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원

아스타리온 X 타한

동이 다 트기도 전부터 바다 새가 시끄럽게 울기 시작하고, 윗도시에는 사용인들의 분주한 발길이 이어졌다. 집사와 메이드, 잡일꾼과 노예까지 다양한 이들이 초라한 차림으로 반쯤 무너진 통행로를 걸어 귀족들의 구역에 들어섰다. 귀족들이 아침을 시작하기 전에 먼지 한톨 없이 성을 닦고, 따뜻한 모닝티와 식사를 준비하고, 정원의 나무와 꽃을 관리해야 했다.

베르기아 성의 하인들은 외부에서 드나들 필요가 없었다.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하는 게 정확하지만, 아무튼.) 하인의 숙소에서 나온 시야가 밝은 티플링 한 명이 자신의 작업복을 단정히 정돈하고 리본을 고쳐 묶으며 정원으로 향했다.

그의 주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구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그 또한 느긋하게 자신의 업무를 시작했다. 정원수 밑으로 떨어진 잎을 줍고, 날이 지나 꽃잎 끝이 시들기 시작한 것들을 골라 뽑아내고, 꽃잎을 활짝 피운 새 것들을 가져와 빈자리에 채워넣었다. 주인이 오늘도 이 정원을 걸을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언제 방문해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관리에 정성을 들여야 했다.

그는 외부를 다 정리하고 나서 정원의 안쪽으로 향했다.

몇 백년은 된 것 같은 분위기 있는 산책로를 걸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물망초가 한가득 피어있는 연못이 나왔다. 베르기아 성의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다. 한쪽에 마련된 티 테이블에 앉으면 연못이 한눈에 보이며 이 풍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주인의 결정에 따라 모닝티가 이곳에 차려질 수도 있었다. 그는 깨끗한 천으로 티 테이블과 의자를 깨끗하게 닦아두고 물망초를 살폈다. 마법에 걸려 며칠 전부터 흐트러짐도 시듦도 없이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는 물망초는 그가 손을 댈 필요도 없이 아름답기만 했다. 벌레가 꼬이진 않았는지, 연못의 물은 여전히 투명한지 같은 것들을 점검하고 나면 그의 아침 업무는 끝이었다.

고개를 들자 드디어 동이 트고 있었다. 베르기아 성의 하인들이 외부에서 해야 하는 일을 모두 끝마치고 성 안으로 숨어버리고 나면 주인들이 깨어날 것이다. 그는 키가 큰 정원수 뒤에 숨어 해가 떠오르는 아침의 공기를 느꼈다. 윗도시의 저택은 대부분 그렇지만, 이 성도 앞을 가리는 건물이 없어 해가 떠오르면 정원으로 곧장 햇빛이 쏟아졌다.

그는 깨끗한 연못물 위로 언뜻 무지개가 그려지는 것을 보았다. 날도 좋고 정원수들은 이슬을 머금고 있으니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무지개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름다운 물망초가 둘러싼 연못 위로 떠오른 무지개는 그늘 속에서 훔쳐보기만 해도 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밖으로 나가 조금 더 잘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강한 햇빛이 정원을 다 뒤덮어버리기 전에 서둘러 자신의 숙소로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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