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덷무대해

여름의 증표

2020.09.28 / 앙상블 스타즈 - 사쿠마 레이 드림

시끌벅적했던 해적 페스티벌이 끝나고 노을도 하늘의 끝자락으로 밀려났을 때, 레이는 다 같이 바비큐를 하자며 시끌벅적 들뜬 이들의 목소리와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메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종아리를 스치는 원피스가 바닷물에 젖지 않게 다부지게도 잡아 올린 메이는 맨발로 바다를 거닐고 있었다. 다리를 스치는 파도가 제법 마음에 든 눈치였다.

 

“아가씨.”

 

“선배!”

 

활짝 웃는 낯과 새파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는 것에 레이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메이는 언제나 레이를 웃게 하는 존재가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한 레이는 성큼성큼 걸어 메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물결치는 파도가 신발의 앞부분을 물들이고 물러났다.

 

“신발은 어디다 두었누?”

 

“저기요!”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샌들에 레이는 메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피스를 잡고 있던 손이 레이의 손위에 겹쳐지자 치맛자락이 파도 위를 스쳤다.

 

“옷이 젖겠구먼.”

 

“아!”

 

메이가 다시 원피스를 움켜쥐는 것보다 레이가 메이를 안아 드는 것이 빨랐다. 자신도 모르게 높아진 시야에 메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하면 아가씨도 젖지 않고, 떨어지지 않아도 되니 좋지 않겠누.”

 

“좋아요.”

 

레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 메이는 노을이 내려앉은 레이의 얼굴에 시선이 닿았다. 평소와는 다른 무대 의상과 콘셉트는 다시 봐도 레이에게, 언데드에게 잘 어울렸다. 역시 유메노사키의 배덕 그룹, 해적 정도는 해줘야 그 명성에 걸맞았다.

 

“머리 묶은 것도 잘 어울려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먼.”

 

“다음에 나도 선배 머리 묶어줘도 돼요?”

 

“아가씨가 원한다면야.”

 

메이의 손가락이 머리에 묶인 붉은 리본을 스쳤다. 평소에는 자유분방하게 풀어두는 편이었으니 묶은 것이 색다를 만도 했다. 레이는 절로 웃음이 나는 것을 느끼며 성큼성큼 샌들이 놓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을 까딱이는 메이에 레이가 메이를 좀 더 편안한 자세로 고쳐 안았다.

 

“무거워요?”

 

“그럴 리가 있누. 새털처럼 가볍구나.”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웃은 메이가 샌들을 가리키며 내려달라고 하는 것에 레이는 살짝 몸을 숙여 샌들을 집어 들었다. 레이의 어깨를 끌어안은 메이가 눈을 깜빡였다.

 

“안 내려요?”

 

“발을 닦는 게 우선이지 않겠누.”

 

“샌들이라 괜찮은데….”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네. 싫은가?”

 

본인의 얼굴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아는 레이가 쓰는 미인계를 메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레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모여 있는 곳 근처까지 간 레이가 메이를 의자에 내려놓았다. 근처에 놓인 수건을 가져온 레이가 그 앞에 무릎을 굽히고선 메이의 발목을 쥐자 메이가 깜짝 놀라 파드득거렸다.

 

“제, 제가 닦을 수 있어요…!”

 

“아가씨는 손도 발도 작구먼.”

 

“선배가 큰 거죠!”

 

발목이 한 손에 쥐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 작은 발에 발가락이 꼼지락 거리는 것도 마냥 귀여웠다. 손은 자주 볼 수 있는 부위였지만 발은 아무래도 자주 볼 수 없어서 그런지 더 시선이 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상형 같은 것은 막연하게라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걸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상향이 아닐까.

 

“진짜 제가 닦을 수 있는데.”

 

“지금이 아니면 또 이런 기회가 없지 않누.”

 

“…으음, 그렇긴 한데….”

 

조금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아직도 모든 것이 낯설 메이가 놀라지 않게 하는 것이 레이의 최선이었다. 이 관계를 정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그 이상이 더 빨리 오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다. 욕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레이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상대의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발을 맞출 수 밖에 없었다.

 

“어이! 그만 와서, 고기나 먹으라고!”

 

“아앗, 맞아요. 선배! 고기를 먹어요!”

 

냉큼 레이의 손에서 발을 빼낸 메이가 샌들에 발을 구겨 넣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귓가가 깨물면 단맛이 날 것 같이 탐스러워보였다. 코가에게 고기 접시를 받아 든 메이가 레이에게 접시와 젓가락을 건네고선 다시 팔랑팔랑 코가의 곁으로 다가갔다.

 

“네 녀석은 안 먹고 뭐하고 있냐!”

 

“먹을 거야!”

 

레이는 햇빛 아래에 있는 것도, 보통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낮에 깨어있는 것도 힘들었다.

메이는 마치 그런 자신을 위해서 내려온 빛이 아닐까 싶었다. 저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은 만질 수 없는 태양의 증표이고, 새파란 눈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하늘이며, 환한 미소와 자신을 부르는 달콤한 목소리는 지금껏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손에 쥐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올해 여름은 여러 의미로 뜨거운 여름이 될 것 같구먼.”

* 마지막 대사는 공식 해적페스 레이 대사 인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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