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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

하자가 있다

복지사업 by 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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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렛 * 인퀴지터

제 성격의 하자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하자를 굳이 고치려 하지 않는 것조차 불량품과 같은 성격이다. 그 성격을 알면서도 끝끝내 자신을 팀장직에 올린 것도 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염라를 붙잡고 매주 질질 짜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도, 꿋꿋하게 선량한 표정으로 무시를 당하고 있으니 의미가 없다.

지금쯤이면, 어느 날 온 커다란 그 사람도, 제 성격의 하자를 이제는 깨닫지 않았을까? 과하게 과묵하고, 뜻하지 않은 그 어떤 상황에도 토를 다는 법 없이 조용한 사람. 그 커다란 덩치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묵직한 발걸음 뿐인. 자신을 팀장으로 두는 것은 결코 뜻하지 않았으리라. 제 아래에 팀원으로 있는 사람은 날이 흐를수록 적어졌다. 그 뜻은 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데도. 염라는 꿋꿋하게 저를 앞에 내세웠다.

아.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그림자가 언뜻 지더라. 어설프게 고개를 들어 그 덩치를 눈에 담는다. 왜 여기 있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오늘 아침에 제가 그에게 했던 말을 생각한다.

"오... 오늘은, 그냥 저... 만 따라서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오늘은, 보고 하고... 급한 일 생기면 현장 가는 걸로 할게요."

다른 팀원은 이미 자리를 비웠다. 담배니 식사니 하며 다들 틈만 나면 자리를 비우고, 다른 퇴마팀의 보조 역으로 들어간다. 그 팀의 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면서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야지, 그래야 내 아래에서 도망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따지면 머릿속으로 이런 구차한 생각들이 범람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는 것에 가깝다.

보고를 다 마친 것은 점심 즈음이었다. 식사만 모두 함께 하고 그 이후로는 모두가 행동을 달리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경계가 많이 흐려졌다. 이 사람은 그렇게 거대한 몸집을 가졌음에도 자신이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굳건해서 종종 그의 존재를 잊었다. 아니면 잊었다기에는 그에게 익숙해졌다고 함이 빠를까. 이미 옆에 있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많은 팀원이 들어오고 나가는 사이에도, 그래 딱 이 정도 거리감을 두고 제 옆에.

입술을 꾹 누르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곧바로 숙였다. 잠시 머리의 투구 사이로 스산하게 빛을 내는 눈을 봤던 것 같기도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텃밭의 것들을 만지고,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 지를 십분 내지 생각한다. 곧 상상한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충실하게 그것을 행동에 옮길 이 자를.

"이, 이, 인퀴지터어... 이, 이제... 돌아가셔도 되어요... ..."

그 이름 낱말을 뱉는 데에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굳건하게 그 자리에 서서 제 명령을 기다린다. 이 자가 없었더라면, 진즉 자신은 이 회사를 그만두었을까. 자신을 팀장으로 생각하는 건 오직 이 사람 뿐인 것 같아서, 본인은 뜻도 없을 것을 혼자 망상한다. 이 사람이라면 명령 하나에 죽을 듯이 달려들 것만 같아서. 또한 명령 하나로 아군이 되었다 적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섬찟한 모든 것들에 작게 몸을 발발 떤다. 등을 돌리고, 작게 주저앉아 텃밭을 마저 가꾸고 있는 본인의 모습이 수치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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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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