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화분
에펠 펠미에, 롤로 프람 드림
* 롤로는 이름만 나온다는 게 함정인 양날개 드림……
학교란 작은 사회와도 같아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밖으로 쉽게 새어 나가지 않더라도 내부에서는 빠른 속도로 소문이 나기 쉬웠다. 어제 누가 누구랑 싸웠다던가, 오늘은 크루웰 선생님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 오늘은 행동을 조심하라던가, 내일은 어느 기숙사 사감이 외출 예정이 있어서 바쁘다든가 하는. 그런 소문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자극적인 소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몇몇 학생들이 지대하게 관심을 가지는 일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고물 기숙사에 거주 중인, 이 학교 유일한 감독생의 애완식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체 뭘 심어 기르는 건지는 모르지만, 방에 있는 작은 화분에 그렇게나 공을 들인다고 하더라.’ ‘씨앗을 선물 받았다고 하는데, 듣자니 학교 내부 사람에게 받은 게 아니라더라.’
명확한 것 하나 없는 수많은 추측 속. 어지간한 질문엔 전부 모호한 답만 하던 아이렌이었지만, 그 누구도 화분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지는 못했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아이렌이니 작정하고 묻는다면 분명 알고 있는 건 다 답할 텐데도 그리하지 않는 건, 아마 그 화분에 심어진 씨앗을 준 이가 아이렌에게 큰 의미가 없는 인물이기를 바라는 심리 때문이겠지. 대답을 들어 버리면 현실을 회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덮어두는 쪽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럴 확률이 낮으니 굳이 모험하지 않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었다. ‘아이렌이 귀하게 여기는 이는 제가 다 알고 있고, 그들 중 씨앗을 선물한 이가 없으니, 상대는 별것 아닌 인물 아니겠는가.’ 오만하다면 오만하고 논리적이라 하면 논리적인 그런 추측은 분명 몇몇 이에겐 통했지만……. 안타깝게도 에펠에겐 아니었다. 그는 아이렌과 서먹한 사이는 절대 아니었지만, 상대를 다 안다고 자부할 만큼 가깝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으니.
“맞아, 에펠. 에펠은 농사를 도와서 식물에 관해선 잘 알지?”
빌의 심부름으로 고물 기숙사에 왔던 에펠은 돌아가기 전, 아이렌이 던진 질문에 급히 발을 멈추었다.
비록 당장 도움을 청한 건 아니었지만, 저런 말을 꺼낸다는 건 보통 부탁할 게 있는 경우가 많았지.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에펠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안다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 보다는 많이 알 거야. 왜?”
“잘 됐다. 혹시, 내가 기르는 식물 좀 봐줄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가볍게 상담하고 싶어서.”
‘그 작은 화분 이야기구나.’ 아이렌의 부탁을 듣자마자 저 생각부터 든 에펠은, 괜히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겨우 식물 하나로 이렇게까지 긴장하는 자신도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에게 쉽게 오픈하지 않는 점을 제게 상담하려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에펠의 가슴을 떨리게 하기엔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나 말고 다른 이들도 봤냐고 묻는 건, 더 이상하겠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고물 기숙사를 자주 드나드는 이들은 대부분 봤을지도 모른다. 굳이 방까지 들어가지 않은 이상은 보기 힘들지 몰라도, 몇몇 선배들은 아무렇지 않게 아이렌의 개인적인 공간에도 들어갈 거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중요한 건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다른 외부 요인이 아니다.
괜히 떠오르는 잡념을 마른침과 함께 삼켜버린 에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봐줄게.”
“고마워. 그럼, 여기서 기다려줄래? 내가 가져올게.”
에펠을 자리에 앉힌 아이렌은 급하게 방으로 가더니,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화분을 들고 돌아왔다. 도자기 재질로 된 검은색 화분은 아무 무늬도 없이 밋밋해서, 에펠은 저도 모르게 ‘아이렌 군과 잘 어울리네’ 같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여기, 보다시피 잎이 축 처지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 물은 충분히 주는데.”
“으음, 어디 보자……. 그런데, 이 식물은 어떤 식물이야? 식물마다 키우는 법이 다르잖아.”
“아, 이거. 마거리트야.”
“아하.”
이 정도라면 아주 희귀한 식물도 아니니 제가 봐줄 수 있을지 모른다. 과실이 열리는 나무와 꽃을 구경하기 위해 피우는 화초는 차이가 좀 크다 해도, 식물이 보내는 신호란 은근 비슷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마치 각자 생활 환경과 생존 방식이 다르다 해도, 아플 때 나타나는 증상은 비슷한 인간처럼 말이다.
‘흐음.’ 유심히 마거리트를 살펴보던 그는 문득 화분이 꽤 따뜻하다는 걸 눈치채었다.
“아이렌 군, 이거 창가에 두고 길러?”
“응.”
“그러면 해가 너무 강해서 이런 걸지도 몰라. 물을 조금 덜 주고, 좀 더 그늘진 곳에 둬봐. 더위 먹어서 이렇게 된 걸지도 몰라.”
“아. 그래? 으음, 역시 뭔가를 기르는 건 어렵다니까. 고마워, 에펠.”
아직 완전히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지만 실마리라도 얻어 기분이 좋은 걸까. 아이렌은 안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 따스한 미소에 괜히 화분 표면을 만지작거린 에펠은 건네받은 마거리트를 돌려주며, 마음속에 담아둔 의문을 물었다.
“이거, 씨앗은 선물 받았다고 하던데. 맞아?”
에펠이 소문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건지, 화분을 돌려받은 아이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어떻게 알았어?”
“그냥, 어쩌다 보니. 누가 선물해 준 거야? 꽃다발이나 모종도 아니고 씨앗을 선물하는 건 신기하다 싶은데.”
“그래? 으음…….”
과연 아이렌은 뭐라고 대답할까. 다른 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냥 아는 사람’이라던가 ‘학교 안에 있는 사람은 아니야’같은 답만 할까. 아니면 아예 대꾸하지 않고 말을 얼버무리려나.
떨리는 마음으로 대꾸를 기다리던 에펠은, 이 다음 튀어나온 이름을 듣고 경악했다.
“롤로 선배가 보내줬어.”
“……어?”
“꽃의 도시의 마거리트는 유독 잘 자란다고 하시면서. 답장이랑 같이 보내주셨더라고.”
아니. 그러니까, 지금 저 ‘롤로 선배’가 진짜 제가 아는 롤로 프람이란 말인가. 노블 벨 칼리지의 학생회장이자, 지난 핼러윈 기간 때 대형 사고를 친 그 롤로 프람?
어째서 아이렌이 이래저래 얼버무리고 다녔나 단번에 이해한 에펠은, 너무 흥분해서 익숙한 말로 아이렌을 다그쳤다.
“우, 우짤 생각으로 그란걸 걸 기를라 한 거여?!”
“어? 아니, 뭐. 그냥 꽃이잖아. 이상한가?”
“그 문디가 준 꽃인데 우째서 그래 경계심이 없는 긴데?! 심지어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고? 와 그라는긴데?!”
쏟아지는 사투리의 향연과 경악하는 에펠의 표정은 참으로 박력 있다. 아이렌은 이렇게까지 격렬한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눈만 깜빡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뭐. 선배랑 할 이야기가 좀 많아서……. 그런데 정말 별 이야기 안 해. 안부만 주고받는 정도지.”
“…….”
“정말이야.”
그러니까, 그것부터가 이상하다는 거다. 아무리 아이렌은 마법사가 아니라지만, 굳이 롤로가 아이렌과 안부를 주고받아야 할 이유가 있던가? 게다가 안부만 주고 받는 사이인데, 선물은 왜 주고? 그것도 마거리트를?
‘……화분, 엎어버릴까.’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아이렌에게 좋지 않은 소리만 듣겠지. 게다가 식물은 죄가 없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을 한숨으로 억누른 에펠은 입을 삐죽였다.
“왜 말 안 하나 했는데, 다른 선배들이 알면 기겁하겠네.”
“하하. 그렇지? 그러니까 에펠도 비밀로 해줘야 해. 자, 약속.”
아. 치사하기도 하지. ‘둘만의 비밀’ 같은 걸 만들려고 하면, 내용이 뭐든 제가 거절할 수 없지 않나.
떨떠름하게 아이렌이 내민 새끼손가락을 내려다보던 에펠은, 결국 제 새끼손가락을 거기 마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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