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한] 작은 연주회

아스타리온 X 타한

발더스 게이트의 상부 도시 거리에 전단이 붙었다.

악단의 모습을 그린 것 같은 어설픈 그림과, 장소와 시간을 적어둔 간단한 전단이었다. 며칠 전부터 하부 도시의 공터를 돌아다니며 연주회를 열던 무리가 있었는데, 내일부터는 상부 도시의 출입을 허가받아 연주를 하러 온다는 것이다. 이제 막 복구를 시작해 아직도 무너진 건물이 눈에 띄게 많은 도시에서 한가롭게 연주나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냐는 불평도 나왔으나, 연주를 듣고 나면 대부분 누그러진 표정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들이 이름 있는 악단이라거나, 연주 솜씨가 대단히 훌륭한 건 아니었다. 좌석도 제대로 없는 허름한 공터, 시민들에게 개방된 정원의 한 구석, 무너진 건물같은 곳에서 열리는 작은 연주회는 평범한 바드 무리의 길거리 공연이었으며, 연주는 그저 들어줄만 한 정도였고, 길을 걷는 시민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는 정도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즐겁고, 이 도시의 미래에 희망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연주를 듣고 왔던 스폰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스타리온의 귀에 들어왔다. 윗 도시에 붙은 전단은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그나마 멀쩡한 벽에 붙었는데, 당연하게도 그건 대부분 베르기아 성벽도 마찬가지였다. 아스타리온은 스폰이 들고 온 전단을 빼앗았다.

상부 도시에 오는 건 며칠 뒤고, 오늘은 하부 도시에서 연주가 있었다. 그에게는 다소 익숙한 장소였다.

“오늘 저녁 7시, 블룸리지 공원. …아, 거기서 연주를 한다고?”

바알 신도가 숨어있던 곳이잖아? 아스타리온이 중얼거렸다. 초즌이 죽어도 한가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던 바알 신도들이 떠올랐다. 또 무슨 짓을 하진 않겠지? 아스타리온은 설령 사건이 벌어진다 해도 자신이나 타한에게 큰 위협이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건 찾아가서 들을 가치가 있는 공연이냐고 묻자, 스폰은 다소 망설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스타리온이 ‘연주’라는 것에 어느 정도의 까다로움을 가졌는지 몰랐기에 다시 가서 또 듣고 싶을 정도라고 솔직하게 대답하진 못했다. 그의 주인, 아스타리온은 스폰의 애매한 반응에도 흥미있는 눈으로 전단을 바라보다가, 빼앗았던 것을 돌려주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모든 것이 도시 복구에 투자되는 시기에 귀족이 유흥을 즐기는 건 좋지 않은 인상을 주지만, 작은 공연 정도는 즐겨도 될 것 같았다. 귀족이 쓸데없는 돈을 쏟아 파티를 여는 것도 아니고, 하부 도시에서 열리는 연주회를 구경하러 가는 것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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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예정된 시간에 블룸리지 공원은 연주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까진 아니어도, 축제라도 하는 거냐며 지나가는 사람이 물어볼 정도는 되었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럴듯한 의상을 입고 좌석을 마련해 앉은 귀족들도 눈에 띄었다.

아스타리온은 공원에 가는 대신 근처의 여관 건물을 빌렸다. 창문을 활짝 열자 공원을 채운 사람들과 악기를 정돈하는 악단의 모습이 잘 보였다. 타한이 외출복을 갈아입고 돌아와 자리에 앉고, 아스타리온이 성에서 가져온 와인을 잔에 채울 즈음에 연주가 시작되었다.

소문으로 듣던대로 연주는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지금은 완전히 무너져 복구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윗도시의 공연장에서 열리던 연주회가 훨씬 아름다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저 그랬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듣기엔 좋았다. 미숙할 지언정 웃으며 연주하는 바드들의 즐거움은 연주를 듣는 시민들에게도 전달되었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연주는 도시 복구로 쌓인 시민들의 피로를 덜어주었다. 해가 저물어가며 노을빛이 비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이 시간의 분위기마저 그들의 연주를 아름답게 꾸며주었다. 아무렇게나 터져나오는 시민들의 추임새나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가 더해져 즐거운 현장감이 전해졌다.

잔을 맞대자 청아한 소리가 울리다가 연주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아스타리온은 타한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와인을 한모금 마셨다. 와인 맛은 좋았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연주는 꽤 들어줄만 했다. 스폰이 했던 말처럼 들으면 즐거워지는 연주였다. 그는 얼굴에 번지는 미소지를 막지 않고 창밖의 악단을 바라보며 소소한 유흥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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