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우드워드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

마릭 나비드 |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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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를 원하십니까, 잊기를 원하십니까?” 

― 프리실라 헤이너, 국가폭력과 세계의 진실위원회


 

마릭 나비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메리 우드워드를 잘 알았다. 자부할 수도 있었다. 달고 신 것을 좋아하고,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폴란드 여자애. 언제나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이 결코 속할 수 없는 세상을 바라보는 이방인. 죽지 않기 위해서는 죽여야 하고, 억압받지 않기 위해서는 억압해야 하며, 혐오 받지 않기 위해 혐오해야 한다고 믿는, 그래서 결국 그 비범한 머리로 수많은 이들을 짓밟고 으스러뜨린 악인. 반순혈주의를 외치고 행동하는 모든 이들의 적. 머글 태생 등록위원회의 의장. 

그를 짓밟고, 으스러뜨리고, 비웃고, 조롱하고,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그렇게 상흔을 남긴 사람.

그가 물을 무서워하도록 만든 사람. 그가 많은 것을 무서워하도록 만든 사람.

그는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 역시 잘 알았다. 달고 신 것을 좋아한다 말하고, 주근깨를 숨기지 않는 폴란드 여자애. 마담 에스메이의 손을 잡고 세상으로 들어간 이방인. 스스로를 긍정하고,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선인.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를 혐오하지 않았으며, 그를 억압하고 죽이려 들지 않았던, 마리샴 나비드의 ‘친구’. 혐오에 맞서서 싸우는 모든 이들의 동료. 적어도, 호그와트 7학년 때까지는.

마리아의 목소리는 더욱 부드럽고 높았다. 더욱 상냥하고 다정했다. 

그를 짓밟지도, 으스러뜨리지도, 비웃지도, 조롱하지도, 무시하지도, 깎아내리지도 않았던,

그러나 그에게 상흔을 남긴 사람.

그는 여전히 물을 두려워했다. 가장 괜찮을 때조차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것들이 있었다.

모두 마리아 소볼레프스카 우드워드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갈색 눈은 자신과는 다른 빛의 갈색 눈을 바라본다. 마릭 나비드는 빛이 반사되어 맺는 상을 인식한다. 그의 앞에 있는 이는 달고 신 것을 좋아한다 말하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난 폴란드 여자. 한때는 이방인이었으나 마담 에스메이의 손을 잡고 세상과 이어졌으며, 한때는 죽지 않기 위해 죽여야한다 믿었지만 이제는 언제나 모두를 위한 더 나은 길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이상 혐오하지 않으며, 더이상 억압하고 죽이지 않는 이. 그것이 그가 아는 사실들을 합친 결론이었다.

그가 아는, 마리아 소볼레프스카 우드워드였다.

하지만 마릭 나비드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마리아 소볼레프스카 우드워드라면, 그가 아는 모든 사실의 총합이 그러하다면,

내 눈앞에 있는 너는, 누구지?


“응. 조만간 호그와트 교수직을 그만두려고 해.”

달칵, 소리와 함께 찻잔을 내려놓는다. 마치 마침표를 찍는 듯한 움직임.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새겨져 있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머리를 따스한 빛으로 물들인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하늘한 옷자락이 흔들리고.

온화한 시선을 마주하며 마릭 나비드는 생각했다.

‘자식 이야기나 하며 간만에 물어보려 한 근황치고는 엄청난 게 튀어나오셨군.’

그는 마리아 소볼레프스카-우드워드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마리아의 스승, 마담 에스메이처럼 되길 바라며 살았는지 알고 있었다. 마리아는 자신과 같은 아이들, 세상의 수많은 메리들에게 자신이 마담 에스메이에게 배운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수없이 이야기했으니까. 이방인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약자인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죽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죽일 필요는 없으며, 억압당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탄압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언제나 더 나은 길은 존재한다. 마치 마리아 자신이 들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그는 말하고는 했다. 

마리샴은 그런 마리아를 좋아했다. 때로 마담 에스메이를 질투하면서도, 그 관계 사이에 자신이 낄 수 없는 것만 같다는 사실에 서운해하면서도.

그렇기에 마리아의 선언에, 마릭 나비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응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의아했을 뿐이다.

궁금했다. 무엇이 마리아로 하여금 그가 평생 바라왔던 목표를 포기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그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마리아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싶은 게 생겼어.”

“호그와트에서는 할 수 없는 거야?”

“응. 머글 세계 쪽으로 나가야 하거든.”

“뭘 하려고 하는데?”

“…마릭,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마리아는 그렇게 말을 맺었다. 그 자신이 저지른 일, 이 세계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과 관련해서. 국가 폭력, 학살, 잔혹 행위, 내전, 그러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내고 있는 노력 사이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단순히 망각을 거부하는 것보다, 기억하고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보다, 더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고.

마릭 나비드는 시선을 책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꽂혀 있는 것은 수많은 책들. 아르헨티나, 칠레, 르완다, 시에라리온, 남아프리카공화국,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콩고, 독일….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발간한, 수없이 다양한 이름을 가진 보고서들. 그는 그중 그 어떠한 것도 읽지 않았으나 각 보고서가 무슨 내용을 담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러니까, 결국은 또 그 이야기이다. 마리아가 메리이고 마리샴이 마릭이던 시절. 메리가 행했고 그가 당했던 수없이 많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

“꼭 그래야겠어?”

생각보다 먼저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에 약간 짜증이 섞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보다도 몇 초가량 더 늦었다. 입을 움직이고 혀를 굴려 언어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다시 귀로 들어와 인식을 거치기까지의 짧은 간극. 평상시라면 느낄 수 없었을 그 간극이 이번만큼은 다소 길었다. 그는 마리아의 표정을 보고, 뒤늦게 뇌까지 도달한 그 문장들을 듣고, 인식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야, 그는 자신이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깨달았다. 

“주제넘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주제넘다고 생각하면 하지 말아야지.”

또다시, 간극이다. 말이 먼저 나오고, 생각이 뒤늦게 그것을 따라잡는다. 조금 전보다도 더욱 가시 돋친 목소리. 그는 마치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감정을 파악하듯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렸다. 지친다. 짜증 난다. 불쾌하다. 화가 치밀어오른다. 소용돌이치는 폭풍우처럼 제 안에서 감정이 점차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마릭….”

마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내리깔고, 양손을 모았다.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마리아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다.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가 해야 할 것은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가해를 사과하는 것 외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마릭은 마리아가 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그가 보이는 태도의 의미도. 

그리고 그 사실이, 더욱 그를 화나게 했다.

“말해 봐. 메리 우드워드.”

그는 과거를 소환했다. 일부러 잊힌 이름으로 마리아를 호명한다. 똑바로 시선을 맞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의자를 움켜쥐었다. 핏줄이 솟는다. 피부가 하얗게 질린다.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져만 간다. 불쾌감이 폭발한다. 감정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참고, 참고, 참고, 참았다. 마리아가 매년 떠나는 ‘여행’, 책장에 늘어선 수많은 책과 보고서, 마리아가 저질렀고 그가 당한 폭력,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기에 오히려 그것을 상기하게 되었던 순간들. 모든 것을 앎에도, 보았음에도, 들었음에도, 참았다. 무시했다. 외면했다. 넘어가려고 했다. 언제나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들. 토해내고 싶었던 감정들.

네가 뭔데. 네가 뭐라고. 

알고 있다. 이것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알고 있다. 마리아의 태도는 그가 받아온 모든 대우 중 가장 나았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마리아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언제나 들었던 의문이 있었다. ‘왜 마리아는, 이렇게까지 하는가?’ 

그는 마리아에게서 사과받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을 원망해야 한다는 말은 더더욱 예상 밖의 일이었다. 당연히 그 이상은 기대하지 않았다.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예상을 비껴갔다. 

잘못을 시인했다. 과거를 기억했다. 망각을 거부했다. 세계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폭력에 슬퍼하고, 그것을 막고자 노력했다. 그 모든 것에서 명예를 바라지 않았다. 인정을 바라지도 않았다. 이름은 숨기고, 업적도 감추고, 마치 고행하듯 모든 것을 수행했다. 

“그렇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그렇지 않아.”

“그렇게 하면 과거가 덮여질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마릭, 나는….”

그래, 바로 지금조차도.

“나는 모르겠다, 마리아 소볼레프스카 우드워드.”

일부러 하이픈을 뺀다. 길게 늘이는 발음을 지운다. 

“네 행동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마릭 나비드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길게 내쉬는 한숨은 피로의 흔적이다. 침묵이 다시금 두 사람을 가른다. 어느 쪽 하나 선뜻 그것을 깨지 못한다.

그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는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메리이자 마리아, 그러나 그가 아는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 그렇기에 불쾌하다. 잊고자 하는 기억을 자꾸만 끄집어내는 행동이, 벗어나려는 그를 계속 과거에 붙들어 놓는 것 같은 태도가, 망각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폭력에 맞서려는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상찬받을 것이 분명한 저 면모가.

받아들이는 것과 용서는 다른 문제다. 그는 약 17년 전 마리아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전히 마리아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악몽을 꾼다. 과거는 방심하는 순간 그를 붙들고, 반복되는 순간 속으로 처박아 버린다. 그는 때때로 공기가 충분할 때조차 간절하게 그것을 찾는다. 두 발을 땅에 딛고서도 그것이 무너져 내릴까 두려워한다. 모든 게 괜찮은 날에도 그로 하여금 펜을 들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쏟아 내버려야만 겨우 벗어날 수 있는 기억들이. 때로는 구체적이고, 때로는 추상적인 단어들 사이로 뱉어내야만 가라앉는 감정들이.

도망치고 싶다. 잊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 없던 것으로 취급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에게는 에린이 있다. 그를 배신하지도, 그와 지팡이를 겨누지도, 그 앞에서 죽어버리지도 않은 친구들이 있다. 제네비브와 가브리엘이 있다. 변화하고 있는 마법 세계가 있다. 볼드모트는 죽었다. 머글 태생 등록 위원회는 제대로 설립되지조차 못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전부 그 대가를 치루었다. 

이번 생에서는,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러니 모든 것은 괜찮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너는.

그런데 어째서 나는.

혼란스럽다. 불쾌하다. 화가 나고, 견딜 수 없이 우울하다. 반복되는 시간을 사는 그 자신이. 계속해서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는 과거가. 

이제 나는 나아가고 싶은데. 과거는 더 이상 나를 정의하지 못하는데.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데. 모두가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왜. 

왜.

왜.

설명되지 못하는 마음은 원망이 되어 돌아온다. 그는 마리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리아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에게 끈적이는 불안을 남긴다. 질척이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는 알았다. 그는 마리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알았다. 그는 마리아를 이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분명 네가 그랬었지. 너를 용서하지 말라고. 충분히 원망해도 된다고.

불쾌감의 근거는 그의 과거, 그것이 자꾸만 소환되는 일. 마리아가 그를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앞에서는 관련한 이야기를 삼갔더라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망각할 수가 없었다. 마리아가 앞에 있을 때면, 그 책장을 볼 때면, 비앙카에게 맡겨진 부엉이 메이를 볼 때면, 그 부재를 알게 될 때면.

그는 잊길 바란다. 마리아는 기억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벗어나길 소망한다. 마리아는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는 나아가고 싶다. 마리아는 도리어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

“… 그만하자, 마리아.”

그는 조용히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다시금 마리아를 바라본다. 여전히 다물린 입술, 모아진 양손. 마주한 시선에는 슬픔이 있었다. 가라앉은 갈색 눈동자 속 보이는 것은….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만하자, 우리.”

더 이상 과거에 붙들리고 싶지 않다. 거기에 천착되고 싶지도 않다. 네가 그것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를 헤집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그렇게 ‘좋은 일’을 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마리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마리아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명예도, 용서도, 죄사함도 바라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서, 어디로 날아가려는 것인지.

그러니 부탁하건대, 거기 영영 머물러 있으라. 내가 알고 기억하는 너의 모습으로.

이제 이 페이지를 닫고 싶다. 넘어가고 싶다.

더 이상 곪을 상처도 없으니까. 지금의 삶에는 행복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니까.

그러니 여기서 멈추었으면 좋겠다. 그만두기를 바란다.

그는 눈을 감았다. 도장을 찍듯 마침표를 누른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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