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12

주마등

커뮤 by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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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입맞춤은 짭짤했다. 무척이나 야릇한 기분이 들게 했다. 당신의 마지막 숨결을 느끼며 생각했다….

아… 이대로 죽는 건가, 하고.

너무나도 두려웠다. 아무리 죽을 고비를 몇 번이고 넘겨보았다지만 스스로 이러한 상황에 발 들이는 것은, 아니 온몸을 내던지는 것은 그조차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겠지… 따위의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당신 안은 팔을 더 꽉 조인다. 이것으로 당신이 안정을 찾을 수 있으려는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아까 입은 총상 때문에 당신은 이미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르지. 애석하게도 자신의 정신은 어느때보다도 또렷했다. 그러나 돌아갈 수면 위는 없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처지가 아니던가, 당신은 총상 때문에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상처 부위에 바닷물이 닿았으니 지금 매우 아플지도 모른다고…

푸학….

잡념에 잠긴 틈에 바닷물이 코로, 입으로 들어왔다. 폐를 적시는 차가운 물이 따가웠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아무 생각 않다가는 미쳐버릴 것이 분명했다. 죽음을 앞두고 하기에는 태만한 걱정인가….

….

뇌에 산소가 희박해지는 건지 생각이란 걸 하기도 힘이 들었다. 확실한 건 당신이 제 품 안에 있단 것 뿐이었다. 그럴수록 머릿속에는 당신 생각만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는 주마등이라는 게 떠오른다던데. 어째서 제 머릿속은 당신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지.

어쩌면 당신은 내 삶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가족들의 얼굴을 그려보라 함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는 저를 그리도 아껴주던 누나의 얼굴조차 이제는 흐릿하다. 대신 내 삶을 채운 것은 내 가족이 되어주기로 한 당신이었다.

그래… 당신이었다.

내 삶에 들어와 나를 구원한 것도,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도 전부. 당신인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을 미워하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아니라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나는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당신이 죽음을 결심했을 때 따라 죽는 것이 옳다. 내 세상에는 당신 뿐이니까. 눈이 멀어 다른 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니까. 눈이 멀었음에도 당신은 어떻게 인식하고 따르느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의 저를 인도하는 빛이기 때문이라고 밝혀야겠다.

당신은 내게는 없어선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행성이고, 바다고… 돌아갈 수 없다고. 아무도 우리를 받아주지 않는 이 세상에서 돌아갈 곳은 우리, 서로 뿐이라고….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당신은 우리가 바다를 길로 하여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눈치였으니까. 어쩌면 그렇다고 내가 착각한 걸지도…. 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수백, 수천 번도 죽어줄 수 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우리가 행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인생을 반복하게 된다면, 당신과 꼭 다시 만나고 싶다. 나는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분명 다음 생에 만나지 못한다면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당신을 홀로 그리워하겠지….

첫만남을 기억한다.

“갑작스럽겠지만 말이야, 나는 이미 널 알고 있어….

우리는 과거에 운명적인 만남을 했을지도 모르는 사이니까. 내가 그대에 대해서 맞혀보자면. 그러니까, 너는, 인간이었지. 그리고 이름이 양이고.“

그리고 저는 무어라 답변했는지….

“과거의 운명, 전생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쩌면 전생에 이미 아는 사이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전생에도 함께 생을 살아가고, 이번 생을 함께 마무리하고… 이제는 다음 생을 함께하기 위한 시련일 거라고.

아, 이제 잡담은 끝이다.

손끝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힘을 주어짜내 당신은 끌어안고자 노력….


…제가 당신을 그리지 않는 날이 오려면 멀었는가 봅니다.

에스테반 록 로즈는 미쳤다. 이런 상황에 웃음이 나오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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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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