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아스타리온 X 타한

* 서기관이 주제에 고통받습니다. *


아스타리온은 발더스 게이트의 법관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입고 주점의 문을 열었다. 주점의 주인은 법관의 등장에도 겁내지 않고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손님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시끄러웠으며, 작은 무대 위의 바드가 연주하는 류트 소리가 소음 속에 섞인 채 그나마 분위기를 잡아주고 있었다.

아스타리온은 주인을 향해 적당히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바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거르 족의 사냥꾼들이 오늘 소란스럽게 굴더군. 자네가 할 일이 있을지도 몰라.”

주문하지 않아도 눈치껏 나오는 칵테일 한 잔과 함께 반갑지 않은 소식이 들어왔다.

“내가? 거르 족한테?”

“그 녀석들이 사고라도 치면, 우리 법관님이 나서주셔야지!”

“난 용병이 아니야. 그 놈들이 잡혀오면 판결을 내려줄 수는 있지.”

아스타리온은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칵테일을 한모금 마셨다. 상부 도시의 어느 고급진 주점에서 마신 것보다는 투박하지만, 아스타리온이 이 주점이 더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임명식을 하이홀에서 했다고 하지 않았나?”

“하이홀 옆의 작은 별관에서 했지. 중간이 잠깐 지나가긴 했지만…”

“이야, 안쿠닌 가에서 하이홀에 입성한 사람이 나오다니!”

“입성 안 했다니까. 하이홀이 어떻게 생겼는 지 기억도 안 나!”

이 사람도 취한 건 아니겠지? 아스타리온은 헛소리 하지 말라고 쏘아붙이고 칵테일 다음으로 나온 과일을 한조각 입에 넣었다. 치안판사도 판사라고 상부 도시 출입을 허가받은 것도 모자라 하이홀(바로 옆)에서 임명식을 하고 법관 로브를 받은 것은 나름 영광스러운 일이긴 했다. 귀족 출신이 아니고서야 상부도시에 출입하는 방법은 귀족 저택의 하인이 되는 게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용병단을 끌고 가는 것도 방법이지. 용병이 거르 족을 잡고, 자네가 바로 판결하면 되지 않나?”

“야근은 사양이야. 벌써 해가 졌다고.”

아스타리온은 노을빛마저 사라진 창밖을 힐끗거리고 칵테일을 마저 마셨다. 작은 잔은 금방 비워졌고, 그는 값을 치르고 주점을 나왔다. 거르 족이 모일만한 곳이, 저 근처던가. 그는 밤거리를 밝히는 등불의 작은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을 바라봤다. 거르족은 얼마 전에도 문제를 일으켜 몇 명인가 감옥에 보낸 기억이 있었다. 또 무슨 일을 벌인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죄목이 확실하다면 그는 용병단을 움직여 그들에게 처벌을 내릴 수도 있었다.

“밤이 늦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아요.”

아스타리온이 고개를 돌리자 여자 한 명이 자신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이미 충분히 일했잖아요? 조사는 용병단의 일이지, 판사의 일이 아니에요.”

방금 주점에서 내가 했던 말 아닌가? 아스타리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로브를 눌러 써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밖으로 삐져나온 은빛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저런 사람이 이 도시에 있었던가?

“그러도록 하지.”

하지만 아스타리온은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항구도시는 하루에도 수십명씩 새로운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어제 없던 사람이 새롭게 터를 잡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스타리온이 거의 골목으로 향할 뻔했던 발걸음을 돌려 밝은 거리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여성은 그의 뒷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로브를 벗었다.

“…그래서, 이건 꿈이겠지?”

위시도 아니고서야, 과거로 돌아올 리가 없었다. 간섭하는 건 더더욱. 타한은 대략 200년 전인 것 같은 발더스 게이트의 밤바다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어떻게 돌아간담? 꿈이 깨기를 기다렸지만 이 현실감있는 풍경에서 벗어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느껴지는 위브도 평범하기만 했다.

“이봐, 갈 곳이 없나?”

고개를 팍 돌리자 멀리 사라졌던 아스타리온이 다시 돌아와있었다. 그리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타한을 향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 도시는 혼자 있는 여자에게 그다지 안전하지 않아. 하룻밤 정도는 재워줄게.”

모르는 사람에게 선의로 내밀어진 손. 타한이 만난 아스타리온에게선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타한은 아스타리온의 손을 잡았다. 이런 건 용병단이 나설 일이 아니냐 묻자, 범죄 예방도 법관의 존재 이유중 하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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