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태웅] 친구학개론
서태웅은 친구가 뭔지 모르겠다.
친구 부정기의 태웅이 시점 이야기.
친구란 무엇인가.
서태웅은 딱히 '친구'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1학년 겨울, 웬일로 싹 비워진 도시락을 보고 그의 아버지가 이유를 물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입에 맞았니? 늘 남겨오더니."
"같이 먹었어요."
"같이? 친구랑?"
친구. 걔네가 친구인가? 서태웅은 그날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점심 종이 울리면 비척거리며 일어나 도시락을 꺼내 들고 홀로 옥상에 올라간다. 날이 꽤 추워졌지만, 옥상에서의 점심은 서태웅이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라 포기하기 아쉬웠다. 졸음을 참으며 도시락을 대충 입에 쑤셔 넣고, 남은 시간엔 내리쬐는 햇살을 만끽하며 옥상 구석에서 낮잠을 잔다. 중학생 때부터 해온 서태웅의 점심 루틴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옥상으로 향하는 서태웅의 발걸음을 누군가 막아섰다. 커다란 덩치에 새빨간 머리가 삐죽하게 자라 어딜 가든 눈에 띄는 그 녀석. 한창 재활치료로 한답시고 학교에 오지 않았던 그가 최근에 다시 등교하기 시작했다.
"야, 여우! 어디 가냐?"
"옥상."
단답을 뱉어내곤 제 갈 길 가려는데, 그 어깨를 강백호가 다시 붙잡는다.
"뭐야, 옥상에서 혼자 먹냐? 호열아! 우리도 애들이랑 옥상 가서 먹을까?"
언제부터 있었는지, 양호열이 옆에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강백호는 복도 저 멀리서 느긋이 걸어오는 그의 친구들에게도 소리 높여 제안한다.
"야아! 대남아! 구식아! 용팔아! 옥상 가서 밥 먹자!"
서태웅의 의사는 중요치 않았다. 얼떨결에 파도에 휩쓸리듯 그들과 옥상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깠다. 백호 군단과 함께하는 점심 식사는 먹는 시간이 반, 말하는 시간이 반이라 평소 식사 시간의 배는 걸렸다. 시끄러워서인지, 잠기운이 달아났다. 여럿의 도시락이 모여 반찬이 가지각색 이이서인가, 식욕도 좀 더 도는 것 같았다. 결국 점심 식사 후 낮잠 시간은 갖지 못했다. 하지만 평소보다 덜 졸리다. 이상했다. 그런데 꽤 좋았다.
같이 점심을 먹으면 대충... 친구 맞나. 서태웅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 더 고민할 시간은 없다.
"네. 친구랑 먹었어요."
"내일도 같이 먹니? 반찬 좀 더 싸줄까?"
강백호의 말이 떠오른다. 혼자서 옥상에서 먹는 거 치사하다고, 같이 먹자고 했다. 이용팔이 그랬다. 내일 돈까스 싸 올 건데, 나눠준다고. 노구식의 감탄도 떠올랐다. 야, 서태웅! 이 계란말이 진짜 맛있다!
"계란말이... 많이 주세요."
서태웅의 도시락은 그날부터 2단으로 바뀌었다.
2학년이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말은, 새로운 담임 선생님, 새로운 학급 구성원들과 함께한다는 뜻이다. 서태웅에게 학기 첫날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원래도 지나가는 동급생이 우리 반인지 옆 반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였다. 2학년이 되고 등교한 첫날, 양호열이 같은 반이네- 라며 인사를 건네올 때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늘 점심시간에만 만났는데 갑자기 수업 시간에 앞자리에 있으니, 위화감이 들었다. 이게 무슨 기분인지, 잘 알지는 못했다.
서태웅이 '친구'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 건 그로부터 이주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새 학기가 될 때마다 의례적으로 써서 제출하던 가정환경조사서. 그건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변함없었다. 인적 사항부터 시작하여 취미, 특기, 장래 희망. 학생의 기본 정보를 파악하려는 담임 선생님의 가상한 노력이 한 페이지의 종이에 빼곡했다. 거기서 빠지지 않는 항목 중 하나는 역시, '친한 친구'였다. 서태웅은 늘 그 칸을 비워서 냈다. 그의 과거 담임들은 빈칸도 별말 없이 넘어가 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빈칸으로 내면 될 것을, 서태웅은 '친한 친구'라는 단어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백호 군단은 친한 친구인가?
빈칸은 총 다섯 개. 마침 백호 군단의 이름을 모두 적으면 딱 알맞았다. 서태웅은 차마 그들의 이름을 적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제 그들과 친구... 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친한 친구는 맞는지 모르겠다. 친구랑 친한 친구랑 뭐가 다른 거지? 뭐를 해야 친구가 친한 친구가 되는 거지? 그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종이를 서랍에 고이 넣어두었다. 마침 강백호가 요란스럽게 앞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왔으니 더 이상 고민할 정신도 없다.
"여우! 어, 안 자네?"
강백호는 어김없이 서태웅을 찾았다. 처음엔 분명히 양호열과 다른 반이 되어 쓸쓸하다며 찾아왔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는 졸고 있는 서태웅을 깨우고, 곁에서 시비를 빙자한 수다를 떨다 가곤 했다.
"웬일이냐? 해가 동쪽에서 뜨겠네."
"백호야. 해는 원래 동쪽에서 떠."
뒤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양호열의 말에 강백호가 새빨개졌다.
"그, 그렇지! 해가 동쪽에서 뜨니까 하는 말이야!"
"뭐라는 거야."
서태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멍청이. 작은 중얼거림을 용케도 들었는지, 강백호가 길길이 날뛰었다.
"이익, 여우! 너도 몰랐으면서!"
"알거든."
"거짓말하지 마! 바보 여우!"
"멍청이."
혼자 열받아서 날뛰는 모습이 웃겼다. 쿡 찌르면 우당탕쿵탕! 하고 반응해서 재밌다. 서태웅은 펄쩍거리는 강백호를 보며 생각했다. 함께 있을 때 재밌으면 친한 친구 맞지 않나? 애기 농구 귀신 태웅이 뿅 나타나 반박한다.
-아니, 농구할 때도 재밌는데 부원들이 다 친구는 아니잖아.
꼬마 잠의 요정 태웅이 끄덕인다.
-일리 있군.
역시 아직도 모르겠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쌀쌀하다. 그러나 날씨 따위가 그들을 막지는 못한다. 백호 군단의 점심 식사는 여전히 옥상이다. 옥상에서 만나면 될걸, 강백호는 굳이 서태웅의 반으로 찾아왔다. 내가 안 오면 여우 녀석 자느라 안 온다니까! 강백호는 그렇게 주장했다. 서태웅과 같은 반인 양호열은 고려 대상이 아닌 모양이었다.
강백호, 양호열, 서태웅. 셋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이미 옥상에 자리 잡고 도시락 뚜껑을 열고 있었다. 옥상 문을 열기 전부터 그들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아, 왔다. 빨리 와! 배고파, 얼른 먹자."
"내가 오늘 엄청난 걸 싸 왔거든!"
이용팔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멀리서 봐도 이용팔 앞의 도시락이 평소와는 달랐다.
"뭐냐?"
강백호가 냉큼 달려갔다. 곧 커다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중국집 차리셨댔잖아. 이게 바로 깐쇼새우라는 거다, 친구들아."
이용팔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싸 온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너희니까 특별히 주는 거야."
"이야, 진짜 때깔 곱다."
"이거 몇 개야? 나 열 개 먹어도 되냐?"
왁자지껄한 군단 친구들 사이에서 서태웅은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았다. 깐쇼새우. 서태웅은 저걸 먹어본 적이 있었다. 가족끼리 외식하러 갈 때, 그것도 아주 중요한 날- 이를테면 누군가의 생일이라던가-에 가끔 가던 중국요릿집에서 먹었었다. 탱글한 새우 겉을 감싸는 바삭한 튀김 껍질. 달콤하고도 새콤한 양념에 듬뿍 적셔져, 식으면 쫄깃해지는 두 매력의 그 맛. 이용팔이 커다란 락앤락 통에 가득 담아온 깐쇼새우는 반지르르하게 윤기를 뽐내고 있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서태웅의 시선이 깐쇼새우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나도... 먹을래."
소란을 가르고 서태웅이 소리 냈다. 깐쇼새우... 먹고싶었다.
"야, 당연하지. 먹어, 먹어!"
이용팔이 직접 제 젓가락으로 새우 몇 개를 집어 서태웅의 도시락 뚜껑에 담아준다. 꼬리만 빼고 쏙쏙 집어먹는 모습을 보더니, 강백호가 비웃는다.
"여우 녀석 꼬리는 빼고 먹는 거 봐! 편식쟁이 여우!"
"야, 근데 태웅이 잘 먹는다. 새우 좋아해?"
"... 맛있어."
서태웅의 대답에 강백호가 제가 갖고 왔던 새우들을 서태웅에게 다 넘겨준다. 그러더니 남은 새우 꼬리를 가져간다.
"이거랑 바꿔줄게."
서태웅은 깐쇼새우를 또 하나 집어먹으며 생각한다. 얘네들은 친한 친구가 맞는 것 같다.
종례 시간, 서태웅은 담임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서랍에서 종이를 꺼냈다. 조금 구겨진 끝을 꾹꾹 눌러 펴고, 연필을 쥔다. 뭉툭한 연필로 친한 친구 칸을 채워나간다. 강백호, 양호열, 이용팔, 노구식, 김대남. 꾹꾹 눌러 쓴 이름들로 다섯 개의 칸이 모두 찼다. 서태웅은 조금 뿌듯했다. 이걸 채운 적은 처음이었다. 부모님이 쓰는 칸이 있으니, 가방에 넣어두고는 종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고민이 끝나니 생각났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졸업한 농구부 선배, 정대만이 방문할 예정이었다. 끝나고 원온원 해달라고 해야지.
"선배, 원온원 해요."
서태웅은 제 계획대로 행동했다. 농구공을 들고 정대만을 졸졸 따라다녔다. 부 활동이 끝나갈 무렵이라, 정대만이 거절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만만쓰! 이번엔 나랑 해!"
방해물이 나타났다. 분명 서태웅이 먼저였는데, 치사하게 가로채려 한다. 서태웅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편한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먼저다, 멍청이."
"어제도 했잖아! 욕심쟁이 여우!"
강백호가 질세라 맞받아친다. 둘의 싸움이 길어지기 전에 정대만이 중재를 나섰다.
"쓰읍.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치, 친구는 무슨! 누가 여우 자식이랑 친구라는 거야 대만 군!"
서태웅은 강백호와 싸우던 것도 잊고,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퉁. 꼭 쥐고 있던 농구공이 발치로 떨어졌다. 강백호의 말을 곱씹느라 손에 공을 쥐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강백호랑. 그리고 다른 애들이랑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강백호는 아니었다. 서태웅은 순순히 인정하기로 한다. 강백호는 친구가 아니구나. 본인이 아니라 하는데 별수 없다. 이제 서태웅의 머리 속에 정대만과의 원온원은 없다. 체육복 위에 저지 입는 것도 잊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바람이 찬 줄도 몰랐다. 그저 강백호의 말이 아른거려 그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강백호의 이름은 친한 친구 칸에서 지워야겠다. 서태웅은 그렇게 결론 내리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제야 추위가 느껴졌다. 밤 날씨는 너무나도 쌀쌀했다.
아침부터 유독 피곤하더니, 학교에 도착하니 참을 수 없이 졸렸다. 창문은 꼭 닫혀있고, 창으로 햇볕도 따뜻하게 내리쬐는데도 몸이 으슬으슬하니 추웠다. 서태웅은 졸음을 이기려는 노력은 전혀 않고, 오롯이 받아들였다. 잠결에 가물가물한 정신으로 강백호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거슬렸다. 동시에 왜 오늘은 저를 깨우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졸음은 워낙 강했고, 깊게 고민할 정신은 없었다. 점심도 잊고 온종일 책상에 엎드려 졸음에 몸을 맡겼다. 타고나길 아무 데서나 잘 수 있는 서태웅이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는 잘도 잤다. 어느 정도냐면, 그가 절대 빼놓지 않는 부 활동 시간이 된 것도 모르고 계속 잤다.
"태웅아."
머리 위로 나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곧 살살 흔드는 손길에 서태웅은 천천히 엎드린 상체를 폈다.
"종례 끝났어. 농구하러 가야지."
양호열이었다. 교실은 이미 텅 비어, 양호열밖에 없었다. 서태웅은 몽롱한 정신으로 양호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태웅아, 너 얼굴이 빨간데. 아픈 거 아니야?"
"음..."
온종일 잤더니 목이 푹 잠겼다. 서태웅은 잠에서 덜 깨서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양호열이 손을 뻗어 이마를 짚어온다.
"뜨거워. 열나는 것 같은데? 병원 가자."
"병원..."
서태웅은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어제 자기 전까지 하던 생각이었다. 강백호는 친구가 아니더라도, 나머지는?
"... 양호열."
"응?"
"우리 친구인가?"
양호열이 머뭇거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여 준다.
"친구 맞지."
"... 강백호는 나랑 친구 아니라고 했어."
양호열이 웃음을 터트렸다. 작게 킥킥거리더니, 부루퉁한 서태웅의 표정을 보곤 급히 웃음을 그친다.
"백호가 너랑은 친구 아니래?"
"응."
"음... 부 활동 시작이 6시던가? 7분 남았네."
서태웅이 뒤 돌아 교실 뒤편의 시계를 쳐다봤다. 벌써 그런 시간인 줄은 몰랐다. 지금 가도 늦는다.
"태웅아, 부 활동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볼래? 어차피 농구할 몸 상태도 아니고."
"왜?"
"기다리면 알 거야. 음, 아니다. 많이 아프면 지금 나랑 같이 병원 가자."
"... 많이 아프지 않아."
양호열의 얼굴에 걱정이 보인다. 서태웅이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진짜야."
양호열은 몇 번의 확답을 받아내고는 교실을 떠났다. 서태웅은 양호열의 말대로 교실에서 잠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양호열은 친구라고 했다. 그러니 믿을 수 있었다. 그가 기다려 보라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책상에 잠시 엎드려 있자니, 질리지도 않고 잠이 또 찾아왔다.
뒷문이 세차게 열리는 소리도, 강백호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서태웅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일어나 봐."
강백호가 서태웅을 살살 흔들었다. 서태웅이 그 손길에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언제 또 잠에 들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사람을 쳐다봤다. 잠기운이 확 달아났다. 강백호가 여기에 왜 있지?
"너... 어디 아프냐?"
강백호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서태웅을 내려다본다. 안절부절못하며 꼼지락거리는 손, 서태웅을 살펴보느라 바삐 움직이는 눈동자, 뛰어왔는지 조금 가쁜 숨. 서태웅은 괜히 시치미를 뗀다.
"... 몰라."
잠긴 목에, 갈라진 소리가 난다. 열이 나고 있긴 한지, 입안이 뜨겁다. 서태웅이 입을 조금 벌려 색색거리는 숨을 내쉰다. 강백호는 그 모습을 보며 더 크게 동요했다.
"미...."
"......"
"미, 미친 여우!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강백호가 버럭 소리치고는 다시 입을 헙 다물었다. 서태웅은 조금 전, 양호열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병원 가자고 걱정하던 양호열. ... 저것도 걱정인가?
"... 졸렸어."
서태웅은 변명을 꺼내 들었다.
"아픈 거겠지!"
"자면 괜찮 질 줄 알았어."
강백호의 눈빛이 저를 걱정하던 양호열과 닮아있다. 닮기는 했는데, 조금 더 과도했다. 걱정이 흘러넘쳐 서태웅을 마구 찔렀다. 서태웅은 조금 곤란했다. 친구도 아니라면서 왜 저렇게 걱정을 하는지. 달갑게 느껴져서 곤란했다.
"추워."
그래서 그저 딴 얘기를 꺼냈을 뿐이다. 결단코 강백호의 걱정을 여기서 더 늘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강백호는 그 말에 불에 덴 듯이 펄쩍 뛰며 우다다 말을 뱉어냈다.
"눗, 잠, 잠시만! 아 옷 여기 없는데... 아니, 섭섭이한테 말하고 병원을! 그, 내가 옷도 가져올 테니까! 기다려, 여우!"
강백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뛰쳐나갔다.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없었다. 그런데 또 멍하니 그가 사라진 뒷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금방 돌아왔다.
"헉, 자, 여기, 후우."
강백호가 서태웅의 저지를 들고 왔다. 제 손으로 직접 어깨에 덮어주며 손을 내민다. 서태웅은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가자, 병원."
어쩌면 서태웅이 기다리던 말이다. 친구인 양호열은 아픈 서태웅을 걱정하며, 병원에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그러니 강백호도 그런다면... 어쩌면....
"왜?"
서태웅이 시선을 올려 강백호를 쳐다본다. 강백호의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갛다. 급하게 뛰긴 했나 보다. 코트를 뛸 때도 이렇게까지 붉어지진 않았는데.
"왜냐니...."
"왜 챙겨주는 건데?"
강백호가 입을 합 다물었다가 다시 재빨리 대답한다.
"친구... 니까."
서태웅은 어제와같이, 그를 멍하니 보았다. 다만 느끼는 감정은 어제와 상반되었다. 강백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어제의 혼란은 오늘의 만족으로 바뀐다. 서태웅이 한참을 생각하는 동안에도 강백호가 그를 향해 뻗은 손은 여전히 거두어지지 않았다. 서태웅은 기꺼이 제 손을 내밀었다. 둘의 손이 포개어진다.
"가자."
강백호가 씨익 웃었다. 서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강백호는 비어있는 한 손으로 서태웅의 가방을 들쳐 메었다. 서태웅의 손을 이끌며 천천히 교실 복도를 걸어간다. 서태웅은 그와 발걸음을 맞추며 생각한다. 강백호의 이름을 다시 적어 넣어야겠다. 우린 친구니까.
이 글이 나오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백호 시점의 '부정기 시리즈', 태웅이 시점의 '개론 시리즈'를 번갈아 가며 쓸 계획이었는데요....
맙소사. 첫 글인 친구 부정기를 쓰고 나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 버린 것이에요. 태웅이 시점은 이미 친구 부정기를 쓰며 제 머릿속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부정기 시리즈만 냅다 썼습니다. 쓰면서 중간에 생각을 바꿨어요. 하나루 온리전이(...) 개최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렇다면 개론 시리즈는 포타 발행하지 말고, 소장본에 넣자! 시점이 다를 뿐이니까! 하고 생각을 했답니다.
결국 어찌저찌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글을 쓰면서도 고민했어요. 시점이 다를 뿐인 이야기는 뇌절인 것일까. 굳이 읽으실까.... 하지만 오타쿠는 뇌절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애초에 부정기 시리즈를 쓸 때 일부러 태웅이의 감정이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걸 배제하거나 몇몇 태웅이 시점의 사건을 생략하기도 해서 그걸 날리기는 아깝기도 했어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지만...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약속했던 외전은 개론 시리즈가 끝나면 가져올게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덕분에 늘 힘을 얻는답니다. 감사해요! 해피 백탱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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