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fashioned

버번 위스키 1과 1/2 oz.

암실몽몽 by 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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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바닥에 들어오게 되었느냐, 하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단히 특별하고, 유의미한 계기가 존재해서 이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구태여 무언가 이유를 만들자면, 그저 태어나기를 이곳에 있었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정도는 좀 다르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음지의 세계에 있었다는 소리다. 이곳에 몸담고 있는 이들 중에, 극히 소수, 그러니까 외부 세계에 있었으나 스카우트를 통해 들어온 이들이나. 아니면, 그도 아니면 노크 정도가 아니면, 어지간한 이들은 대개 비슷한 배경을 지닐 터였다. 저처럼 뒷골목 출신인지, 아니면 적어도 표면으로는 고상한 체를 하고 있지만, 뒤로는 손을 잡고 있는 이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는 창부였고, 아버지는 포주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니, 제가 말하고도 우스운 소리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좀 더 내밀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둘 다 조직의 일원이었다. 하기야, 둘 다 이름조차도 받지 못할 수준이었으니 내밀하다고 말할 것도 못되나. 어쩌면 그들은 조금 더 벌이가 괜찮은 일 정도로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행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섹스를 팔았을 테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었을 테니까. 아버지는 원래 풍속업소 몇을 관리하는 야쿠자의 중간관리쯤 되었던 모양이었고, 어머니는 그 아버지에게 강간당해 임신했고, 낙태할 시기를 놓쳐서 나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둘에게 전해들은 일은 아니었다.

그 둘이 대단히 나쁜 부모였는가, 하면. 글쎄. 또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좋은 부모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부모 이전에, 그들은 딱히 선량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좋은 인간도 되지 못하는 이들이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은, 뭐. 내게 별다른 관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손버릇이 나쁜 인간으로,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기는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시야에 들어가기에는, 그와 같이 있는 일도 좀처럼 없었으므로, 얻어맞은 일도 거의 없었다. 어머니도 비슷한 처지였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것들은 따로 있었다. 나는 그녀의 사랑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 모성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며, 강간당해 낳은 자식에게 모성을 지니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가게, 그러니까, 그 풍속업소에서 자랐다. 이따금 얻어맞기도 하고, 이따금 굶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보다도 더 나쁜 처지의 존재를 동정하는 몇몇의 인간들에게 기생하여 연명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무관심한 인물이었으나, 식사를 차려주지는 못해도, 돈 몇 푼은 쥐어주는 인간이었다. 어머니도 비슷했다.

나는 그렇게 신파라면, 싸구려 신파고, B도 못되는 C급 느와르 영화의 엑스트라 캐릭터 정도의 배경을 지녔다. 그건 대단히 비극적이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은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열 살쯤 되었을 무렵 죽었다. 나는 뒤처리를 하러 온 조직의 남자들에게 거둬졌다. 나는 그 때 어렸고, 대단히 무기력한 아이였다. 아니, 사실은 반항해야한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멍청했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거둬져서, 조직을 위해 움직이는 이로 컸다. 그들이 직접 거둬온 만큼, 외부에서 침투시켰을 리도 없었고, 어쨌든 어린 여자아이는 꽤 쓸모 있었다.

정보를 빼돌리거나, 혹은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한 어린 정부情婦로도 유용했고, 그대로 제거하는 임무에도 제법 유용했다. ‘어린’ 정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타깃이 알아서 다른 이들이 알 수 없도록, 조심스레 제 침실 속으로 들이는 법이었으니. 대단한 무술 따위를 모르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총이 괜히 있겠는가. 아니면, 정사 후에 지쳐 곯아떨어진 늙은 남자를 대상으로는 어느 누구라도 쉽게 멱을 딸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면도칼 하나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점점 자라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도덕적이거나 선한 일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일들이었다. 나는 조직의 일원이었다. 내 아버지나, 어머니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처럼, 나 역시도 좋은 사람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하기야 처음부터 음화사진은 양화사진이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처음부터 양화의 세계는 내 세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일종의 권태, 따분함을 느낄 정도로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일이 없다면, 방에 틀어박혀서, 시간을 죽이느라 애쓰는 게 고작이었다. 책을 읽기도 하고, 아주 의미 없는 TV 드라마 시리즈를 하루 내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코드네임을 부여받았고, 조금 더 어려워졌으나, 더없이 익숙한 일들을 반복하고. 섹스는 익숙했고, 다른 사람과 같은 침대에 들어가는 일 역시도 익숙했다. 타인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익숙했으나, 나는 도무지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마도 그랬다.

그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진의 연락을 받고, 그를 알게 된 뒤의 일이다. 버본. 코드 네임을 부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였다. 나는 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진 역시도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제법 신뢰하는 관계였다. 어쨌든 나는 밑바닥 출신으로, 양지로는 도무지 나갈 수 없는, 요컨대 양지와는 연결고리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정진정명, 우중충한 삼류 느와르의 인생이었고, 그래서 도무지 배신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내가 진을 신뢰하는 것 역시도 대체로 비슷했다. 그는 조직을 위해서 망설임 없이 내 미간에 바람구멍을 뚫어놓을 인간이었으나, 그건 피차 마찬가지였다. 설령 내가 그다지 조직에 충성심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나는 내 잇속과 알량한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할 것이므로.

진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신뢰했다. 그리고 그는 버본을 더 싫어했고, 신뢰할 수 없었다. 진이 부탁, 아니 명령이군. 어쨌든 진은 나보다 몇 년은 더 빨리 간부가 된 존재였으니. 그는 딱히 내 상사랄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나보다 조직에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기는 했다. 그는 내게 버본을 감시하라고 했다.

이 감시역할을 위해서 수고롭게 접근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진은 인사권을 지녔고, 그는 감시가 원활할 수 있도록 버본의 옆에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아니, 자리를 만들어준 게 아니라, 같은 일을 시켰다고 봐야겠지. 이따금 라이나, 스카치와 같이 일을 하게 될 때도 있었으나, 어쨌든 버본의 곁을 떠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버본을 관찰했다.

밑바닥의 퀴퀴하고, 산패한 냄새에 익숙하면, 아주 옅게 나는 양지의 냄새에 민감해지는 법이다. ‘인간성’이 그랬다. 그러니까 선함이나, 악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였다. 선악 이전의, 인간으로 존재하고, 대우받는 것이 당연한, 양지의 냄새. 나는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인간적인 것을 게걸스레 탐하는 허기에 대해서 떠올렸다. 버본에게서 나는 냄새는 그 허기를 자극했다.

나는 아마도, 버본에게서 인간으로 취급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사랑인가? 알 수 없었다. 나는 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그의 옆에서 지켜보며, 그가 아주 이따금, 아주 옅게 흘리는 양지의 냄새를 ‘훔쳐’ 맡았다. 고작해야 냄새에 불과하므로, 아직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자위와 함께, 침묵했다. 정말로 그가 잠입한 양지의 인간임을 밝혀낼 수 있는 증거가 나오면, 그러면 그 때는 진에게 말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러나 차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직에 잠입했던 스카치, 그러니까 ‘배신자’의 죽음. 나는 스카치의 죽음을 엿보았다. 스카치의 휴대전화의 위치를 추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배신을 공표하기 이전에, 그가 달아날 수 없도록 이미 손을 써둔 뒤였다. 그의 휴대전화는 발신기였고, 나는 그의 처분을 명령받았다. 배신자에게는 제재를, 하고 공표된 말은 사실 일종의 암막이었다. 나는 그가 죽은 옥상에 있었다. 스카치는 차마 발견하지 못했지만, 저수조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같이 움직였던 인물이, 죽음을 인지하기 전, 그러니까 그러한 공포도, 고통도 느끼지 않고, 죽기를 바랐다. 제법 커다란 저수조였고, 그리 크지 않은 나는 밑에서 올려다보는 것으로는 도무지 발견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라이가 스카치에게 하는 말을 들었고, 진에게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층계참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게 누구의 발걸음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스카치가 방아쇠를 당겼고, 버본이 뛰어 들어왔다. 스카치는 제 휴대전화와 심장이 관통하도록 조준한 채, 방아쇠를 당겼고, 거의 즉사였다. 길어야 십 초 정도, 죽음을 인식했겠지. 그러나 버본은. 스카치를 살리고자 했다. 그건 명백한 증거이기도 했다. 배신자를 살리겠다는 것은 동조일 뿐이었다.

나는 진에게 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수 없었고, 그 완전한 죽음 앞에서 무의미하고, 더없이 위험한 행동을 하는 버본을. 그 때 그에게서 풍긴 그 인간의 냄새가.

더없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 인간의 냄새를 감추고, 이 비인非人의 세계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그 냄새를 감춰야만 했다. 진은 스카치의 죽음 뒤로, 버본을 더욱 의심했고, 버본이 풍기는 그 달콤한 냄새는 아주 위험했다. 그 달콤한 냄새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고약한 냄새가 필요했다.

나는 그 냄새를 어떻게 구해야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므로,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라이의 배신에 대해서 침묵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본의 손에 라이를 죽게 할 수도 없었다. 라이가 스카치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버본에게 그것은 어쩌면 복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한 흉일 터였다.

나는 나의 그 향긋한 인간이 흉이 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라이는 스카치의 죽음으로부터 2년 뒤, 조직을 배신했다. 아니, 잠입을 포기했다. 그의 멍청한, 아직 코드 네임도 부여받지 못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라이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진을 신뢰했고, 진 역시도 나를 신뢰했다. 나는 조직의 눈을 몇 개 없애고, 아주 작은 사각을 만들었다. 라이는 그 사각을 틈타 빠져나갔고, 나는 그 사각을 만들었기에 배신자가 되었다. 진은 그 작은 사각도 용납하지 않을 인간이었다.

나는 선량하지 않았다. 구태여 따지자면, 조직의 여타의 수많은 이들과 하등 다를 것 없었다. 그러니까 그가 나를 죽인다고 해서, 그에게 흉이 생길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내 아주 지독한 냄새가, 그의 향긋한 냄새를 덮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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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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