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G3] Knocking on Heaven's Door
커미션 신청하신 단지님 요청으로 전문 공개합니다. 발더스 게이트 3의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AU입니다! (약 11,000자)
게일 데카리오스는 기차 맞은편에 탄 젊은 드래곤본을 연신 흘깃댔다. 그가 특별히 미남이라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고, 단지 기차 안은 분명히 금연 구역이었는데도 그가 시가를 손에서 떼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산 감축을 위해 줄일 수 있는 건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설계된 열차는 평균 신장 인상인 성인 남성 둘이 앉기에는 꽤 좁았다. 게일은 최대한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으려 고개를 쳐들었지만 크게 소용은 없었다. 이 사람은 눈치도 없는 건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에어컨 밑의 금연 사인을 삿대질하는 걸 세 번쯤 반복했을 때쯤, 그의 인내심이 동이 났다.
“저기 밑에 금연이라고 적혀 있는 거 안 보이나 봐?”
드래곤본이 히죽 웃으며 코와 입에서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그가 눈을 굴리는 폼에서 그 이상의 반응을 끌어내기는 힘들 것을 짐작한 게일은 분노로 뜨끈해진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어차피 곧 볼 일 없는 사람이니까 신경 끄자. 신경 끄는 거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게일의 불운한 하루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심장암 말기입니다.”
“제기랄.”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가족력이 있어서요.” 아버지도 정확히 똑같은 병명으로, 제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의사는 반쯤 동정심 어리고 반쯤 무관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심적 고통이 크시겠어요.”
게일은 중얼거렸다. “모르겠네요. 죽는다는 게 원래 고통스러운 것 아닌가요?”
멍한 기분으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그가 있었다. 맹한 얼굴에, 그와 비슷한 연배쯤, 공중도덕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이 병실에서도 연초를 뻑뻑 피워 젖히는 드래곤본.
“환자분, 병실에서는 금연입니다. 의사 선생님께 보고드릴 테니 각오하세요.”
“내 얼굴 보고 한 번만 봐주는 건 안 될까?”
“안 됩니다.”
솔직히 시한부 환자가 됐다는 것보다 이 작자를 또 보게 됐다는 사실이 게일을 더 현실적으로 절망하게 했다. 간호사가 이것저것 주의 사항을 늘어놓고 방을 나가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새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래서, 그쪽은 왜 여기 있나?”
“나 말이야? 심장암 말기라던데.” 게일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문장을 마치는 도중에 새된 삑사리를 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드래곤본은 고개를 끄덕였다. “헤. 난 뇌에 테니스공만 한 종양이 있다더군. 잘라 내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라기에 죽을 날이나 기다리려고.” 그는 드래곤본의 입가에서 여전히 달랑거리는 담배를 황당하게 바라봤다. “왜? 어차피 죽는다는데.”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종족 평균의 감수성에 비해서도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두운 충동이라고? 이름이?”
“사실 기억이 없어. 눈 뜨고 처음 떠올린 말이 그거길래 그냥 이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지.”
“기억이 없는데 스스로가 흡연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담?”
“그런 건 그냥 알지. 몸에서 느껴지니까.” 어두운 충동이 씩 웃었다. 그때, 침대 사이의 벽에 걸려 있던 십자가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리고 십자가에 직격당한 캐비닛 문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테킬라? 드래곤본이 꼴에 수줍은 체하며 몸을 비비 꼬았다.
“이따 저녁에 이 신세가 된 걸 기념하면서 마시려고 했어. 너도 낄래?”
게일은 눈을 가늘게 떴다.
새벽에 그는 독한 담배 연기 때문에 폐를 토할 것처럼 기침하면서 깨어났다. “으윽…. 뭐야?”
“아니, 죽었나 걱정돼서.”
“보시다시피, 잘, 살아, 있거든.” 그가 이를 앙다물고 말하자 어두운 충동이 킥킥댔다. “같이 마시자. 내가 술 뒤지게 말아줄게.”
“농담이라도 지금 상황에 그런 표현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네. 그나저나 설마 소금도 챙겨 온 거야?”
“당연히 아니지. 주방이나 털까 했었어.”
“주방을…. 턴다고?” 그것도 병원 주방을? 그날은 정말로 그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들만이 계속되는 하루였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나도 미친 거지. 생각하다 보니까 알 게 뭐냐, 싶더라고. 게일은 한쪽 입꼬리만을 비딱하게 끌어올렸다. “안 될 것도 없지.”
“좋아! 지금 당장 가자고.”
누군가 그들을 위해 준비해 둔 것처럼, 조리실에는 소금은 물론이고 레몬까지 있었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탕 취해서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나 사실 워터딥 밖으론 나가본 적이 없어.”
“정말로? 다른 도시엔 가 본 적이 없단 말야?”
“응.”
“캔들킵이나 발더스 게이트도?”
“그런 곳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 젠장. 인생을 헛살았군.”
“헛살았지.”
“…담배나 내놔.”
게일은 어두운 충동의 손에서 담배를 낚아챘다. 그리고 한 입 깊게 들이마…시나 싶더니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캑캑댔다.
“일탈에 도전하려면 다른 방식으로 해야겠군. 티아 모라나 가 볼까?”
“지금 가잔 말이야?”
몇 분 뒤, 게일과 어두운 충동은 비상등만 켜진 병원 복도를 슬리퍼 차림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취한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언젠가 아버지처럼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하게 욕망하지 않고, 언제라도 다 버릴 수 있도록 살아왔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둘은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지?” 게일이 물었다.
“저거, 저 차를 타자고.” 어두운 충동이 연한 하늘색 캐딜락 방향으로 손짓했다. “캐딜락을 훔치자고?”
“제대로 들었군그래.”
“하지만…. 열쇠도 없잖아.”
“제기랄, 그러네. 문은 열려 있는데. 우연히 보조 열쇠가 이런 데서 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
어두운 충동이 운전석을 여기저기 쑤석거렸다. 그러다 룸미러 옆의 콘솔을 툭 쳤는데, “이런 미친.” 열쇠가 떨어졌다.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어두운 충동이 운전대를 잡고 게일이 조수석에 앉았다. 어두운 충동이 시원하게 고함을 질렀다. 가자!
잠시 뒤, 병원 주차장
“…차가 없어졌어.”
“츠크바,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잠그고 내리지 않은 거야?”
“지금 내 탓을 하는 건가?”
“그럼 네가 운전했지 내가 운전했어? 비코니아님께 뭐라고 말하지, 망할….”
“그건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지. 내가 보고해야 할 대상은 키스락 보스뿐이다.”
“오늘 안에 차를 못 찾으면 본사까지 가도 말짱 헛일이라고!”
“그럼 제 시간 안에 찾으면 된다.”
“…뭐 뾰족한 수라도 있어?”
“없다.”
섀도우하트는 머리를 감싸 쥐고 아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어두운 충동은 글러브박스를 열고 그 안을 살펴봤다. “우리 차도 아닌데 그래도 돼…?”
“방금 우리가 차를 훔친 건 잊었어?”
“아.”
“그나저나 차 주인이 대체 뭐 하는 놈이었길래 이런 게 들어 있지?” 그의 손에는 묵직한 광택이 도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어두운 충동은 활짝 웃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허름한 주유소가 눈앞에 보였다. “기름도 부족했는데 잘 됐군.”
“우리 돈 있어?”
“글쎄….”
어두운 충동은 말을 흐리며 먼저 차에서 내렸다. “기름 넣고 있어, 주인이랑 대화는 내가 할 테니까.” 게일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유를 마쳤는데도 어두운 충동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일은 주유소 주인을 걱정하는 마음 반, 어두운 충동을 걱정하는 마음 반으로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실례합니다…?”
그러자 게일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일전의 그 권총을 노인의 이마에 들이대고 있는 어두운 충동, 그리고 심드렁한 표정을 한–아마 상점 주인으로 추정되는–노인이었다. “너 뭐, 뭐, 뭐하는 거야!”
“가-가-강도질 하는데. 하여간 현금 가진 거 다 내놔.”
“젊은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걸세. 내 단골 중에 경찰이 하나 있지. 그리고 그 사람은 시간관념이 아주 철저해서, 지금으로부터 딱 3분 뒤. 3분 뒤인 3시 정각마다 여기 와서 치료용 브랜디 하나를 산다네.”
“내 알 바 아니고, 카운터 뒤로 들어가. 그리고 찍소리도 내지 마.”
“클라우스는 어디 갔지?”
“사장님이요? 제가 권총으로 위협해서 이 뒤에 찌그러져 계시는데요.”
너 미쳤냐? 제정신이야? 구석에 찌그러져 손님인 척하던 게일은 어두운 충동의 말을 듣고 사색이 되었다.
“하, 하하하하하!”
경찰은 잠시 침묵하더니…. 폭소했다. “이것 참 재밌는 친구군. 치료용 브랜디 하나.”
“1골드 주셔야죠. 클라우스는 당신 친구라 공짜로 줬을지도 모르지만 전 당신 친구 아닌데요.”
게일은 내적으로 절규했다. 네가 진정 미쳤구나! 영원같이 느껴지는 몇 초가 지나고, 경찰관은 카운터에 동전을 던지고 떠났다. 게일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지금부터는 따로 움직인다.”
“뭐?”
“넌 도움이 안 된다, 이스틱.”
“나라고 좋아서 기스양키랑 같이 다니는 줄 알아?”
“차만 찾으면 되는 거 아닌가?”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다시 말해주자면, 너랑 같이 다니는 것까지가 내 일이라고. 널 고용한 건 샤 재단이고 난 거기 소속이야.” 섀도우하트가 팔짱을 꼈다. 레이젤은 변함없이 무뚝뚝한 얼굴로 권총을 분해했다 다시 조립하며 못 들은 척을 했다. 그러나 현재 둘은 뚜벅이 신세였으므로, 레이젤이 저벅저벅 걸어가는 속도를 섀도우하트가 따라잡지 못할 리는 없었다.
30분 뒤, 레이젤은 중고 가와사키 닌자를 보고 있었다. “…이 탈것이 그딴 가격이라고?”
“닌자는 스테디셀러 모델이라 가격 보호가 잘 되는 편이어서요.” 딜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속삭였다. “그냥 저 이스틱 죽이고 뺏을 수는 없나?”
“미쳤어? 절대 안 돼! 그리고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저거 휠캡도 못 사!”
검은 머리의 하프엘프는 속삭이면서 낼 수 있는 가장 큰 볼륨으로 고함쳤고 레이젤은 딜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녁에 돌아오겠다.” 훔치겠다는 소리였다.
그 시각, 어두운 충동과 게일은 고급 의상점에서 옷을 걸쳐 보고 있었다. “이야, 고작 하루 병원복을 입었을 뿐인데 이런 걸 입고 다녔던 게 옛날처럼 느껴지는군.”
“그러게 말이야. 지금 입고 있는 거, 다 합쳐서 얼마죠?”
가격을 듣고 둘은 서로를 마주 봤다. 그 잠깐 사이에 그들 사이에서 눈빛으로 오간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 그만한 돈 없지?’ ‘응.’ ‘그럼 그냥 나가?’ 어두운 충동이 갑자기 이빨이 드러나게 미소 지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면 현금을 인출해 오지요.”
“손 들어! 강도다! 거기 너, 봉투에 현금 꽉 채워서 담아.”
“네, 네?”
“이게 장난감같이 보여?”
총알 하나를 허공에 낭비한 뒤, 어두운 충동은 은행에 방문한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그가 종이 가방에 가득 담긴 돈을 들고 돌아오자, 게일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어두운 충동이 대금을 치르고 가게를 나오는 동안, 그는 어두운 충동에게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그는 내내 어두운 충동을 힐난했다. “은행을 털다니! 고작 옷을 사려고! 심지어 난 이 색 어울리지도 않는단 말이야.”
어두운 충동은 조수석에 탄 게일을 부루퉁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시골길로 달리던 것을 멈추고 차를 세웠다. 게일이 움찔했다.
“왜, 왜 그래?”
“아니…. 담배나 태우려고.”
“…그렇군.”
그러고 보니, 이놈의 캐딜락을 타고 다닌 것도 꽤 됐는데 왜 그동안 트렁크를 열 생각을 안 했지? 어두운 충동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에 담배를 문 채로 트렁크를 열었다. 햇볕 아래로 먼지가 풀썩 피어올랐고, 그리고 어두운 충동과 눈을 마주치는 확장된 동공의 시체–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오래되어 삭은 천처럼 옅은 곰팡내가…. “이봐, 장난해? 난 그동안 내내 여기 갇혀 있었다고!” 트렁크 안에 불편한 자세로 웅크려 있던 남자가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엥. 시체가 아니었군. 그는 콧잔등을 긁었다.
“그만 꼬라보고 꺼내주지 그래?” 남자–백발의 엘프–는 어두운 충동의 심드렁한 반응에 눈을 홉떴다.
“…그래서, 이 남자가 트렁크에 들어 있었다고?”
어두운 충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아마 처음부터겠지?”
“우리가 어떻게 그걸 몰랐지?”
“그러게 말이야, 이 망할 놈들아. 내가 얼마나 두드렸는지 알아?” 난 폐소공포증이 있다고!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그가 길길이 날뛰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귀담아듣고 있지는 않았다. 게일은 아직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보였고 어두운 충동은 아예 관심도 없어 보였다. 한참을 날뛰던 엘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서 진정하더니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살려줘!”
“죽일 생각도 없었는데…?”
“너네 말고! 날 저기 넣어둔 사람들이 아직 날 쫓고 있을 거라고!”
아스타리온이 장황하게 설명한 내용에 의하면, 그는 다단계 기업의 피해자–그런 것 치고는 그의 기업 내 지위가 상당히 높았지만–였고, 회사를 고발할 수 있는 증거 자료를 반출하려다 야산에 묻힐 뻔했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돼서 내 목에 현상금이 걸린 거나 다름없다고!”
“재단에 너 팔면 돈을 받을 수 있을까?”
“같이 묻히기나 할 것 같은데. 별로 현명한 생각은 아닌 것 같아.”
“그,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그 사람들 눈에는 너희도 내 공범이야. 그러니까 서로 돕자고! 이게 다 공익을 위한 거야! 언론에 이걸 제보해서 앞으로 생길 피해자들도 막고, 겸사겸사 내 목숨도 구하는 거지!”
같은 시간, 경찰서 안
“실종된 바알교의 교주가 은행을 털었다고요? 하지만 왜요? 신전은 문화재라 세금도 안 내잖아요. 걔네 돈 많지 않나?” 칼라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할신은 파이프 담배를 꼬나문 채로 분재의 이파리를 다듬고 있었다. “글쎄…. 나도 합리적인 이유는 떠오르지 않소. 그나저나 그는 살육의 신의 신도가 아니오? 그런데 강도질을 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죽지 않았소. 그 점이 이상하구려.”
“경감님이 말씀하시니까 그런 것도 같네요.”
다음 날 게일, 아스타리온, 어두운 충동이 신문사에 제보하기 위해 도심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길목마다 경찰이 쭉 깔린 뒤였다. “오, 미스트라 맙소사.” 게일이 눈에 띄게 불안해하자, 그 기색을 눈치챈 아스타리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희 무슨 불법적인 일이라도 한 거야?”
“으으으으음.” 두 남자가 동시에 눈을 굴렸다.
결국 차는 잘 눈에 띄지 않을 법한 골목에 세워둔 채로, 그들은 신문사 건물로 걸어갔다. 게일은 주머니 안으로 손가락을 꼬고 제발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빌었다.
같은 시간, 레이젤과 섀도우하트는 로드바이크 한 대에 둘이 꼭 끌어안고 탄 채로 도심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누가 뒤에 탈 지로 실랑이가 있었지만, 대결 결과 레이젤의 운전 실력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섀도우하트는 결과에 승복하고 레이젤의 등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늘색 캐딜락. 드디어 찾았다, 이 거지같은 놈…!”
섀도우하트가 이를 득득 갈며 트렁크를 열었을 때, 트렁크는 (당연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아스타리온은 트렁크에 갇혀 있는 대신 워터딥 지역 신문의 기자를 상대로 언변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게일과 어두운 충동은….
“이제 정말로 어디든 가야 해. 여기 더 있을 수는 없다고.”
“그래, 그렇지.”
“어딜 가고 싶어?”
“글쎄. 너는?”
“사실 어디라도 좋아. 라쉐멘의 전사들도 궁금하고. 언더다크에서도 새롭게 배울 게 많겠지?”
그들이 차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레 어두운 충동이 인도에 주저앉았다. 그는 머리를 감싸 쥐고 욕설이나 저주 같은 것을 짓씹고 있었다. 그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것과, 누군가에 대한 정제되지 않은 살의가 점철되어 있었고, 의료인이 아닌 그들이 보기에도 상태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봐, 이 사람 왜 이래!” 게일은 아스타리온의 말을 듣지도 않고, 눈을 반쯤 뒤집어 까고 경련하는 그를 안절부절못하며 건물 외벽에 기대어 두었다. 그리고 아까의 그 종이가방에서 닥치는 대로 현금을 집어 들고 처음 눈에 보이는 약국에 무작정 달려갔다.
“내 친구가 죽어 가고 있어요, 당장 이 약 내놔요!”
“하지만, 그건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닥치고 내놔! 사람이 죽는단 말이야!”
억지로 약을 삼키게 하자, 어두운 충동은 다행히 조금 뒤에 정신을 차렸다. 게일은 긴장으로 차가워진 손을 주물렀다. “우리 그냥 돌아가면 안 돼? 자백하면 형량이 깎일 지도 모르잖아. 이러다가 진짜 죽으면….”
“모르겠어? 어차피 난 진짜로 죽어! 나한텐 이게 정말 마지막 기회란 말이야!” 어두운 충동이 헐떡였다. “너한텐 별것 아니겠지만 나는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그는 절박해 보였다. 게일이 그를 만나고 처음으로. 그래서 게일은 알 수밖에 없었다. “너 나한테 거짓말을 했군. 사실 너도 워터딥 밖으로 나가 본 적 없잖아….” 병원에서, 어두운 충동이 말했던 모험담. 그 안에서 묘사된 갖가지 아름답고 낯선 곳들에 대한 묘사. 어두운 충동도 실은 그처럼 모든 것을 책으로밖에 읽어 본 적 없는 거였다.
어두운 충동의 상태가 나아지자, 그들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경찰의 수배령이 떴으니,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아스타리온은 운전석의 어두운 충동을 흘낏댔다. “우리 근데 저 사람한테 운전 맡겨도 되는 거 맞아?”
게일은 난처하게 웃었다. 그도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찌저찌 도심 밖으로 빠져나가고도 꽤 달렸을 때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경찰 바리케이드였다.
“차 돌린다!” 어두운 충동이 핸들을 확 꺾었다. 길 옆은 온통 옥수수밭이었기 때문에, 줄기들이 차체를 거칠게 때렸다. 게일은 하얗게 질린 채로 안전띠를 붙잡고 있었고, 아스타리온은 홱홱 쏠리는 몸에 신경질을 내며 앞좌석을 끌어안았다.
“도망갑니다! 어떡하죠?!”
“어떡하긴! 우리도 쫓는다!”
무전으로 내려올 할신의 지시를 기다리는 대신, 칼라크 경사와 레이븐가드 순경은 경찰차에 올랐다. 칼라크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우렁찬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차는 출발했고, 할신 실버보우 경감은 헬리콥터에서 그 꼴을 내려다보다 이마를 감싸쥐었다. 의욕적인 건 좋긴 한데….
“야, 야, 야, 야, 야! 경찰 붙었잖아!”
아스타리온이 운전석 등받이를 퍽퍽 때렸다. 어두운 충동은 나도 알아! 하고 소리쳤다. 그때, 자동차 문 부분의 얇은 철판을 뚫고 총알이 퍽 쏘아져 들어왔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를 기겁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렇게 무작정 총 쏴도 합법이야?!”
한편, 경찰들은 갑자기 나타난 녹색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괴인과 실랑이하고 있었다. “저 새끼들은 또 뭐야!”
“경사님! 일단 진정하세요! 이것까지 태워 먹으시면 안 돼요!”
칼라크의 머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기 시작하자, 윌이 창문을 열었다. 윌이 기억하기로, 칼라크는 저번에도 이렇게 한 번 차를 홀랑 태워 먹은 적이 있었다. 두 번씩이나 그런다면 이번엔 정말로 강력계에서 전근당할지도 몰랐다.
섀도우하트가 레이젤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경찰을 쏘면 어떡해!”
“난 대응사격을 한 것뿐이다.”
“하…. 이러면 또 사고사로 꾸며야 하잖아.” 하필이면 웬 미친놈들 편에 붙어서는. 섀도우하트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권총을 꺼냈다. 어차피 경찰들 앞에서 살인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그냥 다 죽이지 뭐. 섀도우하트가 쏘는 총알은 정확하게 자동차의 금속 외피가 얇은 부분을 뚫었고, 거기에 칼라크가 이를 득득 갈자 차 안이 삽시간에 후끈해졌다.
“으아아아! 이거 공무 집행 방해라고!”
“…아하. 저 연기 나는 쪽. 저쪽이 경찰차가 움직이는 방향이야. 어두운 충동! 오른쪽으로 꺾어!”
게일은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사실을 알아채고 어두운 충동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젊은 경찰들은 총격전에 대응하랴, 범죄자들을 추격하랴 정신이 없었지만.
“잠깐! 브, 브레이크!” 뒤만 보던 게일 대신 아스타리온이 급하게 외쳤지만 소용은 없었다. 멈추려고 해도, 거의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던 캐딜락은 관성에 의해 옥수수밭이 끝나는 지점의 절벽 아래로 망가진 장난감처럼 굴러갔다.
“손 들고 차 밖으로 기어나와라, 무가치한 놈들아.”
이 완고하고 거친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게일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차체는 뒤집어져 있었고, 머리는 피가 쏠려 어지러웠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그가 느끼기에 딱히 부러진 곳도 없는 것 같았다. 게일은 낑낑대며 차에서 나왔다. 원래도 창백했지만 한층 더 창백해진 아스타리온과 이마가 깨진 어두운 충동이 뒤이어 나와 엉거주춤하게 두 손을 들었다.
“이봐들. 저 친구들은 그렇다 쳐도, 난 왜 싸잡아서 범죄자 취급이야?” 아스타리온이 눈을 치켜뜨고 불평했다.
“같은 차에 타고 있었으니까.” 경찰복을 입은 드로우가 답했다.
어두운 충동이 게일에게 눈짓했다. 뭔가 말하려는 건 알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게일이 멍하니 있는 사이, 어두운 충동이 게일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들이댔다.
“어, 공범 맞아. 그리고 얘가 우리 인질이고. 두 명 잡겠다고 무고한 사람 한 명을 죽일 건가?”
아스타리온은 얼굴을 한껏 구겼다가 능청스럽게 말을 바꿨다. “눈치가 빠르네. 우릴 얌전히 보내줘. 그럼 아무 일도 없을 거다.” 내가? 인질이라고? 게일이 어두운 충동을 봤다, 아스타리온을 봤다가 하며 혼란스러워하는 꼴이, 경찰들에게는 그가 정말 인질이라는 확신을 추가해 준 것 같았다. “자, 그러지들 말고…. 평화롭게 말로 해결해 보는 게 어떤가?”
할신이 민타라와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싫은데? 지금 모 아니면 도인데?”
“맞아. 어떡할 거야?”
“…물러나겠소. 경위, 총 집어넣게.”
“그럼 둘 다 손 들라고.”
게일을 뺀 두 남자가 씩 웃었다.
잠시 후, 게일과 아스타리온(어두운 충동은 범죄자 역할이었다)은 경찰복을 입고 있었고, 민타라와 할신은 속옷 차림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묶여 있었다. “이건 수치야.” 민타라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지만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소….”
그 말에 그녀가 끼긱 소리가 날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할신을 돌아봤다. 할신 경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허 웃었다.
경찰 둘을 꽁꽁 묶고 나서, 그들은 반쯤 박살난 경찰차(놀랍게도 시동은 걸렸다)을 타고 도시 바깥으로 향했다.
저 멀리 바닷가가 보였다.
“다 끝났네.”
“그래.”
“여기가 어디지?”
“이제 겨우 워터딥 외곽이야.”
어두운 충동과 게일, 그 둘은 한참 말이 없었다. “바다나 보자.” 아스타리온이 그렇게 말해서, 세 남자는 죽을 곳을 찾는 짐승처럼 해변을 걸었다. 아무 곳에나 털썩 주저앉자 짠내어린 바람이 머리칼을 간질였다. 그리고 손 아래로 알알이 느껴지는 모래와,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바다의 규칙적인 파도 소리, 그리고…. 바다는 평생 봐 왔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낯선 기분일까. 게일은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더 멀리는 가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이 세 명 그대로는.
게일의 예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운 충동이 모래밭 위로 먼저 쓰러졌다. 게일은 그걸 가만히 보다가, 그의 머리를 무릎 위에 뉘였다. 그는 아스타리온이 호들갑을 떨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은 바닷바람에 몸이 으슬으슬해지기 전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해가 빨갛게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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