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찬의 내러티브를 위한 필연적 결여에 대하여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을 중심으로
[목차]
1. 서론
2. 내러티브를 위한 필연적인 결여
2-1. 성흔
2-2. 아톰의 명제
3. 독자의 감정
3-1. 전제의 부정
3-2.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이 가지고 있는 정상성-일상성
4. 결론
[참고문헌]
들어가기 전에
해당 글 대부분의 개념은 [大塚英志 오쓰카 에이지. 캐릭터 메이커. 서울: 북바이북, 2014.]에 근거한 것으로, 저는 문화 및 캐릭터성에 대한 지식이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틀린 점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왜 박병찬이란 캐릭터를 좋아하는 가에 대한 개인적 고찰에 가깝습니다.
해당 글 대부분은 네이버 웹툰 '가비지 타임'의 '박병찬'이라는 캐릭터를 다루고 있습니다.
1. 서론
1-1. 내러티브를 위한 필연적인 결여
내러티브를 위한 필연적 결여란 다음과 같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필요'로 시작된다. 무언가가 필요해서 주인공이 그것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의 모험담이다.
무언가가 '결핍'되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움직이기 시작되며, 이야기의 기본은 '결핍'과 '결핍의 해소'라고 할 수 있다(앨런 던데스, 1964, 민담의 구조, 재인용; 오쓰카 에이지, 2014). 이것은 반대로 '과잉'이어도 괜찮으며,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놓인 상황이 '불균형 상'이며 '균형'을 찾아나가는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변주를 준 것이 '결여'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있던 것을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원래 '과잉'되어있던 것을 필요이상으로 빼앗아 '결여'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원래 있던 것을 빼앗는 것이 가장 괴로운 것 아니겠는가. 등장인물은 필요가 아닌 원래 있던 것을 빼앗긴 채로 그것을 '되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결여[缺如]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없거나 모자람. [표준국어대사전]
이런 변주로는 '완성형 주인공'이 있으며, 예시로는 대표적으로 일본만화 은혼의 '긴토키'같은 경우가 존재한다(이런 캐릭터는 매력적임으로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박병찬이란 캐릭터의 내러티브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가진다. (저 상호 좋아합니다) 박병찬이란 캐릭터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결여된 캐릭터는 주인공의 포지션에 적합하기 때문에 주목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이런 설정을 좋아하는 오타쿠들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2. 신체성
독자가 만화 캐릭터의 '신체'에 대해 느끼는 '모순'은 일본 만화사에 무척 흥미로운 문제이다(오스카 에이지, 2014). 이는 일본 만화사 뿐만 아니라 일본 만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 서브컬쳐계에서도 중요한 명제라고 생각한다.
2-1. 아톰의 명제
'아톰의 명제'란 '독자가 캐릭터의 '신체'에 대해 느끼는 모순'을 의미한다(오쓰카 에이지, 2014). 만화가 가지는 '기호성으로서의 신체: 현실적 문제에서 이탈한 상태. 즉, 죽지도 다치지지도, 성장하지도 않음 '가 아니라, 실제 인간처럼 다치기도 하고, 성장하기도 하는 신체를 의미한다. 한 때 우리나라 만화계를 주름잡았던, 폭력 만화의 경우, '병원만 가면 다 낫는다'라는 설정이 바로 이 기호성의 신체를 의미한다. 내러티브에서 인간으로서의 신체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청소년-스포츠물-에서 많이 다뤄지는데, 한국 서브컬쳐계에서는 스포츠물이 많이 흥하지 않아서(개인견해입니다) 이런 고찰이 그리 흔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2사장 작가님의 '박병찬'이라는 캐릭터가 한국 스포츠물과 작품 내에서의 위치하는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고 상징적이며, 매력적이다.
가비지타임은 한국 엘리트 농구의 현실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농구'가 정말 즐거워서 하는 청소년들의 청춘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등장인물은 두 가지 속성 '현실'과 '청춘'을 모두 가지는 '모순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박병찬이란 캐릭터는 청소년을 생각하지 않는 가혹한 훈련을 상징하는 캐릭터이다. '잘 하기 때문에' 다친 모순성을 가진 캐릭터인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호성으로서의 신체가 아닌 실제 사람과도 같은 '다치는 신체'를 의미한다. 이는 현실과 괴리가 없고, 현실의 문제점을 그대로 내보이는 가비지타임의 정수 중 하나이다. 박병찬이란 캐릭터는 만화 속에서 실제로 살아움직이는 '생명'으로, 다치고 성장하고, '다시 한 번' 일어서려 하지만 '다시 한 번' 다치기도 하는 생생하게 움직이는 캐릭터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가혹하고 배려없는 훈련으로 다친 스포츠 선수들을 우리는 현실에서 많이 봐왔으며, 그건 그대로 박병찬에게 투영된다.
그리고 박병찬은 '청소년'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면서 엘리트 체육이란 무엇인가. 이렇게까지 소모적으로 아이들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동시에 그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구를 여전히 좋아하고, 결국엔 농구를 하고 싶어하는, 박병찬의 모습에 다들 감회된다. 아이들은 그저 좋아하는 걸 하고싶은 것 뿐이다. 현실과 깊게 연관된 트라우마가 될 법한 일을 겪었음에도 박병찬은 여전히 농구를 잘하고 좋아한다. 박병찬의 즐거움은 마치, 이 즐거운 일은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냐는 듯이 우리에게 물어보는 듯하다.
(2사장, 가비지타임, 2023)
2-2. 성흔
영어로는 스티그마stigma에서 유래한 성흔은 소나 노에에게 찍는 낙인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카톨릭에서는 초자연적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라면 캐릭터에게 무심코 성흔을 붙이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오쓰카 에이지, 2014). 즉, 표식은 육체에 새겨진 기피해야하는 자, 피해야 하는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이 뭔가 '결여된' 상태일 때에 이야기가 움직이기 쉽기 때문이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과 같은 스토리적 측면) 성흔은 신체기관일 필요는 없으며, 더 상징적인 것이여도 상관없다.
박병찬의 무릎부상은 현실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냥 아동학대지만,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뛰어나서 다친 '과잉'으로 인한 '결여', 즉 주인공의 증거라고 볼 수도 있다. (병찬이가 들으면 절 찢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면에서 캐릭터의 매력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증표가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많이 생각할 수 있다. 나루토, 카카시, 사스케, (나루토는 너무 많군요) 등등등.
즉, 표식은 주인공임과 동시에 '나'라는 정체성의 근거가 되는데 이는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서 등장한다. '내가 나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계속 요구받는다. 이는 조금 다른 맥락일 수 있지만, 박병찬이라는 캐릭터 역시, 이 성흔을 지고서 내가 대학에 가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고 멀쩡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해야한다. 입시는 증명의 연속이니까. 이런 면에서 박병찬의 캐릭터성은 성흔을 등에 지고서 제 자신을 증명해나가는 주인공의 결여된 주인공의 서사와 들어맞아 매력적인 캐릭터로 탄생하게 된다.
신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캐릭터는 성흔을 가지게 되고, 인간의 질투를 받게 되며, 고난을 겪게 되지만 그럼에도 신의 사랑을 이해한다는 전형적이고도 아름다운 스토리의 주인공이 바로 박병찬인 것이다!!!
3. 독자의 감정
그러나... 이런 모든 박병찬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이런 박병찬을 사랑하게 되었기에, 이 모든 전제를 부정하고 싶어진다.
3-1. 전제의 부정
갑자기 IF구문을 만들어버린다. 만약 박병찬이 다치지 않았다면? 박병찬이 행복했다면? 박병찬이 제대로 졸업했다면? 그럼 지금의 박병찬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가 아는 박병찬이란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캐릭터라는 것은 하나의 속성에도 모든 것이 크게 달라지니까. 그럼에도 박병찬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그러고야 만다. 지금의 박병찬이 아니더라도 박병찬이 행복하길 바라고야 만다.
3-2. '에미야 가의 오늘의 밥상'이 가지고 있는 정상성-일상성
해당 세계관을 얕게 파악하고 있고, 해당 작품도 잘 보지 못했으나...본편이 어두우면 어두울 수록 외전과 AU는 화목하다는 오타쿠 법칙이 있듯이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제 5차 성배전재 관련자 및 주변인들이 요리를 먹고 즐기는 걸 메인소재로 삼고 있는 해당 작품은 소소한 일상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에미야 시로가 요리를 잘한다는 것 외에 기본적인 세계관의 어두운 전제는 싹 거둬낸 작품이다. 훈훈하고 개그스러운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해당 작품이 본편과 연결점이 과연 있을까? 그렇다고 해당 작품을 팬들이 싫어할까?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본편이 어둡고 암울한 시리즈라도 인기가 많이 생기다보면 사람들은 그 캐릭터들을 사랑하게 되고 그 캐릭터의 전제를 부정해서라도 '정상적이고 일상적' (아프지 않고 등 따숩고 밥 많이 먹는) 인 생활을 하길 바라게 된다는 것이 양국 공통의 정서일 지도 모른다는 가정이다. 가장 사랑하는 감정은 서로를 끌어안고 싶어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안락하길 바라는 감정. 그것을 캐릭터에게서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4. 결론
그 존재가 내가 알고 있는 존재와 완전히 달라진다고 해도, 그럼에도 사랑하는 존재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에서 인간의 사랑은 끝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에는 놀랄 때가 많다. 저도 해버리고 나서는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캐릭터와 스토리의 전제 자체를 무시한다면, 시작-혹은 존재-조차 하지 못 할 지도 모르는데...그저 한 캐릭터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때문에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다는 게 인간의 사랑이 정말 커질 수 있구나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게 특정 몇몇 작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콘텐츠에서 발견된다는 점이 특히 좋다.
!!!!
물론 결여된 캐릭터는 존재 자체가 성흔을 품고 있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것이 캐릭터 붕괴라고 생각하는 관점도 당연히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사람은 어떤 존재를 좋아하면 저절로 존재의 행복을 바라게 된다는 사실 자체만은 낭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大塚英志 오쓰카 에이지 (2014). 캐릭터 메이커. 서울: 북바이북.
2사장 (2014). 가비지타임. 출처: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703844
좋앗다면 저에게 100원을,,,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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