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더스게이트3

[BG3] 파이퍼와 추적자 中

현대AU 타브아스타브

틴케이스 by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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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타브입니다 타브 설정 → https://glph.to/kq19lt

전편은 이쪽입니다! → https://glph.to/ygxh6f

퇴고안함!

자료조사를 개 대충하는 바람에 (현대 AU인데 한 편으로 퉁치고 말아버리려고 했습니다 죄삼다) 뉴욕 소재의 바이올린으로 유명한 음대랑 현대음악으로 유명한 음대는 다르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은 자……. (이번편 쓰기 전까지 깨닫지 못하고있었음) 두 대학을 하나로 뭉쳤다고 생각해주십쇼. 대충 썼더니 이런 대참사가…… 그렇다고 락밴드를 단체로 바이올린으로 유명한 음대에 보낼수가 없고 클래식 전공자를 현대음악으로 유명한 음대에 보내버릴 수는 없잖아요 안그러면 지금 전편뿐만 아니라 설정부터 갈아쳐서 뜯어고쳐야해요ㅇ<-<

뭐 묶어서 낼 일 있으면 그땐 수정+추가하는걸로. 하지만 지금은아녀……. 근데 뭐 묶어낸대도 지인들끼리만 주고받기할듯

여기서 '그'는 무성을 표시하는 인칭대명사입니다.


헤일리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곳은 뉴욕 주의 유명한 병원이었다.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복부의 강렬한 통증 때문에 김 샌 소리만 튀어나왔다. 대신 옆 병상에 있던 사람이 소리를 듣고 성큼성큼 걸어와 가로막고 있던 커튼을 젖혔다.

“솔져! 일어났구나!”

“어? 아, 카를라크였구나. 난 또.”

“일주일동안 네가 생사를 몇 번 오간 줄 알아? 다른 애들은 말짱한데 너한테만 이렇게 많은 기계가 붙었다고.”

“진짜네. 이게 다 뭐야…….”

안개 속에서 손을 휘적이면 몸에 붙어 있던 각종 액체가 들어간 관이 흔들거렸다. 이걸 다 맞아서 산건가. 며칠 안 움직여서 삐걱삐걱거리는 걸 빼곤 손도 꽤 멀쩡한 모양새였다. 부스스 웃으며 옆에 걱정했다는 얼굴로 앉아있는 카를라크를 보자니, 이 친구도 다리에 붕대를 둘둘 두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놀란 헤일리가 벌떡 일어나려고 하자 카를라크가 손을 파다닥 움직이며 막아세웠다.

“움직이지마! 너 그러다가 상처 봉합한거 터진다! 아, 아니 그 전에 사람 불러야 해.”

“네 다리! 목발도 없어서 말짱한 줄 알았는데!”

“연주할 팔만 있음 됐지!”

“그것도 맞는 말이다.”

다행히도 양 팔은 멀쩡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목숨이나 같은 손을 남겨줬네. 안도의 한숨을 쉬던 와중, 마침 병실 안에 있던 텔레비전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음악 대학에 벌어진 총격과 사제 폭탄 테러, 부상자는 있지만 아직 사망자는 없음, 범인은 해당 대학에 재학중이던 학생, 일명 외로운 늑대형. 현장에서 체포 불응과 무장으로 저항하여 즉결 사살. 평소 잘 챙겨주던 과 대표학생에게도 총격을 가함. 피해자는 현재 의식불명.

그 의식불명인 학생이 헤일리였다. 인지도로는 뉴욕 최강인 음악대학에서 벌어진 일이니 매스컴이 불타오를 만도 했다. 이제 곧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자신을 수많은 셔터와 빛으로 때릴 걸 생각하니 피곤해졌다. 다행히도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살피는 걸 제외하곤 누군가가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선물같은 건 들어왔지만 그것들이 헤일리의 이목을 끌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며칠 뒤,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인 윌와 깁스를 하고 온 카를라크, 이곳저곳에 반창고를 붙인 섀도하트가 나타나 헤일리의 옆에 앉았다.

“헤일. 우리 밴드할 거야.”

“일렉기타랑 베이스, 드럼 이렇게 셋에 두명이 보컬 돌아가면서 하고. 이름은 아베르누스의 생존자들Survivors in Abernus. 내일 죽을 각오로 하는 거지.”

“괜찮네.”

“네가 우리 밴드 전속 작곡가가 돼줬으면 싶은데.”

“음, 으음…….”

헤일리는 고개를 저었다. 졸업연주회가 남아있었고, 졸업 후엔 독주회나 협연 일정도 꽉 차있었다. 대중음악 작곡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이미 몇 곡은 저들에게 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태어나기를 무대위에서 살아야하는 체질인지라 작곡만 하기에는 그의 인생이 지루해질 것이 뻔했다.

“곡은 주지만 전속이 될 수는 없어. 나는 내 바이올린이랑 있는 시간이 더 좋은걸. 그리고 내가 너희한테만 곡 주는 거 아니거든.”

현대음악쪽에 싱어송 가능한 기타리스트 한명 있던데 걔한테도 준 적 있어. 헤일리의 말에 셋은 번뜩 놀라며 대체 그 사람이 누구냐고, 꼭 영입해야겠다고 수근수근거렸다. 걔만 들어오면 보컬 안해도 된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심 보컬에 부담이 있던 거였는지, 헤일리는 웃어 넘겼다.

아베르누스의 생존자들은 그렇게 결성됐다. 정규 멤버는 아니지만 헤일리는 이따금씩 그들의 개러지에 가서 곡을 주거나 연주 기법에 대한 연구를 하곤 했다. 단독 콘서트를 할 정도로 인지도가 쌓였을 때에, 추가 연주자가 필요하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문제는 그 때쯤 되니까 헤일리도 자신의 영역에서 인지도가 꽤 쌓인 상황이어서. 쉽사리 다른 장르 콘서트에 올라갈 수 없었다. 헤일리가 참석하기로 한 공연 1주일 전까지 답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카를라크가 작업실 구석에 있던 바이크 헬멧을 들어다가 헤일리의 머리에 씌우면서 어느정도 해결됐다.

보여줄 수 없다면 아예 몰라볼 정도로 확 가려버리자고 했다. 요즘은 뭐 이런거에 더 흥분하는 무리들이 있다면서. 체형을 알아보지 못하게 압박붕대로 보정하고, 다리까지 가리는 롱코트에 손도 최대한 노출을 줄여 현만 누를 수 있을 정도로만 장갑을 끼고 연주했다. 그럼에도 알아본 인간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불려나온 거야?”

“헤일이 넋이 나가서 말야.”

“자르 기업이라, 세대 교체 후에도 자료 수집력이 그대로라면 알아보는 건 머지 않을 거 같은데. 거기 투자계획 잘 맞는 편이잖아. 전대 회장이 일상 생활중엔 좀 허당이긴 했지만.”

“여기서 더 어떻게 가려야 할지도 생각이 안 나. 게일,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말 해봤자 나는 교수라니까. 무슨 작전 짜고 뭐 하고 그러는 사람이 아냐.”

게일 데카리오스는 유일하게 베일에 가려진 작곡가가 헤일리 하메른인 걸 알아챈 사람이었다. 체형이야 가렸으니 모르겠지만 제스쳐나 바이올린 기교법의 결은 비슷해서 알아차렸다는 말에 밴드와 헤일리는 한참 서로를 바라봤다. 알아차리자마자 팬레터로 연락해줘서 지금은 돈독한 사이가 됐다만.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기댄 헤일리는 거의 구겨지다시피 몸을 쭈그리고있었다.

“푹푹 찌는 여름 공연 때에도 다 가리고 했는데 여기서 더 뭘 어째? 난 못해……. 차라리 더 이상 밴드 무대에 안 오르고 말지.”

“그건 우리가 싫은데. 레이젤, 너는 어때?”

“비밀이 새어나올까 싶으면 입을 막는 것도 방법이지.”

“안 돼.”

“츠크.”

이야기를 듣던 경호원, 레이젤이 제일 극단적인 방법을 제시하면서 무리의 한숨을 이끌어냈다. 게일은 턱을 괴며 검지와 중지로 볼을 두들겼다. 생각나는 건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엔 망설여져 우물거리는 모양새가 다 보여 헤일리는 어서 말하라는 듯 게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발언권을 얻은 게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단체를 속이는 건 어렵겠지만 하나를 속이는 건 쉽지. 네가 좀 더 바빠지면 돼.”

“얼마나 바빠져야 하는데?”

“런던 일정 끝나고 여유시간 얼마나 남아있어?”

“런던 일정 끝나면 열흘 정도, 바로 유럽으로 넘어갈……. 설마?”

“비행기 표나 더 사놔. 특별 출연 한 번만 하면 넌 용의 선상에서 빠질 걸.”

저 멀리 유럽에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미국 본토의 락밴드 공연에 찬조출연을 하는 건 몸이 두개여야 가능한 일이니까. 게일의 말에 다른 이들이 그들과 헤일리를 번갈아 봤다. 헤일리는 입을 떡 벌린 채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연주랑 파이퍼 일, 둘 다 하란 소리야?”

“여기서 그거 둘 다 되는 사람 너 밖에 없잖아. 애초에 둘 다 너기도 하고.”


아스타리온은 뉴욕 시내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 있었다. 식사를 계기로 간간히 통화로 교류하던 바이올리니스트 헤일리 하메른이 표가 생겼는데 런던에서의 일정이 겹쳐 못 가게 됐다면서 아베르누스의 생존자들의 뉴욕 공연 티켓을 줬다. 두 장이었고, 아스타리온은 곧바로 헤일리에게 연인이나 그에 해당되는 소중한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물어볼 용기는 아직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둘의 관계는 그저 바이올리니스트와 돈 많은 일반인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팬에게 잘 해주는 거고, 아스타리온은 그걸 이용해 자르 기업에 이득이 되려고 꾀했다.

“나중에 감상 들려드릴게요.”

“저야 그럼 좋죠. 이번 공연에는 특별한 이벤트도 있다고 들었는데, 못 가서 아쉬웠거든요.”

“그래요?”

무심히 검색한 이번 공연은 딱히 큰 이벤트는 없어보였다. 뭐, 파이퍼라도 나오나? 그는 헤일리의 말에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티켓을 잘 살펴봤다. 위치를 보면 관계자들의 특별 초대석 같아보일 정도로 근거리긴 했다. 아스타리온은 눈을 끔뻑이다가 문득, 헤일리가 파이퍼일지도 모르겠단 의심을 했다.

“좌석 보니까 관계자들의 특별 초대석 같은데, 혹시 아베르누스의 생존자들과 무슨 관계인가요?”

“…여러 음악적 교류를 하는 관계에요.”

앞의 그 공백때문에 더더욱 의심이 갔지만 넘겨짚어서 가까이 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섞어 헤일리에게 권하는 것도 방법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성장 과정을 캐서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지. 익숙한 방식들이 손을 뻗지 않아도 곳곳에 상주하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카사도어의 방식이란 이름으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비스듬하게 열어놓은 블라인드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조금 걸어야 했지만 햇살을 쥐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자주 대화하는 사이라서요. 언제 한 번 팬미팅이라도 해 보실래요?”

“아직은 멀리서만 보고 싶네요. 티켓 주셨으니 다음에는 제가 어디 괜찮은 곳 대접해드리고 싶네요. 런던 일정 끝나면 바로 오스트리아로 간다 그러셨죠?”

“네……. 자주 가는 곳인데, 기념품 갖고싶은 거 있으신가요?”

“일정 빡빡하실텐데 저까지 생각하진 마세요.”

뭐 저리 상냥하실까, 아스타리온은 그 뒤로 사소한 대화를 조금 하고는 연락을 끊었다. 문득 사무실 바닥에 그려진 빛줄기가 오선五線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파이퍼의 곡이 떠올랐다. 반항 가득한 아이같은 느낌이었다가, 저항이 든 청년같다가, 순응하는 한 명의 인간과 같은 곡을 만들어내는 의문의 존재. 한 번 만나보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렇다고 아스타리온이 기회를 버리는 사람이냐 한다면, 절대 아니었다. 마침 헤일리가 밴드와 가깝다고 했으니 우선 밴드와 접촉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까지 파고들 이유가 있는지 계속 자신에게 되뇌이고 있지만 세상의 비밀 하나쯤은 자기가 더 가진다고 누가 뭐라할 건 없다.

반면, 헤일리는 전화기를 테이블 위에 얹어놓곤 마른 세수를 했다. 휴대전화의 옆에는 뉴욕행 티켓이 한 장 놓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대화를 생각해보면 틈이 너무 많았다. 호흡이나 공백같은 걸로 거짓말을 눈치채는 인간도 많은데 이렇게 더듬거리면 더 크게 의심하지 않나? 더군다나 온갖 정보 다 탐색한다는 자르 기업의 머리쯤 되는 인간이면 더더욱. 헤일리는 입술을 씰룩이다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턱을 괴었다.

“아직 믿을만 한 사람은 아니라서 다 불어버리는 것도 못하겠군.”

“네가 그렇게 망설이는 건 오랜만이군.”

“레이젤, 나는 어지간하면 남들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거든? 특히나 이런 거물의 경우에는 잘못 건들었다간 나 뿐만 아니라 나랑 연관된 모두의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그러면 진짜 곤란해.”

그러며 헤일은 배의 오른편을 손으로 짚었다. 양 눈썹까지 좁히며 아프단 뉘앙스를 보였지만 헤일리와 꽤 오랜 기간 함께한 레이젤의 눈에는 저게 환상통임을 알아 얌전히 지켜보기만 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리 심각한 단계는 아니었는지 조금 기다리니 얼굴이 풀렸다. 다시 허리를 곧추세운 헤일리는 이어 말했다.

“일단 뉴욕에 가 봐야지. 레이젤은……. 내 바이올린 좀 잘 옮겨줘.”

“걱정 마라. 그것보단 나는 네가 하고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얼마나 더?”

“―됐다.”

레이젤은 한숨을 쉬며 헤일리의 연주용 바이올린을 보안이 철저한 금고에 담아 들고 방에서 나갔다. 헤일리는 해가 져서 어두운 런던의 밤을 보고 있었다. 고민하던 헤일리는 아베르누스의 생존자들 곡을 스피커로 연결시키며 위스키와 토닉 워터를 섞어 한 잔 마시고 잡념을 지웠다. 내일 오전부터는 당분간 헤일리가 아니고, 밴드의 작곡가이며 숨겨진 멤버인 파이퍼였다.


헤일리가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왔단 소식은 그의 가족과 밴드의 멤버들만 알고 있었다.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 입국 심사대에 서있을 때를 제외하곤 후드를 꾹 뒤집어 쓰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머리카라 한 올도 들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꽉꽉 눌러 쓴 헤일리는 거동수상자처럼 이따금 한두번씩 휘청거리고 있었다.

시력교정수술을 하기 전에 맞춰서 도수가 들어간 선글라스를 쓰고 온 터였다. 면세점에서 하나 아무거나 구했어야 했다며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바이올린이 든 가방은 앞으로, 옷가지가 든 백팩은 등에 멘 헤일리는 더듬더듬 공항 밖으로 나와서 차를 구하려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분명 차가 온다고 했는데 뉴욕의 망할 교통문제로 늦어지는 거려니 싶어 몸을 돌리자 순간적으로 초점을 잃고 비틀거리다 누군가를 쳐버렸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지금 눈이 좀 안 좋아서.”

“뭐야, 아까 전부터 이동하는데 방해만 되고. 거동수상자 아니……. 헤일리 하메른?”

“아, …아스타리온 씨?”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낮게 으르렁거리듯 짜증을 부리던 아스타리온이 익숙한 목소리에 기억하던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어지러워 몸을 숙이고 있던 사람이 크게 움찔거리다 이내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라색 홍채가 얼핏 흔들려 보였다. 헤일리 하메른은 몸을 곧추세우고 다소 어색한 목소리로 단어를 조합해냈다.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일이 좀 있어서요. 오스트리아로 갈 예정 아니셨나요?”

“잠깐 일이 생겨서요! 금방 갈 예정입니다. 그럼 먼, 먼저…….”

딸랑. 쥐고 있던 휴대전화에서 작은 방울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번 건을 도와주기로 한 형제의 문자였다. 그는 차량과 운전 기사를 보내주기로 했는데, 이에 관련한 내용일거라 확신하고 화면을 확인했다.

「고장 문제로 차량 운행 불가. 택시 타고 가라.」

헤일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최근 며칠, 아니 한 달 가까이 계획한 일이 물거품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충격적이다 못해 절망적인 메시지를 읽은 헤일리는 굳어버렸다. 세상 뭐 하나 도와주는 게 없다. 헤일리에게 온 메시지를 몰래 읽지 않아도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챈 아스타리온은 그 와중에 친절을 베풀겠답시고 질문했다.

“뭔가 이동이 마뜩찮으시면 제 차가 있으니 동승하시겠나요?”

“일정 있으실 텐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저는 일정이 끝나 귀가할 예정이어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급히 귀국하신 걸 보면 큰일이신가 본데, 도와드리죠.”

“비밀로 부쳐야 한다면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스타리온의 손짓 하나에 헤일리의 시중에 도움을 주려는 비서와 보좌진들을 보며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알아챈 헤일리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짐을 건넸다. 아스타리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그의 검은 세단 뒷좌석에 타기 위해 고개를 숙인 헤일리는 마지막으로 차량의 천장에 머리를 박으며 삐걱거림의 정수를 보여줬다. 망할 선글라스, 속으로 중얼거리며 헤일리는 변명했다.

“괘, 괜찮습니다.”

“눈이 안 좋으신가요? 여태 그런 모습은 없었는데.”

“급하게 오느라고 도수가 든 선글라스를 가져오는 바람에 좀 추태를 보였네요.”

“그렇군요. 여기서는 벗으셔도 됩니다.”

짙게 선팅된 자동차는 누군가가 살피기도 어려웠으니 헤일리는 그제야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러면서 배의 오른편을 손으로 짚었다. 근질거리며 안쪽에서 포크로 슬슬 긁는 느낌이라 외부에서 압박해 감각을 뭉개버렸다. 공항을 나오며 석양이 지는 세상을 바라보며 헤일리는 서둘러 휴대전화를 두들겨 메시지를 보냈다.

“급한 일이신가봐요. 도수도 안 맞는 선글라스까지 들고 오고.”

“네, 이쪽으로 가 주시겠어요? 습, 개인 연습실 주소입니다.”

“많이 멀진 않군요. 알겠습니다.”

“머리는 괜찮아요? 아까 세게 부딪힌 거 같은데.”

“괜찮아요. 아마도…….”

문득 누군가 복부를 강렬히 때리는 감각에 헤일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젯밤에도 온 환상통Phantom Pain. 한 번 오면 며칠 꽤 갔지만 어제 왔던 통증이 그렇게 크진 않아서 신경 쓰고 있지도 않았는데 강렬히 때리는 감각에 신경을 온통 다른 곳으로 쏟으려 창밖을 바라봤다. 이젠 몸까지 그를 따라주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상대는 아무래도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한단 감각으로 받아들였지만.

맨해튼의 어퍼 타운, 부유한 예술가들이 모이는 구역의 5층짜리의 좁고 높은 건물. 세월이 오래돼 탈색된 듯 연한 갈색을 띄는 석조 벽돌로 연륜을 알아챌 수 있는 이 건물 앞에 세단이 멈춰섰다. 헤일리는 여전히 아픈 배를 손으로 짚고 문 앞에 섰다. 식은 땀까지 나고 있었다. 저들을 빨리 보내야 자신도 약을 먹고 쉬든가 할텐데, 그들은 자신의 짐을 들고 얌전히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돌아갈 기세였다. 이상한 걸 눈치챈 건 경호원 쪽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아, 그. 괜찮……. 일단 실제로 피가 나는 건 아니니까요. 이건 그……. 약 먹으면 괜찮아져요. 연습실 안에 있거든요.”

잠깐의 실랑이에 이상함을 느낀 아스타리온이 결국 나와 어기적거리는 헤일리를 부축했다. 진짜 별의 별 추태를 다 보여준다. 수치스러움에 열까지 올라 얼굴이 붉어진 헤일리는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게 열쇠와 전자키로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말이 연습실이지 실제로는 집처럼 꾸며져 있었다. 주기적인 관리를 하는 건지 청소도 돼 있었고, 훈기 넘치는 감각에 헤일리는 그대로 바닥을 짚으며 엎어졌다. 차 타기 전까지 눈만 문제던 사람이 갑자기 엎어져 숨도 제대로 못 잡고 몰아쉬는 걸 보자니 상대도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당황한다. 헤일리는 기꺼이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주방 선반에, 진통제 있어요. 그거 저한테 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요. 대체 뭔지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보시면……. 알아요.”

보여주긴 싫었지만. 헤일리는 경호원의 부축을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스타리온이 주방의 선반에 잘 보이는 곳에 진통제를 찾아 물 한잔과 같이 방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헤일리는 일어서서 상의를 벗고 있었다. 흉부는 언더웨어로 가려져있고 얼핏 외설스런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더 눈에 띄는 것은 복부 하단, 오른쪽에 위치한 동그랗고 큰 흉터였다. 총알이 통과라도 한 듯 원형으로, 그리고 주변이 꿰뚫린 듯 파형이 그려져 있었다. 헤일리는 거울로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멀쩡하다. 지나갔어.”

지나간 일이다. 하지만 한 두 번씩 그 상흔은 여전히 있었고,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직 공연중에 아픈 적은 없었고, 그 상처의 강도도 천천히 줄어들고 있었지만 원인이 확실치 않아 진통제를 받아 제어하고 있었다. 아스타리온은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헤일리는 잦아든 고통에 한숨을 쉬며 가운을 걸치고 허리끈을 꽉 감았다. 진통제를 갖고 들어온 아스타리온을 보며 자백했다.

“총이 좀 아프더라고요.”

“환상통……. 그런 건가요?”

헤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 방법이 확실하지 않은 환상통, 그렇다고 배를 한 번 더 도려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마 강도가 센 편은 아니라서 약과 함께 거울을 보며 심리적인 안정상태를 만들면 됐다. 헤일리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좋지 못한 꼴을 보여서 죄송하네요. 저녁식사 하시고 가시겠어요? 옆 레스토랑에서 배달 시키면 되는데.”

“…그래요. 제가 당신 괜찮은 지 좀 보고 가야겠습니다.”

“뭘 또 그런…….”

“헤일리 씨. 제가 그래도 제 영역 안의 사람은 잘 챙기거든요. 하물며 동경하는 사람이 아프면 어떻겠습니까?”

“이해는 가지만……. 알겠어요.”

헤일리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마른 세수를 했다. 저 남자가 뒤로 물러날 생각은 하나도 없단 듯 그 앞에 당당히 서 있었다. 정보나 조금 얻을까 인연을 맺으려던 사람이 이렇게 아프다고 하자니 왠지 자꾸만 속이 뒤틀리는 감각이었다. 뭔가, 뭔가. 자신이 돌봐야하는 기업의 사람들과 어느정도 결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각. 어떤 면에서는 동질감.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을 보는 감각. 어떤 면에서는 저 완벽한 사람에게 흠집이 있단 의외의 정보에 대한 탄성. 아스타리온은 그 붉은 눈으로 헤일리와 눈을 마주했다.

하루만에 생긴 사건이 너무 많았고 헤일리는 피곤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그는 레스토랑으로 전화해 저녁식사의 배달을 요청했다. 전화가 끝난 화면에는 아까 전, 카를라크에게 보낸 문자가 있었다. 「문제가 생겼어. 바로 작업실로 가진 못할듯. 나 기다리지 마.」 그 메시지를 보며 헤일리는 다른 의미로 속이 비틀리는 감각이었다.

“좋아요. 위층에 손님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헤일이라 부르세요. 그러셔도 됩니다.”

적극적으로 들어온 저 창백한 인상의 남자에게 거리감을 더 느낄 필요는 없어보였기에. 헤일은 자신의 애칭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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