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갈림길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로는 후회하고, 마침내 미소지으라.

* 발더스 게이트 3 전력 3회 - 갈림길

** 이 연성은 타브아스 제조 시설에서 생산되었습니다. 

무수한 갈림길 앞에서

야영지에 죽 둘러앉은 채 오늘 저녁 스튜에 마늘을 넣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부터 네더브레인의 대뇌피질 꼭대기에 올라선 채 세상의 운명을 좌우할 왕관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까지,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그리고 아스타리온은 지금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아닌가? 모르겠다. 이것도 중요한 갈림길이라고 할 수 있나? 그는 복슬복슬한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됐든 지금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민 역시 제법 중요한 것은 맞다만, 그 중요성이 다소 퇴색된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간 아스타리온이 겪어 왔던 사건들이 지나치게 격동적인 것들뿐이었던 탓이다.

그의 고민이란 바로 ‘이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골머리를 썩여 봤을 고민이며, 어떤 이들은 평생토록 안고 살 수도 있는 고민. 한두 사람의 인생만 걸려 있어도 큰 문제겠으나 자그마치 7천 명—물론 풀려난 스폰들이 언더다크로 내려가는 동안 몇 명이 사라지고 몇 명이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의 인생이 여기에 달려 있다. 아스타리온은 그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꽤 무겁게. …맙소사, 책임감이라니. 아스타리온 자신조차도 믿기 힘들었지만, 그가 엘프송 2층에 앉아 언더다크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명백히 책임감에 기반한 행동이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하지? 언더다크에는 주인 없는 땅이 —혹은 주인을 잃은 땅이. 그리고 주인을 ‘잃는’ 과정에 그가 개입한 곳도 있다— 많다. 문제는 그 중에서 도대체 어디에 정착해야 하냐는 것이고. 수서르 나무 근처? 특정한 형태의 습격을 방어하기에는 좋겠지만 거주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그리고 버섯이랑 너무 가깝다. …그게 어떤 종류의 버섯이든 간에. 셀루네 교단 전초지? 글쎄, 섀도하트라면 좋아할 수도 있지만 그는 경건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마음에 안 든다. 대장간 근처에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미스랄 광맥을 차지하는 것도 고려해 봤지만 역시 멘조베란잔산 잠재적 습격자들과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 같았다.

고민 끝에 아스타리온이 내린 결론은 칠흑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을 점거하는 것이었다. 근처에 물고기 인간이 있는데다 다소 낡기는 했지만, 마을이었던 흔적을 재활용할 수 있고 어쨌든 담수도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누가 건들기 전에 재빨리 마법사가 살던 탑을 꿀꺽하고 타브랑 내가 거기 살아야지.

 

그 정도 선에서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적당히 마무리한 아스타리온은 의자에 기대어 늘어졌다. 크게 기지개를 켜며 뻐근한 목을 젖히자 굳게 닫아 둔 창문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한낮의 햇살 자국이 보인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기쁨의 소리가 제법 요란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잔을 부딪히는 축제의 열기가 거리를 떠들썩하게 데우고 있었다.

아스타리온은 가만히 눈을 감고 더는 그가 누릴 수 없게 된 기쁨에 대해 생각했다. 잠깐이나마 태양 아래를 걸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햇빛을 쬘 권리는 200년도 전에 박탈당해 그의 것이 아닌 지 오래였지만, 짧게나마 다시 손에 쥐었다 떠나보내서 그런지 더욱 허무했다.

…만약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끼익—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타브가 그의 상념을 비틀어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와인 한 병과 맥주잔 하나를 든 채다. 팔뚝에 웬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을 보니 잔 속 내용물이 대강 짐작이 간다. …그래. 그런 가정은 무의미한 데다, 네가 날 믿어 줬으니까. 아스타리온은 장난스러운 미소로 타브를 반겼다.

“자기, 밖에서 벌어진 술판은 어쩌고 여길 온 거야? 파티에 주인공이 빠지면 어떻게 해.”

“네가 여기 있잖아. 그리고 다들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서 나 없어진대도 눈치채는 사람 없을걸?”

타브는 히죽 웃으며 손에 든 잔을 흔들었다. 새빨간 액체가 찰랑이며 잔 안팎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어어, 넘친다…! 흘리면 안 되는데.”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꾼 영웅이 고작 넘치는 잔 하나에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며, 아스타리온은 불현듯 깨닫는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것, 눈앞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며 머리를 싸매는 것 자체가 자유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자유로운 사람의 앞에는 무수한 갈림길이 펼쳐져 있다. 선택 앞에서 고뇌하고 가 보지 못한 길을 후회하면서도 자신의 결정에 미소지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그래. 이제 그는 자유롭다. 얼마든지 고민하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마침내, 그래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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