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오늘은 점검일이라고 기상호가 나불거렸다. 만약 최종수의 지인들이 이 일을 알았으면 입을 벌렸으리라.

"너 벌점 받았다고 잉잉거려봐. 뒤진다."

"아아앙~"

기상호의 애교를 보며 최종수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이런 걸 병 주고 약 주기, 아니, 약 주고 병 주기라고 하는 걸 거다.

"… 그래서 뭐 하러 온 건데."

"좋은 거 보여주려고 왔죠."

"뭐?"

기상호는 최종수가 뭐라고 하건 기계 세팅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 최종수는 의심했어야 했다. 교육으로는 따라올 곳이 없는 쌍룡아카데미에서도 본 적 없는 기계를 기상호가 어떻게 들고 왔는지, 아니, 어디서 들고 왔는지.

"멋지지 않아요?"

"이건…"

그러나 그 기계를 통해 기상호가 보여준 건 태어나서 처음 보는 풍경―

"이거,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거 아닌데, 햄한테만 보여주는 거예요."

어두운 방에 수많은 하얀 점들이 다양한 형상을 이루며 떠올랐고, 그 점들 중 일부는 떨어지듯 움직이며 선명한 궤적을 그렸다.

그저 깜깜하기만 한 밤과는 달랐다.

하지만 최종수를 사로잡았던 건, 그 풍경을 바라보던 기상호였다.

최종수는 기상호가 보여준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단순히 야경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

"플라네타리움… 금지… 기술……"

기상호가 시티 방위대의 주적인 반란군의 일원임을 아는 지금까지도.

"햄? 왜 그러세요?"

"너, 이거 뭐야."

단지, 기상호가 보여준 그 풍경이 또 보고 싶어서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JH 코퍼레이션에서 금지한 기술이었다.

"그거요? 아, 플라네타리움이라고 적혀 있네요. 언제적 표기야."

"지금 그걸 물어보는 줄 알아?!"

최종수는 부정하고 싶었다. JH 코퍼레이션에서 금지한 것은 '시티'라는 사회 전체가 금지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JH 코퍼레이션이 곧 정부이자 종교, 도덕이었으므로 그들이 금지한 것을 행하는 것은 시티 방위대에게 체포되어 처벌받을 사안이었다. 

"심야를 위하여."

기상호는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 아주 명랑하게, 금지된 단어를 말했다.

과거 인류 전체를 재앙에 빠뜨린 전대미문의 재앙이었다. 그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광원을 만든 JH 코퍼레이션에 사람들이 모여 세워진 것이 시티. 쌍룡아카데미는 '심야'로 인해 붕괴한 문명들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JH 코퍼레이션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가르쳤다.

"설마, 반란군이야?"

"지상단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기상호!"

'심야'를 추종하는 세력, 반란군. 자칭 '지상단'.

지상단은 시티 방위대의 주적으로, 최종수의 아버지인 최세종을 은퇴하게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최종수는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아버지와 아버지의 옆을 지키며 흐느끼던 어머니를 기억했다. 최종수에게 지상단이란 언젠가 자신이 쳐부술 존재. 부모님을 위해서, 친구들을 위해서.

… 기상호를 위해서.

"어차피 제 임무는 끝났으니까, 곧 있으면 저를 데리러 올 거예요."

"임무?"

"마지막이니까, 말 많은 악역 흉내 좀 낼게요."

최종수는 그 자리에서 기상호를 신고할 수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하기만 해도 됐다.

"빛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어둠에 가려졌을 뿐이지."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기상호의 말을 들었다.

"안녕."

얼마 안 가 최종수는 목에서 따끔함을 느꼈고, 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몸은 쌍룡아카데미 보건실 침대 위에 있었다. 보건교사는 마취제를 맞은 것 같다며 검사를 권했지만 한 사람 생각에 뛰쳐나가는 최종수를 막지는 못했다.

기상호.

그가 기상호의 방에 찾아갔을 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어둠처럼.

쌍룡아카데미에 지상단이 침입했었다는 사실은 시티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목격자로 추정되는 최종수에게 질문을 퍼부었지만, 최종수는 '모른다', '기억 안 난다'라고 답했다. 혹자는 최종수가 반란군에게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며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의 아버지의 지위가 없었으면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 사파 녀석에 대해 짚이는 게 전혀 없다는 거지?"

"… 있겠냐고."

기상호라는 이름이 본명이기는 했을까, 높다란 가을 하늘이 잘 어울리던 그 얼굴도 사실 가짜는 아니었을까. 기상호를 떠나보내고 생긴 열병은 최종수를 계속 괴롭혔다.

시간이 흘러 최종수는 목표대로 시티 방위대에 입대했고, 방위대 대장은 그를 환영했다.

"빛이 존재하는 땅을 위하여."

방위대는 매일 아침 시티의 슬로건을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했다. JH 코퍼레이션의 광원의 상태를 확인했고, 지상단, 아니, 반란군을 제압하러 출동했다.

'빛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빛이 존재하니까, 사라지지 않은 게 맞지, 멍청아.

최종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발 기상호가 자신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JH 코퍼레이션 지하 설계도를 입수했다."

지상단 단장 이현성과 부단장 서인진의 지휘 아래, 간부 여섯 명이 집결했다.

성준수, 진재유, 공태성, 김다은, 정희찬, 그리고 기상호.

"여기에, 장벽을 유지시키는 장치가 있다."

시티의 준법 시민들은 '심야'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인 줄 알고 있지만, 반란군은 알고 있었다.

'심야'는 태양광을 비롯한 자연적, 인공적 빛을 독점하기 위해 JH 코퍼레이션이 꾸민 끔찍한 계획 때문이었다. JH 코퍼레이션은 재앙 속에서 기술을 보존한 위대한 사람들의 모임 따위가 아니고, 재앙을 일으킨 기술을 포장한 추악한 짐승들의 모임이었다.

JH 코퍼레이션이 만든 에너지 장벽이 저 하늘 너머 우주로부터 오는 빛을 가렸다. 진실을 안 사람들 대다수는 JH 코퍼레이션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고, 뛰어난 기술자였던 기상호의 어머니도 그랬다. 아내를 돌려달라고 시위를 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시체로 발견되었고 기상호의 형과 누나는 동생에게 차마 아버지의 끔찍한 몰골을 보여주지 못했다.

형제 중 연장자로서 아버지의 시신을 앞장서 확인하고 마음의 병을 얻었는데 동생들 부양 때문에 몸마저 혹사시킨 기상호의 형은 끝내 산재로 사망했고, 누나는 가중된 마음의 짐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기상호에게 너는 네가 마음 가는 대로 살아달라는 말이 누나의 살아서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

슬픔에 빠진 기상호의 마음은 복수로 향했다. 기상호의 어머니가 남긴 물건들 다수는 JH 코퍼레이션에 압수당했지만, 장벽이 생기기 전 볼 수 있었던 밤하늘을 투영하는 천체투영기, 영어로 planetarium―'플라네타륨'이라고 실렸던 제작 기술만은 기상호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쌍룡아카데미 공학 실습실에서 조금씩 훔쳐낸 재료들로 만들 수 있었을 만큼.

"아마 방위대 중에서도 엘리트들이 지키고 있을 테지."

기상호는 말없이 책상에 놓인 설계도를 노려보았다. 어쩌면, 종수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쌍룡아카데미에 편입했을 때, 원래는 쌍룡아카데미의 향후 교육 계획서를 탈취하자마자 돌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절벽에 핀 꽃처럼 위태롭게 있던 최종수에게 눈길이 가 버려서, 그에게 아름다운 걸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해 버렸다.

"빛이 돌아올 일이 멀지 않았다."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수햄을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

시티 방위대와 지상단의 전면전은 치열했다.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재회에서, 기상호와 최종수는 서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덤덤했다.

"종수햄."

함께 온 다른 간부들을 먼저 보냈고.

"기상호…."

마취제에 맞고 쓰러진 대원들 중 홀로 남았다.

"별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날 벌점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보여줬던 별들. 저 장벽을 무너뜨리고 나면 정말로 볼 수 있는 광경.

"그 아름다움에 비하면 사람의 추함은 한순간인걸……"

기상호는 가짜 울음의 달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울음은 진심이었다.

"지상단이 미웠어."

아버지를 다치게 하고 어머니를 울린 집단. 자신을 속인 놈.

"그런데 너는, 미워할 수가 없네."

최종수는 기상호의 표정을 여전히 읽을 수 있었다.

"멋진 사람이야, 아직도?"

"그렇게 되고자 한다면요."

소년과 소년.

"너만 그렇게 말하면 돼."

마침내 손이 맞닿았다.

이윽고, 두 사람 위로 별들이 쏟아졌다.

플라네타리움, 아니, 플라네타륨으로 비춘 것과 다른 진정한 빛이 그들에게로 내려오고 있었다.


(소장용 결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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