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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by 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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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디스 크라나흐 제3황녀는 즐거웠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느끼기에는 실로 이질적인 정서였다. 하지만 그건 - 황녀의 한평생을 지배해 온 모든 행동들과는 달리 - 허세나 광증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날 때부터 보이지 않는 우리 안에 자신을 가두어만 했던 자에게 죽음의 가능성은 차라리 해방이었다. 그 사실을 처형 직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어, 황녀는 이 상황이 못내 기꺼웠다.

"경, 이리 와 앉아 봐요."

황녀가 눈앞의 기사에게 손짓했다. 그 모습이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잘 알면서도, 그녀는 터져나오는 실소를 숨기려는 시도조차 않았다.

기사는, 비요른 가이예르는 황녀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황녀는 드물게도 그의 표정이 잘 읽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공황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황녀가 생각하기에 그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는 가이예르 경이라니. 멀리 갈 것도 없이 기사 본인부터가 코웃음칠 소리였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기사는 줄곧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었으므로 먼저 움직인 것은 황녀였다. 그녀는 원체 답답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두 사람 사이에서 기다림은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사라락. 반역자를 조롱하듯 허락된 단 한 벌의 화사한 드레스가 바닥에 끌렸다. 이제는 그마저도 다가올 운명에 대한 암시 같았다.

"대답이 없군요. 혹시 두려운 건가요?"

명백히 기사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도발이었으나,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재판정에 설 때까지만 해도 매끄럽게 굴러가던 혓바닥이 이제서야 굳은 모양인지. 그제야 황녀에게도 이 상황을 웃어넘겨선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두 사람이 처음 서로를 알게 된 날로부터 어언 3년. 그것은, 황녀가 알기로는, 기사가 가면 없이 그녀를 마주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쩌면…….

정말로 이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황녀는 타인을 안심시킬 정도의 인격이나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다. 하기야 그녀가 그런 자질마저 타고났더라면 제국의 정치 판도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으리라.

새벽종이 그들을 재촉하듯 울렸다. 뎅, 뎅, 뎅, 뎅. 묵직한 타종이 싣고 있었던 것은 어떠한 체념의 무게였다. 황녀는 알고 있었다. 저 소리가 다섯 번 더 울리고 나면, 그녀의 마지막 숨결도 다하리라는 것을. 그러니 이 비공식적 면회 또한 조만간 종료되어야 할 것이었다. 기사의 절박하기까지 했던 변호도 그녀를 - 아니, 그녀 이전에 그 자신조차도 - 구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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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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