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 Tight🌙

“아스타리온…”

또다. 스멀거리며 뱀처럼 가슴팍을 기어다니는 손가락에 눈을 뜬다. 찰나에 고개를 쳐드는 신경질을 가까스로 눌러내며 아스타리온은 티아츠를 위한 작은 연극을 시작한다. 가슴을 부풀리며, 콧길로 찬 공기를 빨아들여. 그리고는 다시, 덥혀진 공기가 고스란히 그 길을 되돌아와 나를 빠져나가는 것을 느껴. 흐읍, 하아. 한참이나 먼지 쌓인 채로 있던 호흡 기관을 다시 작동시키는 것은 꽤나 고된 일이었다. 언제였던가? 그가 여전히 ‘숨을 쉬던’ 때가. 명상 속 기억에 따르면 그가 막 ‘부활’했을 때 아스타리온은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던 것도 같다. 물론 그의 신체는 더이상 그런 활동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그저… 썩은 몸이 되었다는 현실보다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유지함으로써 가슴에 남아있던 무엇인가를 지키려고 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생각들은 지금에서야 붙이는 무의미한 사족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그저 몸에 박인 습관을 지킨 거다. 그래, 습관. 이 습관을 뜯어 놓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들었는데. 빈번히 짐승 사냥에 실패하던 아스타리온이 점차 주린 배를 채우기 시작한 것은 아스타리온의 폐근육이 점차 굳어가면서부터였다. ‘아직도’ 살아 있다는 헛된 망상보다 허기를 엇달래는 데 급급해졌을 때, 비로소 아스타리온은 호흡이란 행위를 그의 남은 생—엄밀히 말해 생生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에서 유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먼지 쌓인 폐를 다시 쥐어짜게 된 것은 티아츠 때문이었다. 모든 여정이 끝나고 평화로운 나날 속에서 아스타리온을 당황케 한 것은 전혀 통솔되지 않는 스폰 무리도 아니오, 주기적으로 지상을 다녀오는 티아츠 때문에 다시 겪어야 했던 혼자됨도 아니었다. 그것은 티아츠와의 동침(성적인 함의가 포함되지 않은 문자 그대로의 단어)에서 그가 보이는 이상 행동이었다. 티아츠는 거의 매일 밤 아스타리온을 명상 속에서 끄집어냈다. 어깨를 툭, 친다든지, 재채기나 기침을 한다든지, 일어나 문을 여닫는다든지… 어느 종족에게나 동일하겠지만 고요와 집중을 요하는 엘프의 명상에서 그러한 것들은 특히나 방해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같은 엘프인 그가 모를 리는 없을 테지. 첫 몇 밤동안 그 일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아스타리온은 티아츠의 안위를 걱정했다.

“응… 자기, 뭔가 불편한 데라도 있는 거야?”

자신 때문에 이 어두운 곳에 내려온 티아츠에게 아스타리온은 측은함을 느꼈다. 태양과도 같은 그가 암흑 속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면 어쩌나, 하면서도 아스타리온은 티아츠를 놓아줄 자신이 없어 걱정을 홀로 삼켜 모른 척했다. 하지만 수많은 날이 지나가고, 명상 때를 제하면 달라진 게 없는 티아츠의 언행에 아스타리온은 다른 이유를 의심해야만 했다. 혹시나 싶어 그러한 방해 공작에 성적 행위로 응답해도 봤으나, 쾌락의 양태와 별개로 티아츠의 의도에 그다지 알맞게 들어맞지는 않은 듯한 모양새였다. 그럼 그렇지. 욕망을 숨기지 않는 티아츠가 이렇게 암시적으로 행동할 리 없다는 걸 안다. 아스타리온은 다시 가설을 설정해야 했다. 매일 명상을 방해받은 덕택에 아스타리온은 더욱 예민하고 날선 눈으로 티아츠의 세세한 행동과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었다. 뜻밖에도 그런 아스타리온이 발견해낸 것은, 티아츠가 명상에서 깬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명상의 방해. 그게 행동의 수단이자 목적이었다. 각양각색의 움직임과 소리를 취한 티아츠가 아스타리온의 빨간 눈을 목격한 후, 얇은 눈썹이 안도하듯 펴지고 올라가며 입술 근육도 편안히 늘어지는 것을 아스타리온은 의아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이 사실을 알아낸 뒤의 아스타리온에게는 더 큰 물음표만 깊게 자리잡았다.

“자기야, 진짜 미안한데.”

어김없이 명상에서 고기 낚이듯 끄집어 내어진 아스타리온이 피곤한 얼굴로 미간을 연신 문질러댔다. 깊은 한숨이 추진력이라도 되듯, 그의 입에서는 거칠고 큰 호통이 튀어나왔다.

“신종 괴롭힘이야?!? 내가 모르는 지상의 유행인가, 응?”

티아츠가 그토록 오랜만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우물쭈물하던 그가 아스타리온의 재촉에 의해 두서없이 쏟아낸 말은 마치 그가 늘상 손끝으로 뜯어대던, 미친듯이 진동하던 리라의 현 같았다. 티아츠의 말은 그리 어렵지 않게 간추릴 수 있었는데…

“내가 명상할 때 시체 같아서 무섭다고? 하- 난 자기랑 처음으로 만나기 한참 전부터도 ‘시체’ 상태였어, 자기.”

티아츠가 시체 내지는 사체를 극도로 두려워 한다는 점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모험 내내 텐트를 나누어 쓰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이상한 점이다. 모험 내내 함께 명상에 들던 티아츠가 이제 와서 그를 시체 취급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이어서 티아츠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아스타리온은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랬지! 나도 알아. 그런데, 음… 그때는 닥쳐오는 일들이 너무 많으니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단 말이지… 피곤에 절어서 눕자마자 명상에 들어가거나, 체력이 남는 날에는 너와 이런 저런 걸 하는 데 바빴으니까. 그런데 이제 여유가 생기고 일상이란 걸 찾으니까. 미안, 자꾸 그런 거만 보여서.”

리더랍시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티아츠를 떠올리니 아스타리온은 그가 여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뻔했다. 하지만 이렇게 통수를 맞을 줄이야… 아스타리온은 모험 초반 누군가 혹은 무언가 죽으면 정신도 못 차린 채 사시나무 떨듯 발발거리던 티아츠를 떠올린다. 여정을 지나오며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수치의 두려움을 매일 밤 느낀다면… 아스타리온은 제 연인에 대한 안쓰러움과 이유모를—실은 알지만 외면하고 싶은—죄책감,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느낌이 왈칵왈칵 쏟아져 오는 걸 조용히 삼켜야만 했다. 길다면 긴 친묵 끝에 입을 연 건 아스타리온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래… 이리 와.”

축축하고 어두운 언더다크. 티아츠 같은 성격의 하이엘프가 일상을 누리기에 결코 좋은 공간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기에, 아스타리온은 일종의 부채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티아츠는 되레 아스타리온과 이 공간이 자신에게 자유 감각을 준다고 그를 안심시켜도 그 부채감은 얕은 물이 찰랑거리듯 가슴 한 켠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일렁임에, 아스타리온은 티아츠를 더이상 탓하지 못하고 산길에서의 여느 밤처럼 그 두툼한 몸뚱어리를 꼭 껴안았다. 두 팔로 다 감싸지지 않는 덩치를 안고서, 아스타리온은 천천히… 먼지 낀 폐를 펌프질하여 본다. 아스타리온의 가슴이 공기로 부풀어 오르고, 제 가슴을 밀어내는 게 느껴지자 티아츠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그날 이후로 간간이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둘은 순서를 지켜 명상에 들었다. 다시 숨을 쉬기 위해 아스타리온은 오래 전의 자신을 되새겨야 했고, 그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으므로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자신이 그 묻어뒀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처럼… 그리워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게 진심인지 혼탁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꾸며낸 호흡에 편안히 눈 감는 티아츠를 보며 아스타리온은 만족감이 드는 것도 같았기에 생生의 흉내를 관둘 수 없었다. 반복되는 흉내에 스스로도 속을 지경이 되자, 아스타리온은 어쩌면 이 순간이야말로 살아 있음이 아닐까 하고 독백했다. 티아츠의 박자에 자신의 박자를 맞추며. 흐읍… 하아… 서로 온도가 다른 공기가 하나의 통로를 지나다니는 걸 느낀다. 스읍, 후우…기도를 나드는 이질감이 점점 줄어든다. 흐읍, 하… 숨이 아스타리온의 입을 타고 빠져나간다. 흐읍… 허망감이 공기의 흐름에 휩쓸려, 함께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하아… 무엇인가 중요한 게, 아스타리온으로부터 빠져나간다. 잃어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스타리온은… 그것이 무엇인지, 왜 그러한 것들이 숨과 함께 오고가는지 알지 못한다. 제 연인의 곤히 잠든 얼굴이 미지의 감정들을 덮으리라 믿으며 한번 더 크게 가슴을 부풀린다. 숨 쉬는 데 집중해. 공기만을 마시고, 뱉어. 스으으읍… 후우우우… 흐읍… 하아…….

제가 지금 머머머ㅓ머멀. 잘 써졌는지 모르겠슴요… 가내타브가 시체를 무서워하니까… 엔딩 이후에 여유가 생기면 아스타리온 숨 안 쉬고 눈 감고 있으면 비슷한 공포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암울한 생각이 들었슴요… 그거 달랜다고 숨 쉬는 시늉 해주는 거 보고 싶었어. 그리고 한켠으로 그게… 안타까운 얘기지만 아스타리온이 자신의 큰 일부분을 부정 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욥… 새로운 가면을 쓴 듯한 감각? 근데 또 동시에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 되는 존재야, 얘가 날 필요로 해. 에서 오는 보호 욕구 충족도 있어서 양가감정을 느꼈으면 했어… 애정으로 달달하게 끝나는 듯하지만 어딘가 위태로운 느낌이랄까~~☆ 맴 아퍼ㅠ 저러고 잘 풀고 화해하고 타브가 또 토닥토닥 해줬을 거여… 왜냐면 제가 새드엔딩 못 봄. 아무튼 몰라유// 얘도 언제 비공(이라고 쓰고 유료화라고 읽음.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다른 유료화된 거 결제하지 마세요…) 때릴지 몰라 후후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